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 - 원재훈 시인이 만난 우리시대 작가 21인의 행복론
원재훈 지음 / 예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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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는 그에 대해서 모른다. 아니 우리는 누구나 서로를 모른다. 그것이 친구든, 부부든, 연인이든 모두 자신의 틀 안에서 상대를 끌어들이는 상투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좋은 관계는 그런 진부함을 깨어버리고 진정한 상대를 발견할 때 온다. 부처의 깨달음같이 어려운 일이다. -71쪽

사춘기, 누구나 사춘기는 겪는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마흔을 지나면서 대부분 또 사춘기를 겪는다. 뭔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거, 지금의 생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자각, 여러 가지 모양과 방법으로 사춘기는 다가온다. 들판의 꽃들이 서로 다른 모양과 향기를 가지고 있듯이, 자신이 살아왔던 생에 따라 크고 작고, 아프고 즐거운 사춘기가 찾아오는 것이다.-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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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12-02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상대를 발견하는 것,,,,정말 심오한네요~.
잘 지내시죠? 이제 시험이라 또 바쁘시겟다~.^^
제 이벤트에 참여하셨으면 좋았을텐데,,,그냥 책 한권 보내드리고 싶었다는 말입니다~.^^;;;

애쉬 2009-12-04 09:50   좋아요 0 | URL
저 사람 참 상투적이다, 진부하다 하고 단정지으면서, 깊은 관계맺기를 힘들어하고, 또 거부하면서 살았거든요. ^^
그런데, 원재훈 시인이 그러더라구요. 그 진부함 뒤에 그 사람의 진정성이 있다고, 그걸 발견하는 일은 부처의 깨달음 만큼이나 어려운 거라고.
당연한 말일 수도 있는데, 저 문장 읽으면서, 악! 하고 놀랐거든요. 나도 정말 상투적이고 진부한 사람이구나 싶어서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고3 담임이라, 시험은 이미 다 끝났고, 좀 편안해졌죠. 며칠 뒤면 수능 성적표가 나오기 때문에 좀 바빠지겠네요.

이벤트는 눈여겨 보고 있었어요. 그치만 마음에 드는 제 호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나비님 호까지 생각하기엔....우선 제 앞가림부터 하고.. ^^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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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에서 한국근현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역사 교과에 많은 과목이 있지만, 5년째 이 과목을 고수하는 이유는 우리의 근대사와 현대사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은 과목도 없기 때문이다. 개항 이후 변화와 두려움의 시대를 거쳐 울분에 가득찼던 대한제국기, 그리고 끝내 나라를 잃고 마음의 고향을 잃고 떠돌아야했던 비탄과 열망의 일제 강점기. 바라마지 않던 광복을 했으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좌절과 전쟁의 상처. 독재 정권에 짓밟힌 국토와 어리석을만큼 되살아나는 민주화의 움직임까지. 역사의 거대한 물살을 거슬러가다보면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그 물살 하나하나가 깨알같이 빼곡하게 사람의 얼굴로 채워져 있다. 내 수업의 목표이자 꿈은, 고고하게 보이는 역사의 물결이 사실은 인간 모든 삶의 총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 안의 인간들도 우리처럼 똑같이 우유부단하고 수없이 실패하며 작은 일에 울고 웃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그리하여 그들이 택한 무수한 선택들이 곧 그들 자신이며, 역사 그 자체임을 알게 하는 것.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그래서 간혹, 역사 교과에 있어서 나는 학자인가 이야기꾼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배우고 배워도 더 배울 것이 많고 배우면 배울수록 더 단단해진다는 점에서 학자인가 하다가도, 역사를 이루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눈에서 툭툭 붉어질 때는 이 이야기들을 다 전해주어야 하는 게 역사교사 아닌가 하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어느 면에서도 딱히 내세울 게 없는 역사 교사이지만,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 같은 소설을 읽으면, 아, 역시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고 살아야 하는 게 내 임무지. 하며 안도한다. 1930년대 저 먼 동만주의 벌판에서 무수히 번민하고 사랑하며 살았던 청춘들이 있었다는 것, 영국더기며 용정의 거리에서 어랑촌 조선인 소비에트에서 우리처럼 뜨거운 피와 말랑한 살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이런 이야기들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무엇을 더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산문집 <여행할 권리>에서 김연수는 이 소설의 준비에 대해 이렇게 썼다.  

2003년 가을의 어느날, 나는 1930년대 공산유격대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목을 다루는 소설을 쓸 생각으로 마두도서관 이층 정기간행물실에 앉아서 1930년을 전후해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조선인들의 생애를 읽고 있었다....
예컨대 이런 것들. "함북 경흥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1908년 부모를 따라 길림성 화룡현 상천평으로 이주했다....1937년 10월 12일 화천현 납자산에서 제8군 제1사 내부의 배반자에게 살해당했다" 혹은 "함북 성진에서 소작농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33년 4월 민생단원으로 지목되어 현위 서기직에서 해임되고 11월 민중대회에서 총살당했다. 해방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로부터 혁명열사로 추인받았다." 
이런 문장들을 읽는데 숨이 턱 막혔다. 이건 내가 도저히 쓸 수 없는 소설이 아닌가. 내가 어찌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내부의 배반자에게 살해당하거나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간첩으로 오인받아서 동지들에게 총살당한 사람들에 대해서 쓸 수 있단 말인가. 1970년 지방소도시 빵집에서 태어나 별다른 굴곡 없이 인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도저히 그들의 삶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더이상 복사해서 노트에다가 짧은 생애를 붙이는 일을 그만뒀다. (129) 

물론 나도 그들의 삶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민족주의자니 공산주의자니 국제주의자니 하는 규정 속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라니. 빼앗긴 조국을 떠나 중국 땅에서 중국의 일부도 되지 못한 채 잃어버린 조국을 위해 또다른 남의 나라, 일본과 싸워야 했던 사람들. 도대체 그들에게 적은 어디까지이고, 동지는 어디까지일까. 이 가늠할 수도 없는 막막한 어둠을 '세세하게 여러 결로 나눈 뒤 그 차이를 구분해 갈 길을 찾아 준' 소설가가 있어 참으로 고맙다. 그들의 삶을 복원하는 일, 저마다의 서사를 가진 이야기로 그들을 되살리는 일이 바로 역사를 가르치는 일일 터이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매몰된 나약한 개인의 삶이라고 해도 좋다. 우리 또한 그런 존재일 테니. 이 많은 이야기를 교과서의 한줄 서술로 마감하기엔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이 소설 곳곳에 배어 있던 절망의 냄새, 체념의 냄새 그리고 열망의 냄새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고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알게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다는 점에서, 1927년 낡은 세계를 부숴버리겠다며 밤마다 영국더기 동산교회에 모여 열에 들뜬 목소리로  혁명을 떠들어대던 네 명의 중학생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뒤질세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서둘러 선언했지만, 그들은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건 당신도, 나도,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빼앗기고 남의 땅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를 꿈꿀 수밖에 없다. 주인만이, 자기 삶의 주인만이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꾸지 않는다.(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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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서 보니 비슷한 느낌의 책들을 이어서 읽었네.  

온다 리쿠의 책을 읽을 땐, 이야기의 중심내용이나 사건의 앞뒤를 꼼꼼히 따져서 읽기보다는  이야기 그 자체, 혹은 발상 그 자체를 읽는 편이 좋다. 라는 게 그녀의 작품에 대한 나의 독서법이다. 곰곰히 생각해보고 말 것도 없이 말도 안되는 미스터리, 판타지적 공간인데다 등장인물들은 혀를 내두를만큼 그 세계에서 천연덕스럽게 살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라는 게 그녀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언젠가 내가 상상했던 이야기의 한 대목이라는 이유없는 확신, 언젠가 상상할지도 모를 이야기에 대한 미래의 기억. 그 분명하면서도 실체가 없는 지점을 건들어댄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 
그러나, 그 감각만으로 2권 짜리 긴 소설을 읽기엔 다소 역부족이라는 점을 고백해야 하겠다.  
(온다 리쿠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인물 묘사. 단정적이면서도 풍부한, 마치 인물 보고서를 읽는 듯한  인물에 대한 명제들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부분에서도 불만족스럽다. 도식적이고 무성의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장정이 맘에 들었다. 한 손으로 책등을 활짝 펴서 책을 지지하고 서서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그렇게 읽기에 참 좋다. 약간 무거운 감도 없진 않지만, 활짝 하고 펼쳐졌을 때의 그 평평한 책등이 좋아서 책을 읽다가도 자꾸 책등을 만져보게 된다.
사실, 파일로 밴스는 처음 만났다. 유명세있는 탐정들은 책을 안 읽고도 식상해져 버리는 배배꼬인 심성 탓이다. 북스피어의 책이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안보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ㅋㅋ 지금은? 안 읽고 지나쳤다면 큰 재미를 놓쳤겠다며 안도할 만큼 즐거웠다. 일단, 밴스가 말을 시작하면, '또 또 시작이군, 저 장광설에 잘난 척에 옆길로 새기' 라고 투덜대면서도 벌써 눈은 웃고 있다. 가령 이런 대목 말이다. 
"내 마음속에는 구름이 끼고 그늘이 져 있다네. 안개와 가랑비와 운무와 아지랑이와 증기로 충만하지. 권운이 뻗어 나가고, 적운이 피어오르고, 양털과 말꼬리와 괭이꼬리와 서리안개와 물보라로 가득차 있어. 낮게 깔린 구름이 천지를 위압하도다(<실락원>의 한 구절). 내 마음속은 기실 운학(雲學)적이라고 할 수 있고 - ." (161)
관심도 없고 배경지식도 없는 이집트학에 대한 이야기마저도 밴스의 입을 통해 들으니 즐겁기 짝이 없다. 게다가 이 인간, 간간히 매우 솔직하다.
"아니 경사! .... (중략)... 가끔은 두뇌를 써 보는 것이 어떤가?" (259) 

장광설 하면 이 작가를 따라 올 만한 사람도 드물거라고 자신하는 또 한명의 작가, 교고쿠 나쓰히코.
모든 사실과 소문과 진실과 유언비어에 대한 해석으로 (아니, 해석에 대한 집념)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작가.
그러니, 기담이며 괴담이어도 '무엇이' 기이하고 괴이한가가 아니라 '어떻게' 기이하고 괴이하게 되었는가를 말하는 책이란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게다가 이번엔 이 과정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러니까, 교코쿠 나쓰히코 같은 사람들이 나온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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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0 0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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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혁명 속에서도,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잔혹한 독재의 그늘에서도 아이들은 자란다. 시기와 질투, 잦은 웃음과 온갖 것들에 두근거리던 소녀들도, 그 소녀다움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언제 깨져 버릴지 알 수 없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하루하루이기 때문에 더욱더 소녀다움이 간절할지도 모른다. 절박한 소녀다움이라고 해야 할까. 성숙해져버린 소녀다움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시대를 관통해 온 네 소녀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한 소녀는 조국을 등진 아버지를 따라 고국의 푸른 하늘을 그리워하며 자랐다. 이념적 고향을 잃은 후엔 마치 보트피플처럼 이 나라 저 나라를 기웃거리며 살았고, 오랜 세월이 지나 돌아간 고국은 그리던 고국의 모습이 아니었다.  
두번째 소녀는 순결한 루마니아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늘 조국에 빚진 마음으로 살았다. 더 큰 목소리로 애국심을 충성심을 보여야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여겼던 소녀는 끝까지 조국의 현실과 진실을 들여다 보지 못했다. 
세번째 소녀는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에서 치이고, 편협한 민족주의와 종교에 치이다 결국 전쟁의 한가운데에 떨어져 버렸다. 공기가 되고 싶다던 어른소녀의 머리 위로 오늘도 폭격이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 소녀는 이상을 꿈꾸며 살아온 아버지를 무한히 존경했고, 그 이상을 소녀시대에 두고 왔다. 십대를 보냈던 체코의 소비에트 학교를 잊을 수 없던 소녀는, 그 소녀시절의 언어로 세상을 누비는 통역사가 되었다.  

이 책은 소녀 시절의 친구를 찾아가는 다큐멘터리이자, 60년대부터 시작된 동유럽과 소련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서이기도 하고, 역사 앞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역사 속에서 아이가 어떻게 어른이 되어 가는지를 묻는 인문학서이기도 하다.  
특히, 차우셰스쿠 이후의 루마니아나 유고 연방의 해체와 뒤따른 전쟁들에 대한 설명은 관련된 어떤 역사서보다도 통찰력있고 인간적이다. 역사의 변화는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어떻게 달라지게 만드는지, 그들의 사고를 얼마나 기울어지게 만드는지, 각기 다른 곳에서 30년을 보낸 세 소녀가 대답하고 있다.  그래서 30년만에 세 친구들 만난 요네하라 마리는 기쁘지만 또한 슬프기도 했다. 아니, 안타깝고 속상하고 애잔했을 것이다. 만만치않게 굴곡많은 역사를 살아온 대한민국의 그 시절 소녀들을 보는 우리의 마음처럼.     

또한 미안하기도 했겠지.
"확실히, 사회의 변동에 제 운명이 놀아나는 일은 없었어요.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른다면 행복은 저처럼 사물에 통찰이 얕은, 남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을 만들기 쉬운가 봐요."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상을 그녀들이 보냈다는 것에 대해서.  혼자서 행복했다는 것에 대해서. 
대학을 다닐 때 과 신문에 이런저런 글쪼가리를 실었던 때가 있었다. 언제인가 한 선배가 말했다. 글이 무뎌졌구나, 너.  
그랬다. 어느 틈엔가부터 세상의 첨예한 각이 보이지 않았고 눈여겨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은 자잘한 가시들이, 그 가시투성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성의껏, 세삼하게 들여다 봐야 하는 일들이 귀찮아진 것이지. 제법 편안한 삶을 살다 보니. 통찰력이고 상상력이고 다 스스로 내려놓고 말았다.
스스로에게 아킬레스건이 되어 버린 이야기가 요네하라 마리의 이 말 때문에 다시 생각났다. 이 말이 뒤통수를 쪼아대는 것 같아 좌불안석. 아, 이래서 사적인 책읽기는 늘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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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10-23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에요~.

애쉬 2009-10-23 11:0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수능이 다가오니 문제 풀이를 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제법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이 문제를 푸는 30여분 동안이 생각보다 책을 읽기에 밀도있는 시간이 되고 있다.  
요사이 읽은 책들이 모두 만족스러운 책들이기도 하고. 

막연히 추리소설이겠거니 하고 골라든 책이었는데, 왠지 당했다는 느낌. 
함께 사막 한 구석을  헤멘 것 같아 목구멍이 까끌거릴 정도이다.  
처음에는 제목이 왜 '모래'나 '모래의 남자'가 아니고 '모래의 여자'일까 의아했었는데,
그가 헤멘 곳, 그가  갇힌 곳, 그가 좀더 머물러 보기로 결정한 곳,  
결국 그의 삶 자체가 될 곳, 이곳이 모래의 여자. 라는 걸 알았다.  

  

  
묵혀두었던 옛책을을 계속 읽어보자 싶어 또 하나 들었다. 사실, 문화적이자 사회적 기본개념이 되어버린 '지킬 & 하이드' 의 이야기를 정작 아직도 읽어보지 못했다는 건, 좀 부끄러운 일이다 싶었다.  (뭐, 이것뿐이겠냐만은)
대강의 얼개는 이미 알고 있어서 '헉' 하고 놀랄 정도는 아니었지만, 1886년의 글이 이 정도의 다양성을 보이고 있다니, 영문학도 참으로 흥미로운 공부겠다.  

 

시코쿠 순례길에 대한 책이 갑자기 2권이나 한꺼번에 나와버려서, 어느 게 나을까 고심하다가 고른 책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은 좀 안습..)
걷는다는 행위는 마치 저 너머에 두고 온 고향처럼, 언제나 그리워하고 벼르고 있는 일이지만,  딱히 계기가 생기지 않으면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언젠가는 가게 되겠지, 언젠가는 가야 하겠지 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다. 변변한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는 게 없었던 나는, 그러한 순례길 자체가 '로망'일 뿐이다. 안심되는 일일까 안타까운 일일까 쉬이 판단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그래서인지 막다른 골목길에서 배낭을 지고 길을 떠나기 시작한 사람의 이야기가 크게 와닿진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글이 궁금해서 읽은 책이 아니라 시코쿠가 궁금해서 읽은 책이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이번 겨울은 카가와 현이나 오키나와의 어느 섬으로 짧게 떠나볼까 하는데, 카가와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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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10-2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코쿠 책은 궁금하긴 한데, 제목이 영 맘에 안 들어요.
스티븐슨의 책은 아동용이 아니라 제대로 보면, 굉장히 악마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양하게 책을 읽고 싶은데, 뭔가 지금 손에 잡고 있는 것도 잘 안 넘어가는 책읽는(?) 가을이에요. ^^

애쉬 2009-10-21 11:12   좋아요 0 | URL
그쵸? 다 읽었는데도 역시 동의할 수 없는 제목이예요.
책이 잘 안넘어가는 때일수록, 아무 책이나 잡다하게 잡아야 한다는 거 아시죠?

라로 2009-10-23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전을(지킬&하이드도 고전으로 쳐줄만 하죠???ㅎㅎ)을 읽다보면 님이 받은 느낌을 많이 받아요~. 그래서 고전이 영원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모래위의 여자,,가 땡기네요~.

애쉬 2009-10-23 11:0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역시 고전이야 하는 느낌.
간혹 비틀즈의 노래를 듣다가 너무나 현대적이고 세련된 선율이라 소름이 돋을 때가 있는 것처럼요.
<모래의 여자>는요, 지나치게 감정이입은 안하시고 읽는 게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