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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없는 낙원 11
사노 미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입학하게 된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런 다짐을 했었다. 작은 일에도 놀라고 신기해해야지, 숨김없이 웃고 울어야지, 더욱 크게 감탄하고 분노해야지, 마치 세상을 처음 본 갓난아기처럼.
그랬다. 새로운 세상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새로운 나로, 내가 되고 싶은 나로 다시 태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새로워 했으며, 전공으로 선택한 역사를 접하면서 작은 사건 하나하나에 감탄하고 분노하고 흥미로워했다. 처음에는 억지스럽기도 했고 스스로도 생각해도 너무 오바하는 것 같아 낯간지럽기도 했지만, 차차 익숙해졌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하면 할수록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모든 일에 즐거워하고, 감동하며, 놀라워한 스무살이었다.
하긴 나의 사춘기가 어디 좀 영악했어야지. 어른들이 어떤 답을 좋아할까 머리를 굴려 답을 했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하는 건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눈치로 살았고 가식으로 겹겹이 쌓여 있었으니 인간관계가 평탄할 리 없었다. 그러나 싸움 같은 건 해보지 않았다. 친구들끼리 말싸움하다가 머리끄트머리까지 붙잡고 늘어지는 일, 차라리 부러울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우관계 원만하고 모든 아이들과 잘 어울렸던 애라고 말할 게다. 세상 모든 것이 시시껄렁했고, 모든 어른들이 가소로웠다. 읽지도 않은 책, 역자후기만 살짝 보고 써낸 독후감으로 시장상까지 받을 정도였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도 난 참 재수없는 애였다.
그래서인지 나의 아련한 추억,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언제나 스무살 즈음이다. 혜화동을 돌아 명륜동 자락으로 올라갈 때면, 삼청동 언덕을 넘어 서울 성곽이 보일 때면, 가끔 눈물이 날 것처럼 그리운 것도 그 때문이다. 내가 가장 솔직했던 시절. 순수, 라는 말은 차마 붙일 수 없지만, 그와 가장 가까웠던 시절.
지금의 나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믿고 싶다. 한없이 무기력하고 삶이 재미없어질 때에도 나를 추스르고 일어날 수 있는 건 그때의 경험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토모에가 정말 좋다.
토모에는 언제나 요란스럽다. 별을 봐도 달을 봐도, 풀을 봐도 곤충을 봐도. 언제나 느끼는 그대로 소리를 지르고 눈을 반짝이며 감동한다. 사람에 대한 감정에 솔직하며 또한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세상이 반짝거리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졌고, 그 순간을 기억하여 마음에 담아두는 능력도 가졌다. 눈물나도록 사랑스러운 아이.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 아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만화를 기다리는 시간이 내내 두근두근이었다. 미소를 입에 걸고 책장을 넘기면 그 밤에는 꿈도 고왔다.
그 아이의 이야기가 드디어 완결이 되었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만큼으로도 충분히 즐거웠고 소중했다. 그동안의 만남을 곱씹으며 또 한참을 즐거워해야지. 오늘밤은 쉬이 잠들지 못할 것 같다.
덧붙여)
물론 토모에의 영향이 가장 크긴 했지만, 두근두근 이 만화를 계속 기다릴 수 있었던 건 야가미와 카즈야의 덕도 크다. 이제와 하는 말인데, 야가미, 너는 너무 멋져!
다행히 완전한 완결은 아니란다. 곧 속편이 이어진다고 하니, 이 두 남자도 또 만날 수 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