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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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읽었다. 올리브를 둘러싼 크로스비 마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일이 한 방울의 기름을 짜내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의 삶 하나 녹록치 않다. 매일매일이 평화롭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그 삶에서 날선 분노와 날것의 수치심을 맛보아야 한다해도 모두 지나쳐가는 여정이다. 그 길이 또한, 뒤돌아본다고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모두 그런 길을 살고 있다. 이 길 위에 있는 퉁명하고 불친절한 올리브라는 어머니이자 아내, 그리고 한 여자.

그녀의 삶에 무한한 응원을 보낼 수만은 없다. 괴팍하고 종잡을 수 없이 화를 내기도 하고 불친절한 부모는 정말이지 자식에겐 지옥을 맛보게 한다. 그러나 그녀가 했던 많은 실수들을 그녀가 기억하고 이겨내기를, 그래서 계속 삶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기를. 나도 언젠간 그 나이가 될 테니까. 그런 할머니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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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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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기대없이 집어든 책이 너무 좋아서, 무엇이 이렇게 좋은 건가 하며 한참을 들여다보고 다시 또 들춰보곤 했다.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인문학도로서, 천문학은 문학과 비슷한 거라고 혼자 생각하곤 했다. 어디까지가 과학이고 어디부터가 문학인지 경계를 도통 지을 수 없는 학문. 다양한 심도를 가진 까만 밤하늘에 점점히 흩뿌려진 별을 보는 일. 그 별들을 이어 별자리 이름을 붙이고, 계속 모양이 바뀌는 달의 궤적을 쫒으며 그 뒷면을 생각하는 일은 문학의 영역이라고, 암 그렇고말고, 했다. 전형적인 수도권 위성도시, 공업단지도 껴안고 있는 이 공해도시에서도 초저녁 금성이 반짝이고, 맨눈으로도 여름이면 베가의 대삼각형이 찾아졌다. 서쪽으로 뻗은 큰 대로의 횡단보도를 걷다가 보라색으로 물드는 숨막히는 노을을 보면 나는 이 우주의 작은 먼지라는 게 매번 실감되곤 했다. 천체망원경으로 토성의 고리를 처음 봤을 때의 경이로움, 깜깜한 하늘에 선명하게 박힌 눈썹달의  감동. 천문학이란 나에겐 이런 것이었다. 과학 시간에 배웠던 이해할 수 없는 계산법들은 나의 영역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존중할만한 어떤 멋진 세계였다. 이런 나의 환상과 망상과 기대와 요구에 딱 들어맞는 책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좋았나 보다. 

  비정규직 연구원 일상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고, 애엄마 과학자의 삶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도 눈물나게 좋았다. 학문의 즐거움, 지루한 연구의 나날들을 쌓아 자기의 주장을 만들어가는 학문의 과정도 무척 반가웠다. 많이 읽고 많이 썼으며 또 무수히 고쳐썼을 그녀의 단정한 문장도 쓰다듬어 주고 싶을 만큼 예뼜다. 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좋았다는 이야기이다. 필사를 해둔 대목도 꽤 되는데, 특히 <3부. 아주 짧은 천문학 수업>도 앎의 즐거움을 주어 각별했다. 내가 태어날 무렵 지구를 떠난 보이저 1,2호가 씩씩하게 여행을 계속하듯이, 그녀도 그녀의 자리에서 당당하게, 나도 나의 자리에서 꿋꿋하게. 각자의 궤도를 돌아 행복한 랑데부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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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4-30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에요. 여러분들의 리뷰 보면서 봐? 말아? 하면서 망설이고만 있었는데 읽겠습니다. ^^

애쉬 2021-04-30 10:42   좋아요 0 | URL
저는 자연과학자들이 지루하고 똑같아 보이는 연구를 매일매일 관찰하고 기록해서 작은 탑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그렇게 좋더라구요 ^^인문학 연구도 그렇긴 하지만, 자연과학은 더 미지의 세계라 더 로망이 있는 걸까요... 하여튼 좋아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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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후. 어후. 한숨과 탄식 밖에 나오지 않았다. 세 페이지쯤인가 넘기기 시작할 무렵부터 이렇게 탄식하며 이렇게 조용히 감동의 파도에 잠식될 나를 예감했다. 너무 아름답다. 사려깊고 다정하며, 끊임없이 사색을 종용하는 매력적인 이야기꾼이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나 <관내분실>은 압도적이었다. 부드러운 음악같던 문장을 읽으며 함께 한껏 고양되었다가 살포시 구름 위를 밟고 온 느낌이었다. 게다가 인간, 여성, 장애, 인생, 꿈, 의미 같은 낱말을 계속 곱씹게 되는 멋진 경험이었다. 물론 다른 이야기들도 좋았다. <스펙트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련한 색채 또는 냄새 같은 것으로.
올해 새롭게 만난 최고의 작가이다. 그녀의 글을 계속 응원하련다. 어후, 어후 하며 감동에 겨워하는 내 얘기를 듣고 있던 남편은 사실 가장 멋진 김초엽은 밀리의 서재에서 나온 <시티 픽션>에 있다며 으시댄다. 먼저 읽은 자의 여유넘치는 표정으로. 아, 빨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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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오스카가 그런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의 역사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어쩌면 일상의 균열을 맞닥뜨린 사람들만이 세계의 진실을 뒤쫓게 되는 걸까? 나에게는 분명한 균열이었던 그 울고 있던 남자와의 만남 이후로, 나는 한 가지 충격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어.
우리는 행복하지만, 이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

지구에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충격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수없이 많겠지. 이제 나는 상상할 수 있어. 지구로 내려 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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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사람
윤성희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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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상냥한 사람’인 게 슬프다. ‘인간이란 존재는 어느 정도의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라는 작가의 말이 슬프다. 박형민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다. 착한 아이를 연기한 어린 시절을 지나, 진구가 아닌 형민을 찾아헤맨 학창 시절을 지나, 아내에게도 딸에게도 직장 부하직원에게도 결코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누군가가 계속 죽어가고,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봐야하고, 누군가에게 계속 미안해해야 하는가. 인생이 원래 그런거지 라고 말한다면 너무 슬프다. 이게 뭐가 상냥해. 이럴꺼면 상냥해서 뭐해. 진짜 그래서 뭐해.
장편은 확실히 힘든 이야기이다. 윤성희는 나에게 캐릭터나 서사로 기억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장면들의 나열 혹은 작은 일화들의 나열로 기억되는 작가이다. 그런 글쓰기의 방식으로 긴 이야기를 이어가다보니, 비슷한 인물들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화들의 반복이랄까. 계속 제자리를 공회전하는 자동차에 탄 기분이랄까. 주변 풍경은 바뀌지 않는. 뭐. 그렇다고, 나쁜 소설은 아니었다. 단지 단편이었다면 더 밀도가 있게 읽었을 거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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