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다가오니 문제 풀이를 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제법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이 문제를 푸는 30여분 동안이 생각보다 책을 읽기에 밀도있는 시간이 되고 있다.
요사이 읽은 책들이 모두 만족스러운 책들이기도 하고.
막연히 추리소설이겠거니 하고 골라든 책이었는데, 왠지 당했다는 느낌.
함께 사막 한 구석을 헤멘 것 같아 목구멍이 까끌거릴 정도이다.
처음에는 제목이 왜 '모래'나 '모래의 남자'가 아니고 '모래의 여자'일까 의아했었는데,
그가 헤멘 곳, 그가 갇힌 곳, 그가 좀더 머물러 보기로 결정한 곳,
결국 그의 삶 자체가 될 곳, 이곳이 모래의 여자. 라는 걸 알았다.
묵혀두었던 옛책을을 계속 읽어보자 싶어 또 하나 들었다. 사실, 문화적이자 사회적 기본개념이 되어버린 '지킬 & 하이드' 의 이야기를 정작 아직도 읽어보지 못했다는 건, 좀 부끄러운 일이다 싶었다. (뭐, 이것뿐이겠냐만은)
대강의 얼개는 이미 알고 있어서 '헉' 하고 놀랄 정도는 아니었지만, 1886년의 글이 이 정도의 다양성을 보이고 있다니, 영문학도 참으로 흥미로운 공부겠다.
시코쿠 순례길에 대한 책이 갑자기 2권이나 한꺼번에 나와버려서, 어느 게 나을까 고심하다가 고른 책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은 좀 안습..)
걷는다는 행위는 마치 저 너머에 두고 온 고향처럼, 언제나 그리워하고 벼르고 있는 일이지만, 딱히 계기가 생기지 않으면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언젠가는 가게 되겠지, 언젠가는 가야 하겠지 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다. 변변한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는 게 없었던 나는, 그러한 순례길 자체가 '로망'일 뿐이다. 안심되는 일일까 안타까운 일일까 쉬이 판단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그래서인지 막다른 골목길에서 배낭을 지고 길을 떠나기 시작한 사람의 이야기가 크게 와닿진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글이 궁금해서 읽은 책이 아니라 시코쿠가 궁금해서 읽은 책이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이번 겨울은 카가와 현이나 오키나와의 어느 섬으로 짧게 떠나볼까 하는데, 카가와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