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나서 보니 비슷한 느낌의 책들을 이어서 읽었네.  

온다 리쿠의 책을 읽을 땐, 이야기의 중심내용이나 사건의 앞뒤를 꼼꼼히 따져서 읽기보다는  이야기 그 자체, 혹은 발상 그 자체를 읽는 편이 좋다. 라는 게 그녀의 작품에 대한 나의 독서법이다. 곰곰히 생각해보고 말 것도 없이 말도 안되는 미스터리, 판타지적 공간인데다 등장인물들은 혀를 내두를만큼 그 세계에서 천연덕스럽게 살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라는 게 그녀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언젠가 내가 상상했던 이야기의 한 대목이라는 이유없는 확신, 언젠가 상상할지도 모를 이야기에 대한 미래의 기억. 그 분명하면서도 실체가 없는 지점을 건들어댄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 
그러나, 그 감각만으로 2권 짜리 긴 소설을 읽기엔 다소 역부족이라는 점을 고백해야 하겠다.  
(온다 리쿠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인물 묘사. 단정적이면서도 풍부한, 마치 인물 보고서를 읽는 듯한  인물에 대한 명제들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부분에서도 불만족스럽다. 도식적이고 무성의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장정이 맘에 들었다. 한 손으로 책등을 활짝 펴서 책을 지지하고 서서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그렇게 읽기에 참 좋다. 약간 무거운 감도 없진 않지만, 활짝 하고 펼쳐졌을 때의 그 평평한 책등이 좋아서 책을 읽다가도 자꾸 책등을 만져보게 된다.
사실, 파일로 밴스는 처음 만났다. 유명세있는 탐정들은 책을 안 읽고도 식상해져 버리는 배배꼬인 심성 탓이다. 북스피어의 책이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안보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ㅋㅋ 지금은? 안 읽고 지나쳤다면 큰 재미를 놓쳤겠다며 안도할 만큼 즐거웠다. 일단, 밴스가 말을 시작하면, '또 또 시작이군, 저 장광설에 잘난 척에 옆길로 새기' 라고 투덜대면서도 벌써 눈은 웃고 있다. 가령 이런 대목 말이다. 
"내 마음속에는 구름이 끼고 그늘이 져 있다네. 안개와 가랑비와 운무와 아지랑이와 증기로 충만하지. 권운이 뻗어 나가고, 적운이 피어오르고, 양털과 말꼬리와 괭이꼬리와 서리안개와 물보라로 가득차 있어. 낮게 깔린 구름이 천지를 위압하도다(<실락원>의 한 구절). 내 마음속은 기실 운학(雲學)적이라고 할 수 있고 - ." (161)
관심도 없고 배경지식도 없는 이집트학에 대한 이야기마저도 밴스의 입을 통해 들으니 즐겁기 짝이 없다. 게다가 이 인간, 간간히 매우 솔직하다.
"아니 경사! .... (중략)... 가끔은 두뇌를 써 보는 것이 어떤가?" (259) 

장광설 하면 이 작가를 따라 올 만한 사람도 드물거라고 자신하는 또 한명의 작가, 교고쿠 나쓰히코.
모든 사실과 소문과 진실과 유언비어에 대한 해석으로 (아니, 해석에 대한 집념)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작가.
그러니, 기담이며 괴담이어도 '무엇이' 기이하고 괴이한가가 아니라 '어떻게' 기이하고 괴이하게 되었는가를 말하는 책이란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게다가 이번엔 이 과정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러니까, 교코쿠 나쓰히코 같은 사람들이 나온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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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0 02: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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