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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고등학교에서 한국근현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역사 교과에 많은 과목이 있지만, 5년째 이 과목을 고수하는 이유는 우리의 근대사와 현대사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은 과목도 없기 때문이다. 개항 이후 변화와 두려움의 시대를 거쳐 울분에 가득찼던 대한제국기, 그리고 끝내 나라를 잃고 마음의 고향을 잃고 떠돌아야했던 비탄과 열망의 일제 강점기. 바라마지 않던 광복을 했으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좌절과 전쟁의 상처. 독재 정권에 짓밟힌 국토와 어리석을만큼 되살아나는 민주화의 움직임까지. 역사의 거대한 물살을 거슬러가다보면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그 물살 하나하나가 깨알같이 빼곡하게 사람의 얼굴로 채워져 있다. 내 수업의 목표이자 꿈은, 고고하게 보이는 역사의 물결이 사실은 인간 모든 삶의 총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 안의 인간들도 우리처럼 똑같이 우유부단하고 수없이 실패하며 작은 일에 울고 웃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그리하여 그들이 택한 무수한 선택들이 곧 그들 자신이며, 역사 그 자체임을 알게 하는 것.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그래서 간혹, 역사 교과에 있어서 나는 학자인가 이야기꾼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배우고 배워도 더 배울 것이 많고 배우면 배울수록 더 단단해진다는 점에서 학자인가 하다가도, 역사를 이루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눈에서 툭툭 붉어질 때는 이 이야기들을 다 전해주어야 하는 게 역사교사 아닌가 하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어느 면에서도 딱히 내세울 게 없는 역사 교사이지만,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 같은 소설을 읽으면, 아, 역시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고 살아야 하는 게 내 임무지. 하며 안도한다. 1930년대 저 먼 동만주의 벌판에서 무수히 번민하고 사랑하며 살았던 청춘들이 있었다는 것, 영국더기며 용정의 거리에서 어랑촌 조선인 소비에트에서 우리처럼 뜨거운 피와 말랑한 살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이런 이야기들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무엇을 더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산문집 <여행할 권리>에서 김연수는 이 소설의 준비에 대해 이렇게 썼다.
2003년 가을의 어느날, 나는 1930년대 공산유격대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목을 다루는 소설을 쓸 생각으로 마두도서관 이층 정기간행물실에 앉아서 1930년을 전후해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조선인들의 생애를 읽고 있었다....
예컨대 이런 것들. "함북 경흥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1908년 부모를 따라 길림성 화룡현 상천평으로 이주했다....1937년 10월 12일 화천현 납자산에서 제8군 제1사 내부의 배반자에게 살해당했다" 혹은 "함북 성진에서 소작농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33년 4월 민생단원으로 지목되어 현위 서기직에서 해임되고 11월 민중대회에서 총살당했다. 해방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로부터 혁명열사로 추인받았다."
이런 문장들을 읽는데 숨이 턱 막혔다. 이건 내가 도저히 쓸 수 없는 소설이 아닌가. 내가 어찌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내부의 배반자에게 살해당하거나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간첩으로 오인받아서 동지들에게 총살당한 사람들에 대해서 쓸 수 있단 말인가. 1970년 지방소도시 빵집에서 태어나 별다른 굴곡 없이 인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도저히 그들의 삶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더이상 복사해서 노트에다가 짧은 생애를 붙이는 일을 그만뒀다. (129)
물론 나도 그들의 삶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민족주의자니 공산주의자니 국제주의자니 하는 규정 속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라니. 빼앗긴 조국을 떠나 중국 땅에서 중국의 일부도 되지 못한 채 잃어버린 조국을 위해 또다른 남의 나라, 일본과 싸워야 했던 사람들. 도대체 그들에게 적은 어디까지이고, 동지는 어디까지일까. 이 가늠할 수도 없는 막막한 어둠을 '세세하게 여러 결로 나눈 뒤 그 차이를 구분해 갈 길을 찾아 준' 소설가가 있어 참으로 고맙다. 그들의 삶을 복원하는 일, 저마다의 서사를 가진 이야기로 그들을 되살리는 일이 바로 역사를 가르치는 일일 터이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매몰된 나약한 개인의 삶이라고 해도 좋다. 우리 또한 그런 존재일 테니. 이 많은 이야기를 교과서의 한줄 서술로 마감하기엔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이 소설 곳곳에 배어 있던 절망의 냄새, 체념의 냄새 그리고 열망의 냄새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고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알게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다는 점에서, 1927년 낡은 세계를 부숴버리겠다며 밤마다 영국더기 동산교회에 모여 열에 들뜬 목소리로 혁명을 떠들어대던 네 명의 중학생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뒤질세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서둘러 선언했지만, 그들은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건 당신도, 나도,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빼앗기고 남의 땅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를 꿈꿀 수밖에 없다. 주인만이, 자기 삶의 주인만이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꾸지 않는다.(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