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디자이너들의 책 <B컷>을 읽고, 내가 좋아했던 표지는 무엇이었더라 하며 책장을 둘러보았다.
가장 애정하는 표지는 푸른숲의 '디 아더스' 시리즈 표지들.
동그란 원에 원서 제목이 들어가고 하얗고 광택이 나는 네모가 한켠으로 밀려 제목이 들어간다. 몽환적이며 아름다운 표지여서(특히 저 보라색 드레스 같은 표지) 책을 보다 덮고 보다 덮고 했더랬다.
낯익은 나라들의 낯선 문학이라는 시리즈의 색깔과도 잘 어울려서 나오는 족족 모아두었는데, 판매량이 좋지 않았는지 아쉽게도 10권으로 시리즈가 끝났다. 게다가 열번째 책은 이 디자인 포맷을 지키지도 않았다. 뚝심있게 밀고 나가지 못한 출판사에 대한 애증이, 아직도 약간 남아있다.
가장 좋아하는 판형은 약간 길쭉한 모양의 책이고 (전문적인 판형이름은... 모름..) 양장판은 좋아하지 않지만, 겉커버가 따로 있지 않은 양장은 심히 좋아한다. 겉표지는 벗겨읽는 것도 귀찮고, 벗겨 읽다보면 책을 보는 내내 겉표지가 기억나지 않아서 책의 인상도 흐려진다. 벗겨지지 않는 양장으로 판형과 만듦새가 꼭 마음에 들었던 책은 이거.
띠지 벗기면 훨씬 이쁘다. <구석진 곳의 풍경>이라는 제목도 '책읽는 수요일'이라는 출판사의 이름도 모두 아름답다. 책 내용보다 넘치게 예쁘다.
벗겨지지 않는 양장으로 보다 말랑말랑하게 손에 잠기는 매그레 시리즈도 무척 좋아하지만, 그건 앞표지에만 해당한다. 뒷표지의 꽉찬 글자들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글꼴인데다 좀 정신없이 숨막힌다.
벗겨지지 않는 양장에 단정한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도 무척 아름답다. 처음에 봤을 땐 헉, 하고 잠시 숨이 멈출 정도였다. 시리즈의 통일성도 마음에 들고 판형도 무척 좋았다. 하지만, 약간 남의 집 잘난 아들 보는 느낌이랄까. 고녀석 참 예쁘네 하고 대견해 하는 마음. 온전히 내 새끼 같지 않은 건 왜일까. 그치만, 어쨌든 이 책들이 표지 때문에 나한테서 별 하나 정도는 더 매겨진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띠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 띠지에 광고문구만 있을 때에는 미련 없이 버리곤 했는데, 이젠 띠지가 점점 높아지고 표지의 일부분이 되어 디자인적인 기능이 강해지다 보니, 어쩔 줄 모르겠다. 심지어 김연수의 책 중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띠지를 잃어버려 뭔가 엄청 잘못한 듯한 기분이 계속 들곤 한다.
특히 <소설가의 일>은 진짜 맘에 들지 않았던 표지이다. 공들여 만드신 디자이너 분께는 참말로 미안한 말씀이지만, 지나치게 높은데 전체를 덮지 못하는 띠지는 처치곤란이고, 띠지를 벗기고 읽었더니, 표지가 너무 부드럽고 약해 쉽게 더러워졌다. 특히나 손기름이 고스란히 묻어 덕지덕지 지문의 향연. 오래 두고 볼 책을 이렇게 만드시면 어쩌나 원망했다.
띠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참 많던데, 마땅한 애정이 생기질 않는 나는 높은 띠지 때문에, 편애하는 '벗겨지지 않는 양장' 도 손이 안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빙과'시리즈가 그랬는데, 띠지는 바로 벗기고 책장에 꽂아둔 탓에 띠지가 있었던 걸 아예 잊고 있었다. 글 쓰다가 알라딘 상품넣기를 하려는데 띠지가 딱. 깜짝 놀랐다.
보통은 미련없이 띠지를 버리는데, 진짜 아까운 띠지일 땐, 적당한 크기로 오려 코팅을 해서 책갈피로 쓴다. 쓸데없이 책갈피 욕심만 많아 일단 챙여놓는다. 사무실에 코팅기가 있는 덕분에 살짝살짝 몰래 코팅한다. 아슬아슬한 게 재밌다.
실제로 읽는 책들은 대부분 소설. 그중에서도 장르문학인데, 의외로 골라 본 표지에는 장르문학이 적다. 소설의 인상이 강해서일까. 표지가 흐릿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