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더 스킨
미헬 파버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히치하이커를 사냥하는 임무를 맡은 외계인 이설리. 지루하고 적막하지만 숨막히는 일상을 사는 이설리는 외계인들의 육식을 위해 아름다운 피부를 벗겨내고 꼬리를 자르고 여섯번째 손가락마저 잘려야 했다. 치욕스러운 보드셀 여자의 모습으로 사냥에 나서는 이설리는 더이상 인간(외계인)으로 살 의미를 찾지 못한다. 자신의 모습을 박탈당한 댓가로 얻은 아름다운 지구의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로.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을 순례하다 - 건축을 넘어 문화와 도시를 잇는 창문 이야기
도쿄공업대 쓰카모토 요시하루 연구실 지음, 이정환 옮김, 이경훈 감수 / 푸른숲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 각지 창문들이 존재하는 방식. 풍경을 향해 열리기도 하고 사람의 지평을 넓히기도 하고, 잠시의 은닉을 허락하기도 하고 길고 깊은 잠을 허락하기도 한다. 건축적인 특징은 전혀 이해할 수 없어도 충분히 즐거운 독서가 될 수 있다. 창을 통해 들여다보고 들여다보이는 인간을 떠올린다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디언밥 2015-07-2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읽엇는데 반갑네요! 공감공감

애쉬 2015-08-04 14:06   좋아요 0 | URL
네~ 반갑습니다~
 
서루조당 파효 서루조당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책이란 죽은 것. 누군가에게 읽혀 의미를 찾기 전까지는 시체나 다름없다고, 그러니 이곳은 책들의 무덤이라고 말하는 고서점이 있다. 서루조당. 마치 육지에 불쑥 솟은 등대와 같은 이 곳은, 단 한 권 인생의 책을 찾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을 비춘다. 단 한 권의 책, 이라는 주인장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인생을 바꾼 책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멋졌다. 신기루 같은 근대를 쫒으며 무작정 달리던 시대에 자의든 타의든 휩쓸려버린 사람들은 이정표가 절실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네들의 근대를 바라보는 일은 가슴 한편의 쓰라림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버리느냐, 고치느냐, 바꾸느냐, 만드느냐의 문제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토록 치열한 것인데. 그것만으로도 인생을 송두리째 버려야하는 문제들인데.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어 스스로 고민할 자유조차 박탈당한 우리 민족은 참으로 가엾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루조당의 다음 이야기가 나오면 망설이지 않고 또 읽을 것이다.
언제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 1 - 식민지의 어둠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1
황석영 엮음 / 문학동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두 달여에 걸쳐 열 편의 단편소설을 읽었다. 소설읽기를 즐겨한다고 자신하면서도 정작 내 땅의 말과 글을, 그리고 이야기들을 얼마나 등한시했었는지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소설 읽기가 아니라 마치 수업을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각각의 작품을 정독하고 황석영 선생의 해설을 마음에 담았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소설의 내용만큼 그 글이 쓰여진 시공간과 작가의 모습이 중요했다. 비참한 식민지의 백성으로서 제국주의 일본땅에서 유학하며 그들과 우리의 간극에 현기증을 느껴야했던 작가들. 조국의 대한 연민만큼이나 지긋지긋했을 식민지의 삶. 이상향을 그리면서도 살기 위해 글을 써내야 하는 현실. 그 비루하고 처절한 인생이 그들의 글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가려진 남은 생의 모습까지 황석영은 모두 기억해낸다. 피를 토하며 객사를 한 소설가도 있고, 글을 빼앗긴 채 오지에서 노동자로 전락해 스러진 작가도 있다. 전쟁 중 낙오되어 어딘가에서 묻혔을 이도 있고, 눈을 잃어도 끝까지 쓰기를 포기하지 않은 이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근대의 모습이다. 분노와 원망과 연민과 애증이 뒤범벅된.

 

학교 다닐 때 시험준비로 읽었던 <치숙>, <운수 좋은 날>, <금 따는 콩밭>이 이런 작품이었을 줄이야.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아픔이 담겨, 한 줄 한 줄 읽어 내기가 버거웠던 <소금>, 빛 속에서 춤추는 소년의 실루엣이 보일 것만 같던 <빛 속으로>. 모두 소중하고 든든한 작품들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이런 설명과 함께 읽게 해 주어서 참말로 고맙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동시에 교고쿠 나츠히코의 <서루조당 파효>를 읽고 있다. 일본 근대를 빛낸 그 무수한 문학가들과 그 글들, 그 문화를 소유한 자의 긍지를 알아가면서, 끝도 없이 솟아나는 시샘을 어쩌지 못해 속만 끓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단편선을 덮고 난 지금은,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몰랐던 것임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안심했다. 내가 아직 배우고 읽을 우리 근현대의 소설들이 이렇게나 많아서.

 

(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2
조엘 디케르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열 다섯 소녀를 사랑했던 서른 살의 작가 해리 쿼버트. 사랑을 기다리며 일생을 보내던 그 앞에 33전 년 죽은 소녀의 유해가 나타난다. 누가 놀라를 죽인 것인가. 놀라는 어떤 소녀였는가. 해리는 놀라를 정말 사랑한 것인가.
다층적으로 고심하며 쌓아올린 소설이다. 살인사건(도무지 알멩이가 보이지 않는 양파같은), 사랑이야기, 작가의 고충, 작가들의 우정, 부모와 자식의 관계, 정치 이야기... 끝없는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이고, 하나씩 때론 한꺼번에 벗겨지는 통에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게 이 소설의 미덕이자 치명적 약점이랄까. 결정적인 반전이 드러난 직후부터 왠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나는 건. 탑 쌓는 일에 공을 들이다 탑의 모양이 비뚤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닐까. 
주인공 마커스는 두 권의 책을 집필하는 것으로 나온다. <해리 쿼버트 사건>과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소설은 두 책 사이를 바지런히 쫓는 마커스를 보여주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 내가 읽은 것이 <해리 쿼버트 사건>이었는지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마지막에 루터의 책으로 탈바꿈해 출간된 해리의 책 광고를 보니, 과연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아니, 진실이란 게 중요한 건지,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5-06-30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애쉬님. 저도 이 책 읽으면서 `과하다`고 생각했어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애쉬 2015-06-30 18:1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뒤로 갈수록 점점 더해져서, 2권 말미 쯤에는 멀미나더라구요. ^^
놀라의 사건이랑 상관없이, 작가가 어떻게 글을 쓰는가, 작가가 어떻게 현실을 책으로 만들 수 있는가, 뭐 이런 건 굉장히 멋진 주제였는데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