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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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티븐 킹이 아니라 에세이스트 스티븐 킹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소설가로 자라나는 스티븐 킹의 인생사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그가 무척이나 건전하고 소박한 생활인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끌었다. 꾸준히 읽고 꾸준히 쓰며 꾸준히 고치는 모습, 내가 상상했던 스티븐 킹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런 스티븐 킹이어서 안도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의 작품을 믿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신기한 건, 글쓰기에 대한 그의 글도 상당히 감동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스티븐 킹의 에세이가 앞에 붙어있다는 얘기 때문에 이 책을 펼치게 된 것이었는데, 아니, 사실은 글쓰기 부분은 아예 뛰어넘으려고 했었는데, 웬걸, 솔직하고 직설적인 그의 충고들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소설을 써볼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는데도 말이다.
자신의 소설 위에 돼지꼬리며 띄어쓰기 기호 등을 그려 손글씨로 퇴고한 부분까지 보고나니, 인간미 넘치는 스티븐 킹이 사랑스러워지기까지 했다. 마지막 장에서 그가 일종의 `허가증`을 줄 때는 엉겁결에 손까지 내밀고 있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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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각본 살인 사건 1 백탑파 시리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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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다> 때문에 읽게 된 소설이다. <거짓말이다>로 직격탄을 날리는 김탁환의 글을 아직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다른 글부터 돌아가기로 했다. 혀를 내두를만한 집필 내공을 가진 작가인데도 아직 한권도 읽지 못했다는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고.
제목만으로도 백탑파라 불리던 조선 후기 북학파의 이야기임은 뻔히 알 수 있고, 머리속에 박지원이며 박제가, 이덕무, 백동수까지 어떤 면면으로 그려질지도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이 소설이 나온지 이미 십년이 훌쩍 넘어서, 작가가 쓰려고 했다는 참여정부 시절의 정치적 메시지는 거의 읽어내지 못했지만 여러 등장인물들의 포지션만은 적당하게 읽어낼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그러나 역시 김탁환은 김탁환이다. 호기롭고 부푼 마음으로 정계에 발을 디딘 북학파들의 모습만큼이나 그들의 지나치게 곧은 충정을 걱정하는 노련한 정치적 식견도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주된 줄기를 제쳐놓고라도 충분히 의미있고 즐거운 독서였다. `소설로 쓰는 소설사`라는 작가의 도전을 지켜보는 것도 매우 매력적인 경험이었고, 소설의 존재가치에 대한 작가의 열띤 주장은 자못 소설에 대한 애정고백인 듯하여 살짝 볼이 발그레해지기도 했다. 이런 소설가가 있다는 것, 참으로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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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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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이야기는 추악한 아동 포르노가 되고, 그 상처를 잊지 못한 아름다운 소녀는 평생을 악몽과 불안의 나날로 고통스러워 한다. 중년이 된 그녀는 여배우가 되어 야심차게 영화를 준비한다. 영화는 여자의 과거와 점점 다다가면서 내용이 점차 변하고, 고통에 찬 민중 봉기를 이끄는 어머니 역에 점차 동화되어 간다. 전쟁과 성폭력의 고통을 경험한 소녀는 고통받고 유린당하는 민중의 삶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고, 이를 이야기로 풀어내어 관중들과 함께 진혼의 넋두리를 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임을 알게 된다. 그녀의 주변에 있는 남자들- 소설가인 주인공과 영화제작자인 고모리는 아름다운 애너벨 리로 다시 살아나는 그녀의 모습을 힘껏 돕는다. 무대에 오르는 그녀의 모습을 남자들은 끝내 볼 수 없다는 것은, 그녀의 연극이 그녀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사소설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나에겐, 읽기 쉽지 않았다. 이것이 소설인지, 수필인지부터가 헷갈리고, 작가의 가족 및 신변에 대한 이야기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아니, 이걸 왜, 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계속 읽은 이유는, 사쿠라 라는 여자가 무대에 올릴 연극을 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낭낭한 목소리로 울려퍼지는 그녀의 `넋두리`와 함께 부르짖으며 합창하는 관객들, 그리고 숲을 메워버릴 듯한 음악 소리, 그리고 쏟아지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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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타워 탐구생활
시미즈 히로유키 글.사진, 최재훈 그림 / 유어마인드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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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이 책을 읽길 정말 잘했다. 세상에 모든 무의미한 것들, 쓸데없는 것들에게 보내는 다정하고 진지한 찬사. 이러한 것들에게 남모를 흥미가 생기고 멋대로 끌려버리는 인간들이여, 부끄러워하지 말지어다. 어차피 우리의 일상은 생뚱맞고 찌질하며 남부끄러운 일들투성이 아닌가. ㅋㅋ 있는 그대로 즐기라. 그러면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지니.
세상에, 우리나라의 우후죽순으로 분포해 있는 각 지역의 타워들은 참 좋겠다. 외국인 여행자가 이런 책까지 내주다니. 게다가 그 무의미함에 이토록 순수하게 감탄해주고. 하하하. 너무 웃었더니 배가 아프다. 읽어보니, 이 분, 타워 말고도 남몰래 탐닉하는 것들이 많으시던데, 속편은 기대할 수 없으려나. 전국 미스터리 섬 여행, 같은듯 다른 정초석의 세계, 뭐 이런 거.
이 책도 누군가의 무의미함이 된다면 무척 기쁘겠다는 작가의 말에, 나도 마음을 푹 놓고 참방참방 물놀이 하듯이 즐거운 독서를 했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나름의 멋을 발견해 주지 못한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익숙한 내 나라 내 고장이어서 어디나 자가용을 편하게 다니다 보니, 불편함이 가져다 주는 풍경의 진면목을 놓치고 있었다는 반성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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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왕국의 성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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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하게 그려진 그림 안으로 빨려들어가 성에 갇혀있는 소녀를 구한다는 설정은 그다지 비현실적이지도, 설득력이 떨어지도 않는다. 더한 설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묘하게 이 이야기는 장황하고 뭔가 변명하듯이 나에게 자꾸 설명을 들이민다. 열심히 책을 만든 출판사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딱딱하고 정중한 장정부터가 지나친 감이 있다. 한 손에 들어오는 소프트한 판형의 책이었다면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맞았을 텐데. 
어찌되었든 결말은 맘에 든다.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세상이지만 다른 내가 되었고, 새로운 친구가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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