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동안의 과부] 서평단 설문 & 리뷰를 올려주세요
일년 동안의 과부 1
존 어빙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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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가 깨진 유리에 손을 다쳐서 깊은 상처를 입었다. 굳이 맥베스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 작은 어린 아이 몸 안 어디에 그렇게 많은 피가 있었는지 출혈량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아이는 엉엉 울고 부모는 파랗게 질린다. 산산조각이 난 액자 안의 사진에서는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 엄마와 아이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오빠들의 발이 있었다. 오빠들의 불행한 사고 이후에 태어난 아이는 사진 속에 담긴 이야기만으로 오빠들을 만날 수 있었고 사진에 많은 애착을 갖고 있었다.

그 날 아이를 돌본 에디가 우연히 아이의 침대 근처에 액자를 두었고 그게 떨어지면서 박살난 유리에 아이가 다치고 만 것이다. 상처는 깊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날카로운 물체로 인한 것이어서 간단한 수술을 하고 나자 사건은 일단락 될 수 있었다. 아이의 손가락에는 평생 남을 흉터가 있겠지만 그것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에디는 그 일을 의연하게 받아들인 어린 아이, 루스 콜에게 용감하다고 말한다. 주사를 맞고 두 바늘이나 꿰맸는데 용감하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루스는 의아해한다. 용감하다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에디는 루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용감하다는 것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잘 받아들이고 견디는 것이라고 너의 용감함의 상징은 그 손가락의 흉터이니 용기가 필요할 때 손가락의 흉터를 보라는 것이다.

이 책 '일년 동안의 과부'에서는 용감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삶 속에서는 태풍이 인다. 그 태풍이 남긴 상흔이 너무 커서 그들은 그 일을 받아들이지도 잊지도 견디지도 못한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용감한 루스조차도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어머니를 잊지도 용서하지도 못한다. 자신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까지도 말이다. 두 아이를 잃은 매리언과 테드 역시 그 사실을 쉽사리 극복하지 못한다. 두 아이가 살아 있을 당시에는 그리 큰 가치를 가지고 있지 못했던 사진들이 그들이 죽고 나자 집안의 모든 벽을 점령한다. 그들의 집은 두 아들의 신전인 것 마냥 죽은 아들들의 사진으로 뒤덮인다.

그 와중에 아버지인 테드는 항상 그랬듯이 바람둥이 짓을 하고 다니고 매리언은 그 사고에 그대로 생각이 묶여 웃는 법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 아이가 생긴다. 하지만 태어난 아이는 딸이었고 아이는 죽은 아들들의 대체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당연한 것이었다. 누구도 다른 누군가의 대신이 될 수 없었다. 테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딸 루스를 사랑하지만 매리언은 견디지 못한다. 다시 태어난 아이는 딸이라 죽은 아들 토머스와 티모시를 대신하지도 못했고 한 번 더 아이를 사랑하는 것을 허락하고 다시 그 아이를 잃는 일이 생긴다면 결코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매리언은 아이에게서 거리를 유지한다. 엄마로써의 역할을 다하되 그녀의 아이에 대한 태도는 냉담한 것이었다.

그런 사정에도 아랑곳없이 루스는 쑥쑥 자라난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오빠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들을 그리워하고 아이다운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매리언과 테드의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었다. 계속되는 테드의 바람으로 안 그래도 그리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불행한 사고에서 테드는 매리언에게 치명적 실수를 하고 만다. 후에 에디와 루스에게 전해진 진실은 너무 잔인한 것이어서 매리언이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 놀랍지 않을 정도였다. 에디의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극복하지 못한 좀비 같은 존재인 매리언과 유명 동화작가이지만 지극히 이기적 인간인 테드는 별거에 들어간다. 두 사람은 루스를 위해서 번갈아 집에 머문다. 이혼을 염두에 두기는 했지만 어린 루스를 배려한 행동이었다. 겉으로야 그랬지만 실상은 아직 행동에 나서길 망설이고 있을 뿐이었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때를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었다.

테드는 그 와중에 조수를 한 명 들인다. 에디 오헤어라는 열여섯 살의 소년이었다. 테드가 당시 운전면허가 취소된 터라 운전사로 고용한 것이었다. 허나 테드의 노림수는 다른 곳에 있었다. 에디는 예쁘장한 소년으로 죽은 아들 티모시를 닮아 있었다. 죽은 아들들에 집착하는 매리언과 부적절한 관계에 빠지길 기대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루스의 양육권은 자신에게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에디는 그런 내막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여름 아르바이트를 하러 테드 콜의 집에 들어오고 자신을 마중 온 매리언에게 한 눈에 반하고 만다. 열여섯 살 소년과 서른아홉 살의 여자의 관계는 보는 사람을 당혹하게 만든다. 매리언은 그 관계 속에서 죽은 아들을 보지만 에디는 맹목적으로 매리언에게 빠져든다. 소년은 정말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에디 오헤어의 평생을 좌우하는 것이 되고 만다.

에디 오헤어가 콜 집안에 들어오면서 시작된 이야기는 당시 네 살이었던 루스가 사십대로 접어든 이후에야 끝이 난다. 상처가 너무나 커서 결코 용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서로를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 끈은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 것이라 돌고 돌아서 서로는 다시 마주하게 된다. 어떤 사건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고 그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의 이야기가 도미노가 하나씩 넘어가는 것처럼 물고 물리게 연결되어 있어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충격적인 부분이 많기는 했지만 결국은 전부 삶에 대한 이야기라 다 읽고 난 이후에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페이지터너라는 작가의 별명에 맞게 각 장이 술술 넘어갈 만큼 흡입력이 있는 '일년 동안의 과부' 재밌게 읽었다. 수많은 사건 속에 흘러가는 콜 집안의 이야기도 특색 있었지만 책 속의 책이라고 할 수 있는 테드 콜의 동화나 매리언 콜, 루스 콜의 소설도 뒷이야기를 알고 싶을 만큼 흥미로웠던 것이 특히 좋았다.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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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역사 - 진실과 거짓 사이의 끝없는 공방
황밍허 지음, 이철환 옮김 / 시그마북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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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라를 세운 건국자가 가장 먼저 하는 일 중에 하나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법이 없다면 모든 것은 사람의 손에 빌어서 해결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일이 너무 많을 뿐 아니라 많은 일이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법은 필요악이라고 해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사람의 손에 의해 세워진 법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처벌을 받더라도 사회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있어야 한다. 허나 정의를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도 누군가를 처벌하게 만든 법이니 만큼 차가운 면이 있다. 그래서 피해자 가족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한 따뜻함을 잘 살릴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할 사람은 물론 법을 적용하는 법관이다.

하지만 따뜻해야 할 법은 지금도 지극히 차갑다. 법의 따뜻함을 느끼게 할 법관이 법의 차가움을 가중시켰을 수도 있고 법 자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제정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그런 것들보다 돈이 있는 자만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이 책 '법정의 역사'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끊임없는 싸움의 역사인 법정의 역사를 밝히고 있다. 가장 앞부분에 이런 부분이 있다. 현청의 문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도록 여덟 팔자로 열려 있지만, 아무리 도리에 맞는다고 해도 돈이 없으면 들어가지 않는 것이 낫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 모로 옳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들었던 법학 강의의 노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떤 문제든지 범죄에 달할 정도로 아주 큰 것이 아니라면 가능한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 분은 평생을 법학자로 법관으로 사신 분인데도 자신이 소송 당사자가 되자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심란하셨다고 언급하셨다. 자신이 분명 승소할 것을 알고 있는데도 변호사로써가 아니라 소송을 당하는 당사자가 되니 감정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피로를 느낀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제대로 법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관리들이 법관의 노릇을 해서 국민들이 제대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원한다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찾아보면 무료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큰돈을 들이지 않고 우수한 변호사를 기대하기 힘들기도 하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는 소송은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점점 그런 생각이 굳어졌다. 예전 프랑스에서 농민이 바구미라는 해충을 고소했다. 신의 저주로 바구미를 쫓아달라는 것이었다. 지루한 소송이 진행되었고 그 사이에도 바구미는 농작물을 먹어치웠으며 농민들은 굶게 생긴 상태였다. 원고 측인 농민들은 어떻게든 피고 측 바구미와 협상이라도 이루려했지만 소송은 끝까지 진행되었다. 그리고 소송의 결말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인즉슨 바구미가 판결문 정본을 갉아먹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법정의 역사를 다루니 만큼 책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판결로 많은 사람을 죽음에 몰아넣은 중세시대 종교재판부터 현대의 심슨 재판까지를 다루고 있다. 연대별로 넘어가는 이야기도 흥미 있었고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했던 질문 가발을 쓰는 법관들의 고충까지 나온 것이 꽤나 흥미로웠다. 가발을 쓰는 법관들은 그 가발을 보통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발은 수작업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비싸기도 하지만 법관이 된 이후에 일생동안 사용하니 비위생적이라는 것이다. 그럼 지저분해질 때마다 새로 구입하거나 세탁할 수는 없나 싶었는데 가발이 낡았다는 것은 경력이 오래됐다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에 가발을 대대로 물려받기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의사든 법관이든 사람들은 오랜 경력을 가진 사람을 더 신뢰하기 마련이다. 그런 경력을 상징하기 때문에 불편해도 가발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역시 O.J 심슨의 재판 이야기였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구성된 이야기는 진실이 아니라 돈의 힘으로 풀려난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돈의 힘으로 무죄로 풀려났지만 그의 평생은 의혹으로 뒤덮였고 실질적으로 파산했다. 그가 정말로 아내를 죽였는지 아닌지에 대한 진실은 알 길이 없다. 한 점 의혹이 없어야 하는 형사재판에서는 무죄를 그런 사건을 일으켰을 개연성이 있으면 유죄가 되는 민사재판에서는 유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법은 지금도 차갑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기 위한 법이 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그래서 법관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것을 밝히기 위한 싸움을 계속한다. 언제 성공을 거둘지 알 수 없는 지루한 게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책 '법정의 역사'에서는 흥미롭지만 갑갑하기도 한 법정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그 과정은 흥미롭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자가 중국인이라 중국 쪽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편이다. 제목이 법정의 역사고 표지 역시 서양의 법정에 가까워서 서양 쪽의 법정이나 반씩 섞여 있는 내용을 생각했지만 중국의 법정 역사에 미국이나 영국의 이야기가 약간 곁들여진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 점을 제외하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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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
애덤 필립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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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는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모든 면에서 평범해서 우울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평범하고 순탄한 인생을 사는 것은 사실 정말 힘들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고 백년 남짓한 짧지만 긴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생겨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이상한 짓을 할 때 사람들은 많이 이렇게 말한다. 생긴 것은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미쳤나보다 라고 말이다. 멀쩡하다는 말은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지만 그것에 대해서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모호한 말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평균치라지만 멀쩡하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생긴 것이 멀쩡하다는 것은 보는 사람의 주관적 기준이 있겠지만 대충 보기에 그리 나쁘지 않은 괜찮은 외모라는 뜻으로 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적 멀쩡함으로 들어가면 일대 혼돈이 인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 상태가 의심받을 때 자신이 멀쩡함을 주장한다. 허나 그 정확한 기준은 모른다. 그저 자신이 멀쩡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멀쩡함이라는 말에 대해서 잘 몰라도 그렇게 말한다.

이 책 '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하는 책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닌가 의심 받을 때, 즉 광기를 주체하지 못할 때 자신의 정신이 멀쩡함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들으면 꼭 광기의 반대말이 멀쩡함인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멀쩡함은 광기의 반대말이 아니라고 한다. 멀쩡함이라는 것은 아주 애매모호한 관념이지만 결코 광기의 반대말이 될 수 없으며 굳이 말하면 광기와 아주 약간의 차이가 있는 정도의 것일 수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 나오면 많이 나오는 능력이 있다. 누군가의 생각을 읽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하물며 말소리로 들린다니 그건 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은 아주 잠시에도 수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멍하니 있는 것처럼 보여도 생각의 급류가 머릿속에 흐르고 있는데 그 속을 유유히 흘러가는 한 방울의 물방울만 딱 맞는 타이밍에 읽을 수 있다니 사실 무리에 가깝다. 이처럼 사람들은 수많은 생각들을 품고 산다. 그 생각의 급류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 광기에 사로잡힌 것이라면 그것에 대한 얇은 보호막을 얻은 정도가 멀쩡함이라는 것이다.

지나친 생각의 홍수에서의 방어막인 멀쩡함은 많은 정신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이지만 실상 광기와 분리하기는 아주 어렵다. 어디까지가 멀쩡함이고 어디까지가 광기인 것인지 딱 잘라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이 화를 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어느 정도 광기에 휘둘리고 있다. 광기는 누구나 품고 있는 것이다. 멀쩡함이라는 보호막에 덮여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지만 광기가 없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정신병자들 틈에 있으면 자신의 멀쩡함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광기에 휘둘리고 있는 사람들의 틈에서 유지하기 힘든 것이 멀쩡함이라면 그것이야말로 특이한 것이다.

카오스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균형 잡혔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더 특이한 것이다. 그렇게 치면 멀쩡함만큼 미친 상황도 없는 셈이다. 저자는 멀쩡함에 대해서 이렇게도 말한다. 자신의 욕망에 휘둘려 멈추지 못하면 광기이지만 휘둘리더라도 사회가 요구하는 범위에서 휘둘리거나 휘둘리지 않으면 멀쩡함이라고 한다. 또한 멀쩡함과 광기를 비교할 때 균형 잡혔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멀쩡함은 적정선을 지킬 줄 안다는 것을 말한다고도 한다.

이 책 '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에서는 멀쩡함과 광기를 비교해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 둘은 비교대상이라기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비교되는 것이고 같이 가는 느낌이 더 강했다. 책을 다 읽을 때까지 흔들리는 개념 속에서 조금은 어지러운 느낌이었다. 저자도 멀쩡함이 무엇인지 한 마디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비유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모호해서 책을 술술 읽어나가기는 굉장히 어려운 편이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가장 마음에 든 표현은 '멀쩡함은 광기의 그릇'이라는 것이었다. 그 그릇을 넘어서 광기가 넘친다면 미쳤다고 하는 상태일 것 같다. 흔히 생각하게 되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도 나쁘지 않았고 왜 멀쩡함이 중요하다는 사람이 많은데 멀쩡함에 대해 연구한 것은 없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고 또 가지게 한 터라 인상 깊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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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에게 완벽한 여자는 없다
시노다 세쓰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디오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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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서로 이익을 주고 받으면서 형성된다. 얼핏 들으면 차갑게 들리지만 그 이익은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정서적인 것도 포함된다. 상대와의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도 이익을 서로 주고 받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이익이 없는 관계는 사실상 유지하기 힘들다. 남녀관계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 연인이든 부부든 간에 서로 이익을 주고 받는다. 그 이익이 어느 정도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평탄한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이고 한 쪽으로 기운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 남들의 눈에는 전혀 균형이 맞지 않는 부부가 있다. 남자는 과학적 기사를 쓰는 작가이지만 연 수입 200만 엔에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간신히 벌어서 먹고 사는 상태고 나이는 서른, 외모도 평균 이하인 편이다. 주변 사람들 역시 그를 약간 우습게 봐서 오타쿠와 그의 이름 신이치를 합쳐서 타쿠신이라고 부른다. 본인이 그 호칭이 싫다고 아무리 말해도 계속 그렇게 놀리는 것을 보면 이 남자의 사회적 지위는 낮다. 그런데 여자는 겉으로는 남자의 이상형이다. 최고 명문대를 졸업한 우수한 두뇌를 가진 재원이고 금융관련 일을 하는 이 여자는 연 수입 800만 엔을 버는 엘리트다. 외모도 누구나 한 번쯤 뒤돌아 볼만한 수준이며 늘씬한 미인이다. 성격도 서글서글한 편으로 대인관계도 좋다. 모두의 선망의 대상인 여자와 모두의 비웃음의 대상인 남자가 결혼을 한다. 주변에서는 어처구니 없어하고 남자도 약간 으쓱해진다.

자신이 처음 만난 여자인데다가 마치 하늘이 도운 것 마냥 그녀와의 연애는 술술 풀려나갔다. 결혼승낙 역시 자연스레 받아서 그는 자신의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와의 신혼 생활을 하면서 점차 자신의 행운이 행운을 빙자한 덫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결혼 전 결혼준비를 일방적으로 그가 다한 것은 그녀가 워낙 바빠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그리고 그가 고른 것을 그녀가 보고 기뻐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그런 모습이 나름 뿌듯하기도 했던 터라 흐뭇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결혼 이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바빠서 신혼 분위기를 내기는커녕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기도 힘들었다. 일단 서로의 짐을 풀어야 하는데 그녀의 물건은 정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너무 바빠서 그런가보다 하고 정리해 줄 마음에 상자를 열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상자마다 곰팡이가 필 것 같은 빨랫감이 가득했으며 모든 물건이 엉망진창으로 섞여 있었다. 심지어 먹다 남은 과자봉지까지 사방에 부스러기를 흘리면서 들어 있었다. 그는 경악하지만 물건은 전부 정리하고 빨래는 전부 빨아둔다. 일단 그는 프리랜서라 상대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아내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유있었던 것이다.

그는 짜증스러웠지만 아내의 짐을 정리해두었다. 허나 이 상황을 알게 된 아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왜 자신의 물건을 건드렸냐면서 도리어 성을 내는 것이다. 그도 화가 나서 받아치지만 아내의 신경질적 반응에 밀리고 만다. 결국 그는 바쁜 아내의 빨래를 해주기도 하고 아침에 그녀를 깨워 아침밥을 먹여 출근시키기도 한다. 주변에서는 부러워하지만 이렇게 사느니 예전에 혼자 살던 때가 더 나았다는 생각에 그는 이혼을 결심한다. 그리고 그것을 입에 올리려는 순간에 아내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는 차마 이혼하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아내가 신경질적인 것이 임신했기 때문이라 생각하지만 상황은 꼬여만 간다.

주변머리가 없어서 사회생활이 여의치 않은 남자와 완벽해보이지만 집안일에는 전혀 재능도 흥미도 없는 여자의 결혼생활이라 위태위태해 보이면서도 꽤 잘 유지되는 편이었다. 두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서로라기보다 사회가 남자와 여자에게 주입시켜둔 그리고 암암리에 요구하는 역할에 대한 생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인 신이치는 사실 남자가 돈을 벌고 아내는 그에 유순하게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면 그녀를 받아들이기가 한결 쉬웠을 것이다. 집안일이든 돈을 버는 일이든 상황이 움직이는 대로 받아들여도 괜찮을 텐데 꼭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따라 사람을 맞추려고 하니 어떻게 해도 완벽한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불만들을 제외하면 기존의 남녀 역할이 바뀐 상태이지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잘 지지해줄 수 있는 한 쌍의 결혼생활이라 꽤 재미있었다. 완벽해 보이는 아내의 정신적 지지를 남편인 신이치가 할 수 있고 남편인 신이치의 부족한 경제능력을 아내인 리카코가 채울 수 있으니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상의 여성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을 보여주는 '오타쿠에게 완벽한 여자는 없다' 재밌게 읽었다. 코믹 로맨스라기보다 현실 감각이 부족했던 주인공이 점차 현실에 정착하기 위한 성장소설 같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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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퍼즐
기모토 신지 지음, 송희진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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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원리는 어느 누군가가 치밀한 증명 끝에 자신의 가설을 검증해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이야 1+1=2 라는 공식이 당연한 것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어떤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실험과 연구를 거듭한다. 명성이라는 대가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자신의 지식욕을 채우기 위한 행동이다.

그런데 당연한 사실인데도 검증이 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우주 창조의 비밀이다. 우주가 무(無)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거의 기정 사실처럼 되어 있지만 검증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책 '신의 퍼즐'에서는 바로 그 우주 창조의 비밀을 풀어보려고 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조차도 풀어내지 못했던 신의 퍼즐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유명한 과학자라거나 사명을 가지고 도전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 시작은 간단했다. 이제 졸업반이 된 와타누키는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필수과목을 하나 낙제해서 재수강을 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졸업논문이 통과될 수 있을지도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연구수업을 듣게 되었고 가능한 담당교수에게 잘 보여서 조금이라도 가산점을 얻어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정말 용돈벌이용이었고 아직 취직할 곳도 내정되지 않은 상태인 와타누키는 자신이 한심하기는 했지만 특별한 길이 보이지는 않았다.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여학생인 호즈미의 관심을 끌고 싶지만 자신은 외모도 성격도 성적도 눈에 띄는 편이 아닌 터라 그의 마음이 전해질 가망성도 낮았다. 어쨌든 학점은 이수해야 하고 졸업논문도 통과해야 해서 들어간 연구수업에서 그의 담당교수는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학교에서 유명한 천재 소녀와 친구가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호미즈 사라카, 올해로 열여섯 살이지만 세상에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천재였다. 현재 학교에서 짓고 있는 연구시설인 무한의 관계자이기도 했고 탄생도 보통 사람들과 달랐기에 태어난 순간부터 주목을 받아왔다고 했다.

아이지만 어른도 따라가지 못할 두뇌의 소유자라는 것도 화젯거리가 되었지만 가장 주변의 주목을 끌게 되었던 점은 그녀의 어머니가 의도적으로 그녀를 가졌다는 점이었다. 호미즈 사라카의 어머니는 천재인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우수한 정자를 샀고 모든 확률의 검사를 다 받아 그녀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의도대로 호미즈 사라카는 천재였고 물리학적 재능이 매우 뛰어났다. 거기에 외모도 훌륭했기에 쓸데없는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열여섯 살 지능은 어른 이상일지 모르지만 그녀의 정신적 안정은 그렇지 못했다. 친한 친구도 없고 신선한 발상을 해내는 창의력 쪽은 다소 떨어지는 것 같았다. 주변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이제는 학교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초 학교에서는 화제가 되는 천재소녀를 붙잡은 것은 좋았지만 점점 그녀가 처치곤란인 문젯거리로 변해갔던 것이다. 그녀의 능력은 뛰어났지만 연구시설 무한이 과연 실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늘어났으며 호미즈 사라카는 그녀대로 사람과의 관계 속에 상처받아서 학교를 기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화제가 된 천재소녀에 대한 여론이 이제 부정적인 것으로 변했다고 해도 그녀가 학교를 그만둔다면 그것 역시 학교의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남길 것이 자명했다. 어디까지나 호미즈 사라카가 천재인 것은 분명하니 적당히 학교를 다니다가 졸업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학교 측의 본심이었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졸업반인 와타누키는 본의 아니게 그녀를 만나러 간다. 첫 만남에서 호미즈는 그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았지만 의외로 대화에는 성실하게 임했고 서로에 대한 첫 인상은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다. 결코 좋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와타누키는 호미즈에게 연구수업에 나오라고 제의하지만 수준이 맞지 않는 사람과 연구할 과제 같은 것은 없다며 단박에 거절당한다. 호미즈가 와타누키가 모르는 것이나 과제로 떠올릴 만한 것은 자신은 전부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와타누키는 일단은 물러났지만 우연히 만난 청강생 할아버지와 함께 호미즈를 다시 방문한다.

할아버지는 한 가지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하는 것이었다. 무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거대한 우주가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납득하기도 힘들고 이에 대해 단언하는 학자만 있을 뿐 검증하는 학자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무에서 태어났다면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는 없냐는 것이었다. 이 근원적인 질문에 호미즈는 쉽게 답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음 연구수업에 나타난 호미즈는 우주 창조의 비밀을 푸는 것은 연구과제로 하자고 제의한다. 사람들은 우주를 만들 수 있다는 측과 만들 수 없다는 측으로 나누어지고 와타누키는 할 수 없이 호미즈와 팀을 이루어 신의 퍼즐에 도전한다.

우주가 무에서 탄생했다고 하지만 사람의 손으로 우주를 만들어 보이겠다니 독특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어떤 것을 확실히 검증하는 것이 과학적 사고방식이기는 하지만 쉽게 실험하고 검증하기에는 다소 거대한 주제였던 것이다. 가장 근원적이기는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가장 신비로운 신의 퍼즐을 물리학을 통해서 풀어나간다는 설정이 신선했다. 하지만 물리학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읽어나가기는 다소 버거웠다. 허나 호미즈의 성장소설 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천재소녀의 성장과 우주창조의 비밀, 그 상태를 지켜보는 사람인 동시에 같이 성장해나가는 와타누키의 이야기가 맞물리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무도 감히 풀어내지 못했던 우주 창조의 비밀 '신의 퍼즐' 인상 깊게 읽었다. 끝까지 다 읽느라 머리가 아프기는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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