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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
애덤 필립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는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모든 면에서 평범해서 우울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평범하고 순탄한 인생을 사는 것은 사실 정말 힘들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고 백년 남짓한 짧지만 긴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생겨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이상한 짓을 할 때 사람들은 많이 이렇게 말한다. 생긴 것은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미쳤나보다 라고 말이다. 멀쩡하다는 말은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지만 그것에 대해서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모호한 말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평균치라지만 멀쩡하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생긴 것이 멀쩡하다는 것은 보는 사람의 주관적 기준이 있겠지만 대충 보기에 그리 나쁘지 않은 괜찮은 외모라는 뜻으로 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적 멀쩡함으로 들어가면 일대 혼돈이 인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 상태가 의심받을 때 자신이 멀쩡함을 주장한다. 허나 그 정확한 기준은 모른다. 그저 자신이 멀쩡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멀쩡함이라는 말에 대해서 잘 몰라도 그렇게 말한다.
이 책 '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하는 책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닌가 의심 받을 때, 즉 광기를 주체하지 못할 때 자신의 정신이 멀쩡함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들으면 꼭 광기의 반대말이 멀쩡함인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멀쩡함은 광기의 반대말이 아니라고 한다. 멀쩡함이라는 것은 아주 애매모호한 관념이지만 결코 광기의 반대말이 될 수 없으며 굳이 말하면 광기와 아주 약간의 차이가 있는 정도의 것일 수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 나오면 많이 나오는 능력이 있다. 누군가의 생각을 읽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하물며 말소리로 들린다니 그건 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은 아주 잠시에도 수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멍하니 있는 것처럼 보여도 생각의 급류가 머릿속에 흐르고 있는데 그 속을 유유히 흘러가는 한 방울의 물방울만 딱 맞는 타이밍에 읽을 수 있다니 사실 무리에 가깝다. 이처럼 사람들은 수많은 생각들을 품고 산다. 그 생각의 급류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 광기에 사로잡힌 것이라면 그것에 대한 얇은 보호막을 얻은 정도가 멀쩡함이라는 것이다.
지나친 생각의 홍수에서의 방어막인 멀쩡함은 많은 정신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이지만 실상 광기와 분리하기는 아주 어렵다. 어디까지가 멀쩡함이고 어디까지가 광기인 것인지 딱 잘라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이 화를 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어느 정도 광기에 휘둘리고 있다. 광기는 누구나 품고 있는 것이다. 멀쩡함이라는 보호막에 덮여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지만 광기가 없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정신병자들 틈에 있으면 자신의 멀쩡함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광기에 휘둘리고 있는 사람들의 틈에서 유지하기 힘든 것이 멀쩡함이라면 그것이야말로 특이한 것이다.
카오스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균형 잡혔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더 특이한 것이다. 그렇게 치면 멀쩡함만큼 미친 상황도 없는 셈이다. 저자는 멀쩡함에 대해서 이렇게도 말한다. 자신의 욕망에 휘둘려 멈추지 못하면 광기이지만 휘둘리더라도 사회가 요구하는 범위에서 휘둘리거나 휘둘리지 않으면 멀쩡함이라고 한다. 또한 멀쩡함과 광기를 비교할 때 균형 잡혔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멀쩡함은 적정선을 지킬 줄 안다는 것을 말한다고도 한다.
이 책 '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에서는 멀쩡함과 광기를 비교해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 둘은 비교대상이라기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비교되는 것이고 같이 가는 느낌이 더 강했다. 책을 다 읽을 때까지 흔들리는 개념 속에서 조금은 어지러운 느낌이었다. 저자도 멀쩡함이 무엇인지 한 마디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비유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모호해서 책을 술술 읽어나가기는 굉장히 어려운 편이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가장 마음에 든 표현은 '멀쩡함은 광기의 그릇'이라는 것이었다. 그 그릇을 넘어서 광기가 넘친다면 미쳤다고 하는 상태일 것 같다. 흔히 생각하게 되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도 나쁘지 않았고 왜 멀쩡함이 중요하다는 사람이 많은데 멀쩡함에 대해 연구한 것은 없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고 또 가지게 한 터라 인상 깊게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