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에게 완벽한 여자는 없다
시노다 세쓰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디오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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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서로 이익을 주고 받으면서 형성된다. 얼핏 들으면 차갑게 들리지만 그 이익은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정서적인 것도 포함된다. 상대와의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도 이익을 서로 주고 받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이익이 없는 관계는 사실상 유지하기 힘들다. 남녀관계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 연인이든 부부든 간에 서로 이익을 주고 받는다. 그 이익이 어느 정도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평탄한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이고 한 쪽으로 기운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 남들의 눈에는 전혀 균형이 맞지 않는 부부가 있다. 남자는 과학적 기사를 쓰는 작가이지만 연 수입 200만 엔에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간신히 벌어서 먹고 사는 상태고 나이는 서른, 외모도 평균 이하인 편이다. 주변 사람들 역시 그를 약간 우습게 봐서 오타쿠와 그의 이름 신이치를 합쳐서 타쿠신이라고 부른다. 본인이 그 호칭이 싫다고 아무리 말해도 계속 그렇게 놀리는 것을 보면 이 남자의 사회적 지위는 낮다. 그런데 여자는 겉으로는 남자의 이상형이다. 최고 명문대를 졸업한 우수한 두뇌를 가진 재원이고 금융관련 일을 하는 이 여자는 연 수입 800만 엔을 버는 엘리트다. 외모도 누구나 한 번쯤 뒤돌아 볼만한 수준이며 늘씬한 미인이다. 성격도 서글서글한 편으로 대인관계도 좋다. 모두의 선망의 대상인 여자와 모두의 비웃음의 대상인 남자가 결혼을 한다. 주변에서는 어처구니 없어하고 남자도 약간 으쓱해진다.

자신이 처음 만난 여자인데다가 마치 하늘이 도운 것 마냥 그녀와의 연애는 술술 풀려나갔다. 결혼승낙 역시 자연스레 받아서 그는 자신의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와의 신혼 생활을 하면서 점차 자신의 행운이 행운을 빙자한 덫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결혼 전 결혼준비를 일방적으로 그가 다한 것은 그녀가 워낙 바빠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그리고 그가 고른 것을 그녀가 보고 기뻐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그런 모습이 나름 뿌듯하기도 했던 터라 흐뭇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결혼 이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바빠서 신혼 분위기를 내기는커녕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기도 힘들었다. 일단 서로의 짐을 풀어야 하는데 그녀의 물건은 정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너무 바빠서 그런가보다 하고 정리해 줄 마음에 상자를 열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상자마다 곰팡이가 필 것 같은 빨랫감이 가득했으며 모든 물건이 엉망진창으로 섞여 있었다. 심지어 먹다 남은 과자봉지까지 사방에 부스러기를 흘리면서 들어 있었다. 그는 경악하지만 물건은 전부 정리하고 빨래는 전부 빨아둔다. 일단 그는 프리랜서라 상대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아내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유있었던 것이다.

그는 짜증스러웠지만 아내의 짐을 정리해두었다. 허나 이 상황을 알게 된 아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왜 자신의 물건을 건드렸냐면서 도리어 성을 내는 것이다. 그도 화가 나서 받아치지만 아내의 신경질적 반응에 밀리고 만다. 결국 그는 바쁜 아내의 빨래를 해주기도 하고 아침에 그녀를 깨워 아침밥을 먹여 출근시키기도 한다. 주변에서는 부러워하지만 이렇게 사느니 예전에 혼자 살던 때가 더 나았다는 생각에 그는 이혼을 결심한다. 그리고 그것을 입에 올리려는 순간에 아내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는 차마 이혼하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아내가 신경질적인 것이 임신했기 때문이라 생각하지만 상황은 꼬여만 간다.

주변머리가 없어서 사회생활이 여의치 않은 남자와 완벽해보이지만 집안일에는 전혀 재능도 흥미도 없는 여자의 결혼생활이라 위태위태해 보이면서도 꽤 잘 유지되는 편이었다. 두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서로라기보다 사회가 남자와 여자에게 주입시켜둔 그리고 암암리에 요구하는 역할에 대한 생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인 신이치는 사실 남자가 돈을 벌고 아내는 그에 유순하게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면 그녀를 받아들이기가 한결 쉬웠을 것이다. 집안일이든 돈을 버는 일이든 상황이 움직이는 대로 받아들여도 괜찮을 텐데 꼭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따라 사람을 맞추려고 하니 어떻게 해도 완벽한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불만들을 제외하면 기존의 남녀 역할이 바뀐 상태이지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잘 지지해줄 수 있는 한 쌍의 결혼생활이라 꽤 재미있었다. 완벽해 보이는 아내의 정신적 지지를 남편인 신이치가 할 수 있고 남편인 신이치의 부족한 경제능력을 아내인 리카코가 채울 수 있으니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상의 여성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을 보여주는 '오타쿠에게 완벽한 여자는 없다' 재밌게 읽었다. 코믹 로맨스라기보다 현실 감각이 부족했던 주인공이 점차 현실에 정착하기 위한 성장소설 같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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