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소텔 이야기 2
데이비드 로블레스키 지음, 권상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 중에는 해야만 하는 선택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선택도 있다. 해야만 하는 선택의 경우에는 그 뒤에 남은 것이 후회뿐이라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의 운명은 만들어가는 것이라지만 가끔은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지도 모른다. 어디나 평등한 것은 결코 없으며 태어난 순간부터 불평등은 이미 전제되어 있다. 그것이 그 사람이 가진 배경의 불평등이나 능력의 불평등이냐가 다를 뿐이다. 하기야 평등이라는 말 자체가 균등하게 만들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적어도 기회의 평등이라는 말이니 당연한 것일 것이다.

자신의 작지만 완벽한 왕국이 한 순간에 무너지기 시작한 에드거 소텔에게도 상황은 부당했다. 불운은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조용히 다가왔다. 그가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자신들에게 닥칠 불운을 미리 알았다면 집안에 어둠을 드리운 불한당을 예전에 내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눈은 인간의 능력이란 한계 아래 가려져 있었고 눈 먼 그들은 불운을 피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소텔 집안의 농장은 피로한 곳이 되었다. 두 모자만으로는 셋이서 운영하던 농장을 유지하는 것만도 힘에 벅찼다.

그래도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보려고 했었다. '에드거 소텔 이야기'가 '햄릿'에 비견되고 햄릿의 어머니인 왕비가 한 선택을 생각해보면 에드거의 어머니인 트루디는 나름대로 굳건히 견디고 있었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언제부턴가 트루디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진찰을 해보자 그녀는 폐병에 걸려 있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었다. 그렇다면 농장을 관리할 사람은 에드거뿐이었고 그 상황에서 도와줄 사람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 때 에드거는 한 번의 선택을 한다. 예전에 한 번 삼촌인 클로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이번에는 도움을 청하기로 결심한다. 아버지의 유령이 한 말이 뚜렷해도 진실이 확연한 것이라도 다른 선택은 없었다.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는 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클로드는 농장에 개입하게 되고 갈등의 씨앗은 거대한 싹을 틔운다.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은 에드거는 그와 반목하게 된다. 클로드가 농장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은 자명했지만 감정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의심은 커져만 가고 에드거는 하나의 깜짝 쇼를 준비한다. 개 두 마리를 분양하기로 돼 있던 그 날 모든 준비는 끝이 나 있었다. 에드거가 몰랐던 것은 그 날 온 사람은 단순히 개를 분양해 갈 사람이 아니라 지사계약을 맺으러 온 사람이었던 점이다. 에드거의 어머니 트루디는 현실에 굴복했고 클로드에 기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에드거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에드거는 분노를 삼키고 트루디, 클로드, 파피노 박사, 낯선 방문자를 앞에 두고 준비해 온 기술을 선보인다.

공연이 끝나고 관계없는 자는 당혹해했으며 누군가는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트루디는 에드거를 힐난한다. 두 사람은 말다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다. 이에 트루디는 에드거에게 도망치라고 하고 에드거는 자신이 훈련시킨 개들과 함께 길을 떠난다. 트루디의 생각대로라면 잠시 피해있기 위한 것이었지만 에드거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후에 앨먼딘을 데려오지 못한 것이 마음 아팠지만 바부, 틴더, 에세이와 함께 여정을 계속한다.

14살의 말하지 못하는 소년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더구나 큰 개 세 마리를 데리고 있다면 그것은 더했다. 에드거의 선택은 각각 다른 모습으로 그에게 돌아왔고 에드거는 그에 따라 또 다른 선택지를 고른다. 그 길에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에드거는 길을 재촉하고 그 곳에는 다시 그가 해야 할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남아 있었다.

한 소년의 인생에 닥친 불운과 가족의 역사, 동물과의 교감이라는 소재가 잘 버무려진 느낌이었다. '햄릿'에 비견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것도 같지만 동시에 '정글북'을 떠올리게 하는 점도 많았다. 또한 에드거의 성장과 선택에 관한 것을 생각하면 성장소설로, 살인사건에 관련한 미스터리로 보면 스릴러 소설, 가족에게 닥친 이야기로 생각하면 스산한 가족소설로도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인 에드거는 말은 못하지만 잘 듣는다. 그에게 불운이 왔던 것은 지나치게 잘 들었던 탓인지도 모른다. 읽고 나서 이렇게 여운이 긴 소설은 흔치 않다는 스티븐 킹의 말에도 공감이 갔다. 마지막 한 장을 덮었을 때의 심정은 복잡함이었다. 정확히는 소텔 개들의 선택이나 에드거를 마지막 장에서 표현한 다른 말을 읽고 울분과 놀라움이 겹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에드거는 선택을 했고 그 대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선택의 배경이 되었던 회오리바람이 없었다면 또 다른 선택 속의 에드거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또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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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소텔 이야기 1
데이비드 로블레스키 지음, 권상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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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잘 듣는다는 것은 인간의 큰 덕목 중에 하나다. 경청에 관련된 책이 잘 팔린 이후 경청은 많은 자기계발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항목이 되었다. 경청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사례로 이런 것이 있다. 한 사람이 어느 모임에 가서 전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떠드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말은 거의 하지 않고 진지하게 듣기만 했다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상대에게 흥미있게 듣고 있다는 것을 적절히 보여주고 듣는 일에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결과는 남자가 돌아가자 내내 떠들고 있던 대화의 상대자는 그 남자를 극찬했다고 한다. 그 분야에 대해서 정말 해박하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터라 듣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인기를 끈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 사람이 모임의 구심점이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듣는다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소통의 고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의미한 지껄임보다 잘 듣고 상대의 정보를 얻는 것이 오히려 호감도 사기 쉽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에드거 소텔 이야기'의 주인공은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소년이었다. 잘 들었던 것이다. 문제는 너무 잘 들어서 죽은 아버지의 이야기에까지 귀를 기울이고 만다.

소텔 집안이 원래부터 전문적으로 개를 키우는 집안이었던 것은 아니다. 할아버지인 존 소텔이 한적한 곳에 땅을 사서 일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처음 그는 농장을 샀지만 다른 직업도 가지고 있었다. 개에 대한 애정이 존 소텔이 농장을 사게 만든 동기였다. 그는 끝내 소텔 종이라는 종을 만들어낼 정도로 교배에 성공했다. 존 소텔에게는 두 아들 가르와 클로드가 있었고 둘째 클로드는 해군에 입대하고 가르는 농장에 남았다.

에드거의 아버지는 가르였다. 어머니의 이름은 트루디로 뛰어난 훈련사였다. 두 사람은 에드거에게 어떻게 만나고 결혼했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지만 사이가 좋은 것만은 분명했다. 다른 지역에서 고립된 작은 왕국에서 에드거는 그저 행복했다. 아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그가 맛본 세상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집과 축사로 이루어진 작은 세계 말이다. 에드거가 태어나기 전 가르와 트루디는 아기를 원했다. 결혼한 지 3년이 되었는데도 소식이 없었던 것이다. 허나 바라던 임신이 되었지만 트루디는 두 번의 유산을 겪는다. 세 번째의 임신, 걱정이 가득했지만 이번만은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태어난 것은 이미 죽은 아기였다.

트루디는 남편을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했지만 절망했고 아기를 포기할까도 고려하고 있었다. 그 때 가르가 숲속에서 늑대의 새끼를 주워온다. 새끼늑대는 트루디를 따르는 것 같았지만 분유나 우유를 먹지 못했고 얼마 가지 않아 죽고 만다. 그 즈음이었다. 에드거가 잉태되고 건강하게 버티어 낸 것이 말이다. 이번에야 말로 집안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고 기뻐한지 5일이 지나자 이상이 발견된다. 아기가 결코 소리를 내지 않았던 것이다.

부모는 근심에 휩싸이고 온갖 검사를 하지만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는다. 소텔 집안의 개 앨먼딘도 이상을 알아챈다. 결코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기의 존재를 안 것이다. 앨먼딘은 조용히 아기에게 접근한다. 그 이후 앨먼딘은 조심스러운 개가 되었다. 에드거의 반려견이 된 것이다. 트루디가 앨먼딘을 고른 것도 그 눈에 담긴 슬픔이 그가 가진 이상을 포용해줄 것 같아서였으니 틀린 선택은 아니었던 셈이었다. 앨먼딘은 지친 어머니가 듣지 못한 아기의 숨소리에 주목한다. 아기가 배가 고프다고 전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 입을 통해서 말이다. 앨먼딘은 트루디의 얼굴을 한 번 핥은 다음 조용히 물러선다. 그녀는 깨어나 아기를 보고 안아 올린다. 그 때부터 에드거와 앨먼딘의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후 에드거는 성장하지만 부족한 부분은 없었다. 그는 잘 들을 수 있었고 단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뿐이었다. 그 부족한 부분은 수화나 필담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소텔 집안의 평화로운 왕국은 자의로 그곳을 떠난 탕아가 돌아오면서 무너져 내린다. 균열은 그가 돌아온 순간부터 있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미 프롤로그에서 한 남자가 한국의 부산에서 독약을 사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해군 기지가 있는 1952년의 한국의 한의원에서 검시를 해도 나오지 않을 독약을 산 남자는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가는 편이었다. 남자가 하는 거짓말들이 에드거를 휩쓸지만 그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그가 하는 감언이설에 속았다면 에드거의 인생이 달라졌을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에드거는 너무 잘 들었다는 것이다. 앨먼딘이 에드거의 소리없는 비명을 잘 들었듯이 에드거에게 모든 것은 너무 분명했다. 1권이 끝난 시점에서 모든 것은 평온하지만 고통스럽다. 그 고통을 부술 답으로 에드거가 어떤 선택을 할 지는 다음 권을 계속 읽어나가야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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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전 3
이종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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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수많은 역할이 숨어 있다. 태어난 순간부터 누군가의 아이이며 혈육이 되는 것이다. 점점 성장해나가면서 사람에게 붙은 역할은 늘어난다. 그 역할 하나하나는 의무나 권리를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을 구성하는 부분이며 수많은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잃었을 때 자신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말이다. 부모나 형제가 죽는다면 아이로써의 자신이나 형제로써의 자신이 죽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죽는 것보다 인간에게 끔찍한 일은 없다.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는 것도 주체인 자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의 죽음을 견딜 수 없기에 수많은 자신의 죽음을 견뎌내고 소중한 사람이 이 세상에 없음을 감내한 노인을 존경하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어디에나 예외가 있듯이 죽음을, 그 고통스러운 단절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원한다. 죽음 이후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설사 죽음 이후가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은 이미 자신이 알았던 그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귀신의 존재를 바라면서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죽음으로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님을 바라면서도 무의식중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음을 알고 그런 존재와 마주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이 책 '귀신전'에서는 죽은 자와의 손을 놓지 못하는 산 사람과 죽음으로 완전한 단절을 이뤘음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죽은 자가 공존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산 자는 미련하게 옛 사람을 그릴 뿐이고 죽은 자는 산 자의 몸을 탐한다. 애정이니 복수니 하는 것의 이름을 붙여서 말이다.

사실 가장 중요한 자신이 죽은 이후이니 그런 감정에 휘둘리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어리석다 못해 죽은 자들이 사악한 마음을 품고 산 자의 몸을 탐한다. 말 그대로 산 자의 육신을 빼앗으려 하기도 하고 그 목숨을 앗아가려고도 한다.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작은 부분에서 비롯되었다. 세연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악몽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악몽이라지만 섬뜩함은 지나치게 강렬했고 평상시 같이 돌아온 아버지의 등에 악령이 매달려 있었다. 자신을 노려보는 소름끼치는 눈빛에 깨어난 세연은 하루 종일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하필 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아버지의 무사한 귀가를 확인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평소라면 별일이라며 잊고 지나갈 만한 일이었지만 꿈속의 감정이 너무 생생해서 털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가 귀가한다면 그 어깨에 악령이 매달려 있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어머니와 동생은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지만 세연이 그런 행동을 하는 진짜 이유는 모르고 있었다. 알았다고 하더라도 별스럽게 군다며 웃어버렸을 것이다.

드디어 아버지가 돌아오고 그 어깨에 아무 것도 없음이 확인되자 세연은 살짝 안심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손에 작은 보퉁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흔히 작은 골동품을 사가지고 오는 터라 그런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보자기를 풀어보니 멋스러운 경대가 있었다. 주인이 누군지 모르지만 상당히 아꼈을 만한 물건이었다. 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경대에 관심을 가진다. 아버지는 으쓱해하며 설명을 하는데 심지어 전 주인이 공짜로 줬다는 것이다. 몇 천을 할 물건을 공짜로 주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허나 세연을 제외한 가족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경대 주위로 홀린 듯이 몰려든다. 오직 세연만은 그 경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꿈속의 귀신이 자신을 바라본 것만 같은 느낌을 경대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경대에 숨은 핏빛 비밀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세연의 불길한 예감은 점차 맞아 들어간다. 이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위험한 예감에도 불구하고 집 안으로 발을 들이는 것뿐이었다.

일단은 분야가 공포소설인 터라 시작이 또 심상치가 않다. 불길한 물건을 집에 들인 가족이 등장하고 점차 집안에 음습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퇴마사들은 이리저리 동분서주하지만 귀사리 건도 미처 해결하지 못한 터라 그림자는 짙어져만 간다. 그래도 이야기가 끝으로 치달은 느낌이라서 모든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등이 있다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 끝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파국일지 원만한 해결일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가장 큰 반전은 '귀신전'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라고 예상하고 봤는데 정작 4권으로 이어진다는 문구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재미있는 시리즈를 좀 더 길게 볼 수 있음을 기뻐해야 할 지 귀사리나 무풍면 건을 해결할 실마리가 나오지도 않고 어둠이 확대된 것을 경악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허나 갈등이 폭발하는 만큼 통쾌한 맛도 강했고 분야에 걸맞게 서늘한 느낌도 강한 한 권이라서 정말 재미있게 읽은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다음 권을 또 한참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암담할 뿐이다. 귀신전 속의 퇴마사들처럼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것도 아니니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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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은행통장>을 리뷰해주세요.
엄마의 은행 통장
캐스린 포브즈 지음, 이혜영 옮김 / 반디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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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에게 부모는 신과도 같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의 작은 세계가 아는 세계의 거의 전부인 아이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작은 세계에 거친 바람이 불어오면 어린 아이는 부모에게 매달리게 된다. 자신을 보호해 줄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느 웹툰에서 두 번째 아이를 가지면서 두 번째 아이를 갖는 것은 생을 포기할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부모로 살기로 결정한 이상 아이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부모는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를 보호한다. 하지만 바람은 예상보다 거세고 상대적으로 빈곤한 집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드는 편이라 부모가 가진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금방 들키는 경우가 생긴다. 자신을 지켜줄 버팀목이 사실은 그리 튼튼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 어린 아이는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아이들이 불안에 시달려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 순간 불안을 감쪽같이 없애주는 부모라면 정말 마법사 같은 존재일 것이다.

이 책 '엄마의 은행통장'은 따뜻한 가족소설이다. 노르웨이계 미국인 가족인 카트린의 집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면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이민자 가정이라서 경제적 토대가 튼튼하지 않은데다가 아이들이 계속 태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목수 일을 하면서 열심히 돈을 벌었지만 들어오는 곳보다 나가는 곳이 더 많으니 힘든 면이 많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결코 불안해하지 않는다. 엄마의 은행통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돈의 여유가 없는 동네사람들은 감히 시내에 있는 큰 은행에 출입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쓸 돈도 없는데 저축할 돈이 어디 있으며 저축할 돈이 없는데 통장이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카트린과 형제들은 엄마의 은행통장을 보물처럼 여겼다. 너무 소중해서 결코 손대고 싶지는 않지만 경제적 궁박함에 시달릴 때마다 엄마의 은행통장을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해졌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집세를 못 내서 쫓겨나기도 했지만 카트린의 집은 엄마의 은행통장이 있으니 문제가 없었다. 그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던 것이다. 허나 그 존재가 너무 소중해서 목돈이 필요해도 가능한 집안의 작은 은행, 즉 돈 통에서 해결하고는 했다. 작은 다그마르가 아플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카트린이 소설가가 되어 엄마에게 수표를 내민다. 엄마의 은행통장에 입금하라는 것이었다.

허나 엄마는 머뭇거리면서 수표를 바라보고 카트린에게 같이 시내에 가달라고 말한다. 카트린은 의아해한다. 입금만 하면 되는데 왜 엄마가 머뭇거리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카트린에게 엄마는 진실을 털어 놓는다. 은행통장 같은 것은 없었고 평생 은행에 발을 들여놓아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단지 돈이 없어서 아이들이 불안해할 까봐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했다.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서 아이들을 안심시킨 엄마의 이야기, '엄마의 은행통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후 새로운 아기가 태어나기도 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카트린의 엄마는 마법사 같은 솜씨를 선보인다. 다투고 있던 가족을 화해시키기도 하고 돈만 밝혀서 수술을 해주지 않으려는 의사의 아내를 설득해서 남편의 수술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 카트린을 인기인으로 변모시키기도 한다. 엄마가 쓴 방법은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보는 사람을 내내 감탄시키고 그녀의 마법에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감탄을 일으키는 대상이지만 가족에게 수많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굳건한 기둥이 되어주는 카트린의 엄마는 그 이상의 경탄을 품게 했다. 다른 생물에 비해서 인간은 유난히 성인이 되어서 혼자 살 수 있을 때까지의 기간이 길다. 그렇기에 아이를 키우는 일은 더 힘든 것일 것이다. 언젠가 모성애에 관한 것은 거짓된 신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천성적으로 모성애가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의 생명을 잉태하고 또한 키워낸 어머니에게 어떻게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구나 마법사 같은 솜씨로 가족의 행복을 유지해 온 어머니라면 더욱 그러하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마법사 같은 엄마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어려운 가족 형편 속에서도 따뜻한 가족의 이야기가 좋더군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개를 위한 스테이크'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족에 관한 이야기고
인상 깊게 본 터라 생각나는 책이네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화자가 딸인 카트린으로 되어 있어서
엄마의 입장에서보다 자식의 입장에서 더 이해하기 편한 책이었어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다섯 번이나요. 게다가 우리를 키우시느라 겪으셨던 그 수많은 일을 생각해 보면..."
"다 좋았단다."
엄마가 말했다.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어요? 글쎄,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엄마..."
"다 좋았었어."
엄마가 단호하게 되풀이했다.
"그 모든 것이 말이야."
(P268, 카트린과 엄마의 대화)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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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벵이의 노래>를 리뷰해주세요.
굼벵이의 노래
황원교 지음 / 바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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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았던 여자가 사고를 당한다. 정확하게는 새 며느리를 죽이려다가 아들과 몸싸움을 벌이게 되었고 그 가운데 쓰러졌다. 결과는 전신이 마비되고 만다. 여자는 이미 그 전에 2명을 죽인 것이 확실하며 1명의 죽음에 책임이 있었다. 아들은 경찰에 어머니를 고발할까도 잠깐 고려했지만 어머니가 더한 곳에 갇혔음을 확인하고 떠나간다. 그녀는 이제 눈을 깜빡이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녀의 정신은 자신의 육체라는 감옥 속에 갇혀 버렸다.

사람의 몸은 그리 자유롭지는 못하다. 운동을 안 해서 기능적인 면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사회의 여러 제약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노쇠 하는 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물론이다. 몸과 마음은 하나로 결합되어 유기적인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 보통이다. 몸이 더없이 건강한데 마음이 우울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나 마음의 생기가 사라지면 몸의 활력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몸이 아픈데 정신만 영민한 상태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여기 자신의 몸속에 갇혀버린 사람이 한 명 있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 속의 여자는 반 정도는 자업자득인 셈이지만 이 사람은 그저 운이 없었다. 학창시절의 반을 ROTC로 보내고 졸업하자마자 장교로 군대를 갔다고 한다. 돌아와서 취직하고 같이 인생을 보내고 싶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꿈꿨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안온한 삶의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결혼을 1주일 앞둔 어느 날 그에게 불행이 닥쳤다.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고 간신히 깨어나 보니 몸은 중증 장애를 안고 살게 된 것이다. 깨어나서 회복할 동안은 기적이 일어나서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살아나는데 기적이 이미 소모되었는지 더 이상의 차도는 없었다.

젊은 영혼이 자신의 몸 안에 갇혀 버린 것이다. 예전 같으면 그의 마음에 반응하여 움직여 주었을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것은 상처뿐인 몸과 마음, 가족뿐이었다. 그나마 희망이 한 가닥 남아서 말을 하는데 불편하지는 않았다. 사람들과의 소통의 통로만은 닫히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절망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인생의 길이 끊겨버렸기 때문이다. 결혼 역시 깨어졌다. 그는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 단 5분간만 몸이 자유로워진다면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겠다는 것이다. 한없는 절망이 그를 엄습했고 간신히 생을 이어갔다. 가족만이 그의 곁에 있었다. 한없이 자식이 안쓰러운 부모님과 심부름만 시키는 큰 아버지일 텐데도 그를 따르는 쌍둥이 조카들, 동생 내외가 있어서 숨을 쉴 수가 있었다.

허나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고 다시 한 번 그에게 불행이 닥쳐온다. 막내 동생이 병에 걸린 것이다. 수술을 해야 하는 병이었고 큰 아들이 불편한 생을 살게 된 것을 마음 아파했던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하루 외출을 하려던 어머니가 쓰러진다. 그는 그 소리를 들었지만 육체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어 어머니를 안타깝게 부를 뿐이었다. 다행히 큰 아버지의 침상 밑에서 자고 있던 쌍둥이가 그의 외침에 깨어났다. 그러나 아직 어린 아이들이라 놀라 울음을 터뜨린다. 그는 다급하지만 아이들을 달래어 한 명은 할머니를 확인하고 한 명은 119에 전화하라고 말한다.

겁이 난 어린 아이들은 그의 말에 따르는데 할머니를 흔들어도 미동이 없자 아이는 방에 들어와 다시 울음을 터뜨린다. 전화를 잡은 녀석도 그에 반응해 울음을 터뜨리고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그 역시 다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저 어머니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마침 아버지가 돌아오고 어머니는 병원으로 옮겨진다. 온 가족이 비통함에 빠져 있는 가운데 수술에 들어가지만 끝내 어머니는 숨을 거두고 만다. 그가 사고를 당한지 7년 만이었다.

어둠은 너무 짙었고 인간의 존재는 미약했다. 미약했던 신앙에 매달리고 묶여버린 정신의 고통을 풀어내고자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책으로도 나왔다는 것이다. 이제 인생의 반을 막 넘긴 한 사람의 인생으로는 너무 무거운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는 세상과의 소통을 포기하지 않았다. 글을 썼고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으며 늙은 아버지와 함께 생을 살고 있다. 자식을 가져보지 못했지만 그의 곁에 있어준 사려 깊은 조카들에게 그 이상의 정을 느끼기도 한다. 어둠 속에 있지만 빛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조금만 불편해도 마음이 그에 좌우될 때가 많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마음이 춤을 추는 것처럼 흔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더 묶여버린 정신을 곧게 유지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불운 속에서 견디어 온 저자의 힘에 감탄하게 되고 한 사람의 인생에 불운은 한정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길 바라게 된다. 이제 행운만이 남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타인의 생을 빌어 자신의 생을 돌아보게 되고
희망을 떠올리게 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아빠 어디 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군요.
같이 읽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장애 아동을 키우는 아버지의 일상과
장애인이 되어버린 시인의 일상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어요.
아니면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라는
신달자 시인의 책이 생각나네요.
남편의 병수발을 하는 내용과 시인의 감성이라는 부분이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자신의 생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이지만
적어도 20대 후반은 되는 편이 더 받아들이기 쉬울 것 같네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그렇게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종이학들이 마당 한 구석에서 불타고 있을 때 "종이학들이 하늘로 날아가네. 할머니, 종이학 타고서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훨훨 날아다니세요." 하며 쌍둥이 조카 중의 하나가 끼어들었다. "그래, 할머니는 학이 되어서 훨훨 날아다니실 거다." 하고 내가 맞장구쳤다. 이윽고 일곱 빛깔 무지개 종이학들이 불꽃과 함께 한 줄기 연기로 사라지고, 어머니의 인생도 한 움큼의 재로 남았다.
(P103)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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