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전 3
이종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에게는 수많은 역할이 숨어 있다. 태어난 순간부터 누군가의 아이이며 혈육이 되는 것이다. 점점 성장해나가면서 사람에게 붙은 역할은 늘어난다. 그 역할 하나하나는 의무나 권리를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을 구성하는 부분이며 수많은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잃었을 때 자신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말이다. 부모나 형제가 죽는다면 아이로써의 자신이나 형제로써의 자신이 죽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죽는 것보다 인간에게 끔찍한 일은 없다.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는 것도 주체인 자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의 죽음을 견딜 수 없기에 수많은 자신의 죽음을 견뎌내고 소중한 사람이 이 세상에 없음을 감내한 노인을 존경하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어디에나 예외가 있듯이 죽음을, 그 고통스러운 단절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원한다. 죽음 이후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설사 죽음 이후가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은 이미 자신이 알았던 그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귀신의 존재를 바라면서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죽음으로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님을 바라면서도 무의식중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음을 알고 그런 존재와 마주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이 책 '귀신전'에서는 죽은 자와의 손을 놓지 못하는 산 사람과 죽음으로 완전한 단절을 이뤘음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죽은 자가 공존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산 자는 미련하게 옛 사람을 그릴 뿐이고 죽은 자는 산 자의 몸을 탐한다. 애정이니 복수니 하는 것의 이름을 붙여서 말이다.

사실 가장 중요한 자신이 죽은 이후이니 그런 감정에 휘둘리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어리석다 못해 죽은 자들이 사악한 마음을 품고 산 자의 몸을 탐한다. 말 그대로 산 자의 육신을 빼앗으려 하기도 하고 그 목숨을 앗아가려고도 한다.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작은 부분에서 비롯되었다. 세연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악몽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악몽이라지만 섬뜩함은 지나치게 강렬했고 평상시 같이 돌아온 아버지의 등에 악령이 매달려 있었다. 자신을 노려보는 소름끼치는 눈빛에 깨어난 세연은 하루 종일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하필 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아버지의 무사한 귀가를 확인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평소라면 별일이라며 잊고 지나갈 만한 일이었지만 꿈속의 감정이 너무 생생해서 털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가 귀가한다면 그 어깨에 악령이 매달려 있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어머니와 동생은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지만 세연이 그런 행동을 하는 진짜 이유는 모르고 있었다. 알았다고 하더라도 별스럽게 군다며 웃어버렸을 것이다.

드디어 아버지가 돌아오고 그 어깨에 아무 것도 없음이 확인되자 세연은 살짝 안심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손에 작은 보퉁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흔히 작은 골동품을 사가지고 오는 터라 그런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보자기를 풀어보니 멋스러운 경대가 있었다. 주인이 누군지 모르지만 상당히 아꼈을 만한 물건이었다. 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경대에 관심을 가진다. 아버지는 으쓱해하며 설명을 하는데 심지어 전 주인이 공짜로 줬다는 것이다. 몇 천을 할 물건을 공짜로 주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허나 세연을 제외한 가족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경대 주위로 홀린 듯이 몰려든다. 오직 세연만은 그 경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꿈속의 귀신이 자신을 바라본 것만 같은 느낌을 경대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경대에 숨은 핏빛 비밀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세연의 불길한 예감은 점차 맞아 들어간다. 이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위험한 예감에도 불구하고 집 안으로 발을 들이는 것뿐이었다.

일단은 분야가 공포소설인 터라 시작이 또 심상치가 않다. 불길한 물건을 집에 들인 가족이 등장하고 점차 집안에 음습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퇴마사들은 이리저리 동분서주하지만 귀사리 건도 미처 해결하지 못한 터라 그림자는 짙어져만 간다. 그래도 이야기가 끝으로 치달은 느낌이라서 모든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등이 있다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 끝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파국일지 원만한 해결일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가장 큰 반전은 '귀신전'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라고 예상하고 봤는데 정작 4권으로 이어진다는 문구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재미있는 시리즈를 좀 더 길게 볼 수 있음을 기뻐해야 할 지 귀사리나 무풍면 건을 해결할 실마리가 나오지도 않고 어둠이 확대된 것을 경악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허나 갈등이 폭발하는 만큼 통쾌한 맛도 강했고 분야에 걸맞게 서늘한 느낌도 강한 한 권이라서 정말 재미있게 읽은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다음 권을 또 한참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암담할 뿐이다. 귀신전 속의 퇴마사들처럼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것도 아니니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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