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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벵이의 노래
황원교 지음 / 바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았던 여자가 사고를 당한다. 정확하게는 새 며느리를 죽이려다가 아들과 몸싸움을 벌이게 되었고 그 가운데 쓰러졌다. 결과는 전신이 마비되고 만다. 여자는 이미 그 전에 2명을 죽인 것이 확실하며 1명의 죽음에 책임이 있었다. 아들은 경찰에 어머니를 고발할까도 잠깐 고려했지만 어머니가 더한 곳에 갇혔음을 확인하고 떠나간다. 그녀는 이제 눈을 깜빡이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녀의 정신은 자신의 육체라는 감옥 속에 갇혀 버렸다.

사람의 몸은 그리 자유롭지는 못하다. 운동을 안 해서 기능적인 면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사회의 여러 제약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노쇠 하는 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물론이다. 몸과 마음은 하나로 결합되어 유기적인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 보통이다. 몸이 더없이 건강한데 마음이 우울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나 마음의 생기가 사라지면 몸의 활력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몸이 아픈데 정신만 영민한 상태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여기 자신의 몸속에 갇혀버린 사람이 한 명 있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 속의 여자는 반 정도는 자업자득인 셈이지만 이 사람은 그저 운이 없었다. 학창시절의 반을 ROTC로 보내고 졸업하자마자 장교로 군대를 갔다고 한다. 돌아와서 취직하고 같이 인생을 보내고 싶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꿈꿨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안온한 삶의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결혼을 1주일 앞둔 어느 날 그에게 불행이 닥쳤다.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고 간신히 깨어나 보니 몸은 중증 장애를 안고 살게 된 것이다. 깨어나서 회복할 동안은 기적이 일어나서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살아나는데 기적이 이미 소모되었는지 더 이상의 차도는 없었다.

젊은 영혼이 자신의 몸 안에 갇혀 버린 것이다. 예전 같으면 그의 마음에 반응하여 움직여 주었을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것은 상처뿐인 몸과 마음, 가족뿐이었다. 그나마 희망이 한 가닥 남아서 말을 하는데 불편하지는 않았다. 사람들과의 소통의 통로만은 닫히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절망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인생의 길이 끊겨버렸기 때문이다. 결혼 역시 깨어졌다. 그는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 단 5분간만 몸이 자유로워진다면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겠다는 것이다. 한없는 절망이 그를 엄습했고 간신히 생을 이어갔다. 가족만이 그의 곁에 있었다. 한없이 자식이 안쓰러운 부모님과 심부름만 시키는 큰 아버지일 텐데도 그를 따르는 쌍둥이 조카들, 동생 내외가 있어서 숨을 쉴 수가 있었다.

허나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고 다시 한 번 그에게 불행이 닥쳐온다. 막내 동생이 병에 걸린 것이다. 수술을 해야 하는 병이었고 큰 아들이 불편한 생을 살게 된 것을 마음 아파했던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하루 외출을 하려던 어머니가 쓰러진다. 그는 그 소리를 들었지만 육체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어 어머니를 안타깝게 부를 뿐이었다. 다행히 큰 아버지의 침상 밑에서 자고 있던 쌍둥이가 그의 외침에 깨어났다. 그러나 아직 어린 아이들이라 놀라 울음을 터뜨린다. 그는 다급하지만 아이들을 달래어 한 명은 할머니를 확인하고 한 명은 119에 전화하라고 말한다.

겁이 난 어린 아이들은 그의 말에 따르는데 할머니를 흔들어도 미동이 없자 아이는 방에 들어와 다시 울음을 터뜨린다. 전화를 잡은 녀석도 그에 반응해 울음을 터뜨리고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그 역시 다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저 어머니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마침 아버지가 돌아오고 어머니는 병원으로 옮겨진다. 온 가족이 비통함에 빠져 있는 가운데 수술에 들어가지만 끝내 어머니는 숨을 거두고 만다. 그가 사고를 당한지 7년 만이었다.

어둠은 너무 짙었고 인간의 존재는 미약했다. 미약했던 신앙에 매달리고 묶여버린 정신의 고통을 풀어내고자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책으로도 나왔다는 것이다. 이제 인생의 반을 막 넘긴 한 사람의 인생으로는 너무 무거운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는 세상과의 소통을 포기하지 않았다. 글을 썼고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으며 늙은 아버지와 함께 생을 살고 있다. 자식을 가져보지 못했지만 그의 곁에 있어준 사려 깊은 조카들에게 그 이상의 정을 느끼기도 한다. 어둠 속에 있지만 빛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조금만 불편해도 마음이 그에 좌우될 때가 많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마음이 춤을 추는 것처럼 흔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더 묶여버린 정신을 곧게 유지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불운 속에서 견디어 온 저자의 힘에 감탄하게 되고 한 사람의 인생에 불운은 한정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길 바라게 된다. 이제 행운만이 남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타인의 생을 빌어 자신의 생을 돌아보게 되고
희망을 떠올리게 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아빠 어디 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군요.
같이 읽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장애 아동을 키우는 아버지의 일상과
장애인이 되어버린 시인의 일상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어요.
아니면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라는
신달자 시인의 책이 생각나네요.
남편의 병수발을 하는 내용과 시인의 감성이라는 부분이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자신의 생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이지만
적어도 20대 후반은 되는 편이 더 받아들이기 쉬울 것 같네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그렇게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종이학들이 마당 한 구석에서 불타고 있을 때 "종이학들이 하늘로 날아가네. 할머니, 종이학 타고서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훨훨 날아다니세요." 하며 쌍둥이 조카 중의 하나가 끼어들었다. "그래, 할머니는 학이 되어서 훨훨 날아다니실 거다." 하고 내가 맞장구쳤다. 이윽고 일곱 빛깔 무지개 종이학들이 불꽃과 함께 한 줄기 연기로 사라지고, 어머니의 인생도 한 움큼의 재로 남았다.
(P103)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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