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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소텔 이야기 2
데이비드 로블레스키 지음, 권상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 중에는 해야만 하는 선택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선택도 있다. 해야만 하는 선택의 경우에는 그 뒤에 남은 것이 후회뿐이라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의 운명은 만들어가는 것이라지만 가끔은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지도 모른다. 어디나 평등한 것은 결코 없으며 태어난 순간부터 불평등은 이미 전제되어 있다. 그것이 그 사람이 가진 배경의 불평등이나 능력의 불평등이냐가 다를 뿐이다. 하기야 평등이라는 말 자체가 균등하게 만들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적어도 기회의 평등이라는 말이니 당연한 것일 것이다.
자신의 작지만 완벽한 왕국이 한 순간에 무너지기 시작한 에드거 소텔에게도 상황은 부당했다. 불운은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조용히 다가왔다. 그가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자신들에게 닥칠 불운을 미리 알았다면 집안에 어둠을 드리운 불한당을 예전에 내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눈은 인간의 능력이란 한계 아래 가려져 있었고 눈 먼 그들은 불운을 피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소텔 집안의 농장은 피로한 곳이 되었다. 두 모자만으로는 셋이서 운영하던 농장을 유지하는 것만도 힘에 벅찼다.
그래도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보려고 했었다. '에드거 소텔 이야기'가 '햄릿'에 비견되고 햄릿의 어머니인 왕비가 한 선택을 생각해보면 에드거의 어머니인 트루디는 나름대로 굳건히 견디고 있었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언제부턴가 트루디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진찰을 해보자 그녀는 폐병에 걸려 있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었다. 그렇다면 농장을 관리할 사람은 에드거뿐이었고 그 상황에서 도와줄 사람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 때 에드거는 한 번의 선택을 한다. 예전에 한 번 삼촌인 클로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이번에는 도움을 청하기로 결심한다. 아버지의 유령이 한 말이 뚜렷해도 진실이 확연한 것이라도 다른 선택은 없었다.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는 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클로드는 농장에 개입하게 되고 갈등의 씨앗은 거대한 싹을 틔운다.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은 에드거는 그와 반목하게 된다. 클로드가 농장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은 자명했지만 감정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의심은 커져만 가고 에드거는 하나의 깜짝 쇼를 준비한다. 개 두 마리를 분양하기로 돼 있던 그 날 모든 준비는 끝이 나 있었다. 에드거가 몰랐던 것은 그 날 온 사람은 단순히 개를 분양해 갈 사람이 아니라 지사계약을 맺으러 온 사람이었던 점이다. 에드거의 어머니 트루디는 현실에 굴복했고 클로드에 기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에드거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에드거는 분노를 삼키고 트루디, 클로드, 파피노 박사, 낯선 방문자를 앞에 두고 준비해 온 기술을 선보인다.
공연이 끝나고 관계없는 자는 당혹해했으며 누군가는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트루디는 에드거를 힐난한다. 두 사람은 말다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다. 이에 트루디는 에드거에게 도망치라고 하고 에드거는 자신이 훈련시킨 개들과 함께 길을 떠난다. 트루디의 생각대로라면 잠시 피해있기 위한 것이었지만 에드거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후에 앨먼딘을 데려오지 못한 것이 마음 아팠지만 바부, 틴더, 에세이와 함께 여정을 계속한다.
14살의 말하지 못하는 소년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더구나 큰 개 세 마리를 데리고 있다면 그것은 더했다. 에드거의 선택은 각각 다른 모습으로 그에게 돌아왔고 에드거는 그에 따라 또 다른 선택지를 고른다. 그 길에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에드거는 길을 재촉하고 그 곳에는 다시 그가 해야 할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남아 있었다.
한 소년의 인생에 닥친 불운과 가족의 역사, 동물과의 교감이라는 소재가 잘 버무려진 느낌이었다. '햄릿'에 비견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것도 같지만 동시에 '정글북'을 떠올리게 하는 점도 많았다. 또한 에드거의 성장과 선택에 관한 것을 생각하면 성장소설로, 살인사건에 관련한 미스터리로 보면 스릴러 소설, 가족에게 닥친 이야기로 생각하면 스산한 가족소설로도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인 에드거는 말은 못하지만 잘 듣는다. 그에게 불운이 왔던 것은 지나치게 잘 들었던 탓인지도 모른다. 읽고 나서 이렇게 여운이 긴 소설은 흔치 않다는 스티븐 킹의 말에도 공감이 갔다. 마지막 한 장을 덮었을 때의 심정은 복잡함이었다. 정확히는 소텔 개들의 선택이나 에드거를 마지막 장에서 표현한 다른 말을 읽고 울분과 놀라움이 겹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에드거는 선택을 했고 그 대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선택의 배경이 되었던 회오리바람이 없었다면 또 다른 선택 속의 에드거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또 복잡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