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후 너는 죽는다 밀리언셀러 클럽 9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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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전 날 훑어봐야 할 분량은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시간은 얼마 남지 않으면 마음이 다급해진다. 점차 시계의 짹깍 거리는 소리조차 거슬리고 집중력은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흔히 들게 되는 생각이 있다. 시험문제를 미리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부딪히게 될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예상 답안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생활이 좀 더 편안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초능력 관련 영화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예지 능력자는 조금 부러운 생각마저 든다.

허나 과연 앞날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일일까. 복권 당첨번호나 주식의 동향을 읽을 수 있다는 부분에서는 좋기만 할 것 같지만 만나는 사람의 수명을 자연스레 알게 되고 자신이 마주하게 될 모든 내일을 미리 아는 것은 정말 재미없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본 미래가 어떻게 해도 결코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참담한 일은 없다.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바로 이 책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의 주인공 야마하 케이시였다. 예전에 호되게 않고 난 후 깨어나자 만나는 사람들의 '비일상적인 미래'를 보게 된 케이시는 하루하루를 우울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일상적인 미래를 보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평범하게 보낼 행복한 하루는 보이지 않고 그 사람이 겪게 될 사건, 사고가 보이게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주로 죽음이었다. 그 죽음이 언제 다가올 지도 알면서도 바꿀 수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것은 예지능력으로 읽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죽음을 읽자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못한다. 자신도 이미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은 미오, 이제 곧 25살 생일을 맞을 여성이었다. 고향에서 올라와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잘 하는 것도 없었다. 꿈도 없이 부유하는 사이에 젊음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렸다. 물론 이십대 중반도 충분히 젊었다. 허나 십대와 이십대 초반의 치기어린 젊음은 이제 곧 그녀의 것이 아니게 될 터였다. 그날 밤 12시 종소리와 함께 25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케이시가 접근해온다. 평소처럼 간단히 뿌리치려고 했던 미오에게 그는 기묘한 말을 한다.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는 것이다. 이 기괴하면서도 섬뜩한 말은 미오를 몸서리치게 만든다. 하지만 길에서 갑자기 접근해 온 사람이 당신의 죽음을 예지로 읽었다고 말했을 때 쉽사리 믿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미오는 친구와 약속이 있다면서 케이시를 뿌리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미오의 친구는 그녀를 바람맞힐 것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그녀와의 약속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오는 이때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약속장소에 그녀의 친구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케이시를 사기꾼으로 속단하고 친구에게로 걸어간다.

그러자 친구의 표정에 당황이 떠오르는데 미오와의 약속을 잊고 다른 약속을 잡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장소에서 남자친구와 만나기로 한 것이다. 미오는 경악하여 케이시를 만났던 곳으로 돌아간다. 다행히 그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고 그렇게 두 사람의 6시간이 시작되었다. 이십대 중반이 되고 싶지 않아서 생일을 맞기 싫었던 여자가 죽음의 예언을 받는다. 그녀에게 생일을 맞는다는 것은 이제 젊음을 잃어버렸다는 상징이 아니라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남는 것을 의미하게 되어버렸다.

뜻하지 않게 죽음의 예언을 받은 여자는 앞날을 읽지만 결코 운명을 바꾸지 못했던 예언자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그녀의 앞에 놓인 것은 예언자가 본 그대로의 미래일지 아니면 바뀐 미래가 될 지 알 수 없다. 예언이 시작되었다는 것만이 분명할 뿐이다. '13계단'으로 강한 충격을 주었던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작이라는 것만으로도 기대되는 한 권이었다. 더구나 소재는 예지능력자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야마하 케이시와 관련된 사람들은 조금씩 다른 미래를 마주하게 된다.

예지능력만 가지고 있지 평범한 대학원생이 주요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그가 사건에 뛰어들게 되는 동기도 개인적인 것이 많은 터라 그가 탐정이라거나 주인공이라는 생각도 거의 들지 않았다. 단편이라는 특색에 맞게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일상에 케이시라는 예언자가 끼어들어 방향이 약간 바뀐다는 느낌이었다. 잔잔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와 '3시간 후 나는 죽는다' 같이 급박하게 전개 되는 것이 있어서 읽는 재미가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가다 보면 하루쯤 미래를 살짝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래를 두려움으로 보지 말라고 하지만 알 수 없다는 것은 두려움과 연관되기 쉽고 그 알 수 없는 내일이 달콤한 내일이 되었으면 하는 충동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예지는 그런 달콤함에서 거리가 멀기는 하다. 비일상적인 일들이니 당사자에게는 고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역시 모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내일은 결코 오지 않을 테고 마주하는 것은 항시 오늘이다. 결국 모르는 편이 세상은 더 재미있고 속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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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넥션 - 생각의 연결이 혁신을 만든다, 세계를 바꾼 발명과 아이디어의 역사
제임스 버크 지음, 구자현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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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많은 것은 연결되어 있다. 굳이 태평양 저편의 나비가 날갯짓을 했을 때 태풍이 온다는 것을 예로 들지 않아도 환율만 올라도 벌써 여러가지로 불편한 점이 생겼다. 세상의 모든 책이 한국어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번역되는 속도도 각기 다른 터라 좀 더 빨리 읽고 싶은 경우에는 원서를 사는 경우가 꽤 있었다. 더구나 페이퍼백의 경우에는 번역서로 나온 책의 정가보다 싼 경우가 많아서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했었다. 그런데 환율이 올라서 그런지 원서의 값이 쌀 때의 1.5배가 되었다.

예전만 해도 환율이 오른 것이 생활의 영향을 준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변화가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줄 지 알 수 없다. 이 책 '커넥션'에서도 수많은 연결이 등장한다. 사실 굴뚝이 독서를 늘린다거나 사상의 변화를 촉진시켰다고 하면 의아한 생각이 든다. 하물며 옷감을 짜는 수평직기가 인쇄술을 촉진시켰다고 하면 이것이 무슨 연관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허나 세상일은 오히려 연결되지 않은 것이 흔치 않은 것이고 모든 일은 톱니바퀴가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변화를 이어갔다.

예전 날이 따뜻할 때는 난로가 집의 중앙에 있었고 그 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온기를 나눠도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부유한 자도 다소 가난한 자도 같은 장소에서 식사를 했다. 하지만 갑자기 빙하기가 돌아온 것 마냥 추운 시절이 닥쳐왔다. 그 결과 굴뚝이 주요하게 등장한다. 난방의 필요성이 강해졌고 그렇지 않으면 냉골에서 살아야 했던 것이다. 또한 틈새에 회반죽을 바르고 그 위에 색깔을 칠하니 집 안을 치장하는 효과가 커졌다. 밖은 추워졌지만 집 안은 굴뚝이 있어서 따뜻했고 사람들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반적 사회복지는 향상되었지만 부자들은 따로 밥을 먹게 되었다. 사회복지가 늘어난다는 것은 사상의 풍요이기도 했다.

반면 옷감을 주요 수출품으로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옷감을 더 빨리 짓는 것이 중요요소였다. 수평직기가 발명되어 옷감을 빨리 완성되게 되었지만 정작 실을 자아내는 속도는 그대로라서 옷감의 수출량이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이에 물레가 나왔고 물레와 수평직기의 연결은 대량의 린넨이 공급되었다. 린넨의 가격이 대폭 싸지자 린넨 넝마도 늘어났다. 린넨 넝마가 종이의 원료가 되었고 수많은 양을 죽여야 했던 양피지보다 그것이 더 저렴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었다. 또한 물의 힘을 이용한 수차는 곡식을 빻는 것부터 대장간 일까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발명품들은 보통 시대의 필요에 의해서 나왔다. 굴뚝은 따뜻한 공간을 원하는 것에 의해서 옷감은 수출을 증대시키고 부를 축적하고 싶은 욕망에 의해 수차는 노동력을 덜 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나폴레옹이 전쟁을 위한 아이디어를 장려해서 나온 병조림도 비슷한 경우였다. 살균을 해서 공기가 통하지 않게 보관하면 상하지 않게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병조림은 분명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당시는 전쟁 상황이었고 다른 나라에서 프랑스를 고립시키고 있었기에 완전히 퍼져나가지 못했고 후발주자가 주철을 사용하는 것으로 특허를 내고 그 쪽이 퍼져나가게 되었다는 것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타르만 해도 그런 기분이 들었는데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은 타르에 손을 대서 패가망신을 한 반면 후에 타르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타르에서 키니네 성분을 기대했지만 인공 염료를 발견하고 그것이 유행해서 부자가 될 수 있었다는 부분은 안타깝기까지 했다. 같은 물질을 보았지만 행운이 누구 손에 떨어졌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의 발명이 방아쇠가 되어 전혀 관계없는 분야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이어졌다. 서로 무기를 발전시키는 이야기처럼 상상은 갔지만 제일 무장이 심했을 때 기사가 1000킬로그램을 착용했다는 이야기처럼 놀라운 이야기가 있었는가 하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 이야기도 있어서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다양한 것을 섞는 느낌이라서 익숙하지 않은 면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의 생각이 위대한 발명으로 이어진다는 것 자체는 매력적인 소재였다. 방금 사람 하나하나가 고대로부터 연결이라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든 달리 보게 될 것 같다. 그것이 미래로의 어떤 연결고리가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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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그래픽 노블)>를 리뷰해주세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공보경 옮김, 케빈 코넬 그림, 눈지오 드필리피스.크리스티나 / 노블마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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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책을 읽는 것이 즐거운 것은 반 정도는 신선함 때문이다. 새로운 내용이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터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게 되었다. 영화가 개봉하면서 유행을 탄 것인지 지나치게 많이 나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함에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여러 번 읽는 것은 꽤 즐거운 편이었다.

제목에서도 그대로 드러나지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게 거꾸로 흘러간다. 마크 트웨인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은 가장 먼저 오고, 최악의 순간은 나중에 온다는 말이 이 단편이 나오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 독자는 사상 최대의 허풍이라면서 비난하기도 했지만 시간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만 거꾸로 가는 시간 속에 살게 된 남자의 이야기라니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 소재였다. 다만 소설은 풍자적인 느낌이 강하다면 영화는 애틋한 사랑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했다는 차이점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 단편이었는데 심지어 세피아 색으로 칠해진 그래픽 노블이라니 솔직히 반가웠다. 자신의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과 그림을 그대로 보는 것은 느낌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주름이 가득하지만 일반적 아기의 체구인 벤자민 버튼이 태어나고 버려진다. 반면 원작에서는 벤자민의 키가 아버지 로저 버튼 보다 큰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을 그냥 상상했을 때와 아기들이 쓸만한 요람 속에 있는 벤자민 버튼의 그림을 직접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아버지보다 큰 키와 발밑에 닿을 것 같은 수염을 가지고 태어난 벤자민 버튼은 로저 버튼이 병원에 도착하자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 '아버지'인 로저 버튼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벤자민의 어린 시절 대부분을 고집으로 가득 찬 표정을 보여준 로저 버튼의 모습은 납득이 갈만도 했다. 지역유지인 자신의 큰 아들이 80세 노인의 체구로 태어났다면 그럴 만도 했던 것이다. 고집으로 가득 찬 로저 버튼은 벤자민을 데려가지만 자신의 육아방식을 고수한다. 그것은 자신의 아들이 약간 특이할 뿐이지 또래와 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아기' 벤자민이 시가를 피다가 걸렸을 때 그다지 혼내지 못한다. 그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약간 미안해하기도 하고 최대한 달래주려 아버지가 강요한 딸랑이를 무료한 표정으로 흔들면서 지나가는 벤자민의 표정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후 벤자민은 점점 젊어진다. 제목 그대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가기 때문이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가 젊어지다 못해 어려지기 시작하자 주위 사람들이 그를 비난한다는 것이다. 벤자민의 시간의 방향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에게도 시간은 불가항력인데 사람들은 그가 튀어 보이기 위해서 시간을 멈추지 않는다고 말한다.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것만으로도 평범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보낼 수밖에 없던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는 색다른 것 그 이상이었다. 그래픽 노블로 봐서 더 특별했던 점도 있었다. 그리고 책의 반 분량의 그래픽 노블이 끝나면 원문이 수록되어 있어서 비교하면서 다시 읽는 것도 즐거웠다. 글이 어떤 식의 장면으로 그려져 있었는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평범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나누기 위한 기준이라지만 역시 평범하다는 것이 가장 나을지도 모른다. 색다른 인생은 흥분될지도 모르지만 고난도 그만큼 가득하니까 말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새로운 느낌의 벤자민 버튼을 접할 수 있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문학동네 것이 떠오르네요.
같은 작가가 쓴 다른 단편도 함께 읽을 수 있는 점이 좋더군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원작이나 영화를 접한 사람 혹은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소재를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누구나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므두셀라라고 부르던지"
(P30, 늙은 모습으로 태어난 아들에게 빈정거리는 말)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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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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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누군가 사형제도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면 '복수'의 입장에서 답했다. 하지만 요즘 누군가 같은 질문을 한다면 머뭇거리게 될 것이다. 사형은 법원에서 구형하는 최고형량이다. 종신형을 살게 된다 한 들 죽음에 이르게 되는 형벌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사형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갖게 만든 것은 한 권의 책과 한 편의 드라마였다. 책은 '13계단',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주요 인물 중 한 명은 누군가를 죽이고 과실치사로 풀려난 살인자, 다른 한 명은 몇 번의 사형집행을 한 교도관이었다.

거기서 교도관은 자신이 집행한 사형에 대하 말한다. 사형수의 목에 밧줄을 감고 세 명이나 다섯 명이 전부 버튼에 손을  올린다고 한다. 그리고 동시에 누르는데 누가 죄수의 발밑의 발판을 열어 실질적으로 죽게 한 것인지는 모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직감적으로 알게 되어 있다고 말이다. 공무원이 되어 나라가 지시하는 살인을 하게 된 사람이라니 당혹스러웠다. 집행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그것은 살인이라고 말하며 남자는 잠들지 못했다.

반면 드라마에서는 사형을 집행하러 들어간 교도관이 할 일은 그저 주시하는 것이었다. 치사량의 독액이 사형수의 몸에 주입되고 그는 죽었어야 했다. 하지만 죄인은 죽지 않았고 당황한 의사는 두 배의 양을 재주입했다. 그래도 죽지 않았다. 다만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모두가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한참을 신음하는 죄수를 보던 교도관 한 명이 참지 못하고 총을 빼든다. 그리고 그를 사살했다. 결과는 교도관은 살인죄로 체포되었다. 사형이 집행되고 있었으나 죽어가기면 할 뿐 숨이 끊어지지 않은 남자의 고통을 덜어주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살인과 사형은 민감한 문제다. 자신의 가족이 죽었는데 그것을 그저 지켜보고 싶은 유가족은 없다. 하지만 이 책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는 그 부분을 주임으로 나온 남자의 입을 빌어서 지적한다. 나라의 이름으로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허나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이니 만큼 어떤 일에는 사형, 어떤 일에는 종신형인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가족이 울부짖고 언론이 날뛰면 사형, 유가족이 없고 언론에서도 관심이 없으면 사형이 아니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것은 이상하다고 했다. 또한 아동학대는 분명 끔찍한 범죄인데도 피해자 가족이 곧 가해자 가족이라서 그런지 그 일에 대해 성토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형도 가볍게 나온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살인은 끔찍한 문제고 죄의 대가는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의 주인공으로 나온 '나'도 그런 생각을 버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아원에서 자라 성실하게 살아오려 했던 주인공의 시각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선과 악의 경계도 불분명해진다. '나'를 다잡아주고 자살을 막아주었던 원장과의 이야기는 안정적이지만 동생같이 생각했던 마시타의 자살 부분과 그가 남긴 노트의 내용을 읽어나가면 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 할 말이 없어졌다. 치료가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마시타가 강간살인범이 되었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또한 교도관으로 9년차인 그가 사형집행을 맡아야 할 가능성이나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 뻔뻔한 죄수의 이야기에 들어가서는 이 책이 '제목 그대로'의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살인범 야마이의 이야기를 듣는 처지가 된다. 그가 살인을 했다는 것은 동정의 여지가 없지만 항소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 자신의 꿈과 현재의 자신, 살인범 야마이를 통해 한 걸음 앞으로 나선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차분하지만 음울한 면이 없지 않았다. 혼란 속에 연민의 감정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악이 평범한 만큼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할 때도 많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연민을 살인범에게까지 확장하는 것은 어떤 면으로 부담스러웠다. 살인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악의 범죄다. 사형제도가 폐지 추세에 들어가고 있는 것은 인도적 차원의 것인지도 모르지만 가해자의 입장보다는 피해자가 더 신경 쓰이는 것이다. 굳이 사형제도의 폐지에 찬성을 던진다면 그것은 혹시 누명을 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법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원치 않은 살인자가 되어야 하는 교도관이 있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런 내용임에도 꽤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닥에 도달하면 날아오르는 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혼란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읽으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민까지 눌러오는 기분이 들었지만 다 읽고 난 이후에는 혼란스러운 심정도 사형제도에 대한 생각도 정리할 수 있었고 더불어 고민거리도 머릿속에서 털어버릴 수 있었다. 인도적 차원도 좋지만 사형제는 '복수'란 이름 아래에서는 아직 반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죽은 자는 눈물을 흘릴 육신도 싸늘하게 식어버렸는데 가해자를 가여워하기는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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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섹스 - 일하는 뇌와 사랑하는 뇌의 남녀 차이
앤 무어.데이비드 제슬 지음, 곽윤정 옮김 / 북스넛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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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똑같은 사람이 세 명 있다는 말이 있다. 전 세계의 인구가 60억이나 되니 도플갱어처럼 닮은 사람이 한 두명쯤 있어도 그리 놀랍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세상에 아무리 많아도 전혀 닮지 않은 둘이 있다. 바로 남자와 여자다. 몸의 골격이야 그렇다치지만 어쩌면 저렇게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동양식도 사고방식도 다르다. 여태까지는 그렇게 다른 것에 대해서 문화적인 것이나 사회구조 상 그런 것으로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것은 뇌와 관련된 문제라는 것이다. 이 책 '브레인 섹스'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공통점은 같은 인간이라는 점뿐이라고 한다. 극단적인 말이기는 했지만 공감이 가기도 했다. 오죽하면 남자와 여자를 다른 별 사람으로 설명한 책이 나왔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남자와 여자의 다른 점을 뇌 구조를 통해 설명한다는 점이 특색 있었다. 물론 여태까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설명한 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과학적으로 밝히려는 시도가 신선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의 뇌는 어떤 면으로는 극단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한 예로 공간지각능력을 담당하는 부분에 손상을 입은 남자는 그 분야에서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지만 같은 부분을 다친 여자의 경우 별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전에 아인슈타인의 뇌가 특별했던 것은 좌뇌와 우뇌가 보통 사람들에 비해 더 잘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남자의 경우에는 좌뇌와 우뇌가 그렇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좌뇌와 우뇌가 유난히 잘 연결된 남자가 희대의 천재일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또한 남자의 뇌는 각 부분이 전문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여자의 뇌는 좌뇌와 우뇌가 잘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능력이나 공간지각능력 같은 것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언어구사능력이 더 뛰어나기도 하고 같은 손상을 입어도 여자는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의 뇌가 다른 대표적인 예로 지도를 보는 것을 들 수 있다. 남자의 경우 공간지각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지도를 들면 그 지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고 한다. 지도를 보고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허나 여자의 경우 덜 전문화되었지만 보다 통합화된 뇌를 가지고 있어서 공간지각능력 부분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한다. 여성의 경우 지도를 바로 들고 머릿속에 지형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는 자신에 맞추어 지도를 돌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언어구사력은 여자 쪽이 훨씬 뛰어나 여성지원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경우 면접을 남녀 나누어 하지 않으면 남성지원자가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할 정도이다.

비슷하게 생긴 뇌인데 성별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차이가 있었다. 이렇듯 다른 뇌가 형성되는 것은 이미 태아시절에 결정된다고 한다. 남자 아기이든 여자 아기이든 관계없이 뇌가 형성되는 6주 간 남성 호르몬에 얼마나 많이 노출되느냐에 따라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로 변한다는 것이다. 남자아기라도 남성 호르몬에 거의 노출되지 않고 어머니가 당뇨병 치료 같은 문제로 여성 호르몬을 맞으면 여성의 뇌를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여자아기의 경우에도 어머니가 비정상적인 신장을 가지고 있어서 남성 호르몬에 많이 노출되면 남자의 뇌를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고 한다.

또한 X염색체가 하나 더 많은 터너 증후군의 경우에는 극단적인 여성성을 보인다고 한다. 자신이 어떤 뇌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드러나는 개성도 능력도 다르다고 말하는 셈이었다. 뇌 구조의 다름으로 구분한 남녀의 차이는 분명 흥미로웠다. 허나 남자 아기가 여자의 뇌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부분을 통해 동성애자나 트렌스 젠더에 대해 설명하려고 드는 부분은 약간 성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것이 밝혀지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인체는 풀리지 않은 비밀 중에 하나다. 인체의 구성물질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해서 인체를 재구성할 수도 생로병사의 비밀을 풀어낼 수도 없다. 하지만 어떨 때 보면 지나치게 달라서 당혹스러운 남녀의 차이를 뇌를 통해 알아본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태아 시절에 여성 호르몬에 과다하게 노출되어 운동을 잘 하지 못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여자의 뇌를 가지고 있는 증거라는 부분에서 묘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도를 잘 읽는 것과 사람을 잘 읽는 것은 분명 큰 차이기는 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성적이면 여자, 공격적이면 남자라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구분이 정확한 척도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같은 지구인이며 인간이라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남자와 여자는 풀리지 않는 비밀 중에 하나다. 허나 어느 시점에서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만 알고 싶지 않은 부분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비밀을 단지 호르몬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듯이 말이다. 허나 적어도 남녀의 차이를 뇌 구조를 통해서 알아보려고 한 점과 남녀가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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