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후 너는 죽는다 밀리언셀러 클럽 9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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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전 날 훑어봐야 할 분량은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시간은 얼마 남지 않으면 마음이 다급해진다. 점차 시계의 짹깍 거리는 소리조차 거슬리고 집중력은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흔히 들게 되는 생각이 있다. 시험문제를 미리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부딪히게 될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예상 답안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생활이 좀 더 편안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초능력 관련 영화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예지 능력자는 조금 부러운 생각마저 든다.

허나 과연 앞날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일일까. 복권 당첨번호나 주식의 동향을 읽을 수 있다는 부분에서는 좋기만 할 것 같지만 만나는 사람의 수명을 자연스레 알게 되고 자신이 마주하게 될 모든 내일을 미리 아는 것은 정말 재미없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본 미래가 어떻게 해도 결코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참담한 일은 없다.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바로 이 책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의 주인공 야마하 케이시였다. 예전에 호되게 않고 난 후 깨어나자 만나는 사람들의 '비일상적인 미래'를 보게 된 케이시는 하루하루를 우울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일상적인 미래를 보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평범하게 보낼 행복한 하루는 보이지 않고 그 사람이 겪게 될 사건, 사고가 보이게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주로 죽음이었다. 그 죽음이 언제 다가올 지도 알면서도 바꿀 수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것은 예지능력으로 읽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죽음을 읽자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못한다. 자신도 이미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은 미오, 이제 곧 25살 생일을 맞을 여성이었다. 고향에서 올라와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잘 하는 것도 없었다. 꿈도 없이 부유하는 사이에 젊음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렸다. 물론 이십대 중반도 충분히 젊었다. 허나 십대와 이십대 초반의 치기어린 젊음은 이제 곧 그녀의 것이 아니게 될 터였다. 그날 밤 12시 종소리와 함께 25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케이시가 접근해온다. 평소처럼 간단히 뿌리치려고 했던 미오에게 그는 기묘한 말을 한다.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는 것이다. 이 기괴하면서도 섬뜩한 말은 미오를 몸서리치게 만든다. 하지만 길에서 갑자기 접근해 온 사람이 당신의 죽음을 예지로 읽었다고 말했을 때 쉽사리 믿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미오는 친구와 약속이 있다면서 케이시를 뿌리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미오의 친구는 그녀를 바람맞힐 것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그녀와의 약속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오는 이때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약속장소에 그녀의 친구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케이시를 사기꾼으로 속단하고 친구에게로 걸어간다.

그러자 친구의 표정에 당황이 떠오르는데 미오와의 약속을 잊고 다른 약속을 잡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장소에서 남자친구와 만나기로 한 것이다. 미오는 경악하여 케이시를 만났던 곳으로 돌아간다. 다행히 그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고 그렇게 두 사람의 6시간이 시작되었다. 이십대 중반이 되고 싶지 않아서 생일을 맞기 싫었던 여자가 죽음의 예언을 받는다. 그녀에게 생일을 맞는다는 것은 이제 젊음을 잃어버렸다는 상징이 아니라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남는 것을 의미하게 되어버렸다.

뜻하지 않게 죽음의 예언을 받은 여자는 앞날을 읽지만 결코 운명을 바꾸지 못했던 예언자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그녀의 앞에 놓인 것은 예언자가 본 그대로의 미래일지 아니면 바뀐 미래가 될 지 알 수 없다. 예언이 시작되었다는 것만이 분명할 뿐이다. '13계단'으로 강한 충격을 주었던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작이라는 것만으로도 기대되는 한 권이었다. 더구나 소재는 예지능력자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야마하 케이시와 관련된 사람들은 조금씩 다른 미래를 마주하게 된다.

예지능력만 가지고 있지 평범한 대학원생이 주요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그가 사건에 뛰어들게 되는 동기도 개인적인 것이 많은 터라 그가 탐정이라거나 주인공이라는 생각도 거의 들지 않았다. 단편이라는 특색에 맞게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일상에 케이시라는 예언자가 끼어들어 방향이 약간 바뀐다는 느낌이었다. 잔잔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와 '3시간 후 나는 죽는다' 같이 급박하게 전개 되는 것이 있어서 읽는 재미가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가다 보면 하루쯤 미래를 살짝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래를 두려움으로 보지 말라고 하지만 알 수 없다는 것은 두려움과 연관되기 쉽고 그 알 수 없는 내일이 달콤한 내일이 되었으면 하는 충동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예지는 그런 달콤함에서 거리가 멀기는 하다. 비일상적인 일들이니 당사자에게는 고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역시 모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내일은 결코 오지 않을 테고 마주하는 것은 항시 오늘이다. 결국 모르는 편이 세상은 더 재미있고 속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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