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를 리뷰해주세요.
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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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춘기가 지난 이후에는 성장이 멈추고 늙어갈 뿐이니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자살하겠다는 것이다. 그 자아도취적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사람이 태어나 늙어가는 것은 맞다. 벤자민 버튼처럼 노인의 몸으로 태어날 재간이 없으니 아기로 태어나 노인이 되어간다. 하지만 사람이 죽을 때까지 성장을 멈추는 일은 거의 없다. 육신은 몰라도 정신은 그렇다. 친구는 성장이 멈추기 전에 죽고 싶다고 했지만 사람은 평생 성장하는 생물이고 어차피 성장을 멈춘다면 죽은 것과 같다.

여기 정신병원에 갇혀 버린 두 남자가 있다. 한 사람은 자의로 성장을 멈추고 자신의 안에 숨어버린 자, 한 사람은 타의에 의해 성장이 꺾여 버린 자다. 쉽게 말하면 한 사람은 실제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미치지 않았는데도 이해관계에 의해 정신 병원에 갇혀 버렸다. 두 사람은 우연히 같은 시각에 정신병원에 들어오게 된다. 각각의 사연을 안고 들어 온 두 청년은 자신의 방식대로 상황을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정신병을 앓게 된 이수명은 얼마 전 퇴원 했으나 다시 병원에 강제 입원한 처지였다. 현실을 도피해 귀 속의 '그 녀석'에게 휘둘리는 수명의 입장에서는 정신 병원은 익숙한 현실이고 받아들여야 할 곳이었다. 그는 '순응'을 택한다.

반면 어두운 출생으로 인해 시달림을 받았으나 한국을 떠나서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있던 류승민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미치지 않은 자신이 미친 사람의 틈 속에 갇혀 버렸으니 납득하기 어려웠다. 한국에 들어올 때 자신에게 위험이 있으리라는 것은 예감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거칠지만 자유롭게 살아온 승민이니 만큼 그는 '반항'을 택한다. 이어 정신 병원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 승민은 야수처럼 날뛴다. 보호사든 간호사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누구든 쓰러뜨릴 참이었다. 문제는 우연히 같이 들어 온 수명이 휘말렸다는 것이다. 승민이 탈출하려 난동을 부렸고 수명도 한 패로 보였는지 독방 신세가 된다.

정확하게는 격리실이라는 곳으로 어김없이 침대에 묶인 채로 약물이 투여되는 곳이었다. 졸지에 휘말린 수명은 격리실에서 며칠을 보낸다.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했고 기초체력도 부실했던 그로써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나와서도 자신의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승민의 탈출 소동 때 같이 있던 보호사 박정철, 일명 점박이가 그를 점찍어 두고 있었다. 괴롭힐 대상으로 선정된 것이다. 가능한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수명에게는 고달픈 노릇이었다. 거기에 모든 원흉인 승민까지 같은 방을 쓰면서 수명의 병원 생활은 점차 어려워진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생물이고 수명은 방관자가 되어 병원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가능한 점박이의 눈을 피하고 승민과도 얽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비슷해서인지 아니면 필연인지 두 사람은 계속 서로를 끌어당긴다. 정신병원에서 우정이 싹텄다면 묘하게 들리지만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터라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기 시작한다. 각자의 사연이 비밀로 남겨져 있는 가운데 승민이 시간이 없다고 한 이유가 서서히 드러나며 상황은 막바지로 달려간다. 그리고 강제로 날개가 꺾인 채 잡힌 승민을 도우면서 수명도 다시 성장해 나간다.

약간은 서글픈 느낌이 나는 표지도 그렇지만 이 책 '내 심장을 쏴라'는 다소 불편한 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주인공이 정신병원에 갇힌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실제 정신분열을 앓고 있지만 현재는 꽤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고, 또 한 사람은 정신에 이상이 없는데도 갇힌 터라 미친 사람의 시각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이 겪고 있는 상황의 부조리함에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다. 흔히 미국 수사 드라마에서는 잔인한 연쇄 살인범이 정신병원에 갇히는 것이 정말 부당하다는 것을 강조하느라 그 곳을 감옥에 비하면 천국이라는 식으로 묘사한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감옥에 비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화자인 수명의 시각은 일반인과 비슷하고 그의 짝꿍인 승민은 억울하게 갇힌 터라 그들이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릴 때마다 치를 떨게 되었다. 덕분에 실제로 정신병자 두 명이 병원을 탈출 했다는 뉴스를 보면 놀랄 거면서도 그들이 탈출할 수 있기만을 빌었다.

그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탈출시도는 수없이 무산된다. 이 끝을 알 수도 없는 갑갑한 이야기는 가슴 속에 품은 모든 감정을 풀어낼 때까지 계속된다. 정신 병원 식구들을 통해서는 웃음을, 승민의 억울한 사연에서는 섬뜩함과 긴장을, 보호사와 잡역부의 구역질나는 범죄에서는 분노를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두 사람의 성장에는 감동하게 되었다. 소재 자체는 정신 병원을 탈출하려는 두 남자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이 탈출기보다 성장 소설로 느껴지는 것이 그 탓일 것 같다. 두 청년은 멈추었던 성장을 계속한다. 사람이 죽는 것이 성장을 멈출 때라면 성장을 다시 시작한 그들은 새 생명을 얻은 것과도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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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을 리뷰해주세요.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 - 스케치북과 카메라로 기록한 드로잉 여행 1
김혜원 글.그림 / 씨네21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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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소풍 전 날이면 항상 악몽을 꿨다. 매년 소풍이나 수학여행지는 바뀌었지만 악몽의 내용은 대체로 비슷했다. 한 번도 하지 않을 지각을 해서 버스를 놓치는 꿈이었다. 집에서부터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달리기 시작하지만 코 앞에서 항상 차를 놓쳐서 울고 마는 그런 것이었다. 울음이 터짐과 동시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 시계를 봤고 대개 오전 5시도 안 되어 있었다. 여행 전 날까지 흥분이 최고조에 오르고 여행 전 날 밤에 악몽을 꾼 후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섰을 때를 기다리는 일은 한참동안 반복되었다.

이제 어른이 된 지금은 그런 악몽을 꾸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 전 날까지 흥분이 최고조에 오르는 것은 지금도 같다. 너무 기분을 냈는지 여행 도중에는 오히려 지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집이 익숙한 휴식의 장소가 되는 만큼 여행은 사람에게 큰 자극이 된다. 신경질적인 아이가 악몽을 꾸게 하기도 하고 인정된 일탈의 즐거움에 직전까지 흥분을 선사하기도 한다.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보면 사람은 자극을 바란다. 그렇기에 길이 길어보일 때마다 어디론가 떠나는 자신을 꿈꾸게 된다.

그래서 이 책 '스케치북과 카메라로 기록한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이 반가웠다. 길이 길어보이는 날은 많지만 그럴 때마다 짐 가방을 챙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행의 시작은 간단했다. 일본에 몇 번 여행을 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저자는 일본 여행을 결정한다. 그것도 JR패스 21일권을 사서 기차를 타고 일본 대부분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녀가 부러웠던 만큼 다음 내용이 더 궁금해졌다. 가끔은 버스도 탈 수 있는 것으로 보여서 거의 만능 티켓 같이도 보이는 JR패스를 국내에서 미리 산 후 일본에서 티켓을 발권 받는 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숙소에 대한 부분이 없어서 의아했다. 저자는 기차를 타고 다양한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하카다 역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는다. 예약도 하지 않았고 숙소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보통은 안내소를 이용하고 안내소가 문을 닫은 오후 6시 이후에는 코방이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파출소에 물어서 해결한다. 여태껏 여행은 잘 계획해서 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즉흥적으로 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고 어떤 면으로는 더욱 편리했다. 어떤 여행 책자든 정보는 한정되게 들어가 있으므로 모든 숙소나 음식점에 대한 것을 전부 다 실을 수는 없다. 그런데 현지 안내소에 가서 물어보면 예산에 맞추어 소개해 줄 뿐만 아니라 직접 전화를 걸어 공실이 있으면 예약까지 해 준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된 느낌이었다.

거기에 기차 여행의 매력을 잘 살린 그림과 사진에 여행의 풍취 속에 푹 빠진 기분이었다. 일본 기차 여행에 빠질 수 없는 도시락들부터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생각하게 하는 침대차까지 기차 여행에 대한 여러 가지 경험이 고루 실려 있었다. 기차 내부나 기차의 전면에 대한 설명부터 도착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 대한 설명까지 있었다. 하나 신선했던 점은 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반 이상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혼자 있어도 즐거웠고 자신 만의 시간을 오롯이 만끽한다는 느낌이 강했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기차에 몸을 싣고 생각할 여유를 누린다는 느낌이 들어 꽤 마음에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미술관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기차 안에서 담배 피워도 되냐고 물어보고 저자가 거절하자 다른 빈 좌석으로 옮긴 이후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는 할머니였다. 잃어버린 카메라를 챙겨다 준 가게 주인처럼 좋은 사람도 많았지만 친절한 사람들 틈에서 유독 무례한 사람이어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아기자기한 그림과 사진으로 일본 기차 여행을 대리 경험한 느낌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음식이나 도시락 같은 것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었으면 했다는 것이다. 하긴 아쉬움이 남아야 직접 떠나게 될 테니 이것 역시 장점인지도 모른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일본 여행을 그것도 기차를 통해서, 그림과 사진으로 표현된 부분이 좋았어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그림과 사진으로 표현된 '바람샤워 인 라틴'이란 여행기가 떠오르네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언젠가의 여행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해가 진다.
내가 조금까지 머무르던 곳, 내가 두고 온 곳, 내가 가야할 곳
그 모든 곳에 똑같이 해가 지고 있다. (P421)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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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프 : 불만족의 심리학
존 네이시 지음, 강미경 옮김 / 예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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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세대는 물건을 쌓아 놓는 것을 좋아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전쟁 전의 궁핍함이 몸에 배어 있기에 미리 준비를 해두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사람들은 그럴 만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온갖 물건들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중에서 당장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장 필요한 물건의 여분까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실 1년 동안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사용될 일은 결코 없다고 한다. 지난 1년 동안 입지 않은 옷, 읽지 않은 책, 쓰지 않은 물건이 새삼 필요해질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물건을 정리하려 들면 모든 물건이 요긴해 보인다. 버렸다가 필요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만약 버렸는데 필요해져서 사게 된다면 그런 낭비가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래서 버릴 물건의 목록은 순식간에 줄어든다. 그것도 마지못해서야 정리하게 된다. 그 후 방을 돌아보면 버린 물건의 자리가 휑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물건의 위치가 약간 바뀐 것뿐이다. 그 정도에서 멈추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사고 싶은 물건의 목록은 끝날 줄을 모른다. 사람은 왜 만족을 모를까.

이 책 '이너프 : 불만족의 심리학'에서는 만족할 줄 모르는 다양한 경우를 분석하고 있다. 흔히 생각하게 되는 물건을 계속 사게 되는 심리나 버리지 못하는 것들부터 해서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정보중독까지 다양한 불만족의 사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과거는 부족하고 현재는 약간 나아졌으며 미래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원시본능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예전 생명의 위협을 받던 시기에는 더 많은 정보가 곧 생존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해했을 때 강렬한 쾌감을 느끼게 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시기를 지나서는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에 사람들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사람은 같은 자극에는 점차 익숙해진다. 아직도 뇌에서는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이해하게 되면 쾌감을 느끼지만 점차 자극에 익숙해지면 그 양은 줄어들게 된다. 너무 많은 정보는 생각의 기회를 빼앗는다. 받아들이고 이해할 시간이 없는 정보공해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새로운 정보,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데에 있다. 먹는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사람은 먹는 상대의 양에 따라 식사량이 줄기도 하고 늘기도 한다고 한다. 뷔페 같은 곳에 가면 허용량을 초과해서 계속 먹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만족감은 훨씬 적은 양을 꼭꼭 씹어서 삼키는 편이 높지만 위를 계속 채워두려는 본능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물건을 사는 행위도 물건을 살 때는 뇌에서 쾌감을 느끼게 되어 있지만 사고 싶은 물건을 인내하면 고통을 느끼게 되어 있다고 한다. 언제나 절제가 고통스러운 것이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많은 정보를 흡수하고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고, 많은 물건을 비축해서 살아남으려는 원시본능을 넘어서지 못하면 평생 불만족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만 해도 그렇다. 예전에는 5단계였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그 위에 그리고 또 위에 충족되어야 할 욕구를 붙여 나간다. 이제 피라미드가 아닌 형태로 발전하게 생긴 것이다. 하나의 욕구를 충족시켜도 다른 것을 원하고 또 다른 것을 원하다보면 만족이라는 것은 올 줄을 모른다. 지금의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나은 자신을 위한 자기계발이나 현재의 행복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래서야 프랑스의 대식가가 상대를 식사에 계속 초대해서 끝내는 죽게 만들었다는 이야기 속의 희생자들의 삶과 다를 것이 없다. 충분히 먹었는데도 멈출 줄을 모르는 삶은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폭식을 살인의 수단으로 이용한 프랑스 대식가의 이야기, 물건을 둘 곳이 부족해서 창고를 빌려서까지 채워 넣는 이야기 등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어떤 이야기든 자신의 욕망의 거울 같은 점이 많아서 책장을 넘기다 잠깐씩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평을 늘어놓는 자신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당장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집 안에 쌓아 놓은 물건들은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번보다는 정리할 물건의 목록이 길어질 테고 이번에는 그 빈자리에 다른 물건을 채워두지 않으려 한다. 어차피 계속 채우려 해서야 다른 물건이 또 눈에 들어올 뿐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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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박찬욱 외 지음 / 그책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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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멘탈리스트'를 좋아하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대사가 있다. 사후세계 같은 다른 세계는 없으며 죽은 후에는 경기 종료가 선언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냥 끝이라는 것이다. 생명의 유한성은 사람을 멈칫거리게 한다. 그 생각만 하면 몸 안의 생체시계가 똑딱거리면서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한 시도 낭비할 시간이 없고 그로 인한 번뇌로 다시 고민을 하게 되는 무한 반복의 궤도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많은 사람들은 귀신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살아 있을 때의 기억은 점차 잊혀지겠지만 살아있을 때와의 연장을 계속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뱀파이어'는 매혹적인 소재다. 그들은 늙지도 죽지도 않으며 귀신처럼 실체가 불분명하지도 않다.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가진 채 변화한 존재인 것이다. 덕분에 여기저기서 뱀파이어를 인류보다 진화된 존재로 묘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두려운 것은 그로 인한 벌보다 손에 피를 묻힌 후의 자신은 이미 지금 그것을 상상하는 자신과는 상이한 존재가 된다는 점에 있다. 피를 마셔야만 살 수 있는 흡혈귀가 과연 예전의 자신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인간이었으나 인간이 아니게 되었고 그들 속을 걷지만 그들의 피를 마셔야만 할 수 있는 자. 같은 것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육체뿐이지만 그 육체도 이미 죽은 자의 것이며 그것을 구성하는 것은 이질적인 존재다.

그렇기에 많은 뱀파이어는 고뇌하는 것으로 나온다. 주로 선한 뱀파이어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책 '박쥐'에서도 뱀파이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그 주인공인 뱀파이어의 직업이 신부다. 뱀파이어를 악으로 한정한다면 그 악을 멸하는 자가 흡혈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의 처음 의도는 선한 것이었다. 아픈 자를 돕고 싶어 금지된 인체실험에 지원했고 병에 걸렸다. 그는 죽음을 맞았지만 다시 살아나고 오직 그만이 죽음에서 돌아왔기에 신도들은 그를 성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당사자인 상현은 달갑지 않았다. 자신의 무엇인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를 성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조차 내심 상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두려움을 경외감으로 포장했을 뿐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누르는 가운데 상현은 자신이 흡혈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자신을 감싸고 있었던 이질감은 피에 대한 갈증이었다. 더구나 그는 이미 한 번 전염병으로 죽었던 자였고 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육체가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게 되어 있었다. 예전의 그였다면 사람의 피를 마시느니 죽는 쪽을 선택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상현은 그리고 그의 억눌렸던 욕망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여태껏 억눌렀던 만큼 새어 나오는 것인지 자신이 짐승이 되었음을 빙자해 욕망을 제어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분명 경계에 있었다. 자신이 구하려던 자의 피를 마시기 시작했을 때 그는 경계를 넘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여자 태주를 만나고 난 이후 그는 나락으로 떨어져 내린다. 평생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욕망을 억눌러왔던 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모든 경계가 무너져 내린다. 그 이야기는 뱀파이어란 소재를 빌려서 나왔지만 그것은 단지 단초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이미 한계에 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억눌린 채 자라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을 알지 못했던 그들이었다. 만약 흡혈귀가 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에 눈을 떴어도 그들의 욕망은 새어 나왔으리라. 그리고 욕망을 누르는 것만 배워왔지 적절히 충족시키는 것을 배워본 적이 없는 상현과 태주는 욕망을 마구 충족시킬 수 있는 위치에 오자 멈출 수가 없어진다. 눈덩이가 구르기 시작한 이상 끝에 도달할 때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갈증은 결코 채워질 줄 모르고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은 파멸의 전주곡이 된다. 생각해보면 '박쥐'는 기묘한 소설이다. 읽을 때는 잔혹한 묘사가 많아서 진저리를 치게 되면서도 다 읽고 난 이후에는 온 세계가 눈으로 덮인 것을 보는 기분이 된다. 그 안에는 수많은 욕망이 부서져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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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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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뉴스에서 경기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사람들의 말꼬리에도 '불황'이란 말이 붙어 있다. 일할 곳을 찾는 사람들은 경기가 나쁘다면서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찾아도 전에 주던 돈의 반밖에 주지 않으려는 기업주가 야속하다고 말한다. 아직도 밤거리는 화려하게 빛나지만 예전처럼 거품이 가득했던 시대는 사라지고 전부 자신의 먹고 살 일을 걱정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경기가 안 좋다는 말이 아무 상관도 없으면 좋으련만 금리가 관련된 말이 나오면 대출 금리가 오를까 불안하고 실업자가 백만명이 넘는다는 말이 나오면 분통이 터진다.

거기에 예전에는 예금 금리가 높아도 높은 줄 모르던 시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0.1%도 아쉽다. 청약통장의 2년 후에는 경쟁률이 치열해진다지만 그것이 만능인 것 마냥 귀가 솔깃해진다. 전부 불황이 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없다지만 쓰던 것들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전부 끊어버렸는지 흐르는 돈이 증발 되어 버린 것만 같다. 아니면 내 주머니 속만 비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황이라는 말과 IMF가 연상되면서 점점 입맛이 써진다.

경기가 가라앉고 불황이 지속되면서 경제학은 좀 더 관심이 가는 분야가 되어 버렸다. 왜 돈들이 전부 사라져 버렸는지 무엇을 잘못 했기에 불황이 왔고 문제는 경제라면서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것인지 답답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불황의 경제학'은 하나의 답이 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세계 경제에 닥친 재앙을 하나하나 짚어주고 있다. 일단 제목에 맞게 불황에 대한 것을 말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우습게도 불황이 되어 보통 사람들이 경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과 달리 경제학자들은 이제 비즈니스 사이클은 조정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 되었다고 말한다. 책 마지막 부분에도 불황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그리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망한다면 어차피 세계가 같이 몰락할 것이니 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는 미국과 달리 제3세계는 경제학 교과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데도 그렇다. 불황을 막을 수 있고 호황이 언제까지 계속되리라는 장담이 창피할 지경이 되었는데도 많은 경제학자들이 불황은 연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첫 머리부터 관심을 끈 저자는 수많은 과오와 거품의 붕괴, 몰락을 지적하고 있다. 비즈니스 사이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이제 수요 중심의 경제학만으로 풀어낼 수 없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모든 문제를 베이비시팅 조합의 문제로 예를 들어서 설명해나간다는 점이었다. 외출 할 때 쿠폰을 교환가치로 해서 서로의 아이를 돌봐주던 베이비시팅 조합은 돌연 불황에 시달렸다고 한다. 자신이 외출할 때를 대비하여 사용할 쿠폰을 축적하려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 쿠폰의 사용을 장려한다던지 겨울이 되어 외출하지 않으려 할 경우 겨울의 쿠폰은 여름 쿠폰의 4분의 1 수준으로 해서 어떻게든 쿠폰을 돌게 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간다. 일반적 경제이론도 그렇다. 불황의 경우에는 돈을 돌게 하려 국가에서는 금리를 낮추고 세금을 줄이고 적자 사업이라도 공공사업을 하려 한다.

하지만 아시아 경제위기가 왔을 때 오히려 IMF는 금리를 높였다. 심지어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벌을 받는 것이라는 황당한 말도 있었다고 한다. 한 때는 자립을 통해 독립적으로 존재가 가능하다는 의미의 제 3세계 국가는 경제 위기에 금리를 높이라는 요구를 받아들였고 돈줄이 말랐으며 불황에 시달렸다. 경제학에 대해서 모를 일도 없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판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남미가 한 때 도미노가 넘어가듯이 경제 위기에 시달렸듯이 전혀 다른 나라인데도 서구 사람들에게는 다 같은 아시아고 만약 돈을 풀어서 금리를 낮추면 신뢰감을 잃어 수많은 자본이 빠져나갈까봐 그랬다고 한다.

한 때 IMF시기는 우리나라에 상당히 어두운 시기였다. 그래서 더 분통이 터지는 부분이었다. 최악을 막기 위해 불황을 권장했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경제학 교과서를 집어 던지고 아마추어 심리학이 난무했다는 표현이 고소하게까지 느껴졌다. 그 안에서 힘든 것이 없었다면 좀 더 고소하련만 웃은 후는 씁쓸해졌다. 그 외에도 우울한 경제학자답게 세상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읽어낸다. 공황은 오지 않겠지만 불황이 오래도록 지속될 거라는 말에는 좀 암담해졌다. 하지만 책 자체는 놀랍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어려울 거라는 기대와 달리 차근차근 읽어나가면 이해하기 힘들지도 않고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헤지펀드는 다소 생소했는데 왜 소로스가 투기꾼으로 비난받았는지 헤지펀드의 쇼트 포지션이 위험한지 같이 몰랐던 부분을 쉽게 이해하게 되었다. 다만 폴 크루그먼의 날카로움에도 불구하고 겨울이 길기만 할 거라는 말은 암담하기만 하다. 언제야 다시 한 낮이 환하게만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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