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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프 : 불만족의 심리학
존 네이시 지음, 강미경 옮김 / 예담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전후 세대는 물건을 쌓아 놓는 것을 좋아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전쟁 전의 궁핍함이 몸에 배어 있기에 미리 준비를 해두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사람들은 그럴 만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온갖 물건들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중에서 당장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장 필요한 물건의 여분까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실 1년 동안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사용될 일은 결코 없다고 한다. 지난 1년 동안 입지 않은 옷, 읽지 않은 책, 쓰지 않은 물건이 새삼 필요해질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물건을 정리하려 들면 모든 물건이 요긴해 보인다. 버렸다가 필요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만약 버렸는데 필요해져서 사게 된다면 그런 낭비가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래서 버릴 물건의 목록은 순식간에 줄어든다. 그것도 마지못해서야 정리하게 된다. 그 후 방을 돌아보면 버린 물건의 자리가 휑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물건의 위치가 약간 바뀐 것뿐이다. 그 정도에서 멈추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사고 싶은 물건의 목록은 끝날 줄을 모른다. 사람은 왜 만족을 모를까.
이 책 '이너프 : 불만족의 심리학'에서는 만족할 줄 모르는 다양한 경우를 분석하고 있다. 흔히 생각하게 되는 물건을 계속 사게 되는 심리나 버리지 못하는 것들부터 해서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정보중독까지 다양한 불만족의 사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과거는 부족하고 현재는 약간 나아졌으며 미래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원시본능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예전 생명의 위협을 받던 시기에는 더 많은 정보가 곧 생존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해했을 때 강렬한 쾌감을 느끼게 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시기를 지나서는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에 사람들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사람은 같은 자극에는 점차 익숙해진다. 아직도 뇌에서는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이해하게 되면 쾌감을 느끼지만 점차 자극에 익숙해지면 그 양은 줄어들게 된다. 너무 많은 정보는 생각의 기회를 빼앗는다. 받아들이고 이해할 시간이 없는 정보공해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새로운 정보,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데에 있다. 먹는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사람은 먹는 상대의 양에 따라 식사량이 줄기도 하고 늘기도 한다고 한다. 뷔페 같은 곳에 가면 허용량을 초과해서 계속 먹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만족감은 훨씬 적은 양을 꼭꼭 씹어서 삼키는 편이 높지만 위를 계속 채워두려는 본능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물건을 사는 행위도 물건을 살 때는 뇌에서 쾌감을 느끼게 되어 있지만 사고 싶은 물건을 인내하면 고통을 느끼게 되어 있다고 한다. 언제나 절제가 고통스러운 것이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많은 정보를 흡수하고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고, 많은 물건을 비축해서 살아남으려는 원시본능을 넘어서지 못하면 평생 불만족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만 해도 그렇다. 예전에는 5단계였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그 위에 그리고 또 위에 충족되어야 할 욕구를 붙여 나간다. 이제 피라미드가 아닌 형태로 발전하게 생긴 것이다. 하나의 욕구를 충족시켜도 다른 것을 원하고 또 다른 것을 원하다보면 만족이라는 것은 올 줄을 모른다. 지금의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나은 자신을 위한 자기계발이나 현재의 행복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래서야 프랑스의 대식가가 상대를 식사에 계속 초대해서 끝내는 죽게 만들었다는 이야기 속의 희생자들의 삶과 다를 것이 없다. 충분히 먹었는데도 멈출 줄을 모르는 삶은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폭식을 살인의 수단으로 이용한 프랑스 대식가의 이야기, 물건을 둘 곳이 부족해서 창고를 빌려서까지 채워 넣는 이야기 등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어떤 이야기든 자신의 욕망의 거울 같은 점이 많아서 책장을 넘기다 잠깐씩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평을 늘어놓는 자신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당장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집 안에 쌓아 놓은 물건들은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번보다는 정리할 물건의 목록이 길어질 테고 이번에는 그 빈자리에 다른 물건을 채워두지 않으려 한다. 어차피 계속 채우려 해서야 다른 물건이 또 눈에 들어올 뿐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