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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매일 뉴스에서 경기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사람들의 말꼬리에도 '불황'이란 말이 붙어 있다. 일할 곳을 찾는 사람들은 경기가 나쁘다면서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찾아도 전에 주던 돈의 반밖에 주지 않으려는 기업주가 야속하다고 말한다. 아직도 밤거리는 화려하게 빛나지만 예전처럼 거품이 가득했던 시대는 사라지고 전부 자신의 먹고 살 일을 걱정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경기가 안 좋다는 말이 아무 상관도 없으면 좋으련만 금리가 관련된 말이 나오면 대출 금리가 오를까 불안하고 실업자가 백만명이 넘는다는 말이 나오면 분통이 터진다.
거기에 예전에는 예금 금리가 높아도 높은 줄 모르던 시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0.1%도 아쉽다. 청약통장의 2년 후에는 경쟁률이 치열해진다지만 그것이 만능인 것 마냥 귀가 솔깃해진다. 전부 불황이 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없다지만 쓰던 것들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전부 끊어버렸는지 흐르는 돈이 증발 되어 버린 것만 같다. 아니면 내 주머니 속만 비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황이라는 말과 IMF가 연상되면서 점점 입맛이 써진다.
경기가 가라앉고 불황이 지속되면서 경제학은 좀 더 관심이 가는 분야가 되어 버렸다. 왜 돈들이 전부 사라져 버렸는지 무엇을 잘못 했기에 불황이 왔고 문제는 경제라면서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것인지 답답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불황의 경제학'은 하나의 답이 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세계 경제에 닥친 재앙을 하나하나 짚어주고 있다. 일단 제목에 맞게 불황에 대한 것을 말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우습게도 불황이 되어 보통 사람들이 경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과 달리 경제학자들은 이제 비즈니스 사이클은 조정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 되었다고 말한다. 책 마지막 부분에도 불황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그리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망한다면 어차피 세계가 같이 몰락할 것이니 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는 미국과 달리 제3세계는 경제학 교과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데도 그렇다. 불황을 막을 수 있고 호황이 언제까지 계속되리라는 장담이 창피할 지경이 되었는데도 많은 경제학자들이 불황은 연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첫 머리부터 관심을 끈 저자는 수많은 과오와 거품의 붕괴, 몰락을 지적하고 있다. 비즈니스 사이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이제 수요 중심의 경제학만으로 풀어낼 수 없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모든 문제를 베이비시팅 조합의 문제로 예를 들어서 설명해나간다는 점이었다. 외출 할 때 쿠폰을 교환가치로 해서 서로의 아이를 돌봐주던 베이비시팅 조합은 돌연 불황에 시달렸다고 한다. 자신이 외출할 때를 대비하여 사용할 쿠폰을 축적하려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 쿠폰의 사용을 장려한다던지 겨울이 되어 외출하지 않으려 할 경우 겨울의 쿠폰은 여름 쿠폰의 4분의 1 수준으로 해서 어떻게든 쿠폰을 돌게 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간다. 일반적 경제이론도 그렇다. 불황의 경우에는 돈을 돌게 하려 국가에서는 금리를 낮추고 세금을 줄이고 적자 사업이라도 공공사업을 하려 한다.
하지만 아시아 경제위기가 왔을 때 오히려 IMF는 금리를 높였다. 심지어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벌을 받는 것이라는 황당한 말도 있었다고 한다. 한 때는 자립을 통해 독립적으로 존재가 가능하다는 의미의 제 3세계 국가는 경제 위기에 금리를 높이라는 요구를 받아들였고 돈줄이 말랐으며 불황에 시달렸다. 경제학에 대해서 모를 일도 없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판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남미가 한 때 도미노가 넘어가듯이 경제 위기에 시달렸듯이 전혀 다른 나라인데도 서구 사람들에게는 다 같은 아시아고 만약 돈을 풀어서 금리를 낮추면 신뢰감을 잃어 수많은 자본이 빠져나갈까봐 그랬다고 한다.
한 때 IMF시기는 우리나라에 상당히 어두운 시기였다. 그래서 더 분통이 터지는 부분이었다. 최악을 막기 위해 불황을 권장했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경제학 교과서를 집어 던지고 아마추어 심리학이 난무했다는 표현이 고소하게까지 느껴졌다. 그 안에서 힘든 것이 없었다면 좀 더 고소하련만 웃은 후는 씁쓸해졌다. 그 외에도 우울한 경제학자답게 세상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읽어낸다. 공황은 오지 않겠지만 불황이 오래도록 지속될 거라는 말에는 좀 암담해졌다. 하지만 책 자체는 놀랍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어려울 거라는 기대와 달리 차근차근 읽어나가면 이해하기 힘들지도 않고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헤지펀드는 다소 생소했는데 왜 소로스가 투기꾼으로 비난받았는지 헤지펀드의 쇼트 포지션이 위험한지 같이 몰랐던 부분을 쉽게 이해하게 되었다. 다만 폴 크루그먼의 날카로움에도 불구하고 겨울이 길기만 할 거라는 말은 암담하기만 하다. 언제야 다시 한 낮이 환하게만 느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