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를 리뷰해주세요.
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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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춘기가 지난 이후에는 성장이 멈추고 늙어갈 뿐이니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자살하겠다는 것이다. 그 자아도취적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사람이 태어나 늙어가는 것은 맞다. 벤자민 버튼처럼 노인의 몸으로 태어날 재간이 없으니 아기로 태어나 노인이 되어간다. 하지만 사람이 죽을 때까지 성장을 멈추는 일은 거의 없다. 육신은 몰라도 정신은 그렇다. 친구는 성장이 멈추기 전에 죽고 싶다고 했지만 사람은 평생 성장하는 생물이고 어차피 성장을 멈춘다면 죽은 것과 같다.

여기 정신병원에 갇혀 버린 두 남자가 있다. 한 사람은 자의로 성장을 멈추고 자신의 안에 숨어버린 자, 한 사람은 타의에 의해 성장이 꺾여 버린 자다. 쉽게 말하면 한 사람은 실제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미치지 않았는데도 이해관계에 의해 정신 병원에 갇혀 버렸다. 두 사람은 우연히 같은 시각에 정신병원에 들어오게 된다. 각각의 사연을 안고 들어 온 두 청년은 자신의 방식대로 상황을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정신병을 앓게 된 이수명은 얼마 전 퇴원 했으나 다시 병원에 강제 입원한 처지였다. 현실을 도피해 귀 속의 '그 녀석'에게 휘둘리는 수명의 입장에서는 정신 병원은 익숙한 현실이고 받아들여야 할 곳이었다. 그는 '순응'을 택한다.

반면 어두운 출생으로 인해 시달림을 받았으나 한국을 떠나서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있던 류승민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미치지 않은 자신이 미친 사람의 틈 속에 갇혀 버렸으니 납득하기 어려웠다. 한국에 들어올 때 자신에게 위험이 있으리라는 것은 예감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거칠지만 자유롭게 살아온 승민이니 만큼 그는 '반항'을 택한다. 이어 정신 병원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 승민은 야수처럼 날뛴다. 보호사든 간호사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누구든 쓰러뜨릴 참이었다. 문제는 우연히 같이 들어 온 수명이 휘말렸다는 것이다. 승민이 탈출하려 난동을 부렸고 수명도 한 패로 보였는지 독방 신세가 된다.

정확하게는 격리실이라는 곳으로 어김없이 침대에 묶인 채로 약물이 투여되는 곳이었다. 졸지에 휘말린 수명은 격리실에서 며칠을 보낸다.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했고 기초체력도 부실했던 그로써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나와서도 자신의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승민의 탈출 소동 때 같이 있던 보호사 박정철, 일명 점박이가 그를 점찍어 두고 있었다. 괴롭힐 대상으로 선정된 것이다. 가능한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수명에게는 고달픈 노릇이었다. 거기에 모든 원흉인 승민까지 같은 방을 쓰면서 수명의 병원 생활은 점차 어려워진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생물이고 수명은 방관자가 되어 병원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가능한 점박이의 눈을 피하고 승민과도 얽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비슷해서인지 아니면 필연인지 두 사람은 계속 서로를 끌어당긴다. 정신병원에서 우정이 싹텄다면 묘하게 들리지만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터라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기 시작한다. 각자의 사연이 비밀로 남겨져 있는 가운데 승민이 시간이 없다고 한 이유가 서서히 드러나며 상황은 막바지로 달려간다. 그리고 강제로 날개가 꺾인 채 잡힌 승민을 도우면서 수명도 다시 성장해 나간다.

약간은 서글픈 느낌이 나는 표지도 그렇지만 이 책 '내 심장을 쏴라'는 다소 불편한 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주인공이 정신병원에 갇힌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실제 정신분열을 앓고 있지만 현재는 꽤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고, 또 한 사람은 정신에 이상이 없는데도 갇힌 터라 미친 사람의 시각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이 겪고 있는 상황의 부조리함에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다. 흔히 미국 수사 드라마에서는 잔인한 연쇄 살인범이 정신병원에 갇히는 것이 정말 부당하다는 것을 강조하느라 그 곳을 감옥에 비하면 천국이라는 식으로 묘사한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감옥에 비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화자인 수명의 시각은 일반인과 비슷하고 그의 짝꿍인 승민은 억울하게 갇힌 터라 그들이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릴 때마다 치를 떨게 되었다. 덕분에 실제로 정신병자 두 명이 병원을 탈출 했다는 뉴스를 보면 놀랄 거면서도 그들이 탈출할 수 있기만을 빌었다.

그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탈출시도는 수없이 무산된다. 이 끝을 알 수도 없는 갑갑한 이야기는 가슴 속에 품은 모든 감정을 풀어낼 때까지 계속된다. 정신 병원 식구들을 통해서는 웃음을, 승민의 억울한 사연에서는 섬뜩함과 긴장을, 보호사와 잡역부의 구역질나는 범죄에서는 분노를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두 사람의 성장에는 감동하게 되었다. 소재 자체는 정신 병원을 탈출하려는 두 남자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이 탈출기보다 성장 소설로 느껴지는 것이 그 탓일 것 같다. 두 청년은 멈추었던 성장을 계속한다. 사람이 죽는 것이 성장을 멈출 때라면 성장을 다시 시작한 그들은 새 생명을 얻은 것과도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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