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밀하게 연결된 옴니버스 구성으로 되어 있는 '작은 씨앗을 심는 사람들'이란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고 장편동화 한 편을 이렇게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과수원을 점령하라'는 그런 책이었다. 과수원을 두고 벌어지는 각종 동물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 구성 안에 각자의 목소리로 표현되고 있었다. 저마다의 입장에 귀기울여보면 쥐는 더이상 더럽고 몰아내야 할 짐승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입장일 뿐, 쥐 역시 엄연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다. 다른 모든 생명들도 마찬가지다. '라쇼몽'이라는 유명한 일본 영화처럼, 그리고 황희 정승의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는 에피소드처럼 다른 입장에 서 보면 그 입장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이 생명체인 다음에야 그들의 생존은 그 누구도 해할 수 없는 불가침의 것이 된다. 그러나 인간들은 얼마나 우를 범하며 그것도 모르고 살고 있는지... 쥐를 내몰고, 고양이를 우리 입맛에 맞게 애완동물로 키우고, 철새인 찌르레기와 오래된 나무들의 삶의 터전을 앗아간다. 옴니버스식 구성은 각 생명체의 목소리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잘 드러내주며 모든 생명체들이 저마다 살 권리가 있고 인간이 이를 뺏어서는 안되겠다는 생명, 환경의식을 자연스레 고취시킨다. 이 책의 내용와 형식이라 볼 수 있는,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 사상과 옴니버스식 구성은 매우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탁월한 심리묘사와 탁월한 필치, 철저하게 고증된 사실성은 작품의 활력을 더욱 뒷받침해준다. 특히 순하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일구어 나가는 과수원집에 새 생명이 잉태된 열린 결말은 읽는 이들을 저절로 미소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