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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인 것 ㅣ 사계절 아동문고 48
야마나카 히사시 지음, 고바야시 요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3년 8월
평점 :
우리가 소위 명작, 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공통점 혹은 기준은 뭘까. 30년전에 출간됐다고 하지만 지금 한국 아동문학을 잣대로 보았을 때 상상치 못할 정도로 선구적인 이 작품을 접하면서 결국 다른 모든 예술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시대를 앞서 나간 작품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히데카즈의 엄마-사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나쁜 엄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평범한 축의 엄마에 들어가는-와 얄미운 마유미, 뒤틀린 가족관계를 묘사하는 첫 부분을 보고 약간의 충격을 받고는 '이래서 일본에서는 이 작품을 현대아동문학의 시효라고 하는구나...' 했는데 갈수록 가히 점입가경이라 할 만 했다.
히데카즈가 가출할 때까지만 해도-클로디아의 비밀처럼-돌아오고 화해하는 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책 중반에 벌써 집으로 돌아와 예상을 엎어놓더니 엄마는 가출했다 돌아온 상태였고 눈물 흘리며 돌아온 탕자를 조용히 맞아주는 기색은 전혀 없이 아이와 몸싸움을 하고... 어디 그뿐인가. 편지 사건 이후 큰아들은 유치장 신세, 작은 아들은 학교에서 문제아 취급에, 부부싸움에... 히데카즈가 두 번째 가출했다 돌아와보니 이건 또 뭔가. 집이 불타버리다니, 어떻게 아동문학에서 집안을 이렇게 콩가루로 만들어 놓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그 어떤 작품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 일본의 정신적, 문화적 토양이 어떻길래 이런 작품이 나올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가 워낙에 깊었고, 이것이 잘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충격은 신선함으로, 선구자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즉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키워주라는 것, 어린이는 보호라는 명목으로 자칫 학대하고 억압하기 십상인데 그들을 부모와 동일한 인간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늘상, 어디서나, 어린아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그리고 '개인주의'는 없고 '이기주의'만이 판을 치는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볼 때 이러한 메시지가 얼마나 공감 가능할까, 실현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역시 전체주의적 성향이 짙은 일본 사회에서 30년전에 이러한 작품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되돌아 보는 것만으로 우리에게는 의미있는 일일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