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이유. 사람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앎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사회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취업 준비를 위하여, 기타 등등 많습니다. 여러분은 책을 왜 읽습니까. 질타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건 아닙니다.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씁니다. 제가 시위 몇번 나갔다고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도, 정의롭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고픈 사회, 다시 말하면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원했을 뿐입니다. 오랫동안 촛불집회 하는거 알면서 안갔습니다. 그러나, 폭력진압이 시작되고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매일 참여했습니다. 오늘도, 처음 나오신 분들 참 많았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잘 모르더라고요. 

  어젯밤 들어와 생중계로 보면서 울었습니다.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저 사람들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당장이라도 가서 함께 물대포를 맞고, 곤봉을 맞고, 군화발을 견디고 싶었습니다. 이미 날은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지막 남은 시민들이 수많은 전경들과 대테러진압작전에나 투입되는 경찰특공대에 의해 박살나는 장면을 보고, 못참고 달려갔습니다. 달려가 마지막 남은 시민들이 버틸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갔을 때 마지막 남은 시민들은 수백명의 경찰들에 쫓겨 광화문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도와주러 가다가 저도 놀래 그들 사이에 묻혀 뛰어왔습니다. 저 병신같은 전경들은 내가 지금 그들이 쫓고 있는 시위대인지 이제 막 도착한 시민인지 구분할리 만무하고, 이거 가만 있다가 나 병신되겠다 싶어 같이 뛰었습니다.

  찍었습니다. 오와 열을 맞추어 대열을 정비하고 실실 쪼개며 휴식을 취하는 그들의 얼굴을 찍었습니다. 어떤 새끼는 표정관리에 들어갔고, 어떤 새끼는 실실 쪼갭니다. 시민들이 그들 중 직위가 높아 보이는 사람을 쫓아가며 대화를 하자고 해도 나는 당신들과 대화 할 일이 없다며 뿌리치고 도망갑니다. 곤봉이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생중계로 봤던, 동영상으로 봤던, 그 곤봉이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발길질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이바 벗고 방패 깔고 앉아 담배 꼬나물고 있는 녀석들의 얼굴을 가격하고 싶었습니다.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건 '비폭력'을 향한 내 안의 외침 때문이 아니라 한 놈 쳤다가 나 병신될까봐여서 였습니다.

  언젠가 어떤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왜 소설은 안 읽으세요?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시정해야 할 부정의가 너무 많아서,라고. 그 부정의를 제대로 알고 공부하고 시정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 저는 책을 읽습니다. 소설만 읽던 해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보지 않습니다. 물론 소설 속에는 삶이 있고, 인생이 있고, 아픔이 있고, 기쁨이 있고, 타인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향유하고 느끼기보다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르고 지나가는, 그런 부정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책을 읽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책을 읽었습니다.   

  오늘 또 시위에 다녀왔습니다. 일곱번째입니다. 몸이 많이 지쳤습니다. 어제 동영상을 보고, 오늘 경찰의 대응자세를 보고, 마음도 많이 지쳤습니다. 희망은 없는건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희망이 없다면 우리가 여기서 이짓을 하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같이 있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분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이미 '사적 욕구'에 갇혀버렸다. 더이상 공적인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늘 참 많이 모였습니다. 어제 그 동영상을 보고 시위에 나갔다가 나도 이 꼬라지 되면 어떡하지, 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을까봐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기우였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시민들이 시청광장과 주변도로를 가득 메웠습니다. 대학은 아직 턱없이 부족합니다. 무대에 올랐던 서른두살 직장인의 말대로.

  여기 모인 대학생 다 합해봐야 조그만 한 학교 인원도 안나옵니다. 고작 과에서 서너명씩 추려서 깃발들고 나온게 다입니다. 어떤 학교, 어떤 과는 스무명, 서른명도 나올 수 있겠지요. 간혹가다. 대학 깃발은 난무하지만, 정작 대학생은 없습니다. 그들은 왜 대학에 왔을까. 그들은 왜 공부를 하고 있을까. 자신의 사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취업을 위해서.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행진 도중 커피숍을 지날 일이 있었는데,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상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간 행진 때 보았던 심지어는 함께 동참하는 주변인들의 반응과는 달랐습니다. 고작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둔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커피를 마시고 있을까요. 우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아 쟤네 그렇게 맞고도 또 나왔냐. 이럴까요.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어납시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단지 책이 내게 주는 어떤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그것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소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 나는 책을 소비하는 걸, 이라고 말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책을 읽음'에 대해서만, 책을 읽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저는 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애국심이란 것도 별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내가 이렇게 분노하는 건, 나와 같은 사람들이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강간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곤봉구타, 방패찍기, 물대포 공격, 집단구타, 군화짓밟기 등이 행해졌습니다. 누구에게? 여러분의 이웃과 여러분의 어머니와 아버지, 여러분의 여동생과 형, 누나, 언니, 그리고 여러분이 가르치는 학생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그들의 손엔 쇠파이프도, 야구방망이도, 각목도, 돌멩이도,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한손엔 피켓, 한손엔 촛불만 들려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평화롭게 거리 행진을 했습니다. 거리 행진이 불법이라고요? 합법과 불법을 논하지 맙시다. 합당과 부당을 논합시다. 법의 테두리는 모든 것을 바로잡아주지 않습니다. 합당하지만 불법적인 행위도 있으며, 부당하지만 합법적인 행위도 있습니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도 그들은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 수많은 불법을 자행했습니다.

  경찰장비수칙에 의하면 물대포는 상위 15도를 향해 쏴야하고, 20미터 이내의 거리에서 발사할 수 없게 되어있었지만, 어제 어땠습니까. 동영상을 보신 분들 아시겠지만, 한 여학생이 실명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버스에서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수미터 밖으로 날아갔습니다. 실신했습니다. 실려갔습니다. 국가의 압력을 받았는지 병원에선 면회조차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기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언론도, 병원도, 경찰도, 모두 정부의 지시를 받고 있습니다. 그 누구 하나 항의하거나 지적하지 않습니다. 어제 sbs 아침 뉴스 속보에서 그랬다죠. "물리적 폭력은 없었습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곳은, 민중의 소리, 아프리카,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정도입니다. 기사를 믿지 못하겠다면, 기사가 편향적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동영상 생중계를 보십시오.

  이제 미친소 문제는 촛불시위대의 아주 작은 부분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경찰은, 루비콘 강을 건넜습니다. 미친소를 재협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폭력경찰과 폭력정부, 폭력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해야 할 때입니다.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그리고 퇴진을 요구할 때입니다. 히틀러가 출몰하고 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히틀러가 출몰하고 있습니다. 공안경찰이 등장하고, 시위대에 변장하고 끼어 사람들의 얼굴을 채증합니다. 전경 교육 한답시고, 노약자, 어린이, 장애인을 패는 장면은 찍히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찍히지 말고 어린이, 장애인, 노약자 마음껏 패라는 말입니다. 찍히지 않는 한도 내에서. 여러분의 어머니와 아버지, 이웃, 내 아이 입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입니다.

  오늘 무대에 여중생이 섰습니다. 끝까지 남아있었는데 물대포 맞고 추위에 떨 때 옷을 빌려준 남자분 고맙다고, 물대포 막아준 남자분 고맙다고.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고. 고맙다고. 제가 가르쳤던 나이의 아이입니다. 여중생입니다. 고작 열 여섯살 아이가 그 새벽에 물대포 맞으며 곤봉구타 맞아가며 끝까지 버텼습니다. 최루탄 비슷한 소화기와 물대포를 맞아 교복이 노랗게 변했답니다. 근데 어떤 남자분이 준 옷을 입고 있어서 교복을 말릴 수 있었다고 고맙답니다. 어떻게 이 아이에게 이렇게 가혹한 일을 시킬 수 있습니까. 그 누가 시키지 않았다고, 그 아이가 자발적으로 나왔다고, 순전히 이건 그 아이 책임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나갑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나 홀로 지난 며칠을 나갔고, 어제 오늘 아는 분들 만나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그 분들 자주 보게 될 겁니다. 함께 합시다. 생활을 내팽개치라는게 아닙니다. 그렇게  시위하다간 얼마 못갑니다. 기본 생활을 다 해나가는 선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며 시위에 참여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것을 바라는 겁니다. 그것을 희망하는 겁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것이 제가 그리고 여러분이 바라는 사회일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내가 무슨 색깔이든, 색깔이 있든 없든 상관 없습니다. 진보신당, 민노당 뿐 아니라 통합민주당, 창조한국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회원들도 함께 한다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같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날이 오길 희망합니다.

p.s. 오늘 함께 하신, 어제도 나오셨던 마노아님, 승주나무님, 새벽까지 물대포 맞느라 고생하신 무화과나무님, 그리고 워크숍에서 다리를 다쳐 쉽게 걷지 못함에도 함께 해주신 라주미힌님, 대전에서 올라와 준 내 친구, 고맙습니다. 혼자 가기 쑥쓰러운 분들, 얼굴 몰라도, 교류 없었어도 상관없습니다. 함께 합시다. 글이 불편하셨다면 그건 제 탓입니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놨다 생각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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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프락사스님 고생 많으세요
    from 하늘 받든 곳 2008-06-02 01:47 
    일이 밀려서 저는 옴짝달싹 못하고 겨우 목요일에 한 번 갖다오고서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데 아프락사스님은 매일 나가셨네요. 어제 아프리카 TV로 잠깐 보니까 정말 폭력적인 진압이더군요. 오늘 밤에는 꼭 한 번 가봐야겠어요. -_-;; 대학생들 숫자가 그렇게 적군요. 요즘 기말 시험 기간이라서 더 그럴 듯 ;;;
  2. 3월15일 - 지식과 행동 사이
    from 승주나무의 책가지 2008-06-02 03:29 
    내가 책을 놓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행동하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만약 행동이 없다면 나는 책의 배반자일 뿐이다. 내가 존경하는 선비들이 평생 책을 읽었던 이유는, 자신의 한몸 필요한 순간에 행동할 수 있기 위해서다. 그 한 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난다. '행동'이란 책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지 않아도 마음 속에 순수함이 남아 있다면 그리고 시비에 대한 직관이 남아 있다면 누구든 행동할 수 있
 
 
마노아 2008-06-02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고 나 울었잖아요. 아프님 멋져요. 상식이 통하는 사회, 우리가 만들어요.

이잘코군 2008-06-02 09:50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최소한의 것을 지킬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2008-06-02 0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8-06-02 09:51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세요. 고맙습니다.

바람돌이 2008-06-02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능한한 열심히 참여하겠습니다. 지금 아프리카에서 방송보고 있는데 시민들이 아침이슬을 부르네요. 참으로 오랫만에 듣네요. 이 노래를 더이상 안들어도 되는 세상을 보고싶었는데...

이잘코군 2008-06-02 09:52   좋아요 0 | URL
왜곡보도하는 언론을 보지 않고 민중의 소리나 아프리카, 오마이뉴스의 동영상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적어도 진실은 알 수 있으니까요. 아침 이슬 저도 참 많이 부르게 되네요. 평소 부를 일도 없는데.

글샘 2008-06-02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ㅅㅂ 이 새벽에 아프리카에서 듣는 아침 이슬은 왜 이렇게 눈물짓게 하는지...

이잘코군 2008-06-02 09:5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도 잠을 잘 수 없더군요. 피곤합니다. 많이.

바라 2008-06-02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살수차도 소방서 탱크차 연결해서 쓰는 거고 이젠 소화기도 진압 도구로 쓰이니.. 참 한때 그쪽에 있어서 그런지 더 가슴이 아픕니다. 도대체가 사용용도를 모르는지.. 다친 사람들 놔두고 살수차 때문에 다쳤다는건 거짓말이라느니 헛소리나 늘어놓고.. 후배 몇몇도 어제 연행되었습니다.. 청와대에서는 촛불 누가 샀냐 이러고만 있으니 참 답답하고 화가 납니다.

이잘코군 2008-06-02 09:53   좋아요 0 | URL
우리들이 낸 세금으로 우리들을 공격하고 있어요. 칼은 칼의 올바른 역할을 다할 때 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기가 되죠. 휴...

2008-06-02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02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08-06-02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많으십니다. 부끄럽습니다. 연일 나보다 어린 아이들이 촛불집회에서 고생하는 거 보고 마음이 답답합니다. 마치 시대가 거꾸로 흐른 것 같습니다. 5.18과 6.10항쟁이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 이명박은 미쳤습니다.

실명은.. 정말이었군요. 어디서는 거짓말이라 그러고 인터넷에서 동영상 보려면 잘 안 열리고.. 에휴.. 이명박 100일 천하로 끝내게 해야 합니다.

이잘코군 2008-06-03 00: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중고등학생들이, 그것도 여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합니다. 저도 부끄럽습니다. 촛불집회 열일곱번 나왔다던 안양예고 여학생에게 미안합니다. 미친게 맞습니다. 본인이 미쳤다는걸 알려줘야 합니다.
 


  오늘도 미리 예고했던대로 촛불시위를 다녀왔습니다. 아쉽게도 지금 복귀했습니다. 더 있을까 생각했지만 함께 했던 분들에게 내일 아침 일정이 있는만큼 홀로 남기 뭣해서 함께 복귀했습니다. 알라딘 제이드님, 멜기세덱님, 승주나무님과 함께 했는데, 승주나무님은 초반에 사진을 찍느라고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전화 통화를 했을 때 시청쪽에 계셨는데 밤샘하신다고 합니다. 형수님께 허락받고 왔다고. ^^ 남은 셋은 경복궁쪽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가 그곳이 너무 단단히 막혀 광화문으로 빠졌는데, 광화문 일대를 전경들이 원.천.봉.쇄. 해놨더군요. 또. 아무도 집에 가지 못하게. 며칠전 '청계천 사건'을 교훈삼아 아예 지하도까지 막았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려고 광화문으로 향했던 우리는 분노했습니다. 시민들은 분노했습니다. 아니 이것들이 또 집에 못가게하네. 그리하여 전경병력 약 30여명 대 시위대 30여명이 붙어 길을 뚫었습니다. 저도 앞대열에서 전경과 몸싸움을 하며 뚫었는데 그 과정에서 양팔이 무언가에 쓸렸습니다. 지금은 약발라서 괜찮습니다. :) 결국 한군데 뚫리니 옆으로 비켜나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그걸 뚫어도 나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광화문이 아예 닭장차들과 수백명의 전경병력으로 가득차서 온갖 길이 다 막혀버렸다는. 그런데 딱 한군데 비어있던 곳이 있더군요. 우리가 뚫었던 그 길, 그곳으로 나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여덟시 경에 시청에 도착했는데 이미 어마어마한 인원이 바글바글하게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습니다. 광화문, 시청, 종로일대를 가득 메웠는데, 어휴 화장실 한번 가려다가 엄청 고생했습니다. 근처에 KFC가 있어 그곳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들어갔는데 이층 화장실 줄이 문까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여긴 포기하자, 하고 들어간 곳이 지하철 화장실인데, 이건 뭐. 남녀 각각 줄이 오십미터는 되는거 같았습니다. 다행히 남자들이야 금방 싸니까 줄이 빨리 줄어드는데 여자줄은 한 시간은 기다려야겠더군요. -_- 급한 볼일을 해결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는데, 거리행진이 시작됐습니다. 

  깃발부대들이 앞장섰는데, 각 대학 학생회들, 그리고 민노당, 진보신당, 여성 마이클럽 등 대학, 정당, 각종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이 줄을 이어 어딘가로 향했습니다. 참 인천은 물론이고, 대전 등 기타 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꽤 많았습니다. 이거 얘네들 다 갈 때까지 기다리고 꽁지에 따라가려다간 오늘 밤새겠다 싶어 중간에 아무팀에나 끼어 들어가 따라갔습니다. 도저히 셀 수 없이 많은 인원들이 - 십만명 넘을 듯 합니다 - 거리행진을 하며 구호를 외치는데, 지난 다섯번의 시위보다 더 힘이 나더군요. 아무래도 인원이 엄청나다보니.

  중앙일보를 지날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외쳤습니다. "중.앙.일.보.폐.간.하.라.". "중.앙.일.보.쓰.레.기.", "불.꺼.라.불.꺼.라." 환히 불 밝히며 남아있던 기자들이 일제히 밖을 내다보더군요. 우리가 거리행진을 멈추고 건물 앞에서 불꺼라 불꺼라 외치니 정말 불을 끄덥디다. 다 끈건 아니지만, 시위대는 환호했습니다. 이후로도 우리 뒤에 계속 따라오는 시위대들은 중앙일보를 지날 때마다 같은 구호를 외쳤습니다. 중앙일보 기자들 참 쪽팔리겠습니다. 그러고도 중앙일보 다니고 싶습니까. 아무리 밥줄이라고는 하지만, 본인들도 중앙일보가 어떤 짓을 저지르는지 다 알텐데 쪽팔리죠. 그러고도 기자명함 달고 다니니. 참 경찰청 지나갈 땐 "경.찰.청.장.물.러.나.라." 구호도 외쳤다는.

  시위대는 계속 어딘가를 향해 걸었는데, 저는 처음 가는 곳이라 어디가 어딘지 도대체가 알 수 없었습니다. 도로간판으로 대충 짐작하는건데 신촌방향으로 향하는 듯 했습니다. 계속 걸어 무슨 터널을 지나는데, 차들이 못가고 쭉 막혀있었습니다. 우리 때문인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경찰들이 도로를 차단한 것이었습니다. 닭장차로 도로 곳곳을 미리 막아놨고 뭣도 모르고 차를 끌고 진입한 시민들은 아무데도 못가고 차를 세운 채 가만히 있었습니다. 아니 가만히는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우리와 함께 구호를 외쳤으니까요. ^^

  정말 곳곳에 경찰들이 닭장차로, 심지어는 시내버스를 동원하여 길을 막아놨습니다. 아니 이 시내버스는 누가 내준겁니까. 버스회사 사장님이 미쳤다고 자발적으로 내줄리는 없고, 정신나간 경찰총장이나 이메가씨가 지시를 하지 않는 한 어떻게 일반 시내 버스가 닭장차와 함께 시위대의 길을 막을 수 있단말입니까. 참으로 이메가스러운 발상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다 이런 식으로 미리 차단을 해놓고 비어있는 곳은 전경들이 가득 에워싸고 있으니 갈 수가 없고, 그래서 시민들이 격렬하게 구호를 지속적으로 외치면 마지못해 조금씩 움직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작전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러면 빠지는 척 하는데 빠지는게 아니라 유도한거 였습니다. 시위대를 분산시키려고. 
 
  그 덕분에(?) 시위대는 수천단위로 쪼개졌습니다. 시청에, 광화문에, 종로에, 터널부근에, 경복궁에, 곳곳으로 다 퍼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시민들이 이쪽 일대를 넓게 다 장악했다고 볼 수 있고, 어떻게 보면 경찰들에 의해 넓게 분산됐다고 볼 수 있고. 제가 도달한 곳은 청와대 방면으로 가는 경복궁 길이었는데, 전경들이 단단하게 장벽을 쌓고 있었고, 그 뒤로도 닭장차가 다닥다닥 붙어있었습니다. 전경이 뚫려도 닭장차로 막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검색해보니 그곳 경찰병력을 뚫기는 했는데 이후 경찰이 살수진압을 시작했고, 최루탄 비슷한 소화기를 뿌렸다고 합니다. 또 여성 이십여명을 포함한 시민 육십여명이 연행됐다고 합니다.  

  다른 곳 상황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있었던 경복궁 주변과 광화문 주변의 상황만 알뿐입니다. 듣기로는 시청쪽에 시민 오만여명이 진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새벽 한 시를 향하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있었던 곳에서는 대략 특별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고, 집에 가고자 광화문에서 밖으로 나가는 시민들의 발길이 묶이자 일부 시민들과 전경들 간에 몸싸움이 조금 있었다는 것뿐. 저도 그 중 일부였죠. 가능한 총 병력을 다 동원했다고 하는데, 다 동원해도 오늘은 어림없었습니다. 분산작전은 성공했을지 몰라도 분산해도 시민들의 숫자가 월등히 많은지라 원천봉쇄는 불가능하죠. 

  오늘 시위는 유모차 부대, 장교를 포함한 예비군 부대, 각 대학 학생회들, 지방에서 올라온 동네사람들, 평화통일가정당, 민노당, 진보신당 등의 정당 단체, 그리고 하나둘씩, 혹은 혼자서 거리로 나온 대다수의 시민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토요일이라 지하철이 일찍 끊기는데 집으로 간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있고 싶었습니다. 결국 집으로 왔지만. 어제 열한시간을 잤는데도 체력충전이 안되더군요. 눈이 탱탱 붓고. 연속 오일 나가며 많이 피로가 쌓였던거 같습니다. 내일은 일어나서 상태보고 나가든가, 아니면 내일까지 쉬고 다시 다음주를 기약하든가 해야겠습니다.

  청와대. 이명박. 잠을 못 잘 겁니다. 시끄러워서. 돌아와서 한다는 말이 "1만 여개의 촛불을 누가 제공했냐 배후를 밝혀라." 였다죠. 참으로 이메가스러운 발상입니다. 배후는 오늘 나간 시민들입니다. 알겠습니까? 모르겠으면 직접 거리로 나와 보시죠. 어떤 시민들이 당신이 물러나길 바라는지, 미친소를 먹지 않겠다고 나왔는지. 여기 나온 이들은 민주주의를 몸소 실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살수를 하고 최루탄 비슷한 소화기를 뿌려대다니. 분노를 더 키우시는군요. 어디 한번 해봅시다. 중국에서 돌아왔으니 이제 두 눈 멀쩡하다면 볼 수 있겠죠. 참, '조중동문'같은 쓰레기를 보면 제대로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  아프리카 티비, 오마이뉴스 생방송을 바로 켜시고, 프레시안과 경향신문, 한겨레를 열심히 보세요. 그럼 민심을 알 수 있습니다. 민심은 이겁니다. 미친소 재협상, 그리고 퇴진. 아셨으면 남은 것은? 실천!

p.s. 갖고 싶었던 조중동을 안본다는 노란 스티커는 아니었지만 광화문에서 조중동을 안본다는 다른 스티커를 얻어다 집에 돌아와 현관에 붙였습니다. 스티커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나쁜건 딱 끊읍시다!" "조선,중앙,동아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시민모임" "친일파매국노, 재벌족벌, 땅나라당, 소수특권층만을 위한 편파왜곡 물타기하는 수구찌라시" :) 한 장 더 남았습니다만 필요하신 분은 앞으로 계속 있을 시위에 나가시면 얻을 수 있습니다아.

p.s.2 계속 나가다보니 간댕이가 점점 커진다. 막 몸으로 맞서고. -_- 살짝 무섭긴 했는데 해볼만 했다. 그럼 어떡해. 퇴로를 안남겨놓고 다 봉쇄하는데. 갈데가 없으면 무리해서라도 뚫고 나갈 수밖에. 무리해서 뚫으니까 뚫렸잖아 결국. 며칠전에는 남이 외치면 내가 따라하고 그랬는데, 이젠 나도 경험이 많아지다보니 먼저 선창하고 그런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내가 외친 구호를 따라한다. 누가 보면 내가 꼭 배후세력같이 보이겠다. 거의 여지껏 홀로 참여했었는데. 





출처 : 오마이뉴스

* 촛불집회 생방송 : 오마이뉴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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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8-06-01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박씨때문에 아프님의 트레이드 마크 "smooth 턱선"이 사라질까 심히 우려되는 1人입니다. ㅋㅋ

이잘코군 2008-06-01 01:32   좋아요 0 | URL
아이참 -_- 그건 밑에서 사진 찍으면 다 그렇게 나온대두 그러네. 명박씨 덕분에 다이어트 하고 좋지요. 언제 이렇게 장거리를 몇시간 동안 걸어보겠어요? :) 오늘 고생했어. 푹 쉬삼.

마노아 2008-06-01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청에서 명동, 소공동, 종각, 안국으로 행진하는 무리에 있었어요. 명박이를 점지한 삼신할미 각성하란 플랜카드가 재밌었어요^^;;;
안국에서 한시간 정도 정체 상태였어요. 혜화쪽으로 빠지던 무리가 다시 돌아왔다가 다시 갔다가 또 돌아오기를 반복했을 때 광화문 방향 쪽이 뚫렸죠. 그때가 열시 반쯤이었나봐요. 저도 지켜보다가 집으로 갈길이 막막해서 돌아왔어요. 차도 없어서 집에 가는 길로 한시간을 또 걸었어요.^^;;

이잘코군 2008-06-01 02:20   좋아요 0 | URL
저는 경복궁쪽에 있다가 - 청와대행 시위대 - 막혀서 광화문으로 왔는데 그곳도 막혀서 몸으로 뚫었어요. 그때가 저도 열시반쯤 된거 같은데. ^^ 고생하셨습니다. 지금 현장 생중계보고 있는데 시민들 남겨두고 온게 미안하네요. 끝까지 있을걸.

마노아 2008-06-01 02:16   좋아요 0 | URL
아프리카로 지켜보는데 착잡하네요. 근데 자꾸 경북궁이래. 경복궁을^^ㅋㅋ

이잘코군 2008-06-01 02:21   좋아요 0 | URL
헉 그러게요. ^^ 수정. 쩝 민중의 소리와 오마이뉴스 기사를 동시에 보고 있어요.

마노아 2008-06-01 02:22   좋아요 0 | URL
진중권 교수님 차분히 전경들 안심시키는데 와방 멋있어요. 원래도 멋졌지만.

이잘코군 2008-06-01 02:25   좋아요 0 | URL
아니 중권이형을 봤단 말여요. 나는 여섯번이나 나가도 못봤는데. 아프리카 티비 주소 좀 알려주세요. 거긴 어디 비춰주고 있어요?

마노아 2008-06-01 02:26   좋아요 0 | URL
http://www.afreeca.com/opentv/opentv_pop.asp?szStr=5b511608570a54520845450e40164348145d42435f0f49&nWidth=880&nHeight=545&isAutoPlay=1
요기요! 현장 중계하고 계세요^^
저도 시위장에선 못 뵈었어요^^;;;

2008-06-01 0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6-01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을 비롯한 분들~~ 고생하셨어요. 미안한 맘으로 응원할 뿐이에요.
우리딸은 밤 9시 42분에 "닭장차로 개미 새끼 하나 못 빠져 나가게 막아놨어. 예비군이 최전방에서 몸으로 막아 줘"라는 문자가 왔기에, "어디쯤이니? 아빠가 조심하래~" 답했더니, 어딘지 모르는지 장소는 없고 "안전해~ 아프리카 생중계 봐봐, 대학생이 닭장차 올라가 차 빼라고 절해"라는 문자가 오고 끝이었다.ㅠㅠ
지하철 일찍 끊기는 토요일이라 인천까지 돌아가지 못하고 밤샘을 했을 거 같은데...엄마는 편히 잠자고... 우리 딸을 비롯한 시위 참여하신 분들께 미안한 마음 가득합니다.
4.19에 태어나 '민주'라고 이름 지었더니 이름값 하는 모양입니다~

이잘코군 2008-06-01 07:34   좋아요 0 | URL
12시에 돌아와 잠을 못잤습니다. 잘 수 없었습니다. 생중계를 계속 보면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방금 아침에 광화문에 다녀왔습니다. 너무 화가 납니다.

Koni 2008-06-0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게 시위대가 분산되었던 거군요. 제가 있던 곳은 중앙일보앞까지 갔다가 다시 턴해서 다들 뒤로 돌아서 종로쪽으로 가더라구요. 뭔가 길이 좀 이상하네~ 이럼서 따라다녔었답니다.

이잘코군 2008-06-01 14:15   좋아요 0 | URL
뒤쪽에 계셨나봅니다. 저는 중앙일보 통과하고 계속 전진했었는데... 그러면서 분산된거에요. 너댓개로 나눠진거 같아요. 각각 2-3만명씩.

무스탕 2008-06-01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닭장차 참 유용하게 쓰이네... -_-+
장군께서 지켜보고 계신데 부끄럽지들도 않은지..
아프님. 건강 잘 살피면서 참여하세요. 마음의 힘만 팍팍 보냅니다.. ㅠ.ㅠ

이잘코군 2008-06-01 14:15   좋아요 0 | URL
시내버스로도 저렇게 막았습니다. 파란색 시내버스.

블루캣 2008-06-01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새벽에 들어왔는데 저 떠나고 얼마 후에 살수차 동원 한 모양이네요. 승주나무님 밤샘하신다니 다치시진 않았는지 걱정 됩니다. 정말 분하고 억울해서 다시 시청 갑니다.

이잘코군 2008-06-01 14:16   좋아요 0 | URL
이것들이 기자들 얼마 남지 않은 새벽에, 10만 시민들이 5만 시민들로 바뀔즈음에서 작정하고 분산시키고 나눠서 공격한겁니다. 저도 다시 갑니다. 지금 일어났어요. 내내 못자다가.
 


  오늘 한국일보 끊습니다. 한국일보가 그래도 가장 중간에 있는거 같긴 한데, 자세히 보면 중립을 가장한 중도보수신문이죠. 강준만, 고종석, 박래부 같은 편집위원이나 칼럼니스트들, 기자들이 조금씩 그걸 희석해주는 것이지, 잘 보면 중도보수입니다. 촛불시위나 미친소 관련해서도 실어줄 건 실어주는거 같으면서 신문칼럼란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고. 해당 신문을 평가하는 가장 빠르고 간편한 길은 칼럼란입니다. 칼럼만 보면 중도보수가 맞죠.

  그래서! 끊습니다. 오늘 5월 31일 마지막 날입니다. 신문 끊기 딱 좋은 날입니다. 한달의 마지막날. 끊으려고 전화했는데 전화를 안받네요. 계속 해봐야지. 그리고 경향신문 신청하렵니다. 어머니는 또 그러십니다. 우리 한국일보 지금 13,000원에 보고 있고, 일요신문이랑 스포츠신문 껴서주고 있다. 처음에 구독 신청할 때 3개월은 무료로 해달라하고, 다른거 껴서 달라고 해라. -_- 뭐 물어는 보겠다만 경향신문이 꾸리는 다른 신문이 또 있나 모르겠다. 얘네 스포츠신문도 꾸리나. 

  어머니, 아버지, 동생(얘는 사실 뭔지 감이 안온다. 민노당과 한나라에게 모두 표를 준 경력이 있는지라) 모두 보수가 확실한, 우리집에서, 홀로 反보수(차마 내 자신을 진보라 말하진 못하겠다) 경향이 뚜렷한 나는 오래전부터 정치적 색깔을 뚜렷이 해왔다. 오래전 인디밴드를 할 때 음반작업 했던 씨디에 수록된 다른 밴드의 김종필 요미우리 어쩌고 하면서 비판하는 곡을 볼륨 높여가며 듣기도 했고(정치적 색깔이 뚜렷한 밴드를 해보고도 싶다), 그외 특별히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은 촛불집회 복귀한 뒤 가져온 구겨진 빠알간 손피켓을 버리지 않고 가져와서 재활용통에 넣으라고 방문밖에 내놓기도 한다.

  선거 때가 되면 내가 어느 당을, 누구를 찍을지 물어보시곤 해서, 은근 내가 찍은 사람에게 투표를 하려고 하시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그냥 물어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나는 일부러 어머니와 깊은 대화를 안한다. 이미 예전에도 대화를 하다 가슴 속에서 자꾸 분노가 솟구치는걸 느낀 적이 많기 때문에. 내 건강상, 어머니 건강상 대화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대화도 거의 안한다. 그러니까 밥 먹어라, 이런 대화(?). 그냥 때 되면 나가서 먹고 들어오고, 때 되면 출근하고 퇴근하고, 그게 다다. 어찌보면 같이 사는 하숙생같은 모습이랄까. :) 

  뭐 신문 얘기 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결론은 한국일보 끊고 경향신문 본다는 것. 한겨레를 볼까 하다가 - 토요일마다 한겨레를 사기 때문에 - 가끔씩 한겨레21을 가판에서 구입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시사IN은 정기구독한다), 그간 한번도 본 적 없는(인터넷으로만 봤다) 경향신문을 신청한다. '한겨레'라는 단어가 정치적 보수인 우리집에 강한 거부감을 주어, 그 안의 정확한 메세지까지 거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오늘 저녁 집회 나가면 꼭 "우리집은 조중동을 보지 않습니다."라고 쓰여진 노란 스티커를 많이 가져와야겠다. 한 장은 현관문에 붙이고, 나머지는 지인들 나눠주고. 

p.s. 결정적으로 오늘자 한국일보에 실린 재향군인회(?)와 무슨 단체의 좌파 세력 어쩌구 운운하는 전면광고와 하단광고가 내 결단을 도왔다. 그게 한국일보랑 무슨 상관이냐고. 그 신문에 실리는 메시지 광고는 그 신문의 논조를 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p.s.2 오늘 못 들어올지도 몰라, 라고 했더니, 또 집회가? 미국소 먹을거냐, 그랬더니, 안 먹으면 되는거 아니냐, 그러신다. -_- 몰라도 너무 모르신다. 선택사항이 아니다. 강제사항이다. 쩝. 답답하구나.

p.s.3 자명한산책님 말꺼내신 김에 생각나서 링크. 이런 신문 하나쯤은 (고종석). 아래 달린 내 댓글도 흥미롭다. 그 때 생각과 지금 생각이 다르진 않지만, 아주 미묘한 차이로 구독과 절독이 판가름난다. 어느쪽에 1점을 더 주느냐에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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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8-05-31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의 글 '이런 신문 하나쯤은'이 생각나네요^^ 그런 신문인 줄 대충 알면서 보는 거 아닌가요? 경향에도 스포츠 신문 꾸릴 걸요 사이트 들어가면 그런쪽으로 곧잘 빠지게 되던데 ㅋ

이잘코군 2008-05-31 10:53   좋아요 0 | URL
뭐 그냥 봐도 무방하지만, 한겨레, 경향 구독하기 운동도 나온겸해서 바꾸려고요. ^^ 사실 한국일보의 정치성은 고종석과 강준만이 왼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는데 맞아요. 고종석과 강준만이 또 얼마나 왼쪽인가를 질문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왼쪽으로 끌어당기는 역할을 해줬다면, 한국일보는 분명코 오른쪽이죠.

erect 2012-12-04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립성 언급하면서 경향이나 한겨레 신청하는 황당함은 뭐지. 그냥 흔한 좌좀인가....
 


  네 시였던가요. 장관고시를 강행한게. 장관이 직접 여의도에 있는 한 호텔을 잡아다 했다죠. 회사에 있어서 인터넷 여기저기 기웃기웃 대면서 - 주로 다음 뉴스랑 아고라,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 어떤 글이 올라와있나 찾아보는데, 켜놓은 네이트 메신저로 '속보'라는 글자와 함께 조그맣게 네모창이 뜨더군요. 네 시에 장관고시 강행한다고. 그게 한 열한 시 무렵이었을겁니다. 그리고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바로 열두 시에 광화문에서 모이자는 말이 있었죠. 그리고 실제로 인사동, 안국동, 광화문, 종로 부근에서 삼삼오오 모여 시위를 했다고 하지요.

  대낮부터 시작된 시위, 장관고시 발표 이후 폭발적으로 참가자가 늘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조국 교수, 금태섭 변호사 강연회가 이화여대에서 있어, 난생 처음으로 이화여대에도 들어가보고 - 뒷문이라 그런지 별로 여대생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 그 멋지다는 훈남 조국 교수도 만나보고, 한겨레에 글 연재하다 검찰에 찍혀버려 에이 나 변호사할래 하고 나오신 금태섭 변호사도 만났습니다. 두 분의 강연과 이어지는 질의응답시간. 당연히 촛불시위 문제도 나왔습니다. 특별히 주관적인 견해보다는 두 분 모두 법 전공자시고, 이 강연회가 이화여대 법학과 주최하에 열린 만큼 객관적인 법을 기준으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질문하면 출판사에서 책을 줬는데 저도 두 분 모두에게 한꺼번에 질문던져 금태섭 변호사 책을 받았습니다.)

  이건 그렇다치고. 강연회가 끝나고 집회장소로 향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면 종로에 있을까, 광화문에 있을까, 아니면 시청에 있을까. 도대체 지하철 역 어디에서 내릴까를 고민하다가 - 뭐 어디로 나가든 행렬이 길어 다 만날 수 있기는 합니다만 -, 그래 그냥 가던대로 종각으로 가보자. 아무래도 거기 아직까지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종각에 내렸더니, 역시나였습니다. 어이쿠. 근데 이건 규모가 더 커졌습니다. 그건 명박씨와 농림부 장관씨, 검찰, 경찰총장씨가 부른 당연한 결과였지만요. :) 웬 깃발들이 이리 많은지, 어디서들 왔나하고 보니, 각 대학 과별로 다양하게 있었습니다. 중앙대, 고려대, 이화여대, 성공회대, 한양대, 경기대 등등. 드디어 대학생이 나섰습니다.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 아니 왜 고시강행하니까 이제 나와 - 대학 덕분에(?) 규모가 더 커졌죠.

  시위대에 몸뚱아리를 파묻고 같이 걷는데, 걷다보니 어느새 또 맨 앞입니다. -_- 아니 난 왜 자꾸 맨 앞이야. 출근해야 되는데. 여의도, 청계천, 청계천, 청계천, 청계천. 다섯번째 촛불집회 참가입니다. 오늘로서. 청계천에서 있었던 네 번의 집회에선 거리행진에 항상 동참했기에 이제 익숙합니다. 내 앞에 있는 이 봉고차는 그 차가 맞습니다. ^^ 내가 따라가던 그 차가 맞습니다. 근데 광화문 방면으로 걷다보니 닭장차들이 이중삼중으로 겹겹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앉으라 하더군요. -_- 다들 앉았습니다. 그리고 노선이 다른 양측의 고성이 오갔습니다. 앉자, 계속가자, 앉자, 계속가자, 자유발언하자, 마이크 좀 다오.

  그러다 계속 가길 원했던 대학측(아마도 경기대?)이 앉길 원했던 국민대책회의와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왔던 길을 되돌아 뒤로 갔습니다. 그리고 각 대학들이 잇따르고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촛불행진은 계속 됐습니다. 그들은 앉지 않고 계속 걸었습니다. 종각 사거리에서 이들은 좌회전을 택했습니다. 청와대가 있는 그곳 맞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여전히 아기엄마, 할아버지, 부부, 연인, 친구, 군인, 직장인, 엄마 아빠, 심지어 외국인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했고, 그들 간에는 조금씩 의견이 다르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시위는 계속 됐습니다. 저는 거리행진부터 합류했고, 거리행진 도중 또 나와야 했습니다. 아까 그 장소에서 양측이 말다툼을 하는 바람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던 것입니다.  

  이제 시작인데. 이제 시작인데. 진짜 거리행진은 이제 시작인데. 그때가 대략 열한시경이었습니다. 오늘 직장에서 무지 졸았습니다. 책상에 대놓고 엎드려 잘 수도 없고 연차도 없어서 쉴 수도 없고 미치겠더라고요. 아침에 버스에서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는데 꾸벅꾸벅 조는 통에 지나칠뻔 했습니다. 지금도 졸려요. z_z 내일은 퇴근하고 잠을 일찍 자야겠습니다. 그래야 토요일에 또 한가닥 할테니. 토요일엔 지금보다 오래 있어보고 싶습니다. 무슨 신데렐라도 아니고 열한시 조금 넘으면 집에 가야한다니. -_- 뭐 꼭 그래야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출근하려면. 우리팀 분들이 모두 알았습니다. 과장님과 대리님 한 분만 알고 있었는데 오늘 모두 알아버렸습니다. 흐흐. 숨길 필요도 없지만 뭐 대놓고 드러낼 필요도 없어서 두 분에게만 말씀드렸던건데.

  장관고시 예정대로 발표하고, 대한민국 내의 온갖 단체들은 분노했죠. 국민과의 전쟁. 맞습니다. 절대 과장된 표현, 과격한 표현 아닙니다. 그거 맞습니다. 이쯤되면 막가자는거지요? 네 맞습니다. 막가자는거 맞습니다. 입만 살고 귀는 먹은 녀석들에게 분노를 보여줘야 합니다. 나 이만큼 화났거든!!! 가만 있으면 모릅니다. 화났는지 안났는지, 에이 화났어?, 그러고 맙니다. 지가 삐져봐야 얼마나 가겠어, 원래 삐지면 삐진 사람이 알아서 돌아와. 우씨. 삐진게 아니라 화난거래두!! 버럭!! '화' 정도로는 약하죠. 분.노. 적당한 표현입니다. 분.노. 내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가 보여줘야 합니다. 도대체가 머슴노므자식이 말을 안들어먹으니 어쩌겠습니다. 때리지도 말라는데요. 자기방 근처에 얼씬거리면, 자기방으로 오는 길에만 서있어도, 가만두지 않겠다는데. 나 주인 맞아?    

  토요일. 3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집중시위날입니다. 평소 가고 싶었지만 퇴근이 늦어 못가신 분들, 평일에 이런저런 다반사 많았던 분들, 마음놓고 오십시오. 내일 퇴근 후 잠 푹 자고, 몸뚱아리 배터리 충전 후 가벼운 몸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장관고시했다, 그런데 니네 분노 요고밖에 안돼?, 이러면 다음은 대운하, 의료보험민영화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작 요 정도 보여줄거면 시작도 안했습니다. 혼자 택배받아 처먹으면 외로우니까 같이 먹자고 아예 수입을 합니다. 이제 땅파서 운하 만들어 배타고 같이 놀자네요. -_- 분노. 제대로 보여줍시다. 연행자 다 풀어줬다죠. 현행법상 잡아가면 안되는거 이제 깨달았나봅니다. 그런다고 끝날줄알고? 어림없다. 토욜날 보자 명박아. :) 

영화 찍으러 가자 ↓



* 토요일은 3시 대학로, 7시 시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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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ㅋㅋ 아프락사스님 멋쟁이!!!
    from 하늘 받든 곳 2008-05-30 02:16 
    아프락사스님, 마지막 몇 줄이 특히 감동적이네요. ^^;;; 명박이가 저도 보고 싶어 할 텐데, 꼭 가야겠죠? ㅋ 이왕이면 닭장차도 타봤으면 좋겠는데, 내 차례가 오려나??? ㅋㅋㅋ   오늘은 후배들과 세미나가 있어서 좀 늦게 광화문에 갔는데, 아, 열기가 대단하더군요. 주최측이 우왕좌웅 갈피를 못잡는 게 좀 짜증나기는 했는데, 간만에 나가서 운동도 하고 발성 연습도 했더니 기분이 상쾌하네요. :-)
 
 
2008-05-30 0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30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Ritournelle 2008-05-30 0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역시 아프님 저도 오늘 상황 다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시 너머서 까지 있다가 막 집에 들어왔습니다. 전 내일도 될 수 있으면 가려합니다. 물론 모레도요. 우리 알라디너들끼리 따로 모여서 정모 같은 것도 하면 어떨까요? ㅋㅋㅋ 동의하시면 제 서재에 방명록 남겨주세요...

이잘코군 2008-05-30 09:03   좋아요 0 | URL
큭큭. 어디까지 갔나요. 그곳에 나간 알라디너 한번 모여도 좋겠는데요? ^^

드팀전 2008-05-30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회만 된다면 서울에 가고 싶어요.하지만 오늘도 밤 12시 퇴근예상.
대학로는 예전에 많이 뛰던 곳이고 가보고 싶어요.하지만 주말에 신데렐라는 집에서 못나와요.ㅜㅜ
지난해 알라딘 부산모임에서도 밤 10시전에 집에 들어갔다는..ㅠㅠ
현충일 있는 주에는 서울에 갈 수도 있을 듯 한데

이잘코군 2008-05-30 09:31   좋아요 0 | URL
^^ 마음으로 응원해주세요.

나비80 2008-05-30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로도 좋고 시청도 좋습니다.
저는 계란들고 인천공항 쪽으로 나가볼까도 진지하게 고려중입니다.

이잘코군 2008-05-30 11:24   좋아요 0 | URL
아마 대학로에 가도, 시청에 가도, 다 한줄로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합니다. 므흐흣.

무스탕 2008-05-3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쇠고기가 쌓여있는 창고에 불이나 났음 좋겠어요 -_-+

이잘코군 2008-05-30 11:24   좋아요 0 | URL
그럼 고기 굽는 냄새 나겠는데요? ^^

글샘 2008-05-30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참에 부산에서도 번개나 해 볼까나??? ㅎㅎㅎ
유모차 부대랑 예비군 부대랑 만들어서리...
부산항에 냉동창고 있어요. 거기서 일욜날 밤샌답니다. ^^

이잘코군 2008-05-30 13:17   좋아요 0 | URL
^^ 번개 좋은데요! 무화과나무님 제안하셨는데 응답있으시면 추진할 생각입니다.

드팀전 2008-05-30 23:11   좋아요 0 | URL
군복 좀 입고 나오지 말라고 하세요...전 군복이 싫어요.옷이 없나? 왜 군복을 입고 나오지..그리고 아기들도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엄마들이 아기 봐줄 사람이 없다면이야 어쩔수 없겠지만...어른들의 싸움이니까..

이잘코군 2008-05-31 08:49   좋아요 0 | URL
흐흐. 저도 군복을 아주 매우 싫어라하는데, 시위대에 낀 예비군들은 사랑스럽게 보이는데요. ^^ 유모차 부대도 경찰들의 강제연행과 폭력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보입니다. 애들이 불쌍하긴 한데... -_-

yayanim 2008-05-3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쇼맨쉽조차도 안보이길래 12시 가까이 행진에 행진을 거듭했더니 오늘 진짜 피곤해서 죽겠네요. 아무래도 오늘도 나가는건 무리고 토요일에 나가봐야겠습니다. 아이고 몸이야...

이잘코군 2008-05-30 14:57   좋아요 0 | URL
저도 피곤. 토욜날 크게 해야죠.

블루캣 2008-05-30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에 연행자 6명 있었답니다.~저도 이제 연행은 없는 줄 알았는데...아직 정신 못 차린 거 같네요!!!

이잘코군 2008-05-30 16:48   좋아요 0 | URL
너무 많아서 넣을 데가 없어서 풀어주고 다시 채우나 봅니다. :)
 
자발적 복종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지음, 박설호 옮김 / 울력 / 2004년 10월
구판절판


독재자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부여한 그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민들이 그를 참고 견디는 만큼, 독재자는 그들에게 동일한 정도의 해악을 저지른다. 따라서 인민들이 모든 해악을 감수하지 않고, 무조건 참고 견디는 태도를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독재자는 인민들에게 어떠한 해악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놀라운 것은 인민들이 마땅히 느껴야 할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이다. 실제로 인민들은 폭정을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이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태도는 정말로 기이하지 않는가? 수백만의 사람들은 비참한 노예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는 어떤 막강한 권력에 의해서 강요당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인민들은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권력을 휘두르는 절대자의 명성에 홀리거나 그의 마법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독재자는 홀몸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특권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신비로운 특성을 도외시하면 그는 비인간적이고 잔혹하지 않는가? -14-15쪽

인민이 이와 같은 억압에 이끌리는 태도는 비겁함이고 명명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권력에 아부하는 자들 역시 겁쟁이들이고 졸장부들인가? 만약 두세 명의 사람들이 독재자의 모든 폭력 행위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를 기이하게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있을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이 경우 사람들은 용기의 결핍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참고 견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수백 명, 수천 명의 사람들이 유일한 한 사람에 의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니라, 저항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굴욕이고 부끄러움이 아니겠는가? -17쪽

인민 가운데 누군가 자유를 획득하기를 원한다면, 그는 권력에 대항하여 싸울 수밖에 없다. 비록 가장 고귀한 목적인 자유의 천부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려 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에게 그러한 모험을 권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혼자만의 힘으로는 인민 전체의 동물적 신분이 보편적으로 고유한 신분으로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개개인 각자에게 커다란 용맹심을 발휘하라고 무리하게 요구할 정도로 나는 욕심을 부리고 싶지는 않다. 인민들은 제각기 고유의 취향에 따라 자유로운 삶에 대한 막연한 희망과 확신을 가지고 불행한 삶을 계속 영위하려고 한다. 나는 이러한 태도를 무조건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권력에 봉사하느냐, 저항하느냐 하는 물음은 결코 개개인이 제각기 선택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24쪽

그러나 사람들은 자유를 그저 "열망"하기만 하였으며, 단순히 그러한 의지만 품는 것으로 만족하고 살아왔다. 실제로 언젠가는 반드시 자유를 쟁취해야 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 땅의 인민들은 자유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이라도 깨달아야 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는 사람들이 자유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다만 우연히 수동적으로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일단 자유를 느끼면서 누리는 행복감은 엄청난 피를 흘려야 쟁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자유에 대한 열망조차 지니지 않은 나라의 경우, 그 나라 사람들은 자유에 대한 행복감을 쟁취하려는 노력을 쉽사리 포기할 것이다. 자유란 오로지 그것을 깨닫는 사람에게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가? (계속)-24-25쪽

그렇다, 폭군은 사람들이 모시고 떠받들기를 그만둔다면, 즉시 스러져버릴 것이다. 폭군으로 하여금 더욱 많이 먹게 하면 해줄수록, 더욱 약탈하여 삼키게 하면 그렇게 해줄수록 그는 더욱더 강력하게 된다. 폭군은 그를 모시는 인민들에 의해서 점점 더 강해지고, 파괴와 약탈을 일삼는다. -25쪽

겁쟁이나 바보는 불행을 간파하거나 행복을 획득하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이들이 끝내 성취하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개인적 욕망에 불과하다. 이들은 천성적으로 걸핏하면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무엇만을 차지하려고 한다. 근본적으로 고찰할 때 이러한 개인의 욕망이 내면에서 자유를 열망하는 어떤 힘을 배척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 즉 신중한 자와 변덕스러운 자, 용기 있는 자와 비겁한 자들, 누구나 할 것 없이 행복해지고 싶어하며, 선을 바란다. 그러나 많은 선 가운데는 단 하나의 고결한 선이 있다. 그것은 자유이다. -26쪽

동물이라 하더라도 너희가 지금 좋아하고 있는 그따위 짓은 참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차제에 우연히라도 결코 자유를 얻지 못한다. 오로지 자유롭게 되려는 욕구를 마음속에 지녀야만 즉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너희에게는 자유에 대한 욕구와 의지만으로도 충분하다. 독재자에게 복종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라. 너희들은 자유롭게 되 것이다! 그를 창으로 찌를 필요도 없고, 뒤엎을 필요도 없다. 다만 그를 지지하지 않으면 족하다. 그러면 너희는 조만간 목격하게 될 것이다. 토대가 사라지면, 독재자는 마치 제 무게에 못 이겨 저절로 붕괴되어, 산산조각 나는 거대한 입상처럼 무너지고 말리라는 것을. -29쪽

"참주는 세 가지 사항을 추구한다. 첫째로 그는 인민들을 소심한 사람들로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소심한 자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 반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로 참주는 피지배자들 스스로 불신하도록 그들을 이간질시켜야 한다. 몇몇 중요한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게 되면, 참주 체제는 위태롭게 변한다. 따라서 참주들은 지배에 해를 끼치는 자들보다도 더욱 혹독하게 고결한 지조를 지닌 자들과 싸워야 한다. (...) 셋째로 참주는 누구에게도 권력의 수단을 이양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 수단 없이는 주어진 폭정을 사라지게 할 수 없다."(라 보에티, Von der freiwilligen Knechschft)-30-31쪽

자연이 우리 모두에게 고유한 권한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허용했음을 고려한다면, 어느 누구도 자신이 주어진 사회에서 평생 노예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36쪽

자고로 인간은 여태 한번도 가져보지 않은 무엇 때문에 한탄하지는 않는 법이다. 만약 과거에 겪었던 찬란한 기쁨의 삶을 기억한다면, 인간은 주어진 불행을 제대로 의식할 수 있다. 만일 과거로 사라진 즐거움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현재의 좋지 못한 상태는 그제야 비로소 제대로 인지될 수 있다. 정말 그렇다. 인간은 본성, 기질, 천성에 의해 자유로우며, 자유롭게 되려고 한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붙는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이 교육에 의해 배워온 관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육받고 익숙하게 된 모든 일들은 마치 처음부터 주어져 있는 일감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어느 한 사람의 임의에 의해 정해진 것이다. 인간의 기질이나 본성은 처음부터 상대적인 것인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변하기 어렵고, 천성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선입견이 아닐 수 없다. (계속)-56쪽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인간의 자발적 복종에 대한 첫 번째 근거는 습관이다. 인간의 순응 과정은 말의 태도와 같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고삐를 당기고 물어뜯지만 나중에는 얌전하게 변하는 말과 다를 바 없이 변한다. 안장이 등에 얹힐 때, 말들은 난폭하게 이를 팽개치지만, 길들여진 다음에는 안장을 단 채 경쾌한 걸음으로 걷는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신하로 살아왔으며, 그들의 조상도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불행한 삶을 하나의 의무로 생각하고, 심지어는 의무를 위한 삶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로써 독재자의 소유권은 더욱 공고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장기 집권은 어떠한 부정도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부도덕하고 부정한 짓거리를 확대시킬 따름이다. -56쪽

역사를 탐구하는 자는 다음의 사실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만약 사람들이 순수한 용기와 곧은 정신으로써 나쁜 지배자로부터 나라를 해방시키려고 한다면, 거사는 항상 성공한다는 사실 말이다. -59쪽

인간이 자유를 잃으면, 용기 또한 상실한다. 노예로 살아가는 인민들에게는 투쟁 욕구도 없고, 강인함도 없다. 독재자는 일반 사람들의 의지와는 반대로 얼마든지 그들을 괴롭힐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은 완전히 경직되어 있으며, 자유의 불길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활활 타오르지 않는다. 원래 자유를 품은 사람은 어떠한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지들과 함께 고귀한 명예를 위해서 장렬하게 자신의 몸을 바치려고 생각하지 않는가? 자유로운 인간들은 고결하게 투쟁하며 싸워 나간다. 그들은 가능하다면 만인과 자기 자신의 안녕을 위해서 각자 싸운다. 그리하여 그들은 패배의 불행 혹은 승리의 행복을 서로 나눈다. 이에 반해서 노예들에게는 투쟁의 용기도 없고, 다른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위한 살아 있는 희생적 충동력도 없다. 노예들은 소심하고, 나약하며, 위대하게 행동할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래, 독재자들은 이를 분명히 꿰뚫어보고 있으리라. 만약 인민이 노예로 변화되는 과정에 있다면, 독재자는 그들을 더욱더 느슨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기 위해서 온갖 조처를 취할 것이다. -64-65쪽

오늘날에도 권력을 지닌 자들은 마구잡이로 불법을 자행하면서, 이른바 공공의 안녕, 인민을 위한 허울 좋은 "모델"로써 그것을 은폐하고 있다. 이러한 짓거리는 옛날의 그것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71쪽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해악을 가한 자에게 복수하지 않고 그저 참고 살아간다. 이 사실에 대해 독재자 자신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종교의 배후에 숨기 때문에, 신성의 끝자락은 교묘하게 감추어진다. 이를 통해서 비열한 압제자들은 마치 어떤 신적 존재로 군림할 수 있었다. -73쪽

독재자는 인간적 기쁨, 우정 그리고 사랑을 누릴 수 없으며, 권력 유지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현명한 철학자를 두려워하고, 양심 있는 자를 증오해야 한다.
(<히에른>에서 크세노폰이 독재자의 입장에서 심적 상황을 묘사한 부분을 라 보에티가 요약)-77쪽

한마디로 말해서 많은 사람들은 독재자의 비호를 받으며 전리품을 챙기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독재를 통해 이윤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수는 마치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대대적으로 확장된다. 자고로 인간의 신체에서 나쁜 피는 항상 곪아가는 상처 부위로 집결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왕이 전제 정치를 행하면, 그의 주위에는 온갖 쓰레기 내지 거품과 같은 인간들이 모인다.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소인배, 혹은 속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불타는 공명심과 놀라운 탐욕으로 독재자를 도우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만 그들은 착취한 이득의 일부를 얻을 수 있으며, 거대한 독재자 아래에서 작은 폭군들로 군림할 수 있다. -85-86쪽

오히려 그들은(신하 : 전제 군주의 추종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통당하면서도 저항할 줄 모르는 자들만을 골라 불법을 저지르곤 한다. 이들은 인민을 억압하고 불법을 자행함으로써 이득을 창출해 낸다. 이러한 짓거리를 행하기 위해서 그들은 독재자를 향하여 칭송의 목소리를 높인다. 이러한 더러운 인간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그들의 사악함에 대해 깜짝 놀라곤 한다. -87쪽

배우자,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배우자! 위를 향하여 응시하자! 우리의 명예를, 우리의 사랑을, 우리의 선을 위하여! 우리의 행동을 깨닫고, 우리의 오류를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게 하는 신의 사랑과 영광을 위하여!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해서, 나 자신을 속인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즉 신은 저 아래의 전제 군주와 그 패거리들에게 어떤 특별한 형벌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다. 즉 선량한 자와 신의 은총을 받는 자라면 누구든지 폭정을 가장 저주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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