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일보 끊습니다. 한국일보가 그래도 가장 중간에 있는거 같긴 한데, 자세히 보면 중립을 가장한 중도보수신문이죠. 강준만, 고종석, 박래부 같은 편집위원이나 칼럼니스트들, 기자들이 조금씩 그걸 희석해주는 것이지, 잘 보면 중도보수입니다. 촛불시위나 미친소 관련해서도 실어줄 건 실어주는거 같으면서 신문칼럼란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고. 해당 신문을 평가하는 가장 빠르고 간편한 길은 칼럼란입니다. 칼럼만 보면 중도보수가 맞죠.
그래서! 끊습니다. 오늘 5월 31일 마지막 날입니다. 신문 끊기 딱 좋은 날입니다. 한달의 마지막날. 끊으려고 전화했는데 전화를 안받네요. 계속 해봐야지. 그리고 경향신문 신청하렵니다. 어머니는 또 그러십니다. 우리 한국일보 지금 13,000원에 보고 있고, 일요신문이랑 스포츠신문 껴서주고 있다. 처음에 구독 신청할 때 3개월은 무료로 해달라하고, 다른거 껴서 달라고 해라. -_- 뭐 물어는 보겠다만 경향신문이 꾸리는 다른 신문이 또 있나 모르겠다. 얘네 스포츠신문도 꾸리나.
어머니, 아버지, 동생(얘는 사실 뭔지 감이 안온다. 민노당과 한나라에게 모두 표를 준 경력이 있는지라) 모두 보수가 확실한, 우리집에서, 홀로 反보수(차마 내 자신을 진보라 말하진 못하겠다) 경향이 뚜렷한 나는 오래전부터 정치적 색깔을 뚜렷이 해왔다. 오래전 인디밴드를 할 때 음반작업 했던 씨디에 수록된 다른 밴드의 김종필 요미우리 어쩌고 하면서 비판하는 곡을 볼륨 높여가며 듣기도 했고(정치적 색깔이 뚜렷한 밴드를 해보고도 싶다), 그외 특별히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은 촛불집회 복귀한 뒤 가져온 구겨진 빠알간 손피켓을 버리지 않고 가져와서 재활용통에 넣으라고 방문밖에 내놓기도 한다.
선거 때가 되면 내가 어느 당을, 누구를 찍을지 물어보시곤 해서, 은근 내가 찍은 사람에게 투표를 하려고 하시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그냥 물어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나는 일부러 어머니와 깊은 대화를 안한다. 이미 예전에도 대화를 하다 가슴 속에서 자꾸 분노가 솟구치는걸 느낀 적이 많기 때문에. 내 건강상, 어머니 건강상 대화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대화도 거의 안한다. 그러니까 밥 먹어라, 이런 대화(?). 그냥 때 되면 나가서 먹고 들어오고, 때 되면 출근하고 퇴근하고, 그게 다다. 어찌보면 같이 사는 하숙생같은 모습이랄까. :)
뭐 신문 얘기 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결론은 한국일보 끊고 경향신문 본다는 것. 한겨레를 볼까 하다가 - 토요일마다 한겨레를 사기 때문에 - 가끔씩 한겨레21을 가판에서 구입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시사IN은 정기구독한다), 그간 한번도 본 적 없는(인터넷으로만 봤다) 경향신문을 신청한다. '한겨레'라는 단어가 정치적 보수인 우리집에 강한 거부감을 주어, 그 안의 정확한 메세지까지 거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오늘 저녁 집회 나가면 꼭 "우리집은 조중동을 보지 않습니다."라고 쓰여진 노란 스티커를 많이 가져와야겠다. 한 장은 현관문에 붙이고, 나머지는 지인들 나눠주고.
p.s. 결정적으로 오늘자 한국일보에 실린 재향군인회(?)와 무슨 단체의 좌파 세력 어쩌구 운운하는 전면광고와 하단광고가 내 결단을 도왔다. 그게 한국일보랑 무슨 상관이냐고. 그 신문에 실리는 메시지 광고는 그 신문의 논조를 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p.s.2 오늘 못 들어올지도 몰라, 라고 했더니, 또 집회가? 미국소 먹을거냐, 그랬더니, 안 먹으면 되는거 아니냐, 그러신다. -_- 몰라도 너무 모르신다. 선택사항이 아니다. 강제사항이다. 쩝. 답답하구나.
p.s.3 자명한산책님 말꺼내신 김에 생각나서 링크. 이런 신문 하나쯤은 (고종석). 아래 달린 내 댓글도 흥미롭다. 그 때 생각과 지금 생각이 다르진 않지만, 아주 미묘한 차이로 구독과 절독이 판가름난다. 어느쪽에 1점을 더 주느냐에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