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이유. 사람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앎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사회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취업 준비를 위하여, 기타 등등 많습니다. 여러분은 책을 왜 읽습니까. 질타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건 아닙니다.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씁니다. 제가 시위 몇번 나갔다고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도, 정의롭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고픈 사회, 다시 말하면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원했을 뿐입니다. 오랫동안 촛불집회 하는거 알면서 안갔습니다. 그러나, 폭력진압이 시작되고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매일 참여했습니다. 오늘도, 처음 나오신 분들 참 많았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잘 모르더라고요.
어젯밤 들어와 생중계로 보면서 울었습니다.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저 사람들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당장이라도 가서 함께 물대포를 맞고, 곤봉을 맞고, 군화발을 견디고 싶었습니다. 이미 날은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지막 남은 시민들이 수많은 전경들과 대테러진압작전에나 투입되는 경찰특공대에 의해 박살나는 장면을 보고, 못참고 달려갔습니다. 달려가 마지막 남은 시민들이 버틸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갔을 때 마지막 남은 시민들은 수백명의 경찰들에 쫓겨 광화문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도와주러 가다가 저도 놀래 그들 사이에 묻혀 뛰어왔습니다. 저 병신같은 전경들은 내가 지금 그들이 쫓고 있는 시위대인지 이제 막 도착한 시민인지 구분할리 만무하고, 이거 가만 있다가 나 병신되겠다 싶어 같이 뛰었습니다.
찍었습니다. 오와 열을 맞추어 대열을 정비하고 실실 쪼개며 휴식을 취하는 그들의 얼굴을 찍었습니다. 어떤 새끼는 표정관리에 들어갔고, 어떤 새끼는 실실 쪼갭니다. 시민들이 그들 중 직위가 높아 보이는 사람을 쫓아가며 대화를 하자고 해도 나는 당신들과 대화 할 일이 없다며 뿌리치고 도망갑니다. 곤봉이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생중계로 봤던, 동영상으로 봤던, 그 곤봉이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발길질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이바 벗고 방패 깔고 앉아 담배 꼬나물고 있는 녀석들의 얼굴을 가격하고 싶었습니다.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건 '비폭력'을 향한 내 안의 외침 때문이 아니라 한 놈 쳤다가 나 병신될까봐여서 였습니다.
언젠가 어떤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왜 소설은 안 읽으세요?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시정해야 할 부정의가 너무 많아서,라고. 그 부정의를 제대로 알고 공부하고 시정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 저는 책을 읽습니다. 소설만 읽던 해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보지 않습니다. 물론 소설 속에는 삶이 있고, 인생이 있고, 아픔이 있고, 기쁨이 있고, 타인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향유하고 느끼기보다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르고 지나가는, 그런 부정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책을 읽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책을 읽었습니다.
오늘 또 시위에 다녀왔습니다. 일곱번째입니다. 몸이 많이 지쳤습니다. 어제 동영상을 보고, 오늘 경찰의 대응자세를 보고, 마음도 많이 지쳤습니다. 희망은 없는건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희망이 없다면 우리가 여기서 이짓을 하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같이 있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분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이미 '사적 욕구'에 갇혀버렸다. 더이상 공적인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늘 참 많이 모였습니다. 어제 그 동영상을 보고 시위에 나갔다가 나도 이 꼬라지 되면 어떡하지, 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을까봐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기우였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시민들이 시청광장과 주변도로를 가득 메웠습니다. 대학은 아직 턱없이 부족합니다. 무대에 올랐던 서른두살 직장인의 말대로.
여기 모인 대학생 다 합해봐야 조그만 한 학교 인원도 안나옵니다. 고작 과에서 서너명씩 추려서 깃발들고 나온게 다입니다. 어떤 학교, 어떤 과는 스무명, 서른명도 나올 수 있겠지요. 간혹가다. 대학 깃발은 난무하지만, 정작 대학생은 없습니다. 그들은 왜 대학에 왔을까. 그들은 왜 공부를 하고 있을까. 자신의 사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취업을 위해서.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행진 도중 커피숍을 지날 일이 있었는데,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상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간 행진 때 보았던 심지어는 함께 동참하는 주변인들의 반응과는 달랐습니다. 고작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둔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커피를 마시고 있을까요. 우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아 쟤네 그렇게 맞고도 또 나왔냐. 이럴까요.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어납시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단지 책이 내게 주는 어떤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그것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소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 나는 책을 소비하는 걸, 이라고 말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책을 읽음'에 대해서만, 책을 읽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저는 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애국심이란 것도 별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내가 이렇게 분노하는 건, 나와 같은 사람들이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강간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곤봉구타, 방패찍기, 물대포 공격, 집단구타, 군화짓밟기 등이 행해졌습니다. 누구에게? 여러분의 이웃과 여러분의 어머니와 아버지, 여러분의 여동생과 형, 누나, 언니, 그리고 여러분이 가르치는 학생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그들의 손엔 쇠파이프도, 야구방망이도, 각목도, 돌멩이도,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한손엔 피켓, 한손엔 촛불만 들려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평화롭게 거리 행진을 했습니다. 거리 행진이 불법이라고요? 합법과 불법을 논하지 맙시다. 합당과 부당을 논합시다. 법의 테두리는 모든 것을 바로잡아주지 않습니다. 합당하지만 불법적인 행위도 있으며, 부당하지만 합법적인 행위도 있습니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도 그들은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 수많은 불법을 자행했습니다.
경찰장비수칙에 의하면 물대포는 상위 15도를 향해 쏴야하고, 20미터 이내의 거리에서 발사할 수 없게 되어있었지만, 어제 어땠습니까. 동영상을 보신 분들 아시겠지만, 한 여학생이 실명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버스에서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수미터 밖으로 날아갔습니다. 실신했습니다. 실려갔습니다. 국가의 압력을 받았는지 병원에선 면회조차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기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언론도, 병원도, 경찰도, 모두 정부의 지시를 받고 있습니다. 그 누구 하나 항의하거나 지적하지 않습니다. 어제 sbs 아침 뉴스 속보에서 그랬다죠. "물리적 폭력은 없었습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곳은, 민중의 소리, 아프리카,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정도입니다. 기사를 믿지 못하겠다면, 기사가 편향적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동영상 생중계를 보십시오.
이제 미친소 문제는 촛불시위대의 아주 작은 부분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경찰은, 루비콘 강을 건넜습니다. 미친소를 재협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폭력경찰과 폭력정부, 폭력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해야 할 때입니다.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그리고 퇴진을 요구할 때입니다. 히틀러가 출몰하고 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히틀러가 출몰하고 있습니다. 공안경찰이 등장하고, 시위대에 변장하고 끼어 사람들의 얼굴을 채증합니다. 전경 교육 한답시고, 노약자, 어린이, 장애인을 패는 장면은 찍히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찍히지 말고 어린이, 장애인, 노약자 마음껏 패라는 말입니다. 찍히지 않는 한도 내에서. 여러분의 어머니와 아버지, 이웃, 내 아이 입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입니다.
오늘 무대에 여중생이 섰습니다. 끝까지 남아있었는데 물대포 맞고 추위에 떨 때 옷을 빌려준 남자분 고맙다고, 물대포 막아준 남자분 고맙다고.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고. 고맙다고. 제가 가르쳤던 나이의 아이입니다. 여중생입니다. 고작 열 여섯살 아이가 그 새벽에 물대포 맞으며 곤봉구타 맞아가며 끝까지 버텼습니다. 최루탄 비슷한 소화기와 물대포를 맞아 교복이 노랗게 변했답니다. 근데 어떤 남자분이 준 옷을 입고 있어서 교복을 말릴 수 있었다고 고맙답니다. 어떻게 이 아이에게 이렇게 가혹한 일을 시킬 수 있습니까. 그 누가 시키지 않았다고, 그 아이가 자발적으로 나왔다고, 순전히 이건 그 아이 책임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나갑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나 홀로 지난 며칠을 나갔고, 어제 오늘 아는 분들 만나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그 분들 자주 보게 될 겁니다. 함께 합시다. 생활을 내팽개치라는게 아닙니다. 그렇게 시위하다간 얼마 못갑니다. 기본 생활을 다 해나가는 선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며 시위에 참여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것을 바라는 겁니다. 그것을 희망하는 겁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것이 제가 그리고 여러분이 바라는 사회일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내가 무슨 색깔이든, 색깔이 있든 없든 상관 없습니다. 진보신당, 민노당 뿐 아니라 통합민주당, 창조한국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회원들도 함께 한다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같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날이 오길 희망합니다.
p.s. 오늘 함께 하신, 어제도 나오셨던 마노아님, 승주나무님, 새벽까지 물대포 맞느라 고생하신 무화과나무님, 그리고 워크숍에서 다리를 다쳐 쉽게 걷지 못함에도 함께 해주신 라주미힌님, 대전에서 올라와 준 내 친구, 고맙습니다. 혼자 가기 쑥쓰러운 분들, 얼굴 몰라도, 교류 없었어도 상관없습니다. 함께 합시다. 글이 불편하셨다면 그건 제 탓입니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놨다 생각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