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사회 윤리 똘레랑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72
하승우 지음 / 책세상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희망의 사회 윤리 똘레랑스>에서 하승우씨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경제적, 물리적 힘으로 상대를 억압하는 힘의 논리가 만연해 있"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으로 똘레랑스를 제안하고, 차이와 다양성에 관용적이지 못한 우리 사회에 똘레랑스를 강조하고 나선다. 얇은 책세상 문고판 책이지만 하승우 씨는 이 안에 똘레랑스의 등장배경부터 미국의 털러런스와 프랑스의 똘레랑스의 차이를 설명하고, 인권, 양심, 토론, 설득, 다양성의 존중 등에 걸쳐 적용한다. 또한 똘레랑스의 한계를 살펴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똘레랑스'는 '참다', '견디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tolerare 에서 나왔다. "서구 사회에서 인종, 문화, 종교의 차이는 격렬한 갈등의 씨앗을 뿌렸고, 결국 많은 피로 그것을 수확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똘레랑스다."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1572년 기독교 구교과 신교 사이의 갈등으로 빚어진 성 바돌로매 축일의 대학살이란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프랑스 국왕의 어머니였던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음모에 따라 구교도들은 결혼식에 참가하기 위해 파리에 모인 신교도들을 학살했다. 파리에서 3천을 비롯하여 프랑스 전역에서 2만여명이 죽었는데, 신교도들은 생존을 위해 그들에 반격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종교전쟁으로 번졌다. 

  유럽의 중세 13세기부터는 로마 카톨릭 교회들이 '종교재판'이라는 합법적 제도를 통해 이단과 이교도에 대한 처형과 박해를 가함으로써 자신들이 믿는 진리를 세우고, 비진리를 제거했는데, 15세기 종교 개혁 이후로 지난한 전쟁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서 '종교적 관용'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피에르 베일이며 홉스며 로크,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이 관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승우에 따르면 똘레랑스는 "극단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앵똘레랑스'와 짝을 이"룬다. "똘레랑스는 극단을 부정하는 앵똘레랑스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인종주의나 종교적 광신을 거부한다. 그래서 똘레랑스는 차이를 '긍정하는' 논리일 뿐 아니라 극단을 '부정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즉 똘레랑스는 그 자체에 이미 똘레랑스와 앵똘레랑스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이러한 똘레랑스의 원리로 몇 가지를 들자면, 첫째, '인간의 완전함에 대한 부정'을 들 수 있는데, 홍세화씨가 번역한 <왜 똘레랑스인가>의 저자 필리프 사시에에 따르면 "자기 중심주의의 포기"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자기 중심주의를 버릴 때 타인의 목소리가 들어오게 된다는 말이다. 이를 롤즈와 비교해보면 그는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합리적인 존재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 같은 자발적인 포기가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롤즈는 원초적 상황에서 무지의 베일이란 장치를 통해 이를 보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고 극단을 거부하는 태도'이다. 하승우의 논의와 별개로 칼 포퍼는 <관용과 지적 책임>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거쳐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제 1원칙, "내가 틀릴 수 있고 당신이 옳을 수 있다", 제 2원칙 "무슨 일이든 합리적으로 이야기함으로써 우리는 우리들의 어떤 잘못을 수정할 수 있다.", 제 3원칙 "만약 우리가 합리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진리에 더 가까이 도달할 수 있다." 하승우가 극단을 거부하는 태도를 언급한 것은, 이와 연관해서 살펴볼 수 있다. 극단을 거부하고 서로 토론을 함으로써 진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은 셋째 원리인 '폭력을 거부하는 이성적인 토론과 설득', 넷째 원리인 '차이와 다양성의 존중'은 모두 첫째, 둘째 원리와 연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토론과 설득은 분명 이성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고, 싫고 좋음의 마음의 문제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또한 차이와 다양성이라는 것도 다양한 여러 의견들이 광장에 나와 논의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하승우는 이후 홍세화와 그람시, 마르쿠제, 루쉰 등을 끌어들이며 똘레랑스와 앵똘레랑스의 논의를 전개한다. 

  우리 사회에 똘레랑스가 절실히 필요함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때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똘레랑스'이라는 개념이 자비나 베풂과 동일시 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말로 바꾸면 똘레랑스는 '관용'으로 표기할 수 있는데, 똘레랑스, 라고 지칭했을 때와 관용, 이라고 지칭했을 때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편의상 그것을 '관용'이라고 번역해서 사용하지만 전적으로 우리말에서의 관용이 똘레랑스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관용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한남대 철학과 김용환 교수는 그의 책 <관용과 열린 사회>를 통해서 우리말 관용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우리말 '관용'은 '타인의 잘못을 용서함' 내지는 '내가 타인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것'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똘레랑스의 본래 의미는 이렇게 해석해선 곤란하다. 우리말 '관용'은 그 뒤에 '베풀다'라는 동사가 붙는 반면, '똘레랑스' 뒤에는 '하다'라는 동사가 붙는다. 즉 우리말 관용은 상대에 대한 나의 우위를 전제하고 있고, 똘레랑스는 대등함을 내포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p.s.  

  프랑스에서 택시 운전을 하던 홍세화씨가 한국에 돌아와 똘레랑스를 외친지도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었다. 그는 책에서나  강연회서나 똘레랑스를 외쳤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똘레랑스를 전파하고 다녔다. 처음에는 생소한 단어였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한번쯤을 다 들어봤을만한 용어가 됐다. 그런데 똘레랑스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에 대한 연구서나 학술서가 많지 않고, 해외에 이미 나와있는 유명 철학자의 책조차도 번역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으로는 프레스톤 킹의 <관용론>, 로크의 <종교 관용에 대한 편지>, 포퍼의 <관용과 지적책임>을 들 수 있다. 로크의 <통치론>이나 <시민정부론>은 번역되었지만, <종교 관용에 대한 편지>는 번역되지 않았고, 포퍼의 수많은 저서들이 번역되어 나왔지만 1987년에 쓴 <관용과 지적책임>이라는 책은 번역되지 않았다. 번역되어 나와도 그다지 팔릴 것 같지 않은 책들이지만, 의식있는 출판사에서 이 책들의 번역을 추진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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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제는 우리가 '똘레랑스'해야 할 때
    from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2007-12-11 01:13 
    '똘레랑스'라는 게 이제는 그리 새삼스러운 단어는 아니다. 저 먼 타국 파리에서 택시를 몰던 한 사람이 어느날 홀연히 날아와 이 '똘레랑스'라는 걸 던져 준 후로, 우리에게 이 말은 비교적 유행을 제법 탔다. 그래서 이제는 '똘레랑스'하면, "아 그거"할 정도는 된다. 많이 들어보고 대충은 뭔지 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는 '대충'에 들어가야 하겠다. '똘레랑스'라는 그리 새로울 것 없는(?) 개념을 접했을 때 우리는 대체로 수긍할 수 있었
 
 
 

 대한민국의 대표 펑크 밴드라고 불리우는 쌍두마차 크라잉넛과 노브레인. 그 중 하나인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라는 곡이 2007년 가장 큰 행사인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선캠프 선거노래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 다른 가수들이야 다 그렇다쳐도 노브레인의 행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렇다. 활동한지 거의 10년이 넘은 것 같다. 이제 나이도 꽉찬 서른 안팎의 멤버들은 적당히 늙었고, 공연 때도 체력의 한계가 오는지 예전만큼 '지랄발광'(좋은 의미다)하지는 못한다. 올해 여름쯤으로 기억하는데, 구로 어느 페스티벌에서 그들을 오랫만에 봤고, 생각보다 얌전하게 노는 그네들을 보며 아참, 세월이 많이 흘렀지, 하고 생각했었다.

  지금까지 노브레인이 별다른 말이 없는걸 보니, 이명박 캠프가 허락을 구하지 않고 쓰지 않았을까, 하는 1%의 바람은 바람에 날아갔다고 봐야겠다. 내심 노브레인의 진심이 아니길 바랬지만 아무래도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다면 그들의 '생각'이라고 봐야겠지. 현재 노브레인 홈페이지에는 팬들 간에 작은 공방이 계속 되고 있다. 펑크 밴드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입장을 밝혀달라, 실망했다, 부터 펑크라고 다 왼쪽에 있다고 봐선 안된다, 나치펑크도 있고, 우익펑크도 있다, 까지. 한쪽에선 그들에게 실망감과 분노를 드러내고, 한쪽에선 노브레인 잘못없다, 비난하는 너희들이 잘못이다, 라고 그들을 비판한다. 

  로커들은, 그중에서도 펑크로커들은 대개는 왼쪽에 위치해있는 것이 사실이고, 밴드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를 대놓고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을 좋아하는 팬들은 대개 '왼쪽에 있음'으로 자연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렇다. 내가 노브레인을 좋아한건 단지 음악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그네들의 존재 자체가 그냥 밑바닥 10대와 20대들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건 단순히 그들의 팬이 기대했던 실체없는 이미지에 지나지 않았나 생각도 해본다. 사실상 그네들의 노래 가사에서 특별히 정치적인 요소를 찾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에 윗대가리들에 대한 분노와 밑바닥 인생들의 거친 숨소리가 깔려있음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노브레인의 정치성향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왼쪽에 있다 간주하고 그들을 좋아했던 수많은 팬들이 가진 그들에 대한 기대감이, 잘못된 것이라 말하긴 어렵다. 좌냐 우냐를 따지기 전에 사회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와 욕설을 통한 배설, 기대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함을 가진 바닥 인생들을 대변하는양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사랑'을 먹으며 11년의 세월을 버틴 그들은, 팬들에게 최소한 그들의 입장을 밝혀줘야한다. 무슨 생각으로 예상 밖의 그같은 행동과 결정을 했는지를.

  좌와 우를 넘어서 만약 그들이 현 정치권과 대선후보들을 싸잡아 비난했더라면 차라리 더 그들 다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기껏 한다는 행동이 대선캠프 선거노래란 말이더냐. 한참 오른쪽에 있는 명박캠프가 아니라 동영캠프나 국현캠프였다 할지라도 어쩌면 팬들은 노브레인을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기존 정치권에 '자발적으로' 이용됐다는 이유로. 팬들의 비난은 그것이 특별히 명박캠프여서라기보다는, 오른편에 그들이 위치해서라기보다는, 기존 정치판에 함께 놀아났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더 정확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존 정치판 중에서도 약자를 대변한다는 이들이 아닌 명박캠프와 붙었다는 것이 팬들을 분노케 하지 않았을까. 이슈도 되지 않는 홈페이지 게시판 안에서의 작은 공방이지만 그들의 생각을 알고 싶다. 노브레인 불대가리의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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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2-03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뮤지션들을 정치적인 입장으로 판단하기에는 좀 거시기 하지만 그래도 락계열과 힙합계열의 장르들은 분명 반사회적이고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 뼛속까지 들어있다고 보고 싶어요. 그러다보니 이런 장르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도 대부분 오른쪽보단 왼쪽에 치우쳐있다고 보고 싶습니다. 전 좀 아쉽네요..박진영처럼 "Tell me"라는 현재 최고 유행곡을 어느정당에도 주지 않는 현명함을 보였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어쩌면 그들도 애미넴처럼 타락(?)의 수순을 밟는 건 아닐까 싶고요. (에미넴의 경우 자기 곡에서 그렇게 상욕을 하고 경멸했던 대상이 어느순간 바로 에미넴 자신이 되버린 아이러니가 있다죠) 흠 어떤면으로는 노브레인이 무대 포퍼먼스로 일장기를 불태운 사건을 보면 우익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깐 해봅니다..^^

깐따삐야 2007-12-03 13:37   좋아요 0 | URL
역시 박진영 멋져. 저도 요즘 제가 좋아하는 박현빈 노래가 개사되어 흘러나와서 기분 안 좋아요. 빠라빠빠. 시끌~ 오빠만 믿으래. 곤드레만드레한 것들~ 쉽고 흥겨운 트로트의 숙명인지.-_-

마늘빵 2007-12-03 15:24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 / 글쎄요, 박진영이 멋진지는 모르겠지만 -_- 현명한 선택을 한거 같긴 합니다.

메피스토님 / 저도 순간 떠오른 장면이 일장기 불태우는 건이었어요. 음. 근데 보기에 따라서는 극우적인 행동으로 보일수도 있고, 우리를 화나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뭐라 단정지어 말하긴 어려울듯 해요.

다락방 2007-12-0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노브레인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어서 딱히 어떤 말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아프락사스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아주 명쾌하게 잘 읽히는 글이네요.

마늘빵 2007-12-03 15:25   좋아요 0 | URL
:)

람혼 2007-12-03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소위 '음악계'에 몸담고 있는 관계로, 밴드의 정치성이라는 것이 흔히 밴드 자체 내에서도 쉽게 하나의 단순한 '이미지'를 통해 결정되는 꼴(?)을 많이 목격하게 됩니다. 특히나 펑크 밴드의 '좌파성'이라는 것은 다분히 말 그대로 '직수입'된 측면이 강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펑크의 '이식문화론'?!), 1990년대 초중반 태동했던 우리네(!) 펑크 문화에서 1970년대 영국 펑크 밴드의 이미지들, 예를 들면 Sex Pistols나 The Clash의 좌파적 이미지는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작용했다는 생각입니다만, 그것이 비단 이미지의 측면뿐만 아니라 실제적이고도 정치적으로 어떤 성과를 일궈냈던가를 생각해보면 실로 부정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들은 펑크의 '저돌성'만을 좇았던 건 아닐까요? 어떤 때에는 그 저돌성이 쉽게도 '좌파'라는 이미지의 옷을 입을 수도 있었지만, 그것이 실제로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에 기반한 움직임이 아니었기에, 이제는 이명박과도 흘레붙을 수 있고 또한 '대한민국~!'(윤도현 밴드, 크라잉넛 등등)이라고 하는 가장 '전체주의적'인 연호와도 교미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위에 Mephistopheles님이 잘 지적해주셨듯이, 예를 들어 노브레인의 일장기 사건을 떠올려 보면, 홍대 거리의 유세차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들의 "넌 내게 반했어" 역시 그리 놀랄 일은 못 될 것 같다는 어떤 씁쓸한 미소를 흘리게 됩니다.

마늘빵 2007-12-03 15:27   좋아요 0 | URL
그쵸. 어쩌면 본인들은 원하지 않는 이미지를 11년 동안 대중과 팬들이, 기자들이 덧씌운건지는 모르겠지만, 원치 않는다면 그들은 애초에 그걸 거부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치 사회에 대한 저항 정신을 가진 듯한 가사며 행동들을 해서도 안되는 것이었고. 아니라고 하기엔 11년 간의 그들의 활동이 너무나 기대에 충실했죠. -_-

웽스북스 2007-12-03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 전 단순해서 사무실 근처에 그 노래가 울려퍼질 때마다, 그래, 쟤들이 진정 '노브레인'이 맞나보다,라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다는 ;;

마늘빵 2007-12-03 22:05   좋아요 0 | URL
오늘 알게 된 사실인데 슈퍼주니어는 아예 노래를 불러줬다면서요? -_- 머 걔네들이야 전 그러든말든 이지만 참 것도 거시기허요. 근데 이거 돈이 꽤 짭짤한가봅니다. 메인곡은 억이 넘는다고 하던데. 서브는 수천만원 대고.

네꼬 2007-12-0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노래 생각하면 울적해져요.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내가 좋아하던 곡 하나를 빼앗긴 셈이지요. 확 우울하네.

마늘빵 2007-12-04 10:49   좋아요 0 | URL
저도 이 노래 들으면 이제 바로 이명박과 한나라당으로 머리가 확 깹니다. 더 이상 즐길 수 없는 노래가 되어버렸어요. -_-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
이철호 외 지음 / 메이데이 / 2007년 5월
품절


소수의 경쟁력 있는 인재가 육성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학생들이 현 교육제도 아래서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영어와 컴퓨터에 능숙한 젊은이들을 많이 육성해 낼 수 있을지는 모르나, 창조적 지식, 높은 수준의 과학적 지식, 문화적 감성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지식인을 양성해내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12쪽

그(홍세화)는 특정 개인을 넘어서 우리 사회 구성원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의식과 존재에 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에 의하면 그릇된 교육으로 인해 의식이 존재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고 있다. 국민학교라는 군국주의 교육이 의식의 통제 이상의 강력한 효과를 갖는 권력 지배 장치로서 몸을 통제했다는 것이다. -15쪽

설령 서민의 자식이 '개천에서 용이 나서' 교육 자본을 통해 계층상승에 성공한다고 해도 계급 구조에서는 아무런 차이를 가져오지 않는다. 서민 출신도 일단 출세하면 자신의 출신 계급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천에서 용 낭기가 무척 어렵지만, 어렵사리 개천 출신의 용이 된다 하더라도 그는 이미 개천 사람들을 대변하지 않는다. 애당초 개천 출신은 지배계급의 '마름'이 된다는 조건에서만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38쪽

그리하여 한국에서 입시는 평가가 교육과정에 발전적인 영향을 주기보다는 평가에 의해 교육과정이 역으로 왜곡당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평가가 교육을 지배할 때 교수 학습 활동은 시험에 대비한 능력을 키우는 활동으로 전락하고 만다. 문제 해결력 등 시험에서 요구되는 기능만이 의미를 가지게 되고 단기간에 많은 지식을 주입시키는 주입식 수업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

잦은 제도변화와 졸속적인 정책입안은 수험생들과 학교, 학부모들의 심리적인 불안을 가중시키며, 대학입시정책의 변화에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태도를 형성하였다. 즉 체계 순응적이게 하며, 입시정보를 쥔 자들에게 종속되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자세히 보면 중요한 변화가 보이는데, 1980년대 대학입학과정을 국가가 장악하면서부터 대학의 수직적인 서열화가 고착되었으며, 이는 국가고사가 서열화된 대학에 학생을 입학고사 성적순으로 배정하는 결과를가져오게 하고 있다. -66쪽

이 과정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지표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학력이라는 기준이다. 근대 제도교육의 형성과정에서 교육의 양적 기회는 확대되었을지언정 그에 반해 사회 불평등을 확대재생산해 왔다. 이를 위해 기회는 확대하면서도 동시에 그 기회를 차등화함으로써 평등한 접근의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제가 바로 학업 성취도로 측정되는 학력이라는 준거이다. 우리 사회는 학력을 직접구조와 연동시킴으로써, 불평등이 개인의 학력차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게 한다. 즉 학력수준이 높으면 고위직에 오르고 고임금을 받는 것을 정당화함으로써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것이 학력의 신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력은 개인의 잠재력이나 학교의 교육활동과 무관한 영역에 변인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직업, 재산, 거주 지역과 학생의 학력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학력은 공정한 준거가 아니다. 결국 기득권 세력이 의도하는대로 공정한 학력평가라는 쟁점을 따르다 보면 갈 곳은 체념과 불평등에 이를 수밖에 없다.-69쪽

교육은 다음 세대를 위한 노력이다. 지금의 삶이 차별적이거나 불평등하다면, 사회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에는 차별과 불평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해 나가야 한다. 즉 교육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불평등을 극복하고 사회를 민주적이거나 또는 공동체적으로 통합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우리 교육은 심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 교육으로 불평등을 극복하기는커녕 교육으로 인해 오히려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71쪽

교육은, 특히 학교 교육은 보편과 중립이라는 가면을 쓴 채 불평등한 관계를 재생산하면서 동시에 이를 은폐하는, 그래서 자본주의 지배구조를 유지하도록 하는 핵심 기제다. 그리고 이 모든 지배와 은폐와 과정을 체계화한 것이 교육과정이다. 그러므로 교육과정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비밀과 거짓말로 점철된 교육이 이루어지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77-78쪽

흔히 21세기를 문화의 세기, 지식정보화 사회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는 다양성과 창의력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왜곡된 지식 위주의 입시 교육은 암기력 있는 로봇을 만들어낼 뿐이다. 창의력 있는 인간은 인지 능력과 함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정의 능력, 문화 감수성과 연계된 정서 능력을 균형 있게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교육과정은 지식 교육을 넘어 문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82-83쪽

또한 일반적으로 학교교육의 질을 좌우하는 요소로 중요하게 꼽히는 것은 교육재정, 교원확보율, 교육시설, 학급당 학생 수, 학업성취도 등이다. 그런데 교육인적자원부는 일반적이며 실질적인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안은 무시한 채, 오로지 교원 평가만을 학교교육의 질을 높일 방안이라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교육의 질을 둘러싼 책임을 '개별 교원'에게 떠넘기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106쪽

교사의 전문성이란 지적으로 복잡하고 다면적인 것이어서 일률적인 기준에 의해 교사의 전문적 역량과 실천의 질을 높잉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교원평가는 교사의 전문성을 기술주의적이고 타율적으로 붙잡는 경향이 있어 결과적으로 교원평가를 통하여 교육활동을 통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108쪽

입시가 획일적인 줄 세우기식으로 이루어지면서 학생들은 입시성적에 노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여기에 입시성적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한 사교육 광풍이 휘몰아치면서 교육이 빈부격차의 대물림을 조장하는 기재가 되고 있다. 이미 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부모의 학력수준이 높거나 경제력이 높을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그리고 교육여건이 입시교육에 집중된 곳일수록 학생들의 성적이 높다고 밝혀지고 있다.

지금과 같은 입시경쟁체제에서는 예전처럼 단지 본인의 노력이나, 타고난 소질만으로는 높은 입시성적을 얻을 수 없으며, 따라서 서울대와 같은 상위권 대학 역시 진학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처럼 대학서열을 유지하기 위한 상위권 대학들의 한 줄 세우기식 학생선발은 학생들의 다양한 소질과 적성을 파괴하고 있음은 물론 교육이 해야 할 공공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교육은 계층이동의 기능을 상실함으로써, 빈부격차에 따라 사회적 계층이 그대로 이어지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유지시키는데 기여하고 있을 뿐이다. -131쪽

학벌문제가 현실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법령이 제정되어야 한다. 법은 학벌이 사회구성원 다수를 소외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공정성 확보를 위해 독점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정신을 담아야 한다. 이 법안이 담아야 할 기본정신은 '할당'과 '제한'의 원칙이다.

구체적으로 법령은 적극적인 면과 소극적인 면에서 두 방향으로 제정되어야 한다. 적극적으로는 지역인재를 할당하여 등용하는 것이며, 소극저긍로는 공직자 채용과 임명시 각 대학의 비율을 제한하는 것이다.

학벌 문제의 핵심은 사회 각 분야에서 권력 있는 높은 자리를 몇 개 대학 출신이 독차지 하는 것이다. 학벌 없는 사회로 가려면 사회 권력을 몇 개 대학이 독점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 곳에 권력이 골고루 나눠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에서 학벌을 선호하는 것도 다른 어떠 이유보다 공직이 독점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이 시민사회 위에 군림하는 한국에서는 기업 운영을 할 때도 언제나 국가 기관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서울대 권력이 게속 확대 재생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34-135쪽

학교 간, 지역 간 학력 격차 때문에 내신은 믿을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학교 간, 지역 간 차이를 인정한 평가야말로 공정한 평가이다. 강남에서 사교육의 혜택을 받으며 자란 학생과 농어촌 지역의 학생을 동일한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 아니라, 강남 학생은 강남 학생끼리 경쟁하고 농어촌 학생은 농어촌 학생끼리 경쟁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 아니 나아가 더 열등한 교육 여건을 가진 이들에게 그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는 보정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147쪽

기본적인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 아니라 학생을 가려내어 일류대부터 지방대까지 배치하는 '선발'시험으로 변질되어 있는 것이다. '선발'은 동시에 '배제'를 의미한다. 즉 누군가를 뽑았으면 누군가를 탈락시켜야 하는 것이다. -148쪽

국공립대학은 어떠한가. 국공립대학은 개인이 설립한 것이 아니므로 국공립대학마다 다른 이념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다른 것은 단지 소재한 지역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국공립대학이 개별적으로 성적순에 따라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은 설립취지에 근본적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오히려 국공립대학은 학생선발 기능을 국가에 위임하여 학생들을 공동으로 선발하게 하고 배정된 학생들을 교육하는 교육기관으로서, 그리고 학문연구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하게 해야 한다. -151쪽

아직도 대도시 중고등학교에 지역유지들이 돈을 모아 '공부는 잘하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에게 장학금으로 써 달라고 전달한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 우리사회에는 '공부 잘하면서 가난한 아이'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7-80년대까지만 해도 소위 고학생으로 상징되는 부모의 자본력과 아이의 성적간의 불균등 사례를 목격할 수 있었지만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 -181-182쪽

본래 '대안'이란 몰가치적인 말이다.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대안은 수없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가치의 문제에 주목한다면 그 대안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주류사회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사회를 추구하는 대안적 가치를 의미할 터이다. 제도적인 측면에 주목한다면 제도교육이 갖는 비효율성, 억압성 등에 대한 문제제기로서의 대안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대안이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대안교육 또한 그런점에서 다양한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대안'의 의미는 이 사회의 주류 이데올로기의 허구가 아닌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대안적 가치이며, 진정한 '대안교육'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희망의 교육일 때 그 의미가 있다. -191-192쪽

(로스쿨) 우수한 교수요원 및 교육시설 등 법학교육여건을 먼저 개선한다. 여기에 다양한 학부를 졸업하고 어느 정도 사회경험이 있는 우수학생이 입학한다. 이들에게 이론교육과 문제해결능력에 강한 실무교육을 실시한다. 이런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사법시험을 통해 선발한다. 이런 4다계의 과정을 거쳐 법조인이 나오면 이들은 당연히 우수한 전문 인력이지 않을 수 없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이는 법조계의 현실 문제 상황을 잘못 판단한 것이다. 현행 법조계가 드러내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교육이 아니라 독점에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쳤든 간에 이들은 소수이고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상황이다. 법률시장이 개방된다고 하여 변호사가 생활에 바로 경제적 위협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수특권계층이기에 그렇다. 이들에게 통상 분야의 전문법조인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특별한 외적 조건이 없는 한 자발적인 노력을 할 유인 동기가 없다. 따라서 로스쿨을 도입하여 전문교육을 강화하더라도 현실안주형 법조인이 될 것이며 결국 현재와 큰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251-252쪽

각 대학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 교육인적자원부 지원금을 받고 정원감축이나 전임교원을 확충하여 수입이 대폭 줄어드는 손해 보는 '계산'을 한 것이 아니라 원칙 없이 모집단위만을 바꿈녀서 '생색내기'에 급급하다. 정부가 유도하는 구조조정 방식인 통폐합과 대규모의 정원감축보다는 신입생 유치에 혈안이 되어 별 연관성 없는 학과들을 묶어 비인기학과를 자연스레 도태시키거나 일부 학부를 해체하여 인기학과를 독립시키거나 하는 등 조령모개식으로 모집단위를 바꾸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학 구조조정은 시늉이 되고 대학의 학문이 구조조정되고 있는 것이다.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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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내 인생 최고의 영화로 <봄날은 간다> <매트릭스> <비포선셋/선라이즈> 등을 뽑은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들이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 들어간 것에 대해 누군가가 왜, 라고 묻진 않았다. 묻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 수 있고 대략 공감하니까. 하지만 <공공의 적>을 최고의 영화로 뽑는다면 왜, 라고 물어볼 만하다. 내가 알고 있기론 이 영화는 당시 관객은 좀 드나들었어도 몇년이 지난 뒤에도 못잊을 영화로 떠올리거나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는 영화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난 이 영화를 최고로 뽑는다. 1편, 2편 모두 마찬가지다.

  공공의 적 2편은 사실 1편 만큼 강하진 않지만, 아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땐 1편보다 못한, 1편을 따라가려 했으나 못 미친 실패한 영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또 보고 또 보면 느낌이 다르다. 2편의 진가는 또 보고 또 보면서 영화와 우리네 현실을 맞물려 생각할 때 드러난다. 한동안 또 잊고 있다가 오랫만에 케이블로 이 영화를 보니, 지금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선언으로 시작된 -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에 대해 의심을 품는 시선이 있지만, 그게 순수한 양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삼성이 그를 꼴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라 할지라도 그건 문제되지 않는다 - 삼성의 비자금, 정계, 법조계에 뿌린 돈지랄 등의 사건이 딱 영화 속 한상우 이사의 행각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니가 필이 꽂히니깐 꽂히는대로 수사를 하게 해달라. 또 나보고 정황이며 이저거저 붙여서 기획서 올리고 그러란 말이지?" "네" "너 과거에 한상우가 너 꼴리게 한 놈이라 수사하겠다고 하는거 아니야?" "...." "야 임마 그럴 땐 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 수사했을 겁니다.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반드시 수사해야합니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거 아니냐" "아니요! 제가 그놈을 아는데요, 그 놈이라면 앞에서 모범생인 척하고 뒤에서 양아치로 살 놈이란걸 알기 때문에 수사하겠다는 겁니다." 

  전적으로 완벽하게 동일시하는건 위험하지만, 영화를 보고 신문기사를 보면 하는 짓이 어쩜 그리 똑같은지 모르겠다. 강우석 감독이 애초 삼성을 겨냥하고 만든 영화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영화 속에서 강철중이 이길 수 있었던건 그가 뚝심있는 인물이고 정의감이 투철했기 때문이다. 또 그가 맥없이 밀려났을 때 뒤에서 힘을 줄 수 있는 부장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철중이, 한상우가 돈바른 어느 윗선에서의 외압으로 경주로 발령났을 때, 부장은 자기까지 잘릴 각오로 강철중을 밀어줬다. 강철중의 후배 검사 역시도 마찬가지. 하지만 현실이라면 어땠을까. 떡찰이네 뭐네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어디부터 어디까지 썩었을지 모르는, 누구에게 수사를 맡겨야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감사원이며 검찰이며 청와대며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원이며 할 것 없이 삼성으로부터 돈 발려진 이들이 어디에서 힘을 쓸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번주 시사IN에서는 삼성 사건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삼성 SDI 미주 전 구매과정이었다는 강부찬씨는 해외에서 삼성의 비자금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에서 비자금을 만들다가 서류를 들고 나가는 바람에 삼성의 '관리'대상이 되었는데 김용철 변호사는 당시 강부찬씨를 '관리'하는 대책회의에 참석했었다고 강부찬씨는 진술했다. 다음은 김용철 변호사의 말이다. "미국에서 비자금을 만들던 친구가 비자금 서류를 들고 나가는 바람에 골머리를 앓았다. 여러 차례 회의를 열고 방법을 냈지만 해결이 안됐다. 미국에서 사립탐정을 고용했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실효가 적었다. 김인주 사장이 나한테 킬러를 고용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

  강부찬씨는 삼성이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알고 있고 도청을 하고 있다고 했다. 휴대전화를 네 개 사용했는데 모두 감시당했고, 그래서 다섯번째 휴대전화를 아이 명의로 만들었는데, 나중에 이게 고장나서 서비스 센터에 갔더니 자기 명의로 되어있더라는 것이다. 2000년 초에 피디수첩에서 삼성의 비자금 내역을 공개하려고 한 바 있는데, 당시 7명의 사립탐정이 미국에서 자신을 미행했고, 어느날 새벽 3시경 차를 타고 가는데 대기하고 있던 수상한 픽업 트럭이 시속 200Km로 들이받으려 했다고도 말한다. 그가 진술한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이건 영화 속 한상우의 행각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비자금 조성해서 해외로 빼내고, 수시로 정계, 법조계 인물들을 만나 떡값을 쥐어주며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고, 살인교사까지 했다면. 대한민국을 떡주물르듯 하려 했다고 밖에는, 대한민국을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결론이 어떻게 날진 알 수 없다. 중간에 누군가가 끼어 외압을 행사하거나 시간을 벌고 얼버무리며 사건을 마무리짓는다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양심선언했던 김용철 변호사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삼성 제품 좋다고 아무렇지 않게 구입해 쓰며 삼성의 비자금 조성을 간접적으로 도와주게 될 것이다. (이런.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이 삼성이구나.) 노무현 대통령의 5년 동안 삼성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왜 몰랐을까. 노무현 대통령과 이건희 회장이 꿍짝하고, 청와대 이하 각 정부부처와 삼성경제연구소가 꿍짝했다는 사실을. 대통령조차 사로잡은 이 거대권력을 어찌하면 좋단말이냐. 검찰조사가 공정하게 사실에 기초해서 이루어지길 기대할 뿐이다. 검찰 내부에 강철중과 김신일 같은 이들이 아직도 수두룩 하게 남아있길 바랄 뿐이다.


p.s. 내년에 공공의 적 3탄 개봉한다. :) 영화배우 설경구와 연극배우 강신일씨의 환상 콤비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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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1-2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편만큼의 임펙트가 2편에서는 없었어요 제 개인적으로는..
하지만 그 1편이...대단한 물건인 영화지요..^^

잉크냄새 2007-11-29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2편이 많이 실망스러웠지요.검사 강철중보다는 불량형사 강철중이 더 강렬하죠.
"삼성아, 그러지마라...형이 비자금 만든다고 패고 국민 우롱한다고 패고..
어떤 이씨 父子는 불법으로 살아가길래 기분나뻐! 그래서 패고..
그렇게 형한테 맞은 놈들이 4열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2바퀴다.."

가시장미 2007-11-30 09:38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미치겠습니다. 마치 경구형이 눈 앞에 있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

마늘빵 2007-11-29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 저도 첨엔 그랬는데 보면 볼수록 분노를 갖게 되더라고요.

잉크냄새님 / 크크. 아 너무 재밌습니다. 대사.

웽스북스 2007-11-2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2편은 다소 실망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워낙 1편의 기대가 컸었는지 말이죠-
근데 저 강신일 아저씨 디게 좋아해요 ㅋㅋ

비로그인 2007-11-29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킬러..

마늘빵 2007-11-30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 음, 저도 1편보다는 강도가 많이 약해졌고 느슨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분노는 사실 더 하답니다. 보면 볼수록 그래요. 제가 2편만 10번은 본거 같은데... 강신일씨 모노드라마도 작년인가 재작년에 봤어요. 대학로 연극무대서 맨 앞에서 봤는데 와 대단하더군요.

계엄령님 / 어, 숫자말고 댓글도 다시네. -_- 인터뷰에 따르면 그랬다더군요.

가시장미 2007-11-30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공공의 적은 좋아하는데..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이라도 해야지.. 원... -_ㅠ
그나저나 사시인 좋은 것 같아. 나도 정기구독 하고 싶은데.. 주간지라 조금 부담된다..
학습지처럼 밀리면 어째.. 으흐흐 아프락사스님은 안 밀리고 잘 보시나봐용~~? 홍홍~

마늘빵 2007-11-30 09:55   좋아요 0 | URL
공공의 적 볼 때마다 분노가 치솟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시사인은 음, 정기구독해도 한꺼번에 안내도 되던데. 나도 현재 수입이 없이 까먹고 있는 상태라 나눠서 내고 있음. 밀리지 않기 위해선 오는날 다 봐버리는게 좋지.

미즈행복 2007-11-30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김용철씨 말이 맞다고 생각하겠죠. 다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가 없으니...

BRINY 2007-11-30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도 그렇지만, '그래도 삼성이 무너지면 큰일나, 그럴 일도 없겠지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서 놀랐습니다.

마늘빵 2007-11-3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즈행복님 / 진실은 밝혀지겠죠? 아니면 희망사항인가.

브라이니님 / 그런 반응이 매우 많죠.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경제가 어떻고, 나라가 망하니 어쩌느니, 삼성 직원들은 어떻게 사느냐, 그들이 무슨 죄냐 등등. -_- 오버도 한참 오버했죠.
 


* 배우는 것, 시험치는 것(한국일보 서화숙 편집위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11/h2007112818585767800.htm 
 
  배운 것과 시험치는 것이 같아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 하지만 시험치는 것이 배운 것과 달라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진다는 것에는 절반만 동의. 그 말도 맞지만, 시험치는 것과 배우는 것이 동일하다고 해서 사교육이 죽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감소할 순 있겠지만, 현재 사교육 열풍은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하고 더 두드러지길 원하는 심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고로 시험치는 것이 배운 것과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더 두드러진 모습을 드러내길 바라는 부모는, 아이로 하여금 미리 밖에서 배우고 오도록 하여, 그가 학교 현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길 원할 것이다. 전국의 대학 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생 정원을 훌쩍 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 사이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왜. 부모와 아이들이 바라는건, 대학 입학이 아니라 스카이 대학 입학이므로.

  시험치는 것을 배운 것과 동일시 한다면 아무래도 사교육  의존도를 감소시키는 효과는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 전체 시스템이 경쟁 중심으로 돌아가보니 경쟁에서 이기는 자는 살아남는 거고, 그렇지 못한 자는 자연도태되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해소시키진 못할 것이다. 어느 곳에서든 내 아이가 어떻게든 두드러지길 바라기 때문에. 어제 아침 뉴스를 보니 심지어는 학예회 준비를 하는데도 과외를 한다더라. 한달전부터 악기며 무용이며 마술이며 장르를 불문하고 어느 강사의 표현에 따르면, "특공대 같은 엄마들이" 마구 달려와서는 단기간에 가능하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는 거다. 심지어는 여러 곳을 접촉하고선 선생 얼굴까지 직접 봐야 믿음이 가겠다며 단체로 면접 아닌 면접까지 해가며 교습소를 고른다고.

 대학 입시 체제가 바뀌어도 흐름을 바꾸진 못할 것이다. 그래서 비극이다. 부모들은 그들이 아이들을 혹사시킨다는 사실을 알까. 어쩌면 아이들 조차도 혹사당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예 그것이 어릴적부터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되어서 당연하게 생각할지도. 그래서 또 비극이다. 세상사에 초연하며 내 아이는 자연에서 기르겠노라, 사교육을 시키지 않겠노라, 하는 부모들도 한편에 존재한다. 하지만, 확실한 교육 철학이 없는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막연히 손놓기보다는 주변을 따라가며 적응하는게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겠지. 그렇게해서 기능과 기술을 습득한 아이들은 커서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또 다른 경쟁을 하면서 평생을 살아가겠지. 

  경쟁은 좋다. 일을 추진하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의욕을 갖게 해준다. 하지만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생겨나게 되어있고, 이기는 자는 또다른 경쟁으로 진입하고, 지는 자는 그대로 도태된다. 사실상 승자는 없다. 하나의 경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그걸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 체제를 맞이해야하므로. 내 몸의 건전지가 다 닳을 때까지. 그러고 싶을까. 고등학교 땐 그렇게 생각했다. 수능시험만 치르고나면 이제 모든 것이 끝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새로운 경쟁과 시험이 날 기다리고 있었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히 도태된 삶을 살아야했다. 그래도 예전엔 지금과 같지 않았는데 해가 갈수록 어떻게 된게 더더욱 심해진다.

p.s.   예전엔 개천에서 용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정말 개천에서 용 못난다. 개천은 그냥 개천일 뿐이다. 외국어고를 졸업한 지인의 말에 따르면, 과학고나 외국어고나 과거엔 별다른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실력으로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사교육 없이 외국어고나 과학고 같은 특목고에 입학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를 넘어서 아예 불가능하다. 가능성 제로란 말이다. 결국 돈으로 정보를 사고 돈으로 가르쳐 입학한 그곳엔 이제 돈 많은 집 아이들 뿐이다. 경쟁도 나쁘지만 그나마 그 경쟁이란 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돈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참가 자격 조차 받아낼 수 없는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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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11-29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과후 학교라는 이름으로 각종 보충수업을 하는 것도 사교육에 끌려가는 거 아닌가 싶어요.

마늘빵 2007-11-29 11:14   좋아요 0 | URL
이미 한 외고에서는 박학천 논술학원과 연계해 학생들이 돈을 주고 논술을 그쪽에 맡겼다고 하더라고요. -_- 이게 무슨...

깐따삐야 2007-11-29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학천 논술학원. 정말 뜨악하군요.

비연 2007-11-29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겁나는 세상이죠...;;;;; 개천은 개천일 뿐이라는 얘기는 암암리에 많이들 하는 얘기구요. 초등학교 때부터 갖은 방법 다 동원하여 인맥 좋다는 사립 초등학교에 넣으려 난리고(사립 초등학교마다 아버지 직업군이 다르다는군요..나참) 초등학교 들어가서는 돈을 발라서 비싼 과외 시키고...중고등학교 때는 말할 것도 없구요. 점점 세상은 슬퍼집니다... 아니 근데 논술학원에 논술을 맡긴 외고는 뭐하는 짓거리랍니까? ㅡㅡ;;;

마늘빵 2007-11-29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 학교에서 몇몇 업체와 접촉해서 시강 비슷하게 시켜놓고는 학생들에게 투표하게 해서 계약한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싸게 잘 해주면 내년에 아예 한 곳에만 밀어줄 수 있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 오가고. -_-

비연님 / 개천은 개천일 뿐이라는건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죠. 빗겨갈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이민 뿐인가 봅니다. -_- 외고로선 매우 실리있는 선택을 한거죠. 값싸게 효과적으로 대입논술을 지도할 수 있을테니. 쯧.

미즈행복 2007-11-3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시킵니다. 하지만 뭘 잘하라고 시키는게 아니라 그 시간 즐겁게 잘 놀라고 시키지요. 미술과 음악같은것. 물론 부모의 피를 받았다면 전공할 가능성이야 제로지만 전공시키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시간이 남는데 잘 놀아주지 못해서, 한 번 가보더니 재밌어하면서 또 가려고 해서 시킵니다. 제가 피아노를 너무 지겨워하면서 배워서 싫어하면 안시킨다는 원칙은 가지고 있죠. 하지만 솔직히 공부도 싫어하면 안시킬까를 생각해보면 고개가 숙여지네요. 하지만 사는데 있어서 하기 싫은 것도 해야하고 어느 정도는 배워야 도움도 되고 하니 어느 정도는 강제하겠죠. 강제해봐도 꽝이면 그 때는 다른 길을 찾아야겠고요.
그렇게 돈으로 발라서 어느 정도 보충은 되겠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게 -이렇게 말해서 좀 뭐하지만 우리 나라 대학은 좀 서열화되어있잖아요- 대학 레벨 하나 차이인것 같아요. 그 한단계를 위해서 그렇게 돈 발라가며 시킬것인가?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저는 좀 회의적이네요. 아는 친척중에 외고 간 애가 있는데 저는 외고 가면 다 스카이 가는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아마 내신을 바닥을 깐 것 같아요. 차라리 동네 학교 갔으면 내신 좋아서 대학 더 잘 가지 않았을가 -기존의 서열화 체계로- 싶더라고요.
이민? 미국도 돈 있으면 다 비싼 사립학교 보냅니다. 대학을 훨씬 잘가거든요. 한국과 마찬가지예요. 초등학교도 다 사립 보내고요. 한다리 걸러 아는 사람이 교육비가 너무 비싸 사립보내다가 공립 보냈더니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애는 재미없어하고, 엄마는 문제지 -미국도 문제지 많아요- 사서 애 공부 시키던걸요? 사람 사는데는 어디나 마찬가지같아요. 다만 한국은 땅덩어리가 좁아서 그게 첨예하게 드러날 뿐인 것이겠죠.

마늘빵 2007-11-30 11:18   좋아요 0 | URL
헙, 댓글이 엄청 길군요. -_-a
음 저도 사교육이 무조건 나쁘다가 아니라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고, 거의 교육이 외부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이건 입시 체제에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답니다. 한국 교육의 거의 대부분의 시스템이 미국과 일본에서 본따온 것이겠죠. 그러다보니 드러나는 문제점도 비슷비슷하고. 미국에서 생활해본건 아니지만, 미국도 비슷한 구조와 비슷한 폐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즈행복님 말씀처럼.좋지 않은 시스템을 자꾸만 따라가다보니 경쟁이 가속화되고 제도에서 이탈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생각입니다. 어렵게 외고 가서 경쟁하며 뒤에 처진 이들은, 그들이 뚫고 들어온 또다른 경쟁 체제를 만나 도태된 이들로 볼 수 있겠죠. 어딜가든 끊임없이 경쟁이 지속되고, 올라서지 않으면 낙오되는 그런 모습들이 곳곳에서 '과거보다' 매우 많이 목격됩니다. 비극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