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
이철호 외 지음 / 메이데이 / 2007년 5월
품절


소수의 경쟁력 있는 인재가 육성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학생들이 현 교육제도 아래서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영어와 컴퓨터에 능숙한 젊은이들을 많이 육성해 낼 수 있을지는 모르나, 창조적 지식, 높은 수준의 과학적 지식, 문화적 감성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지식인을 양성해내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12쪽

그(홍세화)는 특정 개인을 넘어서 우리 사회 구성원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의식과 존재에 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에 의하면 그릇된 교육으로 인해 의식이 존재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고 있다. 국민학교라는 군국주의 교육이 의식의 통제 이상의 강력한 효과를 갖는 권력 지배 장치로서 몸을 통제했다는 것이다. -15쪽

설령 서민의 자식이 '개천에서 용이 나서' 교육 자본을 통해 계층상승에 성공한다고 해도 계급 구조에서는 아무런 차이를 가져오지 않는다. 서민 출신도 일단 출세하면 자신의 출신 계급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천에서 용 낭기가 무척 어렵지만, 어렵사리 개천 출신의 용이 된다 하더라도 그는 이미 개천 사람들을 대변하지 않는다. 애당초 개천 출신은 지배계급의 '마름'이 된다는 조건에서만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38쪽

그리하여 한국에서 입시는 평가가 교육과정에 발전적인 영향을 주기보다는 평가에 의해 교육과정이 역으로 왜곡당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평가가 교육을 지배할 때 교수 학습 활동은 시험에 대비한 능력을 키우는 활동으로 전락하고 만다. 문제 해결력 등 시험에서 요구되는 기능만이 의미를 가지게 되고 단기간에 많은 지식을 주입시키는 주입식 수업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

잦은 제도변화와 졸속적인 정책입안은 수험생들과 학교, 학부모들의 심리적인 불안을 가중시키며, 대학입시정책의 변화에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태도를 형성하였다. 즉 체계 순응적이게 하며, 입시정보를 쥔 자들에게 종속되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자세히 보면 중요한 변화가 보이는데, 1980년대 대학입학과정을 국가가 장악하면서부터 대학의 수직적인 서열화가 고착되었으며, 이는 국가고사가 서열화된 대학에 학생을 입학고사 성적순으로 배정하는 결과를가져오게 하고 있다. -66쪽

이 과정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지표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학력이라는 기준이다. 근대 제도교육의 형성과정에서 교육의 양적 기회는 확대되었을지언정 그에 반해 사회 불평등을 확대재생산해 왔다. 이를 위해 기회는 확대하면서도 동시에 그 기회를 차등화함으로써 평등한 접근의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제가 바로 학업 성취도로 측정되는 학력이라는 준거이다. 우리 사회는 학력을 직접구조와 연동시킴으로써, 불평등이 개인의 학력차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게 한다. 즉 학력수준이 높으면 고위직에 오르고 고임금을 받는 것을 정당화함으로써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것이 학력의 신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력은 개인의 잠재력이나 학교의 교육활동과 무관한 영역에 변인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직업, 재산, 거주 지역과 학생의 학력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학력은 공정한 준거가 아니다. 결국 기득권 세력이 의도하는대로 공정한 학력평가라는 쟁점을 따르다 보면 갈 곳은 체념과 불평등에 이를 수밖에 없다.-69쪽

교육은 다음 세대를 위한 노력이다. 지금의 삶이 차별적이거나 불평등하다면, 사회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에는 차별과 불평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해 나가야 한다. 즉 교육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불평등을 극복하고 사회를 민주적이거나 또는 공동체적으로 통합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우리 교육은 심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 교육으로 불평등을 극복하기는커녕 교육으로 인해 오히려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71쪽

교육은, 특히 학교 교육은 보편과 중립이라는 가면을 쓴 채 불평등한 관계를 재생산하면서 동시에 이를 은폐하는, 그래서 자본주의 지배구조를 유지하도록 하는 핵심 기제다. 그리고 이 모든 지배와 은폐와 과정을 체계화한 것이 교육과정이다. 그러므로 교육과정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비밀과 거짓말로 점철된 교육이 이루어지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77-78쪽

흔히 21세기를 문화의 세기, 지식정보화 사회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는 다양성과 창의력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왜곡된 지식 위주의 입시 교육은 암기력 있는 로봇을 만들어낼 뿐이다. 창의력 있는 인간은 인지 능력과 함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정의 능력, 문화 감수성과 연계된 정서 능력을 균형 있게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교육과정은 지식 교육을 넘어 문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82-83쪽

또한 일반적으로 학교교육의 질을 좌우하는 요소로 중요하게 꼽히는 것은 교육재정, 교원확보율, 교육시설, 학급당 학생 수, 학업성취도 등이다. 그런데 교육인적자원부는 일반적이며 실질적인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안은 무시한 채, 오로지 교원 평가만을 학교교육의 질을 높일 방안이라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교육의 질을 둘러싼 책임을 '개별 교원'에게 떠넘기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106쪽

교사의 전문성이란 지적으로 복잡하고 다면적인 것이어서 일률적인 기준에 의해 교사의 전문적 역량과 실천의 질을 높잉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교원평가는 교사의 전문성을 기술주의적이고 타율적으로 붙잡는 경향이 있어 결과적으로 교원평가를 통하여 교육활동을 통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108쪽

입시가 획일적인 줄 세우기식으로 이루어지면서 학생들은 입시성적에 노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여기에 입시성적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한 사교육 광풍이 휘몰아치면서 교육이 빈부격차의 대물림을 조장하는 기재가 되고 있다. 이미 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부모의 학력수준이 높거나 경제력이 높을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그리고 교육여건이 입시교육에 집중된 곳일수록 학생들의 성적이 높다고 밝혀지고 있다.

지금과 같은 입시경쟁체제에서는 예전처럼 단지 본인의 노력이나, 타고난 소질만으로는 높은 입시성적을 얻을 수 없으며, 따라서 서울대와 같은 상위권 대학 역시 진학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처럼 대학서열을 유지하기 위한 상위권 대학들의 한 줄 세우기식 학생선발은 학생들의 다양한 소질과 적성을 파괴하고 있음은 물론 교육이 해야 할 공공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교육은 계층이동의 기능을 상실함으로써, 빈부격차에 따라 사회적 계층이 그대로 이어지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유지시키는데 기여하고 있을 뿐이다. -131쪽

학벌문제가 현실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법령이 제정되어야 한다. 법은 학벌이 사회구성원 다수를 소외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공정성 확보를 위해 독점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정신을 담아야 한다. 이 법안이 담아야 할 기본정신은 '할당'과 '제한'의 원칙이다.

구체적으로 법령은 적극적인 면과 소극적인 면에서 두 방향으로 제정되어야 한다. 적극적으로는 지역인재를 할당하여 등용하는 것이며, 소극저긍로는 공직자 채용과 임명시 각 대학의 비율을 제한하는 것이다.

학벌 문제의 핵심은 사회 각 분야에서 권력 있는 높은 자리를 몇 개 대학 출신이 독차지 하는 것이다. 학벌 없는 사회로 가려면 사회 권력을 몇 개 대학이 독점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 곳에 권력이 골고루 나눠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에서 학벌을 선호하는 것도 다른 어떠 이유보다 공직이 독점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이 시민사회 위에 군림하는 한국에서는 기업 운영을 할 때도 언제나 국가 기관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서울대 권력이 게속 확대 재생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34-135쪽

학교 간, 지역 간 학력 격차 때문에 내신은 믿을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학교 간, 지역 간 차이를 인정한 평가야말로 공정한 평가이다. 강남에서 사교육의 혜택을 받으며 자란 학생과 농어촌 지역의 학생을 동일한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 아니라, 강남 학생은 강남 학생끼리 경쟁하고 농어촌 학생은 농어촌 학생끼리 경쟁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 아니 나아가 더 열등한 교육 여건을 가진 이들에게 그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는 보정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147쪽

기본적인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 아니라 학생을 가려내어 일류대부터 지방대까지 배치하는 '선발'시험으로 변질되어 있는 것이다. '선발'은 동시에 '배제'를 의미한다. 즉 누군가를 뽑았으면 누군가를 탈락시켜야 하는 것이다. -148쪽

국공립대학은 어떠한가. 국공립대학은 개인이 설립한 것이 아니므로 국공립대학마다 다른 이념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다른 것은 단지 소재한 지역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국공립대학이 개별적으로 성적순에 따라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은 설립취지에 근본적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오히려 국공립대학은 학생선발 기능을 국가에 위임하여 학생들을 공동으로 선발하게 하고 배정된 학생들을 교육하는 교육기관으로서, 그리고 학문연구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하게 해야 한다. -151쪽

아직도 대도시 중고등학교에 지역유지들이 돈을 모아 '공부는 잘하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에게 장학금으로 써 달라고 전달한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 우리사회에는 '공부 잘하면서 가난한 아이'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7-80년대까지만 해도 소위 고학생으로 상징되는 부모의 자본력과 아이의 성적간의 불균등 사례를 목격할 수 있었지만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 -181-182쪽

본래 '대안'이란 몰가치적인 말이다.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대안은 수없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가치의 문제에 주목한다면 그 대안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주류사회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사회를 추구하는 대안적 가치를 의미할 터이다. 제도적인 측면에 주목한다면 제도교육이 갖는 비효율성, 억압성 등에 대한 문제제기로서의 대안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대안이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대안교육 또한 그런점에서 다양한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대안'의 의미는 이 사회의 주류 이데올로기의 허구가 아닌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대안적 가치이며, 진정한 '대안교육'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희망의 교육일 때 그 의미가 있다. -191-192쪽

(로스쿨) 우수한 교수요원 및 교육시설 등 법학교육여건을 먼저 개선한다. 여기에 다양한 학부를 졸업하고 어느 정도 사회경험이 있는 우수학생이 입학한다. 이들에게 이론교육과 문제해결능력에 강한 실무교육을 실시한다. 이런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사법시험을 통해 선발한다. 이런 4다계의 과정을 거쳐 법조인이 나오면 이들은 당연히 우수한 전문 인력이지 않을 수 없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이는 법조계의 현실 문제 상황을 잘못 판단한 것이다. 현행 법조계가 드러내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교육이 아니라 독점에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쳤든 간에 이들은 소수이고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상황이다. 법률시장이 개방된다고 하여 변호사가 생활에 바로 경제적 위협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수특권계층이기에 그렇다. 이들에게 통상 분야의 전문법조인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특별한 외적 조건이 없는 한 자발적인 노력을 할 유인 동기가 없다. 따라서 로스쿨을 도입하여 전문교육을 강화하더라도 현실안주형 법조인이 될 것이며 결국 현재와 큰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251-252쪽

각 대학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 교육인적자원부 지원금을 받고 정원감축이나 전임교원을 확충하여 수입이 대폭 줄어드는 손해 보는 '계산'을 한 것이 아니라 원칙 없이 모집단위만을 바꿈녀서 '생색내기'에 급급하다. 정부가 유도하는 구조조정 방식인 통폐합과 대규모의 정원감축보다는 신입생 유치에 혈안이 되어 별 연관성 없는 학과들을 묶어 비인기학과를 자연스레 도태시키거나 일부 학부를 해체하여 인기학과를 독립시키거나 하는 등 조령모개식으로 모집단위를 바꾸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학 구조조정은 시늉이 되고 대학의 학문이 구조조정되고 있는 것이다.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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