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내 인생 최고의 영화로 <봄날은 간다> <매트릭스> <비포선셋/선라이즈> 등을 뽑은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들이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 들어간 것에 대해 누군가가 왜, 라고 묻진 않았다. 묻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 수 있고 대략 공감하니까. 하지만 <공공의 적>을 최고의 영화로 뽑는다면 왜, 라고 물어볼 만하다. 내가 알고 있기론 이 영화는 당시 관객은 좀 드나들었어도 몇년이 지난 뒤에도 못잊을 영화로 떠올리거나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는 영화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난 이 영화를 최고로 뽑는다. 1편, 2편 모두 마찬가지다.

  공공의 적 2편은 사실 1편 만큼 강하진 않지만, 아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땐 1편보다 못한, 1편을 따라가려 했으나 못 미친 실패한 영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또 보고 또 보면 느낌이 다르다. 2편의 진가는 또 보고 또 보면서 영화와 우리네 현실을 맞물려 생각할 때 드러난다. 한동안 또 잊고 있다가 오랫만에 케이블로 이 영화를 보니, 지금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선언으로 시작된 -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에 대해 의심을 품는 시선이 있지만, 그게 순수한 양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삼성이 그를 꼴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라 할지라도 그건 문제되지 않는다 - 삼성의 비자금, 정계, 법조계에 뿌린 돈지랄 등의 사건이 딱 영화 속 한상우 이사의 행각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니가 필이 꽂히니깐 꽂히는대로 수사를 하게 해달라. 또 나보고 정황이며 이저거저 붙여서 기획서 올리고 그러란 말이지?" "네" "너 과거에 한상우가 너 꼴리게 한 놈이라 수사하겠다고 하는거 아니야?" "...." "야 임마 그럴 땐 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 수사했을 겁니다.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반드시 수사해야합니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거 아니냐" "아니요! 제가 그놈을 아는데요, 그 놈이라면 앞에서 모범생인 척하고 뒤에서 양아치로 살 놈이란걸 알기 때문에 수사하겠다는 겁니다." 

  전적으로 완벽하게 동일시하는건 위험하지만, 영화를 보고 신문기사를 보면 하는 짓이 어쩜 그리 똑같은지 모르겠다. 강우석 감독이 애초 삼성을 겨냥하고 만든 영화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영화 속에서 강철중이 이길 수 있었던건 그가 뚝심있는 인물이고 정의감이 투철했기 때문이다. 또 그가 맥없이 밀려났을 때 뒤에서 힘을 줄 수 있는 부장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철중이, 한상우가 돈바른 어느 윗선에서의 외압으로 경주로 발령났을 때, 부장은 자기까지 잘릴 각오로 강철중을 밀어줬다. 강철중의 후배 검사 역시도 마찬가지. 하지만 현실이라면 어땠을까. 떡찰이네 뭐네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어디부터 어디까지 썩었을지 모르는, 누구에게 수사를 맡겨야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감사원이며 검찰이며 청와대며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원이며 할 것 없이 삼성으로부터 돈 발려진 이들이 어디에서 힘을 쓸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번주 시사IN에서는 삼성 사건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삼성 SDI 미주 전 구매과정이었다는 강부찬씨는 해외에서 삼성의 비자금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에서 비자금을 만들다가 서류를 들고 나가는 바람에 삼성의 '관리'대상이 되었는데 김용철 변호사는 당시 강부찬씨를 '관리'하는 대책회의에 참석했었다고 강부찬씨는 진술했다. 다음은 김용철 변호사의 말이다. "미국에서 비자금을 만들던 친구가 비자금 서류를 들고 나가는 바람에 골머리를 앓았다. 여러 차례 회의를 열고 방법을 냈지만 해결이 안됐다. 미국에서 사립탐정을 고용했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실효가 적었다. 김인주 사장이 나한테 킬러를 고용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

  강부찬씨는 삼성이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알고 있고 도청을 하고 있다고 했다. 휴대전화를 네 개 사용했는데 모두 감시당했고, 그래서 다섯번째 휴대전화를 아이 명의로 만들었는데, 나중에 이게 고장나서 서비스 센터에 갔더니 자기 명의로 되어있더라는 것이다. 2000년 초에 피디수첩에서 삼성의 비자금 내역을 공개하려고 한 바 있는데, 당시 7명의 사립탐정이 미국에서 자신을 미행했고, 어느날 새벽 3시경 차를 타고 가는데 대기하고 있던 수상한 픽업 트럭이 시속 200Km로 들이받으려 했다고도 말한다. 그가 진술한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이건 영화 속 한상우의 행각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비자금 조성해서 해외로 빼내고, 수시로 정계, 법조계 인물들을 만나 떡값을 쥐어주며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고, 살인교사까지 했다면. 대한민국을 떡주물르듯 하려 했다고 밖에는, 대한민국을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결론이 어떻게 날진 알 수 없다. 중간에 누군가가 끼어 외압을 행사하거나 시간을 벌고 얼버무리며 사건을 마무리짓는다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양심선언했던 김용철 변호사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삼성 제품 좋다고 아무렇지 않게 구입해 쓰며 삼성의 비자금 조성을 간접적으로 도와주게 될 것이다. (이런.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이 삼성이구나.) 노무현 대통령의 5년 동안 삼성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왜 몰랐을까. 노무현 대통령과 이건희 회장이 꿍짝하고, 청와대 이하 각 정부부처와 삼성경제연구소가 꿍짝했다는 사실을. 대통령조차 사로잡은 이 거대권력을 어찌하면 좋단말이냐. 검찰조사가 공정하게 사실에 기초해서 이루어지길 기대할 뿐이다. 검찰 내부에 강철중과 김신일 같은 이들이 아직도 수두룩 하게 남아있길 바랄 뿐이다.


p.s. 내년에 공공의 적 3탄 개봉한다. :) 영화배우 설경구와 연극배우 강신일씨의 환상 콤비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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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1-2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편만큼의 임펙트가 2편에서는 없었어요 제 개인적으로는..
하지만 그 1편이...대단한 물건인 영화지요..^^

잉크냄새 2007-11-29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2편이 많이 실망스러웠지요.검사 강철중보다는 불량형사 강철중이 더 강렬하죠.
"삼성아, 그러지마라...형이 비자금 만든다고 패고 국민 우롱한다고 패고..
어떤 이씨 父子는 불법으로 살아가길래 기분나뻐! 그래서 패고..
그렇게 형한테 맞은 놈들이 4열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2바퀴다.."

가시장미 2007-11-30 09:38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미치겠습니다. 마치 경구형이 눈 앞에 있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

마늘빵 2007-11-29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 저도 첨엔 그랬는데 보면 볼수록 분노를 갖게 되더라고요.

잉크냄새님 / 크크. 아 너무 재밌습니다. 대사.

웽스북스 2007-11-2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2편은 다소 실망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워낙 1편의 기대가 컸었는지 말이죠-
근데 저 강신일 아저씨 디게 좋아해요 ㅋㅋ

비로그인 2007-11-29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킬러..

마늘빵 2007-11-30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 음, 저도 1편보다는 강도가 많이 약해졌고 느슨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분노는 사실 더 하답니다. 보면 볼수록 그래요. 제가 2편만 10번은 본거 같은데... 강신일씨 모노드라마도 작년인가 재작년에 봤어요. 대학로 연극무대서 맨 앞에서 봤는데 와 대단하더군요.

계엄령님 / 어, 숫자말고 댓글도 다시네. -_- 인터뷰에 따르면 그랬다더군요.

가시장미 2007-11-30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공공의 적은 좋아하는데..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이라도 해야지.. 원... -_ㅠ
그나저나 사시인 좋은 것 같아. 나도 정기구독 하고 싶은데.. 주간지라 조금 부담된다..
학습지처럼 밀리면 어째.. 으흐흐 아프락사스님은 안 밀리고 잘 보시나봐용~~? 홍홍~

마늘빵 2007-11-30 09:55   좋아요 0 | URL
공공의 적 볼 때마다 분노가 치솟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시사인은 음, 정기구독해도 한꺼번에 안내도 되던데. 나도 현재 수입이 없이 까먹고 있는 상태라 나눠서 내고 있음. 밀리지 않기 위해선 오는날 다 봐버리는게 좋지.

미즈행복 2007-11-30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김용철씨 말이 맞다고 생각하겠죠. 다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가 없으니...

BRINY 2007-11-30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도 그렇지만, '그래도 삼성이 무너지면 큰일나, 그럴 일도 없겠지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서 놀랐습니다.

마늘빵 2007-11-3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즈행복님 / 진실은 밝혀지겠죠? 아니면 희망사항인가.

브라이니님 / 그런 반응이 매우 많죠.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경제가 어떻고, 나라가 망하니 어쩌느니, 삼성 직원들은 어떻게 사느냐, 그들이 무슨 죄냐 등등. -_- 오버도 한참 오버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