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는 것, 시험치는 것(한국일보 서화숙 편집위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11/h2007112818585767800.htm
배운 것과 시험치는 것이 같아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 하지만 시험치는 것이 배운 것과 달라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진다는 것에는 절반만 동의. 그 말도 맞지만, 시험치는 것과 배우는 것이 동일하다고 해서 사교육이 죽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감소할 순 있겠지만, 현재 사교육 열풍은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하고 더 두드러지길 원하는 심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고로 시험치는 것이 배운 것과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더 두드러진 모습을 드러내길 바라는 부모는, 아이로 하여금 미리 밖에서 배우고 오도록 하여, 그가 학교 현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길 원할 것이다. 전국의 대학 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생 정원을 훌쩍 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 사이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왜. 부모와 아이들이 바라는건, 대학 입학이 아니라 스카이 대학 입학이므로.
시험치는 것을 배운 것과 동일시 한다면 아무래도 사교육 의존도를 감소시키는 효과는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 전체 시스템이 경쟁 중심으로 돌아가보니 경쟁에서 이기는 자는 살아남는 거고, 그렇지 못한 자는 자연도태되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해소시키진 못할 것이다. 어느 곳에서든 내 아이가 어떻게든 두드러지길 바라기 때문에. 어제 아침 뉴스를 보니 심지어는 학예회 준비를 하는데도 과외를 한다더라. 한달전부터 악기며 무용이며 마술이며 장르를 불문하고 어느 강사의 표현에 따르면, "특공대 같은 엄마들이" 마구 달려와서는 단기간에 가능하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는 거다. 심지어는 여러 곳을 접촉하고선 선생 얼굴까지 직접 봐야 믿음이 가겠다며 단체로 면접 아닌 면접까지 해가며 교습소를 고른다고.
대학 입시 체제가 바뀌어도 흐름을 바꾸진 못할 것이다. 그래서 비극이다. 부모들은 그들이 아이들을 혹사시킨다는 사실을 알까. 어쩌면 아이들 조차도 혹사당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예 그것이 어릴적부터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되어서 당연하게 생각할지도. 그래서 또 비극이다. 세상사에 초연하며 내 아이는 자연에서 기르겠노라, 사교육을 시키지 않겠노라, 하는 부모들도 한편에 존재한다. 하지만, 확실한 교육 철학이 없는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막연히 손놓기보다는 주변을 따라가며 적응하는게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겠지. 그렇게해서 기능과 기술을 습득한 아이들은 커서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또 다른 경쟁을 하면서 평생을 살아가겠지.
경쟁은 좋다. 일을 추진하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의욕을 갖게 해준다. 하지만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생겨나게 되어있고, 이기는 자는 또다른 경쟁으로 진입하고, 지는 자는 그대로 도태된다. 사실상 승자는 없다. 하나의 경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그걸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 체제를 맞이해야하므로. 내 몸의 건전지가 다 닳을 때까지. 그러고 싶을까. 고등학교 땐 그렇게 생각했다. 수능시험만 치르고나면 이제 모든 것이 끝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새로운 경쟁과 시험이 날 기다리고 있었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히 도태된 삶을 살아야했다. 그래도 예전엔 지금과 같지 않았는데 해가 갈수록 어떻게 된게 더더욱 심해진다.
p.s. 예전엔 개천에서 용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정말 개천에서 용 못난다. 개천은 그냥 개천일 뿐이다. 외국어고를 졸업한 지인의 말에 따르면, 과학고나 외국어고나 과거엔 별다른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실력으로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사교육 없이 외국어고나 과학고 같은 특목고에 입학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를 넘어서 아예 불가능하다. 가능성 제로란 말이다. 결국 돈으로 정보를 사고 돈으로 가르쳐 입학한 그곳엔 이제 돈 많은 집 아이들 뿐이다. 경쟁도 나쁘지만 그나마 그 경쟁이란 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돈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참가 자격 조차 받아낼 수 없는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