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엄마가 일을 나가셨다가 밤늦게 들어오셨다. 10시경쯤. 엄마는 항상 아침 9시쯤 나가셨다 이때쯤 들어오신다. 많이 배우신 것도 아니고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으신 것도 아니라 어려워진 가정형편에 아버지가 을 벌어오지 못하시자 어머니가 생활전선에 뛰어든지 몇년이 흘렀다. 거의 6년정도? 몇년후면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생하시는 엄마. 사실 빌붙어서 계절이 바뀔 때면 옷 챙겨받아 입었고, 때마다 비싸고 맛있는 과일 실컷 먹고 있으며, 작년엔 내 눈 라섹 수술비와 다한증 수술비까지 대주셨다. 물론 아빠도 조금 보탰지만. 그러니 벌어오면 거금이 바로바로 어딘가로 새버리고 남는 돈이 없다. 얼마나 허탈하실까. 뼈빠지게 일해 번돈이 그렇게 한순간에 쭉 빠져버리니.

  밤늦게 들어오신 엄마한테 동생이 뭐라고 한다. 난 문닫고 컴퓨터 앞에 있어서 잘 못들었다. 그런데 대략 동생이 엄마한테 화내는 분위기였다. 엄마는 마지못해 또 "알았다"라고 했다. 이런 상황 자주 연출되기 때문에 난 이제 그러려니하면서 관심도 없다.

  그런데 오늘 아침 엄마가 일어나고, 내가 일어나고, 밖에서 복숭아 까먹으면서 엄마가 그러신다.

  "이따 김밥이나 한줄 사와야겠다"

  "왜"

 "ooo가 내가 전에 일요일날 김밥이나 싸야겠다고 했는데 어제 과일 사오느라 무거워서 김밥 재료를 안사왔는데 김밥 먹고 싶다고 그러네"

 "헉! 저거 정신이 있는 애가 없는 애야? 왜 저런대..."

 그렇다. 어젯밤 그것은 동생이 기여이 일요일 아침에 김밥을 먹어야겠다는 것이었고, 엄마는 마지못해 그래 싸주마 했던 것이다. 이런 정신 나간. 도대체 저건 나이를 어디로 처먹은건지(페이퍼 보시는 분들께 이런 용어를 보게 해서 죄송) 모르겠다. 정말 화가 난다. 개념이라는게 없는 애다. 매번 자기 옷사주고 용돈주고 스케일링 해주고 뭐 해주고 할 때만 살랑살랑 거리며 엄마옆에 붙어있지 저런 엄마가 돈도 안주면 내처버릴 애다. 갑자기 얼마전 읽었던 프란츠 카프카 의 <변신>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그레고르의 가족들이 그가 벌레 로 변신하자 이전까지 그가 벌어오던 돈으로 먹고 살던 기억은 간데없이 그를 내처버린.

  동생은 나보다 한 살 어리며, 여자이고, 대학 4학년 휴학중이며, 전공과 전혀 관련없는 아나운서 시험을 보겠노라고 저러고 있은지 꽤 지났다. 그리고 몇 차례 떨어졌다. 그런데 난 얘가 계속 떨어지다 지쳐서 다른 직업을 택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절대로 절대로 이런 아이는 아나운서 같은거 해서는 안된다. 아나운서 라는 직업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덕목들 - 물론 내가 그걸 다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지만 난 스스로를 판단할 때 그래도 기본적인 요인들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지니지 못한 인간이 누군가에게 행사하게 될 그 영향력. 이건 실로 무서운 것이다.

  나는 아나운서를 만들어주는거 달달 외워서 입으로 내뱉는 앵무새라고 말하곤 하지만 사실상 사람들이 아나운서에 대해 갖는 관심이나 신뢰는 대단한 것이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 그리고 일부 아나운서의 경우 앵무새 수준을 넘어서서 사회에 영향력 있는 발언을 하는 경우도 많다. 손석희씨같은. 또 몇 차례 어떤 아나운서가 티비를 통해 자기생각을 한 줄 말했다가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온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봤을 때 아나운서의 사회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으며, 이 자리는 아무나 차지해서는 안된다고 보는 바, 내 동생 같은 위인이 이 자리에 들어가서는 절대 안된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뿐만 아니라 어느 직업이던 아나운서 아닌 다른 직업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업은 절대 안된다. 내 동생은 그냥 조그마한 회사에 들어가서 그 부서내에서 일만 하며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장사할 스타일은 아니고, 그렇다고 창의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아해도 아니다. 누가 얠 데려가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근데 외모는 그냥 그런대로 되는 이 아해를 데려가도 그 남자가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은 또다른 문제이다. 왠만한 남자가 아니고서야 이 아해를 버텨내지 못할 듯 싶다.

  난 저것과 거의 말을 안한다.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을 한다. 잉크 샀으니 돈 줘. 프린터 고장났다. 어제 신문 어딨냐 뭐 이런 정도. 그런데 이것이 가끔 지가 아쉬울 땐 웃으며 살랑대며 내 방에 들어와 아무런 말 없이 내 디카를 가져가거나 - 아니 지것도 아닌데 얘는 전에 내가 뭐라하면 마치 자기걸 내가 뺏어가는 양 난리를 친다 - 기타 뭐 내 도움이 필요할 때 그땐 웃으며 다가온다. 그래도 난 이제 이와 같은 경혐을 겪어본지라 역시 딱딱한 변화없는 표정으로 받아치곤 한다.

  엄마가 아침에 김밥나라에서 김밥을 사오면 저건 또 맛있게 냠냠 먹고 있겠지. 아니면 집에서 만든 김밥이 아니라고 또 한소리하거나.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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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5-08-28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막내가 좀 이기적인 데가 있지요...
피를 나눈 형제도 참 아니다 싶을때가 있어요.
그래도 어쩌요...가족인걸.....이쁜 구석(?)을 찾아보세요....

2005-08-28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05-08-28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막내는 안 저랬는데(나 막내^^)

BRINY 2005-08-28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막내는 막내티 낸다는 데 동의해요.

로렌초의시종 2005-08-2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 없는 동생을 거두고 있어서 유일하게 좋은 점은 타인에게 관대할 수 있다는 것과 인격수양이 된다는 것이죠. 물론 저는 완전히 수양이 안되어서 수시로 폭발 중입니다.

울보 2005-08-28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저도 장녀인데,,동생보다 더 막내같거든요,,,딸둘이라..
결혼하고 철이 든다 생각하는데 엄마는 결혼전의 제가 더 좋다고 하네요,왜요,,몰라요,ㅎㅎ

책속에 책 2005-08-2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동생도 정말 막내티가 줄줄 흐른다고 모두가 입을 모으던 아이였는데요..대학졸업하자마자 사회물을 먹더니 어른스러워졌어요..요즘은 자매가 아니라 친구삼아도 좋을만큼...사회에 나가 차가운 비바람을 맞아보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요?
아프락사스님이 그때까지만 오빠답게 너그러이 이해하세요~^^

이매지 2005-08-28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철딱서니없는 동생때문에 날이갈수록 성격만 나빠지고 있습니다 -_ -

비로그인 2005-08-28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배 이해합니다. 단연 저희집만 그러한게 아니었군요. ㅠ

2005-08-28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리스 2005-08-28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분 때문에 많이 속상했겠네요. 위에 댓글을 보니 많은 분들께서 좋은말씀 해주셨는데. 아직 어리고 돈을 버는게 얼마나 힘든지 몸소 체험해보지 않아서 그럴거에요. 밉지만 그래도 한 가족이니 오빠로서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그래야 나중에 더 큰소리치죠. ^^ 혹시 알아요? 나중에 철들어서 어머니에게 정말 잘하고 오빠도 잘 챙기는 모습 보여줄지.

인터라겐 2005-08-28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러다 언니한테 엄청스레 맞으면서 컸어요... 철이 없어서 그렇겠지요..나중엔 더 잘 하겠지요... 안그럴까요?

클리오 2005-08-2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마태님 페이퍼 같아요... ^^ 어느 집이나 철없는 사람이 한명쯤 있는 것 같아요. 형제자매가 아니면 부모가... ^^

perky 2005-08-28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땜에 속상해하는 맘 충분히 이해가 되요..그래도 님이 철들어서 어머니께서 많이 든든해 하시겠어요..

sweetrain 2005-08-28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돈 대신 월급 한번 받아보라죠. 저런 소리 나오나...ㅡ.ㅡ 아님, 차라리 독립을 시켜 버리세요. 방 하나 얻어주고 알아서 돈 벌어 살아 보라고...아마 한달도 못 버티고 정신차려서 올 겁니다...(앗 남의 동생에게 뭐 이런 시니컬한 반응을...ㅡ.ㅡ)

이잘코군 2005-08-28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단비님 잘 하셨습니다. ㅋㅋㅋ 댓글이 넘 많아서 답글 달 엄두를 못내고 있던 중이었는데.

sweetrain 2005-08-28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립 4년차...ㅡ.ㅡ 남의 돈 받기가 쉽지 않더군요...

릴케 현상 2005-08-29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내 규탄 분위기 미워-_-

코마개 2005-08-29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뭐야..다들 막내를 미워하네.

이잘코군 2005-08-29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전 장남입니다.

mannerist 2005-08-29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역시나. 매너는 아빠/엄니랑 형이 그런 시절 두들겨 패서 그나마 사람 구실 하고 사는건가요? 그래도 패지 마세요. 매너처럼되요 -_-;

2006-06-23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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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동물농장>으로 오웰에 감탄했고, <1984년>으로 그의 진가를 알았으며, <카탈로니아 찬가>로 지루하고 재미없음을 느꼈고, <코끼리를 쏘다>로 그가 이제 서서히 질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제 그의 남은 책들 <제국은 없다> 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읽어낼 자신이 없다. 오웰이 좋아져서 그의 책들을 다 섭렵하고 싶었지만 이자가 이제 지루하게 느껴지니 어쩌랴. 난 같은 값이면 그의 남은 재미없어 보이는 저서들에 돈을 들이느니 차라리 다른 작가를 물색하련다.

  대체적으로 <코끼리를 쏘다>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높은 편이다. 나의 그것에 비하면. 별 네 개 혹은 별 다섯 개 정도를 부여하고 있는데, 난 그만한 가치를 느끼지는 못했다. 건성건성 읽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세개반을 줄 수 있다면 난 그리 했을 것이나 네 개를 주고 싶진 않았기에 세 개를 줄 수 밖에 없었다. 순전히 나라는 독자의 개인적인 느낌이다. '코끼리를 쏘다'라는 이 책의 제목은 안에 담긴 조지 오웰의 여러 단편들 중의 하나에서 따온 것이다. 오웰이 지은 제목이 아닌 우리네 편집자들이 오웰의 단편을 엮어내면서 만들어낸 우리만의 제목인 것이다. 엄밀히 오웰의 책은 아니다. 너저분하게 여기저기 널려있는 그의 잡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일 뿐.

   이 책에는 오웰이 살아온  삶과 밀착된 세심한 관찰과 사색에서 비롯된 글들이 담겨있다. 크게 제 1부 식민지에서 보낸 날들, 제2부 문학과 정치, 제 3부 파리와 런던의 뒷골목, 제 4부 일상에 스민 정치성, 제 5부 유럽 문학에 대한 단상들의 5가지로 구성되어있으며, 각각 5개에서 7개 가량의 단문들이 실려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코끼리를 쏘다'는 그가 버마에서 경찰생활을 할 당시에 도망쳐 난장판을 만들었던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단 코끼리에 대한 묘사 뿐 아니라 그가 관찰한 버마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생각과 태도, 그리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 등을 풀어놓고 있다.

  한 사물에 대한 그의 관찰과 사색은 꽤나 깊이있게 전개된다. 다음은 첫번째 단문 '교수형'의 일부분이다.

  "곧 사형될 사형수의 이런 행동은 이상했지만,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창자는 음식물을 소화해내고, 피부는 스스로를 재생시키고, 발톱은 자라고, 세포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냉혹한 어리석음 속에서도 악착같이 작용하고 있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될 10분의 1초의 그 순간에도 그의 발톱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P26)

  사형을 언도받은 한 죄수가 죽기전에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쓴 것이다. 곧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낮 사형장으로 행하는 길에 있는 물웅덩이를 피해 더러운 것을 묻히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 머리는 이미 죽을 걸 알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몸은 여전히 계속 살기 위해 사소한 것에까지 신경쓰며 몸부림치고 있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과학적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생을 갈구하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

   이후 계속되는 '나는 왜 쓰는가' '소설의 옹호' '문학과 전체주의' '문학비용' 까지는 그럭저럭 좋다. 하지만 이후의 것들은 계속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듯 지루하다. 물론 소재는 다르지만. 복수, 공원, 두꺼비, 스포츠, 서점, 영국요리, 차, 담배 등등 그의 시선은 아주 사소한 것에 머물고 있으며, 그의 일상 속의 사소한 소재로부터 생각은 넓게 번져나간다.

  어쩌면 그의 이 단문들은 <동물농장> 과 <1984년>이라는 저서의 흥행이 없었다면 영원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두 책의 흥행으로 작가 조지오웰이라는 이름이 드높아지고, 그가 썼던 모든 글들이 책을 펴내어졌다. 그러나 이 책에서 '조지오웰'이라는 이름을 뺀다면 이 책을 읽을 사람은 그리 많아보이진 않는다. 충분히 세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깊이있는 사색을 펼치고 있지만 그만큼의 관찰과 사색을 하는 이들은 꽤나 널려있다. 오로지 조지오웰이 무슨 생각을 했고, 무슨 글을 썼는가 가 궁금해서 집어든 책이었다. 굳이 오웰이 아니어도 된다면 이 책은 일반독자들에겐 별 흥미를 끌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웰이어야 한다면 이 책을 집어들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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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05-08-25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와 런던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읽어볼만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잘코군 2005-08-25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 흠... 그럼 읽은 김에 마저 나머지 두 개도 읽어볼까.

하이드 2005-08-26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예쁘죠.

이잘코군 2005-08-26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책은 이뻐요. ㅋㅋ 종이도 저 이런종이 좋아해요. 갱지같은 재활용지. 왜냐면 땀이 잘 닦이거든요. 요즘은 수술 후 괜찮지만 예전엔 땀 투성이라 미끈한 책을 쥐면 땀방울이 책표지에 맺히곤 했는데 이런 책 껍데기는 땀을 흡수해주거덩요.

이상익 2019-04-30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모르겠지만, 나라는.. 자기 방어적 표현이 많은 리뷰입니다. 주장을 확실히 할거면 그리 하시길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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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사형될 사형수의 이런 행동은 이상했지만,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창자는 음식물을 소화해내고, 피부는 스스로를 재생시키고, 발톱은 자라고, 세포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냉혹한 어리석음 속에서도 악착같이 작용하고 있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될 10분의 1초의 그 순간에도 그의 발톱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26쪽

"소설을 쓰는 것은 장기간의 고통스러운 질병에 시달리듯 끔찍하고 극도의 투쟁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저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악마에 씌지 않고는 이런 작업을 결코 떠맡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악마란 존재는 마치 아기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우는 것과 똑같이 단순한 본능과 같은 것이므로, 그러나 만약 작가가 자신의 개성을 없애버리는 투쟁을 끊임없이 하지 않는다면 남들이 읽어줄 만한 어떤 글도 쓸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89쪽

"복수는 우리가 힘이 없을 때, 그리고 힘이 없기 때문에 행하기를 원하는 행동인 것이다. 무력감이 사라지면 그런 욕망 또한 없어지게 된다."-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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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5-08-24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진데요.^^

이리스 2005-08-24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힘을 얻게 되면 복수의 욕망이 사라질런지.. 그건 개인차가 심하게 있을듯 합니다. ^^

이잘코군 2005-08-2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오웰이 그런 야기를 하더라구요, 괴벨이나 히틀러를 감옥에 잡아넣고 나면 그들의 무시무시한 권력이 이미 사라지고 우리앞에 한없이 작아진 모습으로 있기 때문에 복수를 하고픈 마음이 사라진다고. 그들이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우리가 그들을 깨부숴야 더 쾌락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리스 2005-08-2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마치 더이상 초라할 수 없이 초라해진 후세인을 보고 연민을 느끼게 되는 심리와 같은 것인가요? 저는 못돼먹어서 그런지 히틀러가 한없이 작아진 모습으로 있으면 아예 더 작게 만들거나 완전히 없애버릴것 같아요.나약한 눈빛을 보이면 가증스러워하며 말이죠. -.-
 

 

 오랫만에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셨다. 우리 아빠는 올해 어느시점엔가부터 밖에 친구네 집에 가 있는다고 나가셨다. 그리고는 아주 가끔씩 들어오셔서 하루 자고 다시 가신다. 지금껏 한 세번 온거 같다. 전에도 종종 그러셨다. 아빠는 음주, 도박, 여자 이런데 관심 없으시다. 매우 착실하게 경찰생활 하셨고, IMF에 퇴직하셨고, 퇴직금과 연금까지 다 주식으로 날려버리고 가진거 아무것도 없으시지만 성실하셨다. 항상 우리를 위해 살으셨고 문화생활도 거의 안하셨다. 아빠에게 문화생활은 케이블 티비 보기와 낚시가 전부 다다. 원래 성악을 되게 좋아하셨지만 오디오도 안가지고 계신다. 내 방과 동생 방에는 조그만 오디오가 하나씩 있지만. 아주 오래전에 그런 모습을 보긴 했다. 내가 군에 있을 때였나? 아니면 엠티, 수련회 갔을 때였나? 하튼 집을 비웠을 때였는데 아빠는 내 방 오디오에 헤드폰을 끼고 파바로티를 듣고 계셨다. 쓰리 테너스도. 내가 들어가는 바람에 듣다 나오셨지만.

  아빠는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모르신다. 오랫만에 들어오셔서는 샤워하고 내 방에 들어와 돈을 건네며(모자라는 등록금이다) 하시는 말이, 오늘 입었던 티셔츠 뒤에 허옇게 땀이 마른 자리가 보이자 이거 땀이냐 며 그럼 빨아야지 그러신다. 학교는 어디라고 했지? 거기는 한달에 얼마나 받냐? 그럼 용돈하고 등록금 되겠구나. 그러곤 나가셔서 안방에 누워계신다. 매번 이렇다.

  우리집에서 아버지가 가장 편한 사람은 나고, 어머니와 동생은 되도록 안마주친다. 아마 내일 아침 아버지가 가실 때까지 우리집 식구 누구도 아버지와 대화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러 왕따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항상 그랬다. 아버지는 가족 중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며, 밖에서도 거의 그런 것 같다. 사람들과 정감있게 말하는 법, 재밌게 이야기하는 법을 모르신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만 보고 자란 나도 그런 것 같다. 나름대로 난 아버지처럼 되지 않아야지 하고 항상 속으로 주문을 걸었지만 결국 이제 어느덧 나이 먹은 내 모습도 그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난 소통하는 법에 익숙치 않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난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내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난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내가 주도하에 뭔가를 하는 일을 잘 못하고, 난 항상 구성원 속에 파묻혀 있으려고 한다. 여론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 수는 있지만 결정을 내리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다. 다만 나는 결정권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그런 점에서 어찌보면 난 지도자 스타일은 아니지만 보좌관 스타일은 되는 듯 하다. 한 다리 건너 사람들과 소통하는 셈이다.

  난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 주위 시선을 이끌고 화려한 말빨로 사람들을 재밌게 해주는 사람들. 나에겐 그런 재주가 없다. 친구와 있을 때도, 여자친구와 있을 때도, 후배와 선배와 있을 때도, 난 주로 듣는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거기에 반응해 한 마디 던지는 식이다. 결코 대화 상대가 맘에 안들어서는 아니다. 난 말하는게 익숙치 않다. 그래서 듣는 거다. 학생들을 대할 때는 내가 말하는 입장이 되고 그들이 듣는 입장이 되어야 하는데 난 익숙치가 않아서 수업할 때 수업외의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장점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어줬으면 하고 있을 때 나를 택했다면 그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난 잘 들어줄 수 있으니깐. 하지만 해답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난 사람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좀더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방법은 스스로 찾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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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8-23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어와 꽁치때문에 소통이 안됐지만 전 님을 이해해요^^

이잘코군 2005-08-23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하핫... 그 꽁치요. ㅋㅋ 어제 H님과도 꽁치김치찌개 먹었는데.

실비 2005-08-23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위기 띄어주는게 말잘하는 사람들 보면 부럽죠..
근데 아버님이 외로워 보여요.ㅠㅠ

인터라겐 2005-08-23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아버님과 얘길 많이 나눠보세요... 그리고 사람과 소통한다는거.. 지금도 잘 하고 계시면서...걱정하지 마시고 지금처럼 하시면 되는거 아닐까 해요...아,,, 마태님과 부리님께 특강을 받아 보심이..^^

2005-08-23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5-08-23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꽁치. 전 잘 먹는 사람이 좋아요. ^^ 전 가끔 꼭 소통이란걸 해야하나는 생각은 들어요. 어짜피 완벽하지 못할텐데. 그냥 노력같은 거 하지 말고 마음 가는데로 퀘세라세라 렛잇비.

이리스 2005-08-23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편하게.. 릴렉스~ 릴렉스~ 호호.. ^^

울보 2005-08-23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누구에게나 어려운점이 잇군요,,
전 아프락사스님은 그런 어려운점없으신줄 알았는데,,
님 힘내세요,,우리 모두 그냥 화이팅하자고요,,

야클 2005-08-24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모같은 분이군요. ^^

그리고 아버님... 아프락삭스님이 잘해드리세요. 전 아버님이 이 세상에 안 계신 요즘 후회되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랍니다.

이매지 2005-08-24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화려하게 말빨던지는 스타일보다는 묻어가는 스타일이라서.
사람과 소통하는 건 아. 힘들어요 -_ ㅜ

히피드림~ 2005-08-24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두 사람들은 열심히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하지요.^^

산사춘 2005-08-24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드실수록 그런 아버님들이 많으신 듯 해요. 제 친구도 하루종일 말씀없이 거실에만 앉아계신 아버지를 위해 강아지를 사드렸는데 좀 시간이 걸렸지만 다행히 효과가 있었어요. 님 아버님께는 무엇이 도움이 될지 (제가 감히) 고민되네요.

이잘코군 2005-08-24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님 / 제가 볼 때도 외로워보입니다. 흠... 근데 다가가기는 힘들군요.
인터라겐님 / 그러게요. 부리님과 마태님께 특강을... ^^
속삭이신님 / 그게 쉽지가 않아요. 전. 님은 그걸 잘 하시는거 같아요. 전에 페이퍼보니까. 전에 아버지가 돈이 있으실때는 그래도 나았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더 움츠려드신거 같아요. 해줄 수 있는게 없으니까.
하이드님 / ^^ 저 꽁치 좋아라해요.
구두님 / ^^
울보님 / 왜 제가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 전 제가 가진 어려움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답니다. 이런거 말고도 다른 어려움들도 있죠. 감사합니다.
야클님 / 모모를 아직 안읽어봐서. ^^ 어떤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고. 네 잘해드려야할텐데.
이매지님 / ^^ 저도 힘들어요.
펑크님 / ^^
산사춘님 / ㅎㅎ 강아지. 저희 아버지는 별로 동물 안좋아해서. 흠. 집에 안계시니 뭘 드릴 수도 없고. 고민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얼룩말 2005-08-24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빠도 그래요. 식구들 아무하고도 안 친하고..아빠와 저의 대화도 사스님네 대화랑 다를게 없네요. 주로 아빠의 뜬금없는 질문...그에 대한 저의 짧은 대답...
갑자기 집안에만 계시다보니 가구가 되어 버린 듯 하시다는 친구의 아버지도 생각나네요(^^) 아..웃으면 안되는데 사실..

이잘코군 2005-08-24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얼룩말님 네도 저희집이랑 비슷한거 같네요. 흠. 외로워보이고 불쌍해보이면서도 뭘 할 수는 없네요 제가.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번역된 저서 중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읽은 책. <여행의 기술>. 물론 그의 번역된 책 중에서 절판된, 지금은 도서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또다른 저서가 있긴 하다.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이 그것인데, 요놈도 얼른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난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걸 별로 안좋아하는 위인인지라. 그렇다고 다 사보는 건 아니고 친구나 동생 것을 빌려 읽기는 한다. 그러나 웬만하면 사서 보는 걸 선호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집에 책이 많은건 아니다. 워낙 읽는 속도도 느리고 이런저런 핑계로 잘 읽지도 않기 때문에.

  지금껏 읽은 알랭 드 보통의 저서들 모두 나에게 별 네개 이상씩의 만족은 안겨주었고, 그렇기에 난 그의 책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구입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역시  내게 별 네 개 정도의 만족을 안겨주었다. 별 하나 부족의 이유는 내가 여기 나오는 여행의 장소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여행한 그 장소들을 이미 다녀왔다면 이 책을 읽을 때 더 밀착하여 읽을 수 있었을텐데.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여행이라는 건 순전히 '머리 속의 여행'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해본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여행에 관한 이 책은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이 나로 인해 증명되었다. 난 여행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통해 보통씨가 사색하는 그것을 좋아했다.

   이 책의 순서는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그리고 귀환 이렇게 다섯부분으로 나누어져있고, 여행의 할 때의 출발시의 주의점, 장소 등에 대해서부터 시작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의 그것까지 다루고 있다. 여행할 때의 시간순에 맞춰서 책의 순서를 배열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은 순수하게 여행에 대해, 여행장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여행을 통해 그가 느낀 것, 호기심, 숭고함, 아름다움, 습관 등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사색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오히려 여행의 시간적 기록은 찾아볼 수 없고, 띄엄띄엄 그가 본 것이 시작이 되어 끝없이 그의 머리 속에서 펼쳐지는 사색의 향연을 즐기는 것이 이 책의 주 내용이다.

 "귀중한 요소들은 현실보다는 예술과 기대 속에서 더 쉽게 경험하게 된다. 기대감에 찬 상상력과 예술의 상상력은 생략과 압축을 감행한다. 이런 상상력은 따분한 시간들을 잘라내고, 우리 관심을 곧바로 핵심적인 순간으로 이끌고 간다. 이렇게 해서 굳이 거짓말을 하거나 꾸미지 않고도 삶에 생동감과 일관성을 부여하는데, 이것은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보푸라기로 가득한 현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P27)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천박한 현실보다 훨씬 나은 대체물을 제공할 수 있다."(P43)

  어쩌면 이 책은 일종의 대중적 미학 서적이 될수도 있겠다. 건물과 거리거리마다의 느낌, 그리고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들, 이를 통해 펼쳐지는 숭고와 미학. 예술작품에도, 미학에도, 여행에도 문외한인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솔직히 내가 잘 아는 이들이 아니라 어렵게 느껴졌다. 물론 다 들어본 이들이다. 이름만. 위스망스, 보들레르, 에드워드 호퍼, 귀스타브 플로베르, 알렉산더 폰 훔볼트, 윌리엄 워즈워스, 에드먼드 버크, 빈센트 반 고흐, 존 러스킨 등등 이들의 이름은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이들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니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안내자가 되어 나와 여행을 떠나고 있으니 난 읽을 때마다 나의 무지를 한탄하고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고 고개만 끄덕일 밖에.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p46)

  알랭 드 보통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독자의 몫까지도 지나치게 사색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가 펼치는 자랑질이다. 난 이만큼 알고 이만큼 똑똑해. 그래 너 잘났다. 이런 식이 되는 거다. 보통이 그걸 의도하고 책을 쓰지는 않겠지만 일단 그가 똑똑한 것은 인정하자. 많이 안다는 것은 인정하자. 하지만 그는 너무도 자신이 아는 것을 현학적으로 그려낸다. 좀더 쉽게 안될까?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난 나의 무지를 깨닫고 아 이런 멍청이 머 아는게 하나도 없냐 이런식의 자기비판을 하고 있으니 그의 책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아니 뭐 이래. 나이 먹은 움베르트 에코 쯤 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는 고작 30대의 젊은 스위스 철학자 아냐? 너무한걸.

  <여행의 기술>에는 어떻게 여행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적 기술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여행안내서가 아니라 철학에세이다. 미학에세이다. 그러니 나같이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는, 갈 계획도 없는 이들이 읽어도 무방한 것이다. 자 그를 통해 이제 머리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사색을 펼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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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08-22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잘난척 하는 똑똑한 스위스 젊은 철학자에게 아주 푹 빠져 있습니다. 우호호호... 게다가 미남이지 않으시옵니까? ㅋㅋ

이잘코군 2005-08-22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저도 푹 빠지긴 했습니다. 잘난척도 밉지가 않더군요. 미남이 해서 그런가? 난 남자 별로 안좋아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