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셨다. 우리 아빠는 올해 어느시점엔가부터 밖에 친구네 집에 가 있는다고 나가셨다. 그리고는 아주 가끔씩 들어오셔서 하루 자고 다시 가신다. 지금껏 한 세번 온거 같다. 전에도 종종 그러셨다. 아빠는 음주, 도박, 여자 이런데 관심 없으시다. 매우 착실하게 경찰생활 하셨고, IMF에 퇴직하셨고, 퇴직금과 연금까지 다 주식으로 날려버리고 가진거 아무것도 없으시지만 성실하셨다. 항상 우리를 위해 살으셨고 문화생활도 거의 안하셨다. 아빠에게 문화생활은 케이블 티비 보기와 낚시가 전부 다다. 원래 성악을 되게 좋아하셨지만 오디오도 안가지고 계신다. 내 방과 동생 방에는 조그만 오디오가 하나씩 있지만. 아주 오래전에 그런 모습을 보긴 했다. 내가 군에 있을 때였나? 아니면 엠티, 수련회 갔을 때였나? 하튼 집을 비웠을 때였는데 아빠는 내 방 오디오에 헤드폰을 끼고 파바로티를 듣고 계셨다. 쓰리 테너스도. 내가 들어가는 바람에 듣다 나오셨지만.
아빠는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모르신다. 오랫만에 들어오셔서는 샤워하고 내 방에 들어와 돈을 건네며(모자라는 등록금이다) 하시는 말이, 오늘 입었던 티셔츠 뒤에 허옇게 땀이 마른 자리가 보이자 이거 땀이냐 며 그럼 빨아야지 그러신다. 학교는 어디라고 했지? 거기는 한달에 얼마나 받냐? 그럼 용돈하고 등록금 되겠구나. 그러곤 나가셔서 안방에 누워계신다. 매번 이렇다.
우리집에서 아버지가 가장 편한 사람은 나고, 어머니와 동생은 되도록 안마주친다. 아마 내일 아침 아버지가 가실 때까지 우리집 식구 누구도 아버지와 대화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러 왕따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항상 그랬다. 아버지는 가족 중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며, 밖에서도 거의 그런 것 같다. 사람들과 정감있게 말하는 법, 재밌게 이야기하는 법을 모르신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만 보고 자란 나도 그런 것 같다. 나름대로 난 아버지처럼 되지 않아야지 하고 항상 속으로 주문을 걸었지만 결국 이제 어느덧 나이 먹은 내 모습도 그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난 소통하는 법에 익숙치 않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난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내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난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내가 주도하에 뭔가를 하는 일을 잘 못하고, 난 항상 구성원 속에 파묻혀 있으려고 한다. 여론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 수는 있지만 결정을 내리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다. 다만 나는 결정권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그런 점에서 어찌보면 난 지도자 스타일은 아니지만 보좌관 스타일은 되는 듯 하다. 한 다리 건너 사람들과 소통하는 셈이다.
난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 주위 시선을 이끌고 화려한 말빨로 사람들을 재밌게 해주는 사람들. 나에겐 그런 재주가 없다. 친구와 있을 때도, 여자친구와 있을 때도, 후배와 선배와 있을 때도, 난 주로 듣는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거기에 반응해 한 마디 던지는 식이다. 결코 대화 상대가 맘에 안들어서는 아니다. 난 말하는게 익숙치 않다. 그래서 듣는 거다. 학생들을 대할 때는 내가 말하는 입장이 되고 그들이 듣는 입장이 되어야 하는데 난 익숙치가 않아서 수업할 때 수업외의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장점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어줬으면 하고 있을 때 나를 택했다면 그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난 잘 들어줄 수 있으니깐. 하지만 해답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난 사람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좀더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방법은 스스로 찾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