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 위기의 시대를 돌파해온 한국인의 역동적 생활철학
탁석산 지음 / 창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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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세계를 고찰하는 방식에 있어서 은밀하고 급작스러우며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어떤 단절이 반드시 필요하다."(강준만, <한국 생활문화 사전>)-28쪽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는가에 대해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 이주민의 성공적인 근대화 사례가 논쟁의 진전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즉 일본과 관계없이 근대화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면, 일본의 식민지배가 근대화에 끼친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를 도왔다든가 혹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 근대화의 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대중이 일본을 이용해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한국인은 존재하였고, 일본의 지배조차 이용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 한국인은 대중을 말한다. -32쪽

실용주의란 어느 시기에는 천해 보이기도 하지만 당대의 가장 절실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것이 가장 유용한가를 찾아내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36쪽

한국은 종교, 이데올로기, 전통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실용주의를 택하게 되었고, 실용주의는 그 시대에 필요한 것들 중 최우선하는 것을 택하는 특성이 있다. 민주주의도 곁에 있었으나 생활에 밀려 있었다. 하지만 대중은 생활을 어느정도 해결한 뒤에는 민주화를 택했다. -39-40쪽

(불교가) 죽은 후의 세계에 대해 답을 하지 않는 것은 현재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라는 뜻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죽은 후의 세계에 대해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라면, 지금 눈으로 보는 세계가 전부라고 믿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59쪽

한국의 불교는 전래 당시부터 이미 말법시대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즉 깨달음의 종교에서 이미 믿음의 종교로 바뀐 것이다. 이 점은 미륵반가유상으로 대표되는 불교 유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륵은 미래불로서 현재 고통의 구제를 주임무로 한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수행을 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저 세계마저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고, 세상을 구제해줄 미래불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는 종교로 바뀐 것이다. 문제는 해탈이 아니라 현재의 고난을 피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현세주의의 모습이다. -59-60쪽

한국에서 기독교문화는 기본적으로 예수를 거쳐 하느님이 신자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즉 불교에서 아미타불을 거쳐 부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구조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기독교 역시 스스로를 수양하거나 선행을 하는 것보다는 예수를 믿는 일이 더 중요하다. 스스로의 힘으로 천국에 갈 수는 없다. 에수를 통하거나 성당을 통하거나 중개자를 통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타력구제 신앙인 것이다. 한국에 기독교가 비교적 짧은 기간에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불교와 기본적 구조가 다르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즉 믿는 대상이 부처에서 하느님으로, 아미타불에서 예수로 바뀌는 것뿐이다. -62-63쪽

인생주의는 이 모두가 아닌 인생 자체를 중시한다. 자연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 만든 제도나 작품이 아닌 인생을 중시하는 것이다. 신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는 결코 인간중심 사회가 될 수 없고, 인간중심이 아니라면 인생주의도 생겨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중심주의라고 해서 인생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제도나 인간이 만든 작품에 삶 자체보다 더 큰 가치를 두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문화는 자연이나 인간의 제도나 작품이 아닌 인생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는 인생주의다. -78쪽

휴머니즘이 신보다 사람이 중심이라는 뜻이라면, 인생주의는 사회적 제도나 법보다는 사람이 더 소중하며 사회적 성취나 성공보다는 삶의 쾌락이 더 귀중하다는 뜻이다. -82-83쪽

일본은 세상을 긍정으로 가득한 것으로 파악하는 성향이 있는데, 이는 엄밀성과 함께 긴장감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꼼꼼하고 빈틈이 없어 보이지만 정신적 긴장의 지속이라는 댓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인생은 원래 허무한 것이라는 믿음이 상존하기 때문에 정신적 긴장감은 훨씬 덜하다. 한잔 먹고 풀고, 한바탕 싸우고 풀고 하는 식이다. 즉 회복력이 빠른 편이다. -109쪽

"프래그머티즘은 '실용주의'로 번역되지만, 사실 그 사상은 우리말의 '실용주의'가 함축하고 있는 뉘앙스보다 훨씬 폭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프래그머티즘이란 단순히 '실용성이 최고'라는 발상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용성뿐만 아니라 실천주의, 결과주의, 실험주의, 개방성, 진취성, 창의성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성격과 특징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 프래그머티즘은 단지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들의 타개를 위한 단순한 방책이나 기술이 아니라, 세계관과 가치관 및 방법론 등도 아울러 함축하고 있는 하나의 사조이다."(<프래그머티즘>, 김동식)-131-132쪽

진리나 정의도 좋음 앞에서는 순위가 밀리는 상황이므로 서양처럼 진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며 싸우는 일은 한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진리나 정의보다는 인생의 즐거움이 앞서기 때문에 인생의 즐거움에 좋은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139쪽

창조적 실용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무슨 개념인지 알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는 사이비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다. 말만 실용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무엇이 실용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효율이나 경제성이 높은 것을 실용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천박한 실용주의로 불러도 되겠다. -149쪽

실용주의는 이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데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은 감각적 즐거움이 인생주의의 내용을 채우고 있지만 상황이 변한다면 사색의 즐거움이 이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생주의는 유지되겠지만 그 내용은 변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도구의 뛰어난 효능 때문에 의도나 내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현세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에 좋은 것이 무엇이냐를 판단할 때 이 세상이 아니라 죽음 후의 세상을 진정한 세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유용하다는 결론을 내리면 현세주의가 사라질 수도 있다. 물론 허무주의도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허무주의가 현세주의와 인생주의의 보험 역할을 하고 있지만 현세주의가 무너지면 허무주의도 쇠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59쪽

인생주의가 추구하는 감각적 즐거움은 학교에서 가르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교에서는 이성적인 인간이 되라고 가르쳤다. 누가 주도적으로 퍼뜨린 것은 아니지만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많이 배운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즐거운 인생을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전파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중략) 다시 말해서, 사람들 속에서 자발적으로 자라나서 오랜 시간 검증을 받았다는 것이다. 학교가 아닌 집에서, 시장거리에서, 사무실에서 인생주의는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정착한 것이다. 저잣거리에서 생겨나 자랐기에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나선 것도 아니고 고매한 학자들이 주창한 것도 아니며 외국에서 수입되어 일시적으로 유통된 것도 아니기에 그 생명력은 강하다. -173쪽

우리는 문화재와 문화를 혼동한다. 눈부신 문화재를 가진 국가가 훌륭한 문화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중략) 문화는 삶의 총체적 방식이고 물리적 대상들은 인간 마음속에서 개념들로 표상될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 문화재는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인류 문화활동의 소산’이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보통은 현재의 것을 제외한 옛날 것에서 지정된다. 즉 문화재라는 것 자체가 정의상 현재의 삶의 방식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설사 포함되어 있다하더라도 문화재는 삶의 총체적 방식이 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첨성대는 문화재이지만 첨성대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문화이다. -238-239쪽

동일한 것이 문화에 따라 다른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문화가 단절을 통해 진행되기 때문이다. 문화가 연속적으로 단절 없이 계승되고 전달된다면, 다시 말해서 삶의 총체적 방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동일한 물리적 대상은 동일한 의미를 확보할 것이다. 하지만 문화는 단절을 통해 진화한다. 따라서 동일한 대상이 상이한 문화 속에서 상이한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면 문화재를 연결함으로써 문화를 구성하는 시도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39-240쪽

문화가 낱낱의 대상이 아니라 총체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한다면, 한국 문화를 논할 때 흔히 등장하는 원전중심주의도 비판되어야 한다. 즉 문화현상을 중요시하지 않고 원전을 가장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원전이 아니라 원전을 둘러싸고 어떤 현상이 있는가가 삶의 방식 그리고 당대의 문화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원전 콤플렉스라고 부를 수 있는데, 누가 원전을 정확히 해석했느냐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곤 한다. 그런데 문화는 심지어 오역에서도 비롯된다. 즉 오역을 했는데 오역이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문화에는 정오표가 없다. 그때그때의 현상이 바로 문화 자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문화는 흘러가는 물과 같은 것으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다. -240-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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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조종법 - 정직한 사람들을 위한
로베르 뱅상 , 장 레옹 보부아 지음, 임희근 옮김 / 궁리 / 2008년 11월
품절


'자유롭다는 느낌'의 중요성이다. 상황에 의해 자신의 의사와는 다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들은, 그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다음 입장을 택함으로써 앞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중략) 그러나 이것은, 개인들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행동했고 그래서 스스로의 행동을 자유로이 결정했다고 느낄 때에만 해당하는 말이다. -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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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 최신 연구로 확인하는 인간광우병의 실체와 운명
유수민 지음 / 지안 / 2008년 9월
절판


감염된 소가 '다우너'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뇌 및 척수 조직 전체에 변형 프라이온 단백질이 상당량 축적되었으며, 심한 경우 말초신경까지 타고 내려와 근육 일부에도 변형 프라이온 단백질이 검출되는 상태를 말한다. '다우너'가 되는 수많은 원인이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광우병이라면 감염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크다.-192쪽

푸줏간에서 사용하는 칼로 고기를 발라내면 많은 양의 고기가 뼈에 남는다. 1950년대에는 수동식 기계를 사용합으로써 뼈에 남아 버리게 되는 고기의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 1960년대에는 자동화기계를 이용해 발라내기 힘들거나 발라내봤자 경제적 이익이 적은 고기를 회수했다. 이렇게 얻어진 MRM은 고기파이, 소시지, 햄버거 패티 등 여러 가지 육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즉, 얇게 저미거나 다진 고기가 들어가는 음식이라면 어디든지 이용됐다. MRM의 대상이 되는 뼈는 대부분 육질을 떼어낸 뼈로서 주로 척추, 갈비뼈, 어깨뼈, 엉덩이뼈 등이 이용되었다. 특히 척추는 많은 종류의 기계들이 피스톤을 이용해 뼈를 곡압으로 압축해 고기를 떼어내는 방법을 썼기 때문에 척수 등의 신경조직이 같이 빨려들어 갈 확률이 높았다. (영국 정부 <광우병 백서> 中)-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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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구판절판


사람들은 사랑을 언제나 대상의 문제로 환원한다. 한마디로 대상을 잘 고르면 만사형통이라 여기는 것이다. 사랑에 실패한 건 대상을 잘못 골랐기 때문이고, 아직까지 사랑을 못해 본 건 '이상형'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참으로 신기한 인과론이다.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판에 나는 몸만 쏙! 들어가면 되는가? 실패한 다음엔 다시 몸만 쏙! 빠져나와 복수극을 펼치면 되고? 이렇게 지독한 이기주의가 또 있을까? 상대를 잘못 만나 인생을 망쳤다면, 그런 상대를 선택한 '나'라는 존재는 대체 뭔가?
상식적인 말이지만, 사랑 따로 나 따로가 아니라, 나와 사랑과 대상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사랑이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각자 따로 존재하다 서로 플러스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노동이거나 거래지. 그러므로, 노동이나 거래가 아닌 제대로 된 사랑을 꿈꾼담녀, 반드시 환기해야 한다. 사랑과 대상과 나 사이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 나아가 사랑하는 대상,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14-15쪽

앎의 크기가 내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앎의 열정이 없는 존재가 운명적 사랑을 한다는 건 우주적 이치상 불가능하다. 주류적 척도로부터 벗어나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열정, 자본과 권력의 외부를 향해 과감하게 발을 내디딜 수 있는 내공. 공부는 무엇보다 이 열정과 내공을 쌓아 가는 과정이다. 이런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해야 한다. -18쪽

연애가 작업이라는 '허접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아주 기이한 전도가 일어났다. 사랑이나 연애는 일단 이성 혹은 합리성의 외부에 있는 충동 혹은 열정을 뜻한다. 즉, 접근법이나 형태가 무엇이건 일단은 상식적 코드로부터 탈주하는 힘을 내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작업은 정반대의 벡터를 지닌다. 그것은 출발부터 돈과 권력과 외모라는 주류적 가치를 향해 달려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에로틱한 열정과는 거리가 먼, 말 그대로 '작업의 일환'이 되었다. 입시나 취업전선과 차이가 없어진 것이다. -27-28쪽

"그녀와 나는 음악과 정치, 예술, 모든 분야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거기다 섹스까지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파트너가 어디 있단 말인가"(존 레넌)-51쪽

"너는 노예인가? 그렇다면 너는 벗이 될 수 없다. 너는 폭군인가? 그렇다면 너는 벗을 가질 수 없다."(니체)-65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13쪽)-73쪽

무언가 서로에게 줄 것이 있어, 자신에게 넘쳐나는 것이 있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받고 싶은 것이 있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어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결혼이다. 풍성한 토양에서 자라는 사랑의 식물은 서로를 선물하는 친구로 만들어주지만, 척박한 토양에서 자라는 사랑의 식물은 상대방을 구속하는 가시 울타리로 자라난다.(<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30-131쪽) -198-199쪽

무릇 천지만물을 살피는 데는 사람을 보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고, 사람을 보는 데에는 정보다 묘한 것이 없으며, 정을 살피는 데는 남녀 간의 정을 살핌보다 진실한 것이 없다.(18세기 문인 이옥)-203쪽

"참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스스로 창조한다."(니체)-220쪽

만일 내가 참으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게 된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의 기술>, 70쪽)-235쪽

"스승이면서 친구가 아니면 스승이라고 할 수 없다. 친구이면서 스승처럼 배울 게 없다면 역시 친구라 할 수 없다."(이탁오)-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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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요 2008-12-1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찜해두었습니다. 땡기는걸요. 은근히...^^
 


  12월이다. 2월에 입사를 했는데 그새 열 달이 지나가버렸다. 그 중 최근 두 달 가량은 말 그대로 눈코뜰새 없이 바빴는데, 또 그 중 한달은 회사 인근 '모텔 투어'로 보냈다. 야한 상상은 금지. 출퇴근 시간조차 아껴야하는 다급한 상황이었던지라 나의 자발적(?) 의지에 의해 그리 되었다.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나 할까. 세상에, 이토록 집에 오랫동안 들어가지 않은 적도 - 군대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 처음이고, 이토록 날이 가는줄 모르고 지냈던 적도 처음이고, 이토록 늦게까지 일을 했던 적도 처음이었다. 이렇게 공부한 적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이렇게 일해 본 적도 없고, 그래도 한번쯤 있지 않았을까 싶겠지만, 이렇게 놀아본 기억조차도 없다.

  일은 어찌어찌 마무리 되었고, 초췌해진 얼굴과 만신창이가 된 몸덩이만이 남았다. 그렇게 12월을 맞는다. 일은 무척 재밌지만 내가 한 만큼 인정해줄 수 없는 구조이고, 일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무척이나 비윤리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이었다. 정확히, '모두'가 아닌 그들 중 '일부'는. 나는 교과서 편집자다. 직업상 편집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저자의 몫까지 해야 했다. 능력도 안되고, 성실하지도 않고, 겸손하지도 않은 저자들을 위해서. 그들 중 일부는, 아니 상당수는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없었고, 그저 이름 한자 넣어서 이름값이나 높여볼까 하는 이들이었고, 동시에 그들은 이름과 더불어 돈을 바라고 필자를 자청한 것 같았다.

  해서, 결과야 어쨌든 제 이름값을 높이고, 돈을 가져가게 될, 연락도 끊어진 저자들을 위해(?), 저자 역할을 떠안아야 했다. 나에게 온다고 해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난 이 교과서의 상당 분량을 썼고, 수정했고, 다듬었다. 현재 필자들 중 상당수는 합격 발표 후 아마도 교체되겠지만, 그들은 어쨌든 5년간 떡고물을 그냥 거저먹게 생겼다. 심지어는 현재 결과물에 본인의 원고가 전혀 살아남지 않은 저자들도 있다. 애초의 계약이 아닌 결과물만 놓고 보자면, 이 저자들은 저자 목록에서 빠져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은 그동안 얼굴도 비치지 않았고, 연락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도장을 찍으러 회사에 찾아왔고, 결국 저자로 올라갔다. 정의와 부정의를 논하고, 도덕과 윤리를 가르친다는 이들이 이렇다. 그러니 그동안 내가 배우고, 가르쳐왔던 교과서가 이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분노치 않을 수 없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나의 주제를 삼아 따로 하게 될 것이다. 저자들에게 느낀 실망감과 더불어 회사 사람들에게 느낀 서운함, 실망감도 못지 않지만, 이는 나중에 꺼내련다. 일은 끝났고, 나는 다시 이 곳에 돌아왔다. 내가 편히 쉴 수 있고, 마음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이곳으로. 지친 마음과 몸을 이곳에서 풀어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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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2-07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고 고생이 많았군요~ 어서 오세요. 알라딘 마을은 언제나 문열어 놓고 있으니까요.^^

마늘빵 2008-12-07 22:43   좋아요 0 | URL
^^ 다시 엔진을 가동해야죠.

Mephistopheles 2008-12-07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엔 화도 나고 열도 받고 짜증도 나고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인 일의 진행방식에 제대로 머리에 뚜껑이 열리곤 하지만 한 10년 넘으면 익숙해지면서 알게 모르게 사람을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되실 껍니다..수고 많았어요 아프님..근데 난 왜 오늘도 출근했지..아 짱나~!

마늘빵 2008-12-07 22:44   좋아요 0 | URL
거기에 익숙해져야하는 게 현실이라면, 저는 또다른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그 익숙함을 깨고, 현실을 개선시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행태들이 눈에 자꾸만 보이는군요.

웽스북스 2008-12-07 22:51   좋아요 0 | URL
아아 메피님 츄릅. ㅜㅜ

Mephistopheles 2008-12-08 00:23   좋아요 0 | URL
어 익숙해지라고 말한거 아닌데~~~근데 어느 분야나 먹물들이나 좀 배우고 자리 차지하는 사람들은 거기서 거긴 듯...우리쪽도 건축분야 교수님들 심의위원으로 껀당 몇천씩 뇌물 받아 먹는게 일상이다 보니까..^^ 터져봤자...감봉 2개월..?? 정직이나 면책 같은 건 절대 안일어나죠..

마노아 2008-12-07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 많았어요.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좀 쉬고 몸도 마음에도 휴식을 주세요. 그래도 해 안 넘기고 돌아온 게 어디에요. 아프님 이름 보니까 막 반가워요!

마늘빵 2008-12-07 23:43   좋아요 0 | URL
'벌써 1년'이 지나가는군요. 뇌만 고갈되는 느낌입니다. 파이고 파여서 더이상 나올 것도 없고, 그나마 남은 껍질도 박박 긁혀서 멍청해지는 느낌이에요. 반가워요.

웽스북스 2008-12-07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프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세상에 도덕과 윤리를 가르친다는 사람들이.. 참 아이러니컬하네요! 이래서 이 사회가 이모냥인가봐요. 모텔 전전이라니. 어후, 어후, 정말 힘들었겠다. 나중에 나오면 싸인해서 주실 거에요?

마늘빵 2008-12-07 23:42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게 도덕윤리이기에 더더욱 그렇죠. 외양과 포장을 좋아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것을 챙겨가는 구조인 듯 합니다. 제가 저자 목록에는 안 오르지만, 나오면 싸인해서 한 권 드릴게요.

비연 2008-12-07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많으셨어요..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힘드셨을 것 같네요.

마늘빵 2008-12-07 23:41   좋아요 0 | URL
^^ 비연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도넛공주 2008-12-0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잘 오셨습니다.원래 힘든 일을 겪은 분일수록 저리도 담백하게 표현하시더군요...

마늘빵 2008-12-07 23:41   좋아요 0 | URL
마음 편히 머물 곳이 없군요. 원래 사회란 것이, 현실이란 것이 이런 건지 아니면 유독 제가 불합리와 부조리와 부정의를 많이 보게 되는 것인지.

2008-12-07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7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8-12-07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학교교과서가 저렇게 만들어지는건 아니겠죠? 어떤 교과서인지 궁금...^^
고생많으셨어요. 일하다보면 세상에 참 아니다 싶은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솔직히 일보다 그런 사람들이 더 힘들잖아요.

마늘빵 2008-12-07 23:40   좋아요 0 | URL
글쎄, 과목마다, 출판사마다, 모두 각기 다르겠지만, 결과물만 접해서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더군요. 이미 다른 교과로부터도 저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일화들을 많이 들어서. 학교 교과서가 저렇게 만들어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_- 저건 정도가 심한 경우라고 보시면 되고.

이매지 2008-12-07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그 쪽 일이 좀 그런 것 같아요.
어쨌거나 힘드셨을텐데 무사히 살아돌아오셨습니다^^;

마늘빵 2008-12-07 23:44   좋아요 0 | URL
이 쪽에 기대를 했는데, 많이 실망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마음 기댈 곳이 없어요.

L.SHIN 2008-12-08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서오세요.^^

마늘빵 2008-12-08 09:27   좋아요 0 | URL
^^ 엘신님도 반갑.

2008-12-08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0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8-12-08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웰컴백. 고생 많았소. 그런 싸이클로 일했다면 살도 좀 찌고 수염도 좀 나고 그래야 되는데.. 아프님, 그렇게 됐어요? 그런 얼굴이라면 정말 궁금한데!

2008-12-08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8-12-08 09:28   좋아요 0 | URL
살은 좀 찌고, 수염은 그래도 매일 깎아줬다요. ^^ 다시 살빼기 프로젝트.

2008-12-08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tty 2008-12-08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아프님 오랜만이네요. 안보이셔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바쁘셨군요.
건강은 잘 챙기면서 일하신거죠? ㅠㅠ
그나저나 교과서도 누군가가 만든다는 생각을 하니까 무척 신기하네요.
중고등학교 교과서는 왠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아프님 같은 분들의 수고로 만들어졌군요. 생각해보면 당연한건데요...ㅎㅎ

마늘빵 2008-12-08 09:36   좋아요 0 | URL
네 그런대로 버틸만했어요. 이렇게 시간가는줄 모르고 뭔가를 한 적이 없어요. 결과물은 그런대로 그런대로 만족스러운데,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고 그래요.

보석 2008-12-08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자주 뵙겠네요.ㅎㅎ

2008-12-08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8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8-12-0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그런일을 하고 그렇게 지내셨었군요. 이 페이퍼 읽으며 같이 분노하다가 아프락사스님이 다시 이 주제로 말하게 될 페이퍼를 기다리고 있어요.

고생많으셨어요, 아프락사스님.
이제 이곳에서 좀 편히 쉬셨으면 좋겠네요. 당분간이라도.

마늘빵 2008-12-08 20:07   좋아요 0 | URL
페이퍼 곧 써야죠. 쓸 이야기는 많은데, 수위 조절하고 있습니다. :)

2008-12-08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8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Jade 2008-12-0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역시 30대는 체력이 딸리죠? ㅋㅋㅋ

마늘빵 2008-12-08 20:09   좋아요 0 | URL
음 딸리지는 않는데! :p 올해도 이렇게 그냥 가다니. 제이드도 나이를 한 살 먹는다아.

Jade 2008-12-08 21:1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가장 좋을때라는 24살이 이렇게 가네요 >.<

그러고 보니 바람둥이 아프님이 연애 못해서 어째 ㅎㅎ
아, 혹시 하고 있는데 저만 모른건가 ㅎㅎ

마늘빵 2008-12-09 08:53   좋아요 0 | URL
-_- 나 바람둥이 아닌데...

마냐 2008-12-08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숨 돌리고, 체력 보강하시고. 세상에 황당한 일은 더없이 많고...충전할 쉼터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죠. 저도 밥벌이에 바빠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여튼 방가~

마늘빵 2008-12-08 20:09   좋아요 0 | URL
오랫만여요. 부조리와 부정의와 마주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꾸 눈에 보이니 어쩐답니다. -_- 그나마 덜 보려고 이 바닥에 들어온건데.

무스탕 2008-12-08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웰컴!! :)
마지막까지 저자의 이름을 제대로 올렸다가 출판 직전에 아프님 이름으로 바꾸는 계략을 꾸며 보심은 어떨런지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는 현실이네요..
하여간 좌우당간 잘 살아남고 돌아오셔서 무지 반갑답니당~ ^^*

마늘빵 2008-12-08 20:10   좋아요 0 | URL
흐흐. 그러고프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답니다. :)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죠. 꿈만 꿔야죠. 여기서 또 재밌게 왁자지껄 놀아봐야할텐데요. ^^

Arm 2008-12-11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엄청난 위로와 활력이 될 소식을 전해드리지요!!!! ^-^ 하하하~
저 씨알사상 강연회 갔었거든요.
그런데,

두두두두......!!!

다음달 강연회의 연사는 '김.상.봉.' 선생님이시랍니다!
힘나시죠? ^-^

마늘빵 2008-12-11 09:13   좋아요 0 | URL
오 다녀오셨군요. 그렇담 그것도 엠피가? ^^ 담달 꼭 가야겠네요.

아라리요 2008-12-11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 많으셨네요.
근데, 씨알 사상 강연회는 한달에 한번씩 있나봅니다.
언제 다녀올 기회 있었으면 합니다.^^

마늘빵 2008-12-26 02:07   좋아요 0 | URL
^^ 앗 이걸 이제서야. 네. 씨알 사상 강연회 또 공지 올렸습니다. 있을 때마다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