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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 - 결혼을 배운 적이 없는 모든 당신들을 위하여
강수돌 외 지음 / 샨티 / 2011년 10월
평점 :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일까? 샨티 출판사의 편집자는 '결혼 전 물어야 할 15가지 질문'이라는 제목의 기사보고 이 책을 기획했다. 편집자는 저자들을 섭외해 원고 의뢰를 했다.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 질문이 있다면 무엇일지 써주세요. 그것은 자신에게 묻는 것일 수도 있고, 배우자에게 또는 두 사람 모두에게 물어야 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하 생략)"
편집자는 원고 의뢰를 하고서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집필을 거부한 사람들이 나타난 것. 바쁘다, 실은 별거 중이다, 이런 상태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겠느냐, 아내가 본다고 생각하니 쓸 자신이 없다, 아내가 그런 글을 쓸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등의 이유였다. 자기 검열과 배우자의 검열로 원고 청탁을 거부한 것. 그래서 또 다른 이들에게 청탁을 했고, 여러 글이 실리게 되었다고.
짧은 글이지만 이 책에 글을 담은 저자들은, 편집자로부터 원고 의뢰를 받고 무척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스스로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글쟁이, 학자, 유명인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을 것. 거짓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 테고, 진심 어린 글을 담되, 때에 따라서는 스스로 벌거벗는 느낌까지도 들지 않았을까. 독자들에게는 신선한 기획이지만, 저자들에게는 고역이었을 수도 있겠다.
좀 더 내밀하고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저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좋은 말은 많이 했지만, 내가 원했던 속 깊은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았다. 그건, 이 주제가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그 사람과 보낸 시간이 고통스럽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책에 글을 보탠 이들은 각자 자기 스타일대로 제각기 다른 글을 썼다. 어떤 이는 자신의 연애에서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어떤 이는 구체적인 자신의 경험담을 최대한 배제한 채 바람직한 연애관, 결혼관에 대해 서술했다. 이 책의 제목, 주제를 접했을 때 독자가 예상하고 기대할 수 있는 것에서 좀 벗어난 듯한 글도 있었다. 더 아쉬운 것은 여기 담긴 글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지만, 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은 계속 해왔다. 요즘 결혼은 애를 낳기 전까지는 '동거', 애를 낳고 나면 '결혼' 시스템이 굳어지는 것 같은데, 프랑스처럼 '동거' 관계에서 나온 '애'도 기를 수 있는 시스템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나름 자기들만의 합리적인 방법을 만들어낸 것 같다. 만일 '애'가 없다면 계속 '동거'도 가능하지 않을까. 결혼식을 했다는 것만으로는 법적 구속을 받지 않으니 말이다(물론 지인들이 두 사람의 결혼 사실을 안다는 점에서 심리적 구속을 받겠지만).
"헌신하지 말고 유혹하라. 유혹은 꼭 가슴골이 파인 옷을 입고, 꽃사슴 눈으로 상대를 바라봐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이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를 가진 사람들, 그렇게 자신의 세계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더 매혹적이다."
목수정의 글이 맘에 든다. 그의 연애관, 결혼관에 동의하고, 그런 사람을 만나 오래도록 같이 하고 싶다. 꼭 결혼이 아니어도 연인 사이에서도 헌신하기보다는 유혹하는 이들이 멋지다. 두 사람은 각자 자기 세계가 있어야 하고, 서로를 구속하지 말아야 한다. 함께 하되 각자의 영역이 있는.
"현재의 삶을 내가 온전하게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아니면 주변의 잘 알 만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하는 권인숙의 충고도 새겨들을만 하다. 데이트 중 자신을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만, 노력은 본질을 뒤덮지는 못한다. 데이트 상대를 내 연인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연인으로 만든 뒤 지속적인 만남에서 갈등이 생기는 건 자기를 지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지울 필요도 없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겠지만, 나를 지울 수는 없다. 그걸 스스로 지우려 한다면 자신이 괴로울 것이고, 상대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둘 사이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그땐 그냥 헤어지는 것이 낫다. 연인 사이에서도 이런데 결혼은 상대를(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과 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