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요즘 알바로 시 참고서를 쓰고 있다. 시 전공자가 요즘 정말 부족해서, 석사논문 쓰자마자 문제집, 참고서 등 3곳에서 일을 청탁받아서 바쁘게 헉헉대면서 끄적이고 있는 중.

참고서나 교과서를 읽을 때마다, '도대체 이러니까 중고등학생들이 시를 싫어하지' 버럭!!! 이러면서 화를 내고는 했었고, 내가 강단에 서게 되면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이게 시를 가르쳐야징~~ 라고 다짐도 했었다.

그.런.데. 역시 고등학생용 참고서를 쓰다보니 나도 어느새 '정답'적인 시 해석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참을 수(?) 없어서, '정답'과 함께 나름대로 내 시 해석을 써 넣었다. 뭐... 빠구 당하면 ㅜㅠ

시 전공자라고 밀어붙이기에는 내 경력(*짬밥이라는 군대용어가 어울리지만)과 연령이 일천하니 원..

어쨌든 그 유명하고 지루하다고 소문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보자.

 

 해에게서 소년에게      -최남선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슨다, 무너버린다.
태산(泰山) 같은 높은 뫼에 짚채같은 바위돌이나
요것이 무어냐,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모것, 두려움 없어,
육상(陸上)에서 아모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者)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디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콱.

 

처……ㄹ썩,텨……ㄹ썩,텩, 쏴……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든 통기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 나파륜,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의 역시(亦是) 내게는 굽히도다,
나하고 겨를 이 있건 오너랴
쳐……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쳐……ㄹ썩, 텨……ㄹ썩, 척, 쏴……아.
조그만 산모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 손뼉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 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

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

쳐……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의 짝 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

작은 시비, 작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 따위 세상에 조 사람처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저 세상(世上) 저 사람 모다 미우나,
그 중(中)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담(膽) 크고 순정(純情)한 소년배(少年輩)들이
재롱(才弄)처럼, 귀(貴)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나라, 소년배(少年輩), 입맞춰 주마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당시 사회나 최남선의 의도에 맞추어서 이 시를 해석하자면 이 시는 바다라는 개화의 문물이 들어오는 공간과 하늘이라는 순수 공간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설정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비되는 땅이라는 공간의 바윗돌, 태산 같은 자연물이나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부정적 존재로서 변화하여야 할 조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중 ‘소년’은 앞으로 개화를 이끌어갈 존재로서 바다라는 개화의 문물이 들어오는 공간이 사랑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해석은 문학사적인 해석이다. 그런데 이 시를 ‘시적’으로 ‘문학적’으로 읽는 방법은 또 무엇이 있을까? 왜 바다는 소년을 좋아하는 것인지를 내재적으로 생각해보자. 시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첫 번째 단계는 시에 있는 정보로만 시를 해석하는 내재적인 접근법이다.


왜 바다는 소년을 좋아한다고 시인은 생각하게 되었을까. 바다는 어부가 아니라, 고관대작이 아니라, 딱히 ‘소년’을 좋아한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름이 되면 옛날이나 요즘이나 피서를 간다. 물론 옛날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가지는 못했으나, 식민지 시기에도 바다는 분명 좋은 피서지였을 것이다. 그러면, 피서지로서의 바다를 상상해보자. 바다를 가장 좋아하는 아이들, 강아지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 때 우리는 바다에서 뛰노는 소년들(이 당시 ‘소년’이라는 단어는 소녀와 소년을 함께 지칭하는 어휘였다.)과 부드럽게 파도치는 바다를 상상할 수 있다. 이를 시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는 바다가 소년을 좋아한다라고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어부들은 궂은 날이나 비오는 날에도 바다에 나가고, 실연한 어른들은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바다와 어울리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노는 풍경은 언제나 잔잔한 바다와 맑게 빛나는 햇살 아래일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바다가 잔잔할 때만, 소년들이 바다 곁에서 뛰어노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이것이 시적인 상상력과 결합하면, ‘바다가 잔잔할 때만, 소년들이 바다 곁에서 뛰어논다’에서 ‘바다는 소년들을 사랑하기에 소년들이 바다 곁에 뛰어놀 때는 바다가 잔잔하구나’라는 시적인 관찰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시적 발상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읽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해에게서 어부에게’ ‘해에게서 할아버지에게’가 이상한 이유를 이제 알 수 있지 않을까?

 

 

*제한된 지면에 나름의 썰을 풀어가면서 참고서 만들기.. 우에 -ㅠ-

돈이 궁한지라 하지만, 꽤나 짜증나고 힘든 일...

내가 바라는 일은 내 썰들이 통과해서 만백성(-_-; )들이 내 헛소리를 읽으며 공부하는 일.

 

근디.. 시험문제 틀리면 내가 책임져야 하나?

뭐...;;; 틀린 소리는 안했으니까. 다만 '다른 소리'를 하려고 하는 것 뿐. 쪼끔이라도;;

사실. 아니면 시 참고서 매년 새로 낼 이유가 어디겠는가!!!! (자기 위안, 합리화 중.)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08-14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6-08-14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신을 지키는 일은 저처럼 소심한 사람에게나 어려운 일이죠^^;;

건우와 연우 2006-08-14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은 어린 학부모지만 저도 지지할께요. 님의 '다른소리.를요...^^
초면에 실례.^^ 꾸벅.

기인 2006-08-14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ㅂ님/ 네 ㅋ 3군데에서 각각 나올텐데 나오면 광고 많이 할께요 ^^; 그나저나 완전 다 삭제되는게 아닌지; 걱정이네요.
파란여우님/ 여우님의 소신 멋지세요! 저 디이~~게 소심한데요 ㅜㅠ
건우와 여우님/ 앗 다른 서재에서 많이 뵙서요. 감사합니다. :)

로쟈 2006-08-14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년이라고 돼 있지만 '소년배' 곧 멍텅구리들 아닐까요?(앎으로부터의 자유!) 실상 대개의 중고등학생들이 멍텅구리들이기도 하고. 대학 1학년때 이 시에 대한 패러디 시를 써보기도 했는데(태풍을 소재로), 그런 거 한번 써보라고 하면(쓰기도 쉽고) 학생들이 더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그리고 참 시교육에서 중요한 건, '좋은 시'에 대한 안목을 길러주는 것과 그걸 읽어낼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인님이 참고서가 그런 역할을 해주면 좋겠네요.^^

기인 2006-08-1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아앗 패러디 시 재미있을 것 같아요. :) 7차 교육과정 <문학> 교과서 집필에도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7차는 정말 학생들한테 많이 써보고 고쳐보고 패러디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현장에서는 이런 것들 넘어간다고 들었습니다만;;;
나중에 제가 참고서 '기획'에까지 참여할 연륜(?)이 되면 쫌 요상한 참고서 만들어보고 싶어요. ㅎㅎ 지금은 그냥 하라는 것, 하라는 대로만 한답니다. 저자 이름은 들어가도, 저자들 사이의 위계-_-; 가 무서워요~~~
 

논문을 마무리 하니, 이제 제쳐놓았던 언어영역 문제집 만들기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만만하게 보고 시작한 일이고, 얼마 받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_-; 쫌 난감하다. 사실 얼마를 주든 생각보다 적게 줄 것 같고, 그냥 경험이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나중에 과외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면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는 믿음 하에 선배가 하라고 해서 하게 되었다.

막상 시작하니, 엄청 까다롭고 귀찮은 작업이다. 문제를 푸는 것은 다소 기계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는데, 문제를 만드는 것이라니!!! ㅜㅠ

 

(바로 이 문제집 -_-a  내가 작업하고 있는 것은 개정판으로 2007년 개정판이니 아마 2006년 말에 출간 될 듯 ^^; )


댓글(8)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AYLA 2006-08-09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d
2. d
3. c
4. ㄹ
5. d

몇 점이나 나올지 후더더더덜더더러덜

기인 2006-08-09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역시 100점!!! 쿄쿄 쫌 문제가 이상하지는 않았는지요? 헤헤
역시 알라딘너들의 내공으로 못 풀 문제가 어디있겠습니까? ^^

LAYLA 2006-08-09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히히히히 헷갈렸던 것도 있는데 다행이네요 수능공부 할 때 언어 제일 좋아했거든요..^^

기인 2006-08-09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쿄쿄 저는 언어가 제일 어려웠어요 ㅜㅠ
그래서 국문과 온 거에요 =3=3=3
ㅎㅎ

기인 2006-08-09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4번 쫌 문제가 이상해서 수정했습니다. 그니까 layla님이 하신 답도 다릅니다 :)

기인 2006-08-10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횽횽 나중에 출판사에서 뭐라고 할까봐; 문제는 지움.
오늘 또 다른 출판사에서 이번에는 시 참고서 해설을 의뢰함. 흠. 시 30편 정도 해설해야 될 듯. 요즘 재정상황이 말이 아닌지라, 그리고 8월 20일까지만 빡세게 하면 된다고 해서 일단은 수락. 으음. 학술진흥재단 프로젝트도 착수해야 하는데... 역시 논문 썼다고 팽팽 백수가 되는 법은 아니군 아함.

나의왼발 2006-08-10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홍홍 저거 제가 재수할 때 나와서 대박 터뜨린 즐겨찾기 출판사 꺼군요.홍홍홍.
근데 요즘에 EBS 때문에 문제집 만들어도 안 된다고 하던데 홍홍홍.

기인 2006-08-11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 ㅋ 저는 건당 돈을 받는 줄 알았는데 어제 인세로 받는다는 것을 알아서 더 책임감은 막중하네요. 잘 팔릴지는 원 ^^a
 

나이가 들 수록 바빠진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석사논문만 쓰면 해방되겠지.. 했는데, 5월 말까지 박노해 시론에 대해서 A4 10장 정도로 글을 써야 한다. '20세기 한국 시론 연구(가제)'라는 책이 나오기로 한 것.

5월 말에는 박사시험이 있어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았고, 박노해의 시들은 읽어보았고 좋아했지만 자세히 읽어본 것도 아니요 분석적 글을 써본 일도 없다. 그런데 갑자기 박노해의 '시론'이라니.

투옥이전 80년대에 한정시켜서 다루기로 한다. 그렇다면 이제 80년대 박노해 시론 연구(가제)가 될 것이다. 자료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글을 쓴다.

박노해를 저자로 검색하니 다음과 같이 12권의 시집이 등장한다. 그 중 <<노동의 새벽>>이 출판사를 바꾸어가며 3번 나오는데, '풀빛'판은 아마 제본한 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결국 내 글에서 다루어야 할 시집은 <<노동의 새벽>>, <<머리띠를 묶으며>>,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이다. <<참된 시작>>은 겻다리 정도로 다루어야 겠다.

박노해를 다룬 이론가들 중에 필히 참고할 사람은 역시 조정환 선생.

박노해의 시론을 본격적으로 '지금' 다룬다는 것은 본격적인 리얼리즘의 재구성 또는 전면적 비판을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 이번에는 그럴수는 없지만, 이번 계기로 박노해에 대한 자료를 좀 모으고 본격적인 리얼리즘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야 겠다.

재구성될 수 있을까? 우리의 리얼리즘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처음 옮긴 글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가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 영문판 발간 50주년 기념으로 찍은 새로운 판에 붙인 서문이다. 말이 서문이지만 꽤나 길었던 글로, 번역한 글이 실린 <<세계의 문학>> 114호를 들춰보니 33페이지나 됬다. 사실 왜 <<오리엔탈리즘>>으로 유명한 사이드가 고전적 문학연구의 하나로 인정받는 <<미메시스>> 영문판 서문을 붙이게 되었을까부터 궁금증이 생겼다. 물론 이 '궁금증이 생겼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궁금증이 든다는 것이다. -_-; 사실 이 글을 번역할 때 나는 석사 1학기 신입생. 바짝 긴장해서 수업을 듣던 나로서는, 수업을 듣고 발표문을 준비하면서 이 글을 번역하느냐고 죽을 뻔 했다.

물론 학부때 '영산문 강독' 같은 수업에서 번역을 해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공개'되는 글을 번역하기는 처음이라서 매우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딴에는 학부때 라틴어를 1년반 남짓 열심히 -열심히만- 공부했던 나이고 <<미메시스>>와 <<오리엔탈리즘>>도 부분부분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또 이 글의 번역을 맡기신 선생님이 글이 어렵지 않다고 했기에 나는 매우 기쁜 마음으로 번역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심 영어 실력에 자신도 있었고 말이다. 그러나 왠걸. 번역은 영어 실력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

나는 중2때까지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어느정도까지는 영어로 사유하는 '직독직해'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영어로 사유한 것이 한국어로 매끄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 내 속에 두 언어 주체가 있어서 서로 '소통'은 되지만 이는 언어 이전의 단계인 것 같은 막막함.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이것을 한국어로 바꾸려니 애가 타는 것이었다. 번역 관련 '지도서(?)'들이 항상 강조하는 것처럼, 문제는 옮기기 전의 언어가 아니라 옮기려는 언어라는 것. 즉 문제는 '한국어'라는 것이다.

나는 자랑스럽게도 (-_-;)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지만, 국문과에서 배우는 커리큘럼에서 번역에 도움 될 것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다른과 사람들보다는 정확한 문법을 강조당했고(그러나 나는 비문투성이의 반항아(?)적 국문과 생) 많은 글들을 읽고 쓰게 된다는 것은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 연습은 다른 어문학과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정확한 한국어로 옮기기 막막한 문장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이드 선생의 문장들은 의도적인 '탈식민주의'적 문장인지 그의 문체는 한없이 비틀어지고 만연체라서 죽을 맛이었다. 또 아우어바흐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개념이었던 'figura'라는 것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힘들어서 신학에 관련된 책들도 참고해야만 했다.

역시 번역은 눈물나는 공부였다. 우리나라 학계의 문제점으로 항상 제시되는 것이 학자들이 번역을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학자의 업적을 평가할 때 우리는 번역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번역은 상당히 많은 에너지와 노력을 투자해야 되는데, 이것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니 1류급 학자들은 번역을 기피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번역의 질은 한없이 낮아져만 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꾿꾿히 양질의 번역을 행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들의 노고와 사명감에 그래도 한줄기 희망을 본다.

어쨌든 이를 계기로 나에게 번역을 맡기신 선생님께서 이 글의 번역이 여러가지로 공부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그럼 이제 변죽은 그만 울리고 본격적으로 내가 번역했던 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댓글(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성균 2006-04-30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안합니다 근데 평가받지 못하니 1급들이 번역을 기피한다니 그 사람들 1급 맞나요! 차라리 특급하세요, 레벨이 중요하면. 114호 공들여 다시 읽겠습니다.

기인 2006-04-30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정말 우리나라에 천병희 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희랍어 원문 번역이 몇 년, 아니 몇 십년 늦어졌을지 생각만해도 아찔합니다.

로쟈 2006-08-15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었던 글이네요. 원문도 갖고 있었는데, (원문 자체가) 생각만큼 인상적이진 않더군요. 그래도 번역에는 꽤 품이 들어갔겠습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