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
리처드 J. 라이더 & 데이비드 A. 샤피로 지음, 김정홍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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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위대한 심리학자 칼 융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라.

"인생의 아침 프로그램에 따라 인생의 오후를 살 수는 없다. 아침에는 위대했던 것들이 오후에는 보잘 것 없어지고, 아침에 진리였던 것이 오후에는 거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유명한 교육자이자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독창성이야말로 행복하고 충만한 라이프스타일을 유지시키는 필수요소라고 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가 만든 신조어 '라이프스타일'은 이제 거의 '독창성'의 반대 개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오늘날 라이프스타일이란 쇼핑센터에서 사들이는 물건, 즉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물건처럼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공자에서 틀에 넣고 찍어낸 보편적이고 표준화된 행복에 만족할 수 있을까?

 

직장 동료를 만나도, 친구를 만나도 어제와 똑같은 이야기,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말만 주고받는다. LA 다저스의 4번 타자가 병살타를 친 이야기, 어느 유명 스타가 이혼한 이야기, 인기 드라마 주인공들의 패션에 대한 이야기... 그 속에 정작 '너'와 '나'의 이야기는 빠져 있다. 대화의 탈을 쓴 이 무수한 잡담은 각자가 짊어진 가방을 더 무겁게 할 뿐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마이클 아가일은 행복의 심리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질적으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삶의 조건은 인간관계, 일, 여가, 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 세 분야에서 만족의 경지에 이르는 데 있어 절대적 혹은 상대적 부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융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인생의 절반, 즉 30대 중반을 넘긴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은 삶을 종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었다. 그들이 병들게 된 것은 현존하는 종교들이 선사하는 깨우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적인 세계관과 인생관을 되찾지 못한 환자들 가운데 온전히 치유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행복하다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지닌 것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는 일이다. 일은 그 자체로도 즐거울 뿐 아니라 그것이 쌓여 점차 우리 존재를 완성하는 기쁨의 근원이 된다."

 

삶에 대한 메시지 하나라도 붙잡으려면 오히려 삶에서 잠시 떨어져 있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삶은 오직 살아봐야만 풀 수 있는 수수꼐끼로 가득 차 있다. "삶이 무엇인지는 삶의 뒤편에서 봐야만 알 수 있다. 하지만 삶은 반드시 앞을 향해 살아나가야 한다."라고 했던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사실 도구의 수명과 직업의 수명이 같아지는 현상은 늘 있어 왔다. 물레의 달인은 방직기의 등장과 더불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맷돌을 만들던 사람은 믹서가 발명되면서 실직자가 되었다. 만일 당신이 어느 특정한 도구로 경력을 쌓아왔다면 당신은 그 도구의 만수무강을 기도해야 할 것이다. 결국 도구가 아닌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재능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렇다면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당신의 재능은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현재 당신이 어디서 어떤 일을 하건-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아니면 자기 집 지하 작업실이든-당신의 주인은 오직 당신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유일한 고용주는 바로 당신 자신이며, 당신은 '나'라는 이름의 사업체다. 그리고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성장과 발전을 위해 종합적인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병이나 깡통, 신문 따위를 재활용할 수 있는데, '나'라고 재활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직업세계라는 이 변덕스런 바닥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자신을 재활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즉, 가지고 있는 가방들을 다시 꾸려야 한다는 것이다. 설령 당신의 직업이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만큼 안정적이라 할지라도 생존을 위해서는 삶과 일을 다시 꾸리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무엇이든 숙달되는 순간부터 싫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중년을 어떻게 묘사하든 인생의 절반 무렵은 매우 중요한 시기이며 짐을 가볍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 시기에 접어든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자문한다.

"지금쯤은 그래도 뭔가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면 적어도 내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는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그동안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인생에는 미리 설치된 무대도 전환점도, 그리고 예측 가능한 중년의 위기 같은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대개 예기치 않는 사고나 개인적인 경험, 경제 상황, 그리고 살고 있는 시대의 결과물이라는 얘기다. 사람들은 이렇듯 자연스럽게 목적과 성공의 매 단계를 드나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삶의 한계와 가능성을 좀 더 요령껏 받아들이는 일뿐이다.

 

칼 융은 우리가 40대나 50대 혹은 그 이상이 되면 자신의 삶이 균형을 잃었다는 생각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느 특정 분야에만 시간을 쏟아 붓고 나머지 분야는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이제 '미지의 자아'를 발견해야 할 떄가 된 것이다.

 

삶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행복을 찾아 움켜쥐는 것부터가 애초에 글러먹은 시도일 뿐이다. 행복은 붙잡자마자 시들기 때문이다. 사실 가방을 다시 꾸리는 작업도 그렇다. 그것은 당신이 계속해서 탐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베이스캠프 같다. 그것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건 당신 안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 17세기 철학자 베네딕트 스피노자는 중년에 가방을 다시 꾸리는 일에 열중했다. 그는 우선 흔히 사람들이 최고의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즉, 부와 명예 그리고 오감의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쏟았던 자신의 노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것들이 매력은 있지만 결코 진정한 행복은 주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 커다란 발견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행복이나 불행은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의 물질에 의해 결정된다."

순간의 매력이나 일시적인 가치를 사랑한다면 행복 또한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된다. 하지만 좀 더 지속적인 가치를 사랑한다면 행복 또한 좀 더 오래갈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다시 꾸린 내 가방 속에는 철학 공부에 대한 열망에 다시 불을 비피는 것도 들어 있었다. 그 공부에 몰두하다 보니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다행스럽게도(또 놀랍게도) 대학원 시험에 합격했다. 그래서 책을 마지막으로 손보고 있는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 일을그만두고 철학박사 학위를 따겠다는 평생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대학원과 그 안에 기다리고 있는 온갖 도전이 눈앞에 어렴풋이 떠오른다. 동급생들보다 거의 스무 살은 더 나이 먹었을 누군가의 모습이. 길을 잃을까 두렵지 않으냐고? 물론 두렵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 기회를 그냥 보내버리고 난 뒤 남은 생애 동안 내내 그 기회를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워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만약 학위를 딴다면 그 학위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 아직은 모른다. 솔직히 첫 학기를 잘 통과할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다가올 변화에 가슴 떨리고 앞으로의 여행에 내 모든 열정을 쏟아 부을 거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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