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파도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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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신은 침묵으로 나에게 벌을 내렸어요.지금까지 우리를 연결해주고 결속시킨 것은 바로 말이었죠.'
<새벽 세시,바람이 부나요?>의 후편이다. 전작에서는 에미와 레오는 온라인상에서만 메일을 주고 받는다. 마지막 부분에서 레오가 보스턴으로 가기전에 극적인 만남을 하려고 하지만 에미는 남편의 말을 듣고는 만남을 포기한다. 아니 자신의 현재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런 그들이 다시 메일을 쓰기 시작했고 다시 주고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스턴에서 돌아온 레오에겐 '파멜라' 라는 여자가 있다. 에미를 가슴에 간직한 그는 자신의 심장안에 에미를 꼭꼭 숨겨 두고는 '팜'을 만난 것이다. 

에미 또한 예전과 별다르지 않은 일상을 이어가지만 레오가 보스턴으로 떠났던 빈 시간동안 에미에겐 더 깊은 레오게 향하는 마음이 생겼다. 서로 자신들에서 벗어나려 했던 두사람은 둘에게 자꾸만 둘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느끼고 오프라인상에서 만남을 시도한다.한번의 짧은 만남 이후 살짝 스친 '점'을 영원히 간직하는 순진한 레오, 만남이후 레오는 팜에게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에미 또한 남편과의 사이에 거리가 멀어진다. 아니 레오가 그녀에게 남편이 그들의 메일을 모두 읽었고 자신을 만나 에미에게서 떨어져 달라는 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자신은 누구에게 속한 물건이 아닌 오로지 '자신만의 것' 이라는 것을.

'어쨋든 당신은 내게서 사라질 수 없어요. 내 안에 당신의 너무 많은 것이 간직되어 있거든요. 나는 그걸 언제나 재산으로 여겨왔어요.' 이 남자 레오 어쩌나. '라 고메라 섬'에 여행을 간 에미는 그곳 사람들에게서 '일곱번째 파도' 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처음 여섯 번의 파도는 예측할 수 있고 크기가 엇비슷대요. 연이어 이는 여섯 번의 파도는 깜짝 놀랄 만한  일 같은 건 만들어내지 않아요. 일관성이 있다고나 할까요.여섯 번의 파도는 멀리서 보면 서로 다른것 같기도 하지만 늘 같은 목적지를 향하죠. 그러나 일복번째 파도는 조심해야 해요. 일곱번째 파도는 예측할 수 없어요.' 라면서 자기와 일곱번째 파도에 몸을 맡겨 보자고 하지만 레오는 그녀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잔잔한 파도를 이야기 한다. 

레오의 사랑의 위기 그리고 이별, 파멜라와 잘 되어가던 레오는 어느날 에미의 존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게 되고 팜은 그 일로 그의 곁은 떠나게 된다. 이별을 맞은 그는 에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진심' 임을 알아채고 그녀에게 메일을 보내보지만 그녀 또한 가족과 여행을 갔다. 남편과의 다시 재충전의 여행으로 착각한 레오, 하지만 남편과 이혼한지 반년이 넘었다는 에미의 말에 그들은 서로를 받아 들인다. 

이 소설 역시 메일로만 쓰여졌다. 하지만 글로 표현된 각자의 감정, 글 속에 감추어진 감정과 글이 주는 힘에 대하여 이 소설 또한 큰 힘을 발휘하며 아름답게 너울진다. 글로만해도 얼마나 멋진 사랑을 할 수 있는지, 사람의 감정을 어떻게 파고 들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은 작가의 의도대로 독자도 그들과 한편이 되어간다. 그들의 사랑에 과연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소설 그 자체로 아름답다. 전작을 읽고 얼른 구매를 해서 그들의 뒷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과연 인생에서 '일곱번째 파도' 는 언제 올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보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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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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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칠레의 작은 어촌 마을인 이슬라 네그라에 사는 시인 '네루다' 의 우편물을 가져다 줄 전담 우편배달부가 되겠다고 자처한 17살의 '마리오'. 그는 유명한 시인을 만나며 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시인에게 시쓰기에 대하여 물어 보지만 시인은 '메타포' 에 대하여 이야기 해준다. '메타포' 그것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상이 모든것들,한마디로 시는 우리 일상이나 마찬가자라는 것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마리오의 아버지까지도 네루다의 시집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그는 국민시인이면서 우편배달부에겐 너무도 인간적인 사람이다. 

그에게 우편물을 가져다 주는 것을 즐기면서 시인과의 대화며 그의 시집에 사인까지 받고 그의 시를 모두 암송하게 되기까지 마리오에게도 시는 일상이 되어 갈즈음 우연히 주점에서 첫눈에 반할 정도의 아름다운 아가씨 '베아트리스'를 만났다. 그녀는 과부인 엄마와 함께 주점을 하는데 그녀 또한 마리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엄마는 마리오의 사탕발림이라며 둘의 관계를 인정해주지 않으려 하기에 마리오는 그만 애가 탄다. 그런 둘의 관계를 좀더 좁히기 위하여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부탁을 하고 네루다의 중재로 그들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70년대 칠레는 아옌데의 죽음과 민주화로 가기 위하여 심하게 몸살을 앓는 때, 네루다는 노벨상을 받고 파리에 머무르기도 하지만 끝내는 병을 얻어 고국으로 돌아오고 만다. 하지만 그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고 병중이다. 그 자신 또한 자신의 '검은 물' 과 같은 미래,죽음을 본다. 그런 그에게 마리오는 그에게 온 전보를 외어 들려 주지만 그에겐 소용이 없다.

스카르메타의 말처럼 작품속에는 '인간적이면서 유며있고 바닷가의 집에서 일상이 詩인 네루다' 를 너무 잘 그려냈다. 노벨문학상을 받아 국민적 추앙을 받지만 그렇다고 그가 하늘의 별이 아닌 땅에서 빛나는 '바닷가의 시인' 이었음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시를 어느 틀에 얽매어 넣기 보다는 보이는 것, 듣는 것, 맛보는 것,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시의 소재이고 시 그 자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시는 내것이 아닌 읽는 이의 것임을,모두의 것임을 말하고 있다. 

'장모님은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삼겨버리잖아요. 글이란 음미해야 하는 거예요. 입 안에서 스르르 녹게 해야죠.'
아이스크림도 아닌 글이 입 안에서 스르르 녹게 해야 하는 것은 어떤 맛일까. 과부인 장모는 네루다에게서 온 편지를 빠르게 읽고 마리오는 짧은 글마져 한 자 한 자 되새김질 하듯 천천히 녹여낸다. 시인 네루다를 그리고 칠레의 작은 어촌 마을 '이슬라 네그라'를 아름답게 그려내고 시의 모테인 글마져 감미롭게 녹여 내며 읽어야 한다는 글 읽는 맛까지 지적해주는 멋진 소설, <안데스의 땅 남극의 바람,칠레> 란 책을 보고 너무도 가고 싶었던 곳인데 지금은 지진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와 위기에 처한 나라 칠레, 언제 기회가 되면 네루다의 작은 어촌 마을을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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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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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가족을 어이할꼬... 한마디로 불량한 가족이다. 가족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모래알 같은 가족이지만 그들이 24평 연립주택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화장품 외판을 하는 칠순의 엄마 밑에 평균나이 49세의 자식들이 다시 뭉쳤다. 아니 인생의 쓴잔을 마시고 할 수 없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찾은 것이 '엄마의 둥지' 였다. 오십평생 비밀에 붙여졌던 배다른 형과 영화로 이십억을 말아먹고 이혼에 알콜중독자가 되어 물러날곳 없이 바닥에 떨어져 버린 둘째 아들과 카페를 '아는 언니' 와 동업을 하면서 세번의 결혼을 하고 중학생 딸을 두었지만 그 딸 또한 공부엔 전혀 관심이 없고 예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와봐도 보이지 않는 욕을 입에 달고 살면서 삼촌들 앞에서 혼자 피자 한판을 뚝딱 하는 불량 조카의 동거는 처음부터 불협화음이다. 그런 자식들을 칠순이 노모는 '배고프지,어여 집에 거서 밥묵자' 라는 무관심한 말로 그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준다.

툭 하면 방구 '뿌웅' 하는 형, 그런 형에게서 벗어나듯 분리수거함 옆에 끈으로 묶어 누군가 내다 버린 <헤밍웨이 전집> 인 다섯권이 책은 인모나 한모가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책이라곤 손에 잡아 보지도 않았던 형,일명 오함마로 불리는 한모는 <노인과 바다> 를 집어 들고는 그 속에서 자신은 노인이 잡은 '청새치' 와 같은 존재라며 조카딸인 민경의 가출을 계기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나선다. 민경을 찾아 주는 대가로 일을 하기로 했던 암흑가의 일, 그곳에서조차 바닥까지 밀려나고 그가 선택한 것은 해외도피,미장원 숙자씨와 달콤하면서 쌉싸름한 해외도티를 멋지게 해내는 오함마, 그는 피 한방울 안섞였지만 역시나 인모에겐 형이었다.

동거후에 들어나는 가족의 진실,막내여동생인 미연이 인모와는 피한방울 안섞인 동생이었고 그의 생부는 살아 있으면서 인모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그를 만나고 있었던것. 따지고 보면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가족' 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작가는 그들을 한그릇 '비빔밥' 처럼 멋지게 버무려 가족으로 만들어 놓는다. 가족은 어쩌면 피보다 '믿음' 이 더 중요한 것이라 말하고 있는 듯도 하다. 둘째 인모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풀려 나가서일까 그가 영화감독이라 그런지 이야기에는 추억의 영화가 많이 등장을 한다. 헤밍웨이와 함께 등장하는 영화는 이야기의 큰 축을 형성하면서 헤밍웨이와 추억의 영화에 대한 오마주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하고 전쟁의 주변인밖에 되지 못했던 헤밍웨이, 많은 소설을 쓰고 그의 소설은 영화화 되고 그의 인생이 소설같은 혹은 영화같았지만 늘 외로움에 굶주린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머리에 엽총을 겨누어야만 했다. 그런 헤밍웨이를 삶을 돌아보며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내 삶 전체가 뿌리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며 신기루를 쫓아 살아온 원숭이짓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실소를 지었다.' 신기루처럼 너무 큰 것을 쫓아 온 인모는 입에 풀칠하기 위하여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어 영화감독으로 하지 말아야하는 <에로영화> 제작을 하게 된다. 삶은 별다른게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살기 위해서 너무 큰것을 바란다면 그에 준하는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는 신기루를 쫓기위해 아내와의 이혼도 전재산도 날렸고 자신이 몸까지 망쳤다. 콩가루 같은 자식들을 품에 보듬어 주는 엄마를 보며,늘 자식들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칠순의 노모를 보며 인생은 별다른게 없다는 것을 느끼는 그는 한때 불륜을 저지르던 후배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산다.

'헤밍웨이 전집을 처음 읽기 시작한 이후, 나에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것은 대부분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인생이 늘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무언가에 발목이 잡혀 이러저리 한 세월 이끌려 다니기도 하는게 세상살이일 터인데 때론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 가게 내버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계획을 멋지게 새운다고 계획표대로 인생이 이루어진다는 얼마나 좋을까? 과연 그런 인생이 존재할까? 작가는 '인생,삶,가족' 이라는 명제를 자신만의 위트와 재치로 웃으면서 쉽게 흘려버리며 젖어 들도록 하면서 풀어 나간다. '삶이란 별개냐 그냥 살아지는 것이지' 라는 말처럼 등장인물들이 연립주택앞 버려진 낡은 가죽소파에 앉아 해바라기 하면서 남의집 자식들 가십거리로 도마질을 하며 하루 소일하는 노인들의 입방아처럼 그들의 삶은 끝은 과연 어디일까? 라는 물음을 갖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삶이 한순간 끝나지 않고 어디엔가는 '비상구' 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엄마의 자궁에서 평균나이 49세 자식들이 인생의 에너지를 다시 '재충전' 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건설하기 위하여 배부르고 등 따뜻하던 그 자궁을 떠난다. 엄마 또한 사회에서 버려진 자식들에게 이렇다 저렇다 한마디 하지 않고 더 잘먹어야 한다며 그들이 지쳐 떨어질때까지 '고기반찬' 을 올린다. 든든히 배채워야 일을 하지... 라는 말처럼 자궁에서 다시 산고의 고통,형은 다시 감방에 가게 된 일이며 둘째는 형을 위해 죽을 만큼 두들겨 맞은 일 그리고 미선은 딸의 가출을 겪고 그들은 다시 세상에 나왔기에 그들의 앞으로 삶은 '희망' 적이다. 어쩌면 가족아닌 한가족이 아픔을 이겨나가는 치유의 소설이기도 하다. '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양아치지만 그래도 언제나 네 형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 주는 가족, 그들의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통과의례가 유쾌 하면서 재밌어 작가를 다시 보게 된 소설이다. 이 작품 전에 읽으려 했던 <고래>라는 작품을 빨리 읽어보고 싶게 만들며 바닥을 쳤던 자식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 준,자식들을 믿고 따라 주었던 엄마, 가족의 울타리엔 엄마의 자리가 굳건해야 가정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소설을 통해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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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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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사막에서 길을 잃은 것과 같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안내자라곤 하늘의 별들밖에 없는 사막에서...'
작가의 처녀작인데 낯선 페르시아 문화에 소년과 소녀의 사랑과 우정이 진하게 결부되어서인지 더 아름답운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인 '테헤란의 지붕' 은 소년이 성장통을 앓던 장소로 그에게 커다란 의미의 장소이다. 17살,한참 꿈 많고 호기심 많은 청소년 파샤와 아메드는 골목의 밉지 않은 악동쯤 된다. 아버지에게 권투를 배우고 권투로 맺어진 형제애로 똘똘 뭉쳐 아메드가 사랑하는 파히메를 보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가 오빠들에게 혼쭐이 나도 그들은 그녀를 보았다는 것에 기분이 좋다. 파샤 또한 이웃집의 약혼자가 있는 '자리' 를 짝사랑하지만 그녀의 약혼자는 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닥터라는 대학생이다. 그는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음지에서 하며 불의와 싸우지만 그와의 의리때문에 자기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속앓이만 한다. 파샤와 아메드의 우정과 사랑은 파샤의 집 지붕위에서 단단히 익어간다.

어느날 밀서를 읽고 음지에서 움직이던 닥터가 죽음을 당하고 소년 파샤와 아메드 그리고 파히메와 자리는 한층 성숙하게 된다. 쫒기는 와중에 자리의 집으로 찾아 들었던  닥터를 지붕위에서 얼어 붙은듯 보고 있다가 비밀경찰에게 비밀을 알려주게 된거나 마찬가지로 닥터가 붙잡혀가게 되고 죽게 되고 파샤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닥터가 죽게 되었다며 자괴감에 빠져 든다. 아메드와 자리는 그런 파샤를 위로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뉘우치듯,닥터를 정당한 행동을 이어받듯 그가 피흘리며 끌려간 자리에 '붉은 장미' 를 심는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뭘까?... 시간이야. 시간은 우리가 지닌 가장 소중한 것이지..
닥터의 죽음은 모두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밀서를 읽는것이 아니 밀서로 정해진 책들이 미국이나 서구에서는 죽음까지 가는 일이었을까 하면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슬람문화에 대해 비관적이면서도 그들은 또한 자신들의 영역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소년이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을 한 그의 지붕은 파샤에겐 '소중한 시간' 이 정지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자리에 대한 사랑을 키웠고 확인했으며 그녀와의 사랑을 발전시켜 나갔으며 아메드와의 우정 또한 더 진하게 성장을 했다. 서로의 별을 찾아가며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던 지붕위에서 소년은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랑을 찾게된다.

닥터의 40제의 날, 자리는 분신자살을 기도한다. 뚯하지 않은 일로 그들은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고 파샤는 기억을 잃게 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며 자리가 죽었다고 생각을 한다. 자리와 파샤를 잃은 골목도 예전의 그 골목이 아니듯 조용하면서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듯 하다. 그런 파샤의 눈에 부르카를 뒤집어 쓴 '가면의 천사' 의 정체를 알게 되고 그는 새희망을 발견하듯 자리를 다시 만나면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쓸 것을 다짐한다. 

인생은 균형 맞추기 게임과도 같은 거잖아..
그들이 아름다운 청춘을 보냈던 자리네집 마당에서의 여름날들이 있는가 하면 닥터의 죽음과 그의 죽음으로 인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둘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도 그 하나가 되어 피해자가 되어 갈때 그들이 그 긴 암흑의 터널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던 것은 <우정과 사랑> 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란의 독재정권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그들의 사랑과 우정은 <연을 쫓는 아이> 와 비슷한 류의 소설로 가슴을 따듯하게 해주면서도 낯선 문화를 이질감 보다는 '함께 공감' 하는 문화로 아름답게 잘 그려주었다. 소설을 손에 잡은 후 늦은 시간인데 얼마 남지 않아서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 다 읽어야 속시원히 잠을 이룰듯 하여 마지막까지 읽고 잠을 취했던 소설이며 파샤와 아메드 그리고 자리와 파히메의 사랑과 우정이 포도주처럼 깊은 맛으로 숙성되어 밝은 별처럼 빛날 수 있어 희망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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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 스페인·라틴아메리카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후안 룰포 외 지음, 김현균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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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 폴란드편을 읽고 너무 좋아서 스페인편을 읽게 되었다.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는 우리가 흔하게 접하지 못하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낯선 문화와의 조우라 더 기대감이 컸다. 한 권에서 여러작가들의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독자들에게는 행운이다. 전권을 구매하고프지만 한 권 한 권 구매하여 읽는 맛이 더 좋을 듯 하여 기회가 주어질때마다 낱권으로 구매를 해보려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중에 제일 눈에 익은 작가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이다. 그의 작품중에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읽어 보았고 다른 작가중에 '이사벨 아옌데' 는 그에 대한 소개를 읽어 보았지만 아직 책은 접해보지 못해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낯설다. 작가및 문화가 낯설어 읽기전에 걱정을 했지만 첫 작품부터 내 걱정을 싹 쓸어준다. 

레오뽈도 알라스의 <안녕,꼬르데라!> 이 작품은 폴란드편에 있던 '우리들의 조랑말'과 비슷한 감이 있다. 꼬르데라는 쌍둥이 로사와 삐닌이 키우는 늙은 암소이다. 전원적인 삶을 사는 그들의 마을에도 전봇대와 철도가 개통되고 어머니가 죽고 난 후 그들이 사랑을 듬뿍 주었던 늙은 암소 '꼬르데라'를 팔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성장하여 삐닌은 내전에 참가하게 되고 로사는 그들이 없는 고통속에 남겨지게 된다. 도시와 전원의 삶과 전후의 피폐한 사회상을 비판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이그나시오 알데꼬아의 <영 산체스>, 가난한 삶을 벗어나기 위하여 복서의 꿈을 키우는 주인공 빠꼬,그런 아들을 자랑거리로 삶는 아버지와 그외 그를 중심으로 가난한 자들의 가난하지만 굽히지 않는 삶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작품이다 '난 그들을 위해 이겨야 해. 아버지와 아버지의 자존심을 위해, 누이동생과 그녀의 희망을 위해, 어머니와 그분의 평온을 위해 이 시합을 이겨야 해. 꼭 이겨야만 해.' 모든이의 희망을 온 몸에 받은 빠꼬는 그들의 희망을 안고 링에 오른듯 승리에 대한 자신감에 불타있다. 

아나 마리아 마뚜떼의 <태만의 죄>, 열세살에 그의 마지막 남은 혈육 어머니가 돌아 가시고 사촌 에메떼리오에게 맡겨진 로뻬는 그가 시키는대로 목동일을 충실히 한다. 그러다 어느날 성장을 한 후에 친구를 우연히 만나고 친구의 우연하고 날렵하며 흰 손가락에 비해 자신의 손은 육포조각처럼 거칠고 두껍다는 것에 분노를 일으키고는 그를 그동안 키워준 사촌을 돌로 쳐 죽이게 된다. 그동안 사촌의 말을 들으며 '태만의 죄' 를 저지르며 무지렁이가 된 것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꿈을 키워야 하는데 그에게 꿈이 없었던 것이다.

헤수스 페르난데스 산또스의 <까까머리>, 이 작품은 짧지만 강하다. 열살도 안된 소년은 까까머리이며 폐병환자이고 그를 데리고 다니는 어른은 그를 병원에 데리고 가지만 돈도 집도 정말 아무것도 없다. 겨우 구걸하여 벌은 돈으로 따듯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여보지만 죽음은 그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자신의 죽음을 감지하는 소년 '난 죽을 거야.' '넌 죽지 않을 거야,죽지 않아..'  어리지만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는 소년의 맘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루벤 다리오의 <중국 여제의 죽음>, 자신의 예술을 사랑하는 레까레도,하지만 그이 아내는 생활을 사랑한다. 너무도 다른 그들의 삶. 어느날 그의 친구가 중국 여행을 가서 선물을 하나 보내온다. 도자기로 된 중국여제흉상, 그 선물이 온 뒤로 아내에게 향했던 사랑은 도자기인 중국여제에게 향하고 아내의 삶은 말 그래로 황폐해지고 말았다. 늘 도자기와 함께 하는 레까레도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그녀는 당당히 중국여제도자기를 깨 버린다. 분위기도 중국풍이며 그들에게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예술품은 예술의 대한 욕심및 숭배물을 표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레까레도를 보며 인간의 욕심의 끝을 보는 듯 하다. 

오라시오 끼로가의 <목 잘린 암탉>, 정상적인 아이를 원했던 부부에게 어느날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는 후천적으로 장애를 가진다. 둘째는 정상을 바라며 아이를 갖지만 그 아이 또한 첫째와 마찬가지의 경우를 당하게 되고 세번째에도 그들은 똑같은 아이들을 얻게 되고 정말 간절하게 원해 네번째 딸이면서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를 얻는다. 네명의 장애아인 아들들은 제대로 돌보지 않고 네번째 딸에게 맹목적 사랑을 전해주던 어느날 그들의 엄마는 부엌에서 닭을 잡게 되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못난 아들들은 부모가 집을 비운날 자신들의 여동생을 엄마가 닭을 잡던 그대로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바보 아이들 넷을 둔 불행한 부부의 비극적 삶을 소름끼치게 잘 그려낸 작품이다. 

그외 작품들도 낯설지만 읽으면 재밌다. 흔하게 접할 수 없는 작품들을 읽으며 한동안 행복한 여운에 빠질 수 있는 책이다. 독서 편식을 잠시 잠재우는 책으로 스페인이나 라틴아메리카는 여행서로 많이 접하다가 이런 단편들로 접하니 그 맛이 낯설지만 꽤 감칠맛 난다. 익숙하지 않지만 사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아 삼키지 못하고 입안에 오물고 있을 정도는 아니라 잠시 먼 여행을 다녀온 듯 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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