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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아 이 가족을 어이할꼬... 한마디로 불량한 가족이다. 가족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모래알 같은 가족이지만 그들이 24평 연립주택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화장품 외판을 하는 칠순의 엄마 밑에 평균나이 49세의 자식들이 다시 뭉쳤다. 아니 인생의 쓴잔을 마시고 할 수 없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찾은 것이 '엄마의 둥지' 였다. 오십평생 비밀에 붙여졌던 배다른 형과 영화로 이십억을 말아먹고 이혼에 알콜중독자가 되어 물러날곳 없이 바닥에 떨어져 버린 둘째 아들과 카페를 '아는 언니' 와 동업을 하면서 세번의 결혼을 하고 중학생 딸을 두었지만 그 딸 또한 공부엔 전혀 관심이 없고 예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와봐도 보이지 않는 욕을 입에 달고 살면서 삼촌들 앞에서 혼자 피자 한판을 뚝딱 하는 불량 조카의 동거는 처음부터 불협화음이다. 그런 자식들을 칠순이 노모는 '배고프지,어여 집에 거서 밥묵자' 라는 무관심한 말로 그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준다.
툭 하면 방구 '뿌웅' 하는 형, 그런 형에게서 벗어나듯 분리수거함 옆에 끈으로 묶어 누군가 내다 버린 <헤밍웨이 전집> 인 다섯권이 책은 인모나 한모가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책이라곤 손에 잡아 보지도 않았던 형,일명 오함마로 불리는 한모는 <노인과 바다> 를 집어 들고는 그 속에서 자신은 노인이 잡은 '청새치' 와 같은 존재라며 조카딸인 민경의 가출을 계기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나선다. 민경을 찾아 주는 대가로 일을 하기로 했던 암흑가의 일, 그곳에서조차 바닥까지 밀려나고 그가 선택한 것은 해외도피,미장원 숙자씨와 달콤하면서 쌉싸름한 해외도티를 멋지게 해내는 오함마, 그는 피 한방울 안섞였지만 역시나 인모에겐 형이었다.
동거후에 들어나는 가족의 진실,막내여동생인 미연이 인모와는 피한방울 안섞인 동생이었고 그의 생부는 살아 있으면서 인모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그를 만나고 있었던것. 따지고 보면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가족' 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작가는 그들을 한그릇 '비빔밥' 처럼 멋지게 버무려 가족으로 만들어 놓는다. 가족은 어쩌면 피보다 '믿음' 이 더 중요한 것이라 말하고 있는 듯도 하다. 둘째 인모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풀려 나가서일까 그가 영화감독이라 그런지 이야기에는 추억의 영화가 많이 등장을 한다. 헤밍웨이와 함께 등장하는 영화는 이야기의 큰 축을 형성하면서 헤밍웨이와 추억의 영화에 대한 오마주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하고 전쟁의 주변인밖에 되지 못했던 헤밍웨이, 많은 소설을 쓰고 그의 소설은 영화화 되고 그의 인생이 소설같은 혹은 영화같았지만 늘 외로움에 굶주린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머리에 엽총을 겨누어야만 했다. 그런 헤밍웨이를 삶을 돌아보며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내 삶 전체가 뿌리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며 신기루를 쫓아 살아온 원숭이짓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실소를 지었다.' 신기루처럼 너무 큰 것을 쫓아 온 인모는 입에 풀칠하기 위하여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어 영화감독으로 하지 말아야하는 <에로영화> 제작을 하게 된다. 삶은 별다른게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살기 위해서 너무 큰것을 바란다면 그에 준하는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는 신기루를 쫓기위해 아내와의 이혼도 전재산도 날렸고 자신이 몸까지 망쳤다. 콩가루 같은 자식들을 품에 보듬어 주는 엄마를 보며,늘 자식들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칠순의 노모를 보며 인생은 별다른게 없다는 것을 느끼는 그는 한때 불륜을 저지르던 후배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산다.
'헤밍웨이 전집을 처음 읽기 시작한 이후, 나에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것은 대부분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인생이 늘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무언가에 발목이 잡혀 이러저리 한 세월 이끌려 다니기도 하는게 세상살이일 터인데 때론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 가게 내버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계획을 멋지게 새운다고 계획표대로 인생이 이루어진다는 얼마나 좋을까? 과연 그런 인생이 존재할까? 작가는 '인생,삶,가족' 이라는 명제를 자신만의 위트와 재치로 웃으면서 쉽게 흘려버리며 젖어 들도록 하면서 풀어 나간다. '삶이란 별개냐 그냥 살아지는 것이지' 라는 말처럼 등장인물들이 연립주택앞 버려진 낡은 가죽소파에 앉아 해바라기 하면서 남의집 자식들 가십거리로 도마질을 하며 하루 소일하는 노인들의 입방아처럼 그들의 삶은 끝은 과연 어디일까? 라는 물음을 갖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삶이 한순간 끝나지 않고 어디엔가는 '비상구' 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엄마의 자궁에서 평균나이 49세 자식들이 인생의 에너지를 다시 '재충전' 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건설하기 위하여 배부르고 등 따뜻하던 그 자궁을 떠난다. 엄마 또한 사회에서 버려진 자식들에게 이렇다 저렇다 한마디 하지 않고 더 잘먹어야 한다며 그들이 지쳐 떨어질때까지 '고기반찬' 을 올린다. 든든히 배채워야 일을 하지... 라는 말처럼 자궁에서 다시 산고의 고통,형은 다시 감방에 가게 된 일이며 둘째는 형을 위해 죽을 만큼 두들겨 맞은 일 그리고 미선은 딸의 가출을 겪고 그들은 다시 세상에 나왔기에 그들의 앞으로 삶은 '희망' 적이다. 어쩌면 가족아닌 한가족이 아픔을 이겨나가는 치유의 소설이기도 하다. '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양아치지만 그래도 언제나 네 형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 주는 가족, 그들의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통과의례가 유쾌 하면서 재밌어 작가를 다시 보게 된 소설이다. 이 작품 전에 읽으려 했던 <고래>라는 작품을 빨리 읽어보고 싶게 만들며 바닥을 쳤던 자식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 준,자식들을 믿고 따라 주었던 엄마, 가족의 울타리엔 엄마의 자리가 굳건해야 가정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소설을 통해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