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비, 성균관에 들어가다 - 옛날 공부법으로 본 우리 역사 처음읽는 역사동화 2
세계로 지음, 이우창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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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한동안 마음을 흔들어 놓던 드라마가 있었다,성균관 스캔들 말이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란 원작으로 여자가 남장을 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도 하고 사랑도 하게 되는 조금은 발칙한듯 하면서도 정말 재미를 주면서 '성균관' 그곳에 주목하게 한 드라마였다.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하여 역사 논술 선생님들이 모여 재밌와 감동을 함께 하며 역사와 옛날의 공부법에 대하여 읽어나가면서 배우게 하는 정말 유익한 책인듯 하다. 그림 또한 익살스럽고 재밌다. 손에 잡자마자 웃으면서 그리고 울컥 하는 감동을 함께 하며 읽어나갔다.

호학好學이란 무엇일까, 아니 성균관 옛날의 대학이나 마찬가지인 그곳에서 옛날 우리 조상들은 공부를 어떻게 하고 공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옛날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선 안된다고 했지만 요즘은 어떤가 선생이 잘못하면 저마다 핸드폰을 꺼내 들고 동영상 촬영을 하여 UCC로 올린다. 그렇게 하여 문제화 시켜 자신들의 이익을 얻는다. 사제간의 도리는 찾아볼 수 없고 한대만 때려도 부모가 달려오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스승을 옛날처럼 하늘과 같은 존재로 여기기란 힘들 일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경쟁심만 키워준다. 그리고 정말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이 되었으니 그 밑의 아이들은 어떨까, 호학을 생각할까. 요즘 대학등록금 때문에 누군가는 자살을 하고 누군가는 수업거부를 하며 일인 시위를 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미친 등록금' 이라 하여 오류를 수정하라고 한다. 그런 교육의 현주소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도리나 유생과 유생사이의 도리를 찾아보기란 힘든 일이다. 세로의 아버지는 그의 일기에 '배움에서 머무르지 않고 배운 대로 살아갈 때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평생 배움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때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고 비로소 군자가 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집 가훈인 호학임을 늘 기억하여라.' 라고 썼다. 배움을 배움에서 그치지 말고 배운대로 살아가고 배운대로 누리며 살라 했다. 머리속에 배움을 가두어 두지 말고 널리 그 기쁨을 누리라 했다. 

주인공 세로는 한양이 아니 부산에서 살았기에 한양과는 다른 교육을 받고 자랐다. 조금 덜 공부에 부대끼며 자유로운 공부를 했다고 할까.그런 그가 성균관에 들어갔으니 당연히 부딪히고 그들보다 뒤쳐졌지만 생각은 누구보다 열려 있고 그는 배운대로 머무르지 않고 노비건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줄 알았다. 아니 배운 학문을 그냥 책에 묻어 두고 머리에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닌 그 학문을 널리 백성을 위해서 실용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모색했다. 공부란 양반들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의 것으로 생각했고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 그가 계획적이고 단체생활에 적응한다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잘 헤쳐나갔다. 서울 유생인 맹유생은 '학문을 갈고 닦는 까닭은 덕을 쌓기 위함이요, 백성들의 삶을 새롭게 바꾸기 위함이요,어질고 선한 마음을 갖지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하고 그저 글 그대로 읽었지만 이세로는 '저는 책을 읽고 백성들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 줄 농기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조금 더 연구하면 제대로 된 농기루를 만들 수 있겠지요. 저는 백성들의 힘든 삶을 편하게 해 줄, 그런 실용적인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학문이 좀더 백성을 위하여 실용적인 실학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하며 글이 글로만이 아닌 마음로 글을 읽는다. 하지만 맹유생은 글은 그냥 글인 것이다. 마음으로 읽을 줄 몰랐는데 이유생을 통해 마음으로 읽는 법을 배운다. 

이유생이 몰랐던 한양생활이나 성균관 생활을 매유생을 통하여 배우게 된다면 맹유생은 이유생을 통해 세상과 백성에 대하여,좀저 널리 학문의 폭을 넓힌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그런 두 유생들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감동 그 자체이며 유익한 이야기가 줄줄이다. 책을 읽는 방법으로는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고 머리로 읽고 그리고 마음으로 읽는다' 라고 했다. 읽을 것이 넘치는 세상에서는 그런 다독이나 정독을 하기엔 힘든 점도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암송과 다독,그리고 토론으로 읽고 공부했으니 정말 대단하다. 이유생과 맹유생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닌 중간 중간 정리를 하여 성균관 생활에 대하여 포인트를 집어 정리해 두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옛날에는 읽을 책도 부족하고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지금은 어떤가 읽을 책도 넘쳐나고 공부해야 할 것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익혀야 하는 것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대학의 등록금 문제로 인한 자살과 교수의 자살을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과 비교를 하게 되었다. 요즘 대학들은 학생들에게서 받은 등록금으로 대학의 몸부풀기에 바쁜데 옛날의 대학인 성균관은 엄격하면서도 인간적이고 위계질서가 확고한 곳인듯 하다.스승이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으면 유생들이 들어 오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어디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을까. 지금과는 많이 다르고 공부법도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역사를 보며 취사선택하며 우리의 현 모습을 들여다보며 오류를 고쳐나가는 것은 어떤가 생각해 본다. 자신들의 실리보다는 널리 정말 백년이 갈 수 있고 후대에 부끄럽지 않게 물려줄 그런 교육정책과 현장을 만들어 본다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읽어보게 되었다. 이세로와 맹유생의 감동이 곁들어져 잔잔한 웃음을 웃으며 읽을 수 있어 성균관이란 곳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읽을 수 있는 동화 같은 이야기에 마음이 따듯해졌다. 그리고 '호학' 이란, 아니 독서란 것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저 소과에 급제한 유생들이 대과에 붙기 위하여 공부하는 곳이 아닌 우리 역사를 다시 한 번 더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였음을 이선비를 통해 잠시 역사여행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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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 군자란 그리고 초록이들




 


카라가 활짝 피었다. 현재 꽃대는 4개 올라왔고 한놈은 나오다 잘못 나와서 못난이가 되었고
두개의 꽃대는 멋지게 올라와 하루 이틀 사이면 활짝 필 듯 하다.
카라는 뿌리로 정말 잘 번진다. 두어 뿌리 있던 카라는 한 화분에는 두개에서 새로운 개체가 나왔고
커다란 함지박에는 한개를 옮겨 심은 것이 지금은 함지막 가득 카라가 차지했고
그중에 큰것은 서너개,거기에서 현재 두개가 꽃대가 나왔다. 옮겨 심으려해도 
커다란 함지박이고 그 속이 어떻게 되었는지 도통 분간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뿌리로 번지는 카라는 새끼가 많이 쳐서 여기저기 작은 카라가 삐죽삐죽이라 흙을 엎을수가 없다.
그래도 이렇게 꽃대를 올려주는 녀석들이 정말 이쁘다. 향기도 좋고 꽃도 깔끔하고 
고고하니 넘 이뻐 카라가 피면 한동안 베란다에 머문다. 
하지만 녀석도 꽃인지라 몇 일 그 아름다움이 못가니 아쉽기만 하다.










 




베란다에는 군자란이 정말 활짝 피었다.
일찍 핀것은 이미 진것도 있지만 이제서 피는 녀석도 있으니 사람이나 식물이나
똑같이 시작을 해도 결과를 맺기까지는 다 시간이 다른듯 하다.

햇살이 비추이는 시간인 11시에서  12시쯤에 베란다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환하다.
'와우~~~' 한번씩 외치고 들어가야할 정도로 환하다.
거기에 요즘은 카라가 더해 향기가 은은하다. 거실 베란다엔 쟈스민이 피어 향기롭고
안방베란다엔 카라가 향기롭다. 이제 라벤더가 피려고 준비중이니..



라일락 꽃몽오리

 
대파에도 꽃망울이 더덕화분엔 더덕인듯한 새싹이 잘 크고 있다.

 
더덕싹과 도라지싹도 무럭무럭...

 
브론페시아는 보라색에서 하얀색으로 변하며 향기를 가득 풍기고 있다.

 
얼마전 뿌리나누기를 하여 심은 사랑초에서는 잎과 꽃대가 나와 이쁘게 크고 있다.


카라의 그 오묘함..


오늘도 베란다와 집 안 가득 초록이들이 있어 나의 하루는 이야기가 많다.
녀석들과 하나하나 눈도장을 찍는것도 정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언젠가 우리집에 화분이 몇 개나 있는거야.. 하며 세어 보았다. 아니 친구가 궁금하단다.
그런데 세다가 말았다. 큰것도 많지만 작은 바이올렛 화분까지 200여기가 넘는 화분들,
정말 많다. 공간만 있으면 화분이다. 아니 용기만 보이면 재활용하여 넉줄고사리나 바이올렛을
심어 놓아서 정말 많다. 포트도 그냥 버리지 않고 바이올렛이나 그외 작은 것들을 심어 놓으니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 않는 화분 그리고 초록이들...
꽃이 필 때면 녀석들 키우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지만 물을 주거나 분갈이를 해야 할 때는
'이렇게 힘든 것을 왜 시작했지..'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녀석들이 주는 것은 정말 많다.
저마다 다른 꽃과 다른 색상 다른 모양으로 다른 향기를 뿜어 내는 식물들,
녀석들이 있어 오늘도 정말 행복이다. 그 향기와 빛깔에 취하는 날...



201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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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 쟈스민 말발도리가 피었다






 
카라

 
말발도리

 


브론페시아..혹은 쟈스민...혹은 미스김라일락..암튼 향이 정말 좋다.

 
라벤더와 이름 까먹은 다육이도 꽃대가 올라오고 있다

 
꽃치자는 언제 피려는지..빨리 하얀 꽃과 향을 맡고 싶다

 
게발선인장은 꽃망울이 하루가 다르게 크고 은행잎도 많이 컸다.


 
무늬조팝 꽃도 오래가고 사랑초도 요즘 꽃이 한창이다.




막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실 책바앞에 놓인 ’아젤리아’ 를 보고는
’엄마 이거 꽃이지..정말 이쁘다.이름이 뭐야..’ 해서 알려줬더니 꽃이 정말 이쁘단다.
’너 학교에 가져가게 줄까..교실에 놓으면 좋잖아. 꽃이 한참가네,핀지 조금 됐는데..’
저도 가져가고 싶단다. 집에 초록이들이 많으니 저도 학교에서 이것저것 키우고 싶단다.
’엄마 언니가 텐바이텐에서 산 화분 알지..그거 나도 사주면 안돼.방울토마토 키우고 싶어.’ 
큰딸이 며칠전에 텐바이텐에서 이것저것 구매를 해달라고 하는데 보니 ’친환경화분’ 이 있다.
썩지 않는 흙이 비닐포장같은 화분에 들어가 있는 것인데 키우는 애들이 있는가보다.
기숙사나 교실에서 키우고 싶다는 녀석, 집에 꽃이 피기만 하면
-엄마 나 이거 학교에 가져가고 싶다. .... 그런 말을 자주 하는데 고딩이 되더니 더한다.
갇혀지내니 더한듯 한데 집엔 꽃이 많아 좋단다. ’근데 이거 진짜꽃 맞지..’
’당근백만개지..진짜 꽃이야~~~’






군자란



그리곤 녀석을 데리고 베란다로 가서 한참 꽃불이 일어난 군자란을 보여주었더니 깜짝 놀란다.
-와~~ 우리집 정말 꽃이 많네.학교에 가져가면 좋겠다..
어디 군자란만 피었겠는가. 이 꽃 저 꽃 보여주었더니 좋단다. 이런것을 보고 살아야 하는데
늘 교실에 갇혀 있으니 짜증도 잘내고 스트레스 받고..
집에 오니 넘 좋다는 막내의 말처럼 그야말로 우리집은 요즘 꽃잔치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집안에서 봄을 맘껏 느낄 수 있다. 베란다엔 정말 꽃불이라도 난 것처럼 환하다.
울집 화단을 바라볼 수 있는 앞동은 그야말로 선택받은 사람들인 것이다.

향기가 없는 화려한 꽃들이 피었다면 이제 브론페시아나 꽃치자등,
향기가 있는 꽃들이 준비를 하고 있으니 한동안은 꽃과 향기가 가득한 집이 될 듯 하다.
하지만 향기가 있는 꽃들은 생명이 짧다. 그래도 그 향기는 오래간다.
모든 생명이 깨어나고 있는 봄, 꽃들이 있어 행복하다.


20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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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4-09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발도리~ 이름은 특이한데 하얗고 하늘거리는게 소녀분위기가 나네요~
서란님의 군자란으로 되어있었던 배경화면 변경입니다ㅋ
저희집에도 예전에 꽃치자가 있었는데요^^ 정말 우아한 향과 작지만 알차고 무지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서란 2011-04-11 23:43   좋아요 0 | URL
산에 가면 많이 핀답니다. 저는 야생화로 심은거구요
그런데 그것이 몇 해 되었는데 그것이 올해 딱 한가지 꽃을 피웠네요.
넘 이뻐요. 작은 것이..
배경화면이 제 군자란이었군요. 감사합니다.
꽃치자는 정말 꽃도 이쁘고 향기도 정말 진하니 좋죠..
저도 오래전에 키웠는데 어떻게 잘못하여 겨울에 죽고 올해 다시 들였답니다.
며칠 있음 그놈도 꽃이 필 듯 합니다.
 
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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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란,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문득 그 이야기가 떠 올랐다. 중국의 교사들이 쓰는 우화 가운데 외아들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져 남을 원망하며 살던 여인이 하루는 늙은 철학자를 만나고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제가 겨자씨를 가져오면 네 아들을 찾게 해주마.그러나 그 씨앗은 슬픔이 없는 집에서 가져와야 한다.' 그녀는 열심히 겨자씨를 찾으러 다녔다. 겨자씨는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슬픔이 없는 집은 한 곳도 없었다. 이렇게 슬픔은 내게 닥치며 무척이나 큰 일처럼 느껴지고 내겐 대단해보이지만 그렇다고 나 이외의 남에게 슬픔이 없으란 법은 없다. 누구나 보편적인 슬픔을 다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의 크고 작음을 떠나 밖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일 뿐이지. 그렇다면 영란 그녀의 슬픔 또한 보편적인 슬픔일까, 누구나 죽음이라 그외 다른 이유로 이별을 할 수 있다.그것이 준비된 이별일 수 있고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런 이별을 맞이할 경우 그 슬픔을 어떻게 견디고 내고 치유하느냐에 따란 남은 자로서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김형경의 <좋은 이별> 에서처럼 사랑과 죽음으로 인한 좋은 이별을 하였다면 치유가 되는 시간도 빠르고 견디어 내는 삶 또한 더욱 단단하게 영글었으리라. 하지만 주인공 영란은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과 아들의 죽음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사이 또다시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여 갱생을 삶을 얻지 못하고 그 안의 깊은 슬픔에 갇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에 이른다

그렇다고 부모와의 삶이 행복했던 것도 아니다. 아버지를 잃고 재가한 엄마를 따라 다시 얻게 된 가족은 아버지와 오빠, 하지만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는 그녀를 가족으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아니 그녀와 오빠사이에 이렇다할 끈끈한 정을 나눌 그런 일들이 없다. 다시 아버지를 잃고 엄마마져 돌아가신 불운한 삶 속에서 겨우 만난 남편, 알콩달콩 아들 하나 얻어 재미있게 살아가는가 하는 순간에 불행은 한꺼번에 겹친 것이다. 아들과 남편을 잃고 낡은 집마져 오빠가 헐어버리려고 할때 그녀는 딱히 가야할 곳이 없었다. 거기에 출판사를 한다고 빚만 잔뜩 남기고 간 남편, 그녀는 남편이 남기고간 빚을 정리해야할 것 같아 남편과 함께 하던 작가인 이정섭에게 연락하여 만나지만 그 또한 불행한 삶 속을 거닐고 있다. 기러기아빠로 겨우 지탱하고 있는 그는 아내와 헤어지고 겨우 생활비를 보내주는 수준인데 그 또한 인쇄를 받아야 생활을 하는 가난한 삶, 그 둘이 우연인것처럼 노대통령의 빈소에서 만나고 한끼 밥을 먹으며 인연처럼 끈을 잇게 된다. 우연찮게 목포의 지인이 죽어 그곳으로 내려가야 하는 정섭을 따라 물흐르듯 그냥 투명인간처럼 그를 따라나선 영란, 그렇게 간 목포는 그들의 제2의 삶의 터전이 되고 만다. 아니 '목포의 눈물' 처럼 그동안 깊은 슬픔뒤에 숨겨 놓았던 눈물을 그곳에 가서 진정한 눈물을 흘리게 되면서 사람으로 인해 받은 슬픔을 그들처럼 한곡절 슬픔을 가진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자연치유를 해 나가는 그야말로 치유의 소설이다. 

'죽음은 참 무정한 것이다. 한번 죽어버리면, 이 아무렇지 않은 대화를, 나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봄밤의 향내를 함께 맡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저 봄밤의 따스한 볼빛들을, 저 다정한 소리들을 함께 들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음은 그렇다. 함께 하던 자잘한 모든 것들을 함께 나눌수가 없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처럼 이승에서 함께 해야 봄밤의 향내도 함께 맡고 따스한 불빛도 함께 하지 아무리 장미가 아름답게 핀들 무엇하리. 버려진 집에 세상과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여인 영란, 그녀의 이름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영란, 그러니까 그녀의 이름은 '공란' 인 것이다. 비었다. 이름이. 가족이 떠나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여인이 무엇인들 남았겠는가.그렇다며 그녀는 이제 이름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들을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어디에서 무엇부터 시작을 할까.

정섭과 우연찮게 목포로 내려가지만 그녀가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아 한가지 자신의 마지막 목숨을 맡길 약은 가져왔다. 정섭과 만났던 자리에서 어울렸던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한소녀를 만나 가게 된 '영란여관' 에서 마지막을 보내리라 다짐하지만 질긴 목숨은 다시 이승에 버려지게 되고 그곳에서 갱생의 삶을 찾듯,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영란' 이란 이름도 얻게 되고 살아갈 방법을 찾게 되고 잃어버렸던 말하는 법도 스스로 찾아내게 된다. 새로 시작할 에너지를 타인에게서 얻게 된 그녀, 다시 사랑도 찾아오고 누군가를 품어줄 모성애도 되찾게 되지만 그녀의 가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영란이 그렇다면 정섭 또한 목포를 배회하게 된다. 그 또한 아픔이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가지만 늘 한구석에 자리한 여인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의 이름도 모른다. 두 사람은 늘 서로의 삶에서 교묘히 얽혀 있지만 그 매듭을 풀지 못하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재회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마지마부터는 독자의 몫이다. 해피엔드로 맺을 것인지 불행으로 끝맺음을 할것인지 독자가 알아서 할 몫이다. 

'모든 것은 헛수고에요.쓰레기를 치우는 것도,사는 것도.' 
그런 그녀였다. 집이 주위 빌라 사람들에 의해 쓰레기장이 되어가도 치울줄을 모르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헛수고와 같은 삶인데 쓰레기가 대수인가,당장 자신의 앞날이 문제인데 그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데 쓰레기가 쌓여 있는들 어떠리. 하지만 그 쓰레기도 낡은 집도 모두가 다 헛수고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니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었다. 깊은 슬픔에서 벗어나듯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부딪히다보니 살아갈 힘이 생겨났다. 어찌 슬픔이 없는 집이 있으랴. 겨자씨를 얻을 수는 있어도 슬픔이 없는 집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모성애가 사라진줄 알았는데 영란여관의 수옥이를 보고 완규의 조카 수한이를 만나면서 다시 솟아나는 모성애에 목포를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는 영란, 하지만 이젠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치매를 앓는 안자의 어머니를 떠안게 되어 다시 떠날 수가 없다. 질긴 삶의 끈은 그녀를 목포에 칭칭 감아 옮아매 놓는다. 그렇다고 딱히 목포를 떠나서 다시 서울로 돌아간들 무엇이 있으랴, 시작해야 한다면 자신과 같은 크기의 슬픔을 가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살면서 정을 나누는 이곳이 더 낫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이 맞는 인자씨와 함께 차리게 된 '영란집' 에서 그녀들은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우리 같은 사람은 골백번 이별해도 이별만은 질이 안 들어.' 라는 말처럼 이별을 딛고 잘 일어나는 사람은 없다. 이별은 늘 아쉽고 안타깝고 아픔이 서린다. 나 혼자 고해를 건너는 것이 아닌 누구나 고해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삶의 이유를 찾듯 목포에서 새로운 삶으로 슬픔을 딛고 일어서게 되는 영란, 구수한 목포 사투리가 어우러져 더욱 토속적이고 구수하고 맛깔스럽다. 탁한 막걸에 박박 비벼대고 무쳐낸 간재미회처럼 어우러지고 부대껴야 맛이 나는 것이다. 눈물없이 인생이 영글수 없고 슬픔없이 어찌 인생이 완성될 수 있을까.누구나 가지고 있고 안고 있는 '보편적 슬픔' 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 그 슬픔을 딛고 새로운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슬픔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면 할수록 늪에 더 깊게 빠져든다. 나 또한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지난 겨울은 참으로 힘이 들었다. 밥을 먹으려 하면 줄줄 흘러 내리는 눈물 때문에 혼자 밥 먹기 힘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혼자 남겨진 엄마를 생각하게 되었고 엄마의 슬픔을 생각하니 내 슬픔은 너무도 작아 보여 슬픔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을 하자 어느순간 슬픔은 가벼워졌다. 슬픔은 그리움이 되고 보고픔이 되었지만 아버지를 잃었던 그 시간보다는 지금이 내 감정에 자유롭고 좀더 깊게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영란, 이제 그녀의 앞에 나타날 정섭, 그 둘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이제 그 둘의 앞엔 슬픔이 없고 희망과 웃음만 오기를 바란다. 슬픔 뒤엔 기쁨이 있는 것이다. 늘 슬픔만 있다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지금 당신이 슬프다면 슬픔의 문을 열고 부딪쳐라, 자꾸 사람속에 섞이다 보면 슬픔은 희석되는 것이다. 영란 그녀의 삶을 따라가다보니 내 슬픔도 희석이 된 듯 하다. 이젠 희망만 충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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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작가의 다른 책 <섀도우> 가 있는데 늘 읽는다 하고는 미루고 있다가 올해 나오키상을 수상했다고 하여 궁금함에 얼른 읽게 되었다. 책은 생각보다 진도가 더디게 나갔다. 미스터리라거나 추리소설이라면 진도가 빨리 나갔을터인데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순수문학이라고 하기에도 그런 작품을 만난것 같다. 어찌되었건 내겐 작가의 첫 작품이라 좀더 집중하면서 읽게 되었다. 소라게는 서해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게이다. 바닷가에 가면 아이들이 으례히 작은 소라게를 잡아 장난을 많이 한다. 그러면 소라게는 작은 소라껍질 속에 숨어 나오질 않는다. 그 속에서 끄집어 내기 위하여 아이들은 라이터 불로 지지는 놀이를 하면서 자신들만의 의식을 한다.소원을 빌면서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소라검님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소라검님에게 무슨 소원을 빌까.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라고 하기에도 그런 나이 초등 5학년이 신이치는 아빠를 암으로 잃었다. 암은 우리 몸속에서 게의 형상으로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암과 소라게의 공통점이라도 있다는 것일까. 암으로 아빠를 잃어 할아버지인 쇼조와 함께 살기 위하여 이사를 오게 된 신이치는 학교에서 친구가 없다. 그와 비슷한 친구 하루야 또한 간사이에서 이사를 와서 친구가 없었는데 다행히 둘은 친구가 된다. 그렇다고 각별한 사이도 아니다. 그들은 그들만이 가는 바닷가에 블랙홀에서 패트병을 이용하여 고기나 게를 잡아 놀이를 한다. 그리고 또 한 명 나루미, 그녀는 쇼조의 할아버지가 몰던 배에서 사고를 당해 엄마가 죽게 된다. 엄마를 죽게 한 배의 주인인 쇼조가 신이치의 할아버지니 신이치와 나루미는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인데 그들은 우연히 친구가 된다. 하루야는 자신의 가족에 대하여 말은 안하지만 무언가 아버지에게서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숨기고 있다. 하루야와 신이치는 블랙홀에서 잡은 게를 가지고 놀다가 할아버지 쇼조의 말을 듣고 산에 올라갔다가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찾게 된다. 한참 사춘기가 오고 무언가 자신들만이 아는 그런 비밀스런 장소를 가지고 싶어하는 나이인 그들에게 딱 어울리는 바위를 찾아내고 그곳에 블랙홀에서 잡은 소라게와 그외 고기를 키우기로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신이치의 엄마 스미에의 행동이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신이치,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시게 되고 일을 나가는 그녀가 다른남자의 차를 타고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엄마에게 남자가 생긴것일까.아님 일을 하면서 우연하게 만난 남자일까. 궁금증을 가지게 된 신이치, 하루야와 우연하게 바위를 찾고 그곳에 소라게를 키우기로 하고 소라게를 잡아 불로 지지면서 소원을 비는 의식을 취하던 중, 우연하게 그들이 빈 소원이 이루어진것 처럼 정말 돈을 줍기도 하고 나쁜 친구가 다치기도 하자 점점 소원은 겁잘을 수 없이 끝을 향해 치닫게 된다. 그렇다면 제일 무서운 소원이 무엇일까. 엄마에게는 정말 애인이 생긴 것일까. 하루야는 왜 아빠에게 얻어 맞기도 하고 밥을 굶기도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나루미는 왜 갑자기 신이치의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싶다고 하는지.

소설은 서서히 소라게처럼 두 소년과 소녀가 겪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비밀을 잠깐씩 들어내어 보여준다. 겉으로는 아무런 이상도 없는듯 보이는 그들속에는 소라게처럼 숨어야 할 감추고 싶은 아픔이 있었던 것. 그렇다면 어른들은 아픔이 없이 잘 살고 있는 것일까.할아버지 쇼조는 사고를 당해 왼쪽 다리를 무릎밑으로 절단하게 되었고 신이치의 엄마는 암으로 남편을 잃었으며 나루미의 아빠는 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그 사고는 물론 신이치네와 연관이 있기도 하지만.그렇다고 하루야의 부모는 온전할까,무언가 하루야가 털어놓지 않지만 무거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월급날마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 자신의 아들을 두들겨 패는 아빠, 문제는 무엇일까.

세 아이의 아픔은 점점 극에 달하듯 한 점을 향하여 달려간다. 그것은 어른들이 죽는 것, 신이치에게 엄마가 없다면 그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 보이는 현상 속에서 어른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보고 있다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결단을 내려고 한다. 신이치의 엄마는 우연하게 나루미의 아빠와 사귀고 있었던것,그것을 미리 알고 있던 나루미 또한 고민 끝에 신이치에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적인 신이치엄마와 아빠가 만나야 옳을까, 아이들의 생각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은 어른들은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은 걱정할 것이 없다. 소라검님에게 소원을 빌면 모든 소원을 들어주니 말이다. 늘 새로운 소라게로 바위웅덩이를 채워 넣으며 소라게를 잡아 의식을 치르는 그들이지만 그들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금이 가고 있다. 하루야는 친구인 신이치에게 협박성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나루미와 하루야가 자신보다 더 친한듯 하여 질투를 느끼는 신이치, 처음엔 미스터리물이 아니던 것이 점점 미스터리 속으로 빠져 드는 느낌이 든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의식은 점점 전진을 하여 '살인' 을 의식화 하기도 하고 그 속으로 뛰어 들기도 한다. 

'확실하게 엄마는 예전과는 달라졌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눈앞에 있는 스미에가 갑자기 모르는 여자로 보였다. 자기 엄마도 아니거니와 죽은 아빠와 결혼한 사람도 아니다. 우연히 지금 이 집에서 집안일을 하고 있을 뿐인 여자로 보였다. 집안일이 끝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서 다른 남자와 지낸다.' 아빠를 암으로 잃었기에 더이상 잃고 싶지 않은데 엄마가 달라졌다. 그 이유만으로 엄마를 냉대하는 소년, 그래서일까 더욱 나루미를 하루야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데 자신보다 하루야와 더 친해져가고 있는것 같다. 그리고 엄마의 애인이 다름아닌 나루미의 아빠란 것이 믿어지지 않고 있을수도 없는 일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게와 같은 종양에 빠먹혀 들어가며 죽어갔는데 어떻게 나루미의 아빠와 사귈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신이치에게 친구가 생긴 것이다. '친구는 신기하게도 질리지가 않아. 어른이 되어 이틀이고 사흘이고 계속해서 만나면 바로 싫어지지만, 어릴 적에 만나는 친구는 그렇지 않아. 그건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 쇼조의 말처럼 신이치의 친구인 하루야와는 얼마 가지 않을듯 했는데 그들 사이에 비밀과 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친구로 진행되어간다. 날마다. 자신보다 생각이 늘 앞서가는 하루야, 그의 아픔의 깊이를 전해 듣고는 신이치는 그에게도 소원을 이룰 기회를 만들어 준다. 하루야의 소원은 무엇일까.그 역시나 아빠의 폭력에서 벗어나려면 폭력을 휘두르는 상대가 없어지거나 폭력이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가 늘 쓰는 글자 '네' 는 '죽음' 을 뜻한다는 것을 읽고는 그 글자 속에 그의 아픔이 함축되어 있음을 본다. 어른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휘두를 수 있을것 같았는데 하루야 또한 아버지에게 칼을 휘둘렀다가 어른 또한 '나약한 존재'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만 성장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 또한 그들만의 '아픔 혹은 성장통' 있음을 그들도 소라게처럼 숨을 장소가 필요하고 때론 그렇게 나약한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엄포물이 필요함을 느끼는 소년들, 그 소년들이 그려나가는 이 소설은 어쩌면 아픈 성장통을 그린 소설이다. 그 아픔이 어른들이 죽어야 끝나는 것으로 알기에 조금 섬짓함을 전해주는 그런 미스터리물이 물이 되었지만 어찌보면 사춘기의 소년과 소녀들이 겪을 수 있는 성장통을 아름답게 그린 한 편의 동화같다.

자신들의 아픔을 대변하고 그 아픔을 정당화 시키기 위하여 무언가 필요했는데 자신들이 늘 가지고 노는 '소라게' 가 딱이었던 것. 적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기도 할 수 있지만 라이터불처럼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소라게, 어른이건 아이건 우린 가끔 그런 그늘을 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늘 그늘속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다. 늘 그늘속에서 숨어 지내다보면 점점 나약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나약함을 벗어나 직접 행동에 옮기는 소년들, 자신에게서 소라껍데기를 벗어 던지려 했지만 어릴때 가지지 않았던 소라껍대기가 왜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필요하게 되는지, 바위 웅덩이에 소라게를 키우며 그들의 성장기를 보면서 자신들의 일생을 보듯 그리고 나약하고 실수투성이인 어른들을 보면서 어른의 모습을 미리 답습하듯 하는 소년들이 막다른 길에서 그래도 희망을 향하여 달려 가기에 소설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덮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 이란 무엇일까. 소라게가 소년들에 의해 바다가 아닌 산의 바위웅덩이로 옮겨지고 그 게들은 바닷물이 없이는 살 수 없다. 본성은 짠물에서 사는 것이기에 소금물이 없다면 살 수 없는데 소년들이 날마다 바닷물을 가져다 물을 바꾸어 주기에 그곳에서 소라게가 새끼를 낳을 수도 있었고 좀더 자라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신이치가 혹은 하루야가 혹은 나루미가 아빠나 엄마를 잃는다면 자신들의 손으로 결단을 내어 자신들의 기본 바탕을 없애버린다면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을까. 소설은 그런 질문 또한 던지는 듯 하다. 요즘은 아니 일본 소설을 보다보면 이런 패륜의 소설도 많고 점점 엽기적이고 패륜을 저지르는 살인과 사고도 많다.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그저 의식으로만 끝났다는 것 또한 이 소설은 많은 절제를 하고 있는 듯 하다. 두 소년과 나루미의 미묘한 심리묘사가 잘 묘사되고 전달되어 더욱 소설의 맛을 살려냈으며 그들의 의식속에 자리한 살인을 현실화 하지 않았기에 아픈 성장통으로 끝나버린 시간들, 그 나이는 누군가 밉다며 죽이고 싶고 해를 가하고 싶기도 한 나이다. 그것이 모두 현실이 될 수는 없다. 생각속에서 선을 갏아 먹고 악을 자라게 하는 게와 같은 종양을 키우지 않게 하기 위해 사춘기 딸들에게 좀더 잘해 주어야 할 듯,좀더 관심을 가져 주어야겠다고 느끼며 읽은 소설이다. 소설을 덮고 나니 <섀도우>가 더 읽고 싶어졌다. 다른 책들에서 펼쳐지는 미스터리를 빨리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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