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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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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산다는 건 사막에서 길을 잃은 것과 같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안내자라곤 하늘의 별들밖에 없는 사막에서...'
작가의 처녀작인데 낯선 페르시아 문화에 소년과 소녀의 사랑과 우정이 진하게 결부되어서인지 더 아름답운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인 '테헤란의 지붕' 은 소년이 성장통을 앓던 장소로 그에게 커다란 의미의 장소이다. 17살,한참 꿈 많고 호기심 많은 청소년 파샤와 아메드는 골목의 밉지 않은 악동쯤 된다. 아버지에게 권투를 배우고 권투로 맺어진 형제애로 똘똘 뭉쳐 아메드가 사랑하는 파히메를 보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가 오빠들에게 혼쭐이 나도 그들은 그녀를 보았다는 것에 기분이 좋다. 파샤 또한 이웃집의 약혼자가 있는 '자리' 를 짝사랑하지만 그녀의 약혼자는 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닥터라는 대학생이다. 그는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음지에서 하며 불의와 싸우지만 그와의 의리때문에 자기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속앓이만 한다. 파샤와 아메드의 우정과 사랑은 파샤의 집 지붕위에서 단단히 익어간다.

어느날 밀서를 읽고 음지에서 움직이던 닥터가 죽음을 당하고 소년 파샤와 아메드 그리고 파히메와 자리는 한층 성숙하게 된다. 쫒기는 와중에 자리의 집으로 찾아 들었던  닥터를 지붕위에서 얼어 붙은듯 보고 있다가 비밀경찰에게 비밀을 알려주게 된거나 마찬가지로 닥터가 붙잡혀가게 되고 죽게 되고 파샤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닥터가 죽게 되었다며 자괴감에 빠져 든다. 아메드와 자리는 그런 파샤를 위로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뉘우치듯,닥터를 정당한 행동을 이어받듯 그가 피흘리며 끌려간 자리에 '붉은 장미' 를 심는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뭘까?... 시간이야. 시간은 우리가 지닌 가장 소중한 것이지..
닥터의 죽음은 모두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밀서를 읽는것이 아니 밀서로 정해진 책들이 미국이나 서구에서는 죽음까지 가는 일이었을까 하면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슬람문화에 대해 비관적이면서도 그들은 또한 자신들의 영역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소년이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을 한 그의 지붕은 파샤에겐 '소중한 시간' 이 정지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자리에 대한 사랑을 키웠고 확인했으며 그녀와의 사랑을 발전시켜 나갔으며 아메드와의 우정 또한 더 진하게 성장을 했다. 서로의 별을 찾아가며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던 지붕위에서 소년은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랑을 찾게된다.

닥터의 40제의 날, 자리는 분신자살을 기도한다. 뚯하지 않은 일로 그들은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고 파샤는 기억을 잃게 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며 자리가 죽었다고 생각을 한다. 자리와 파샤를 잃은 골목도 예전의 그 골목이 아니듯 조용하면서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듯 하다. 그런 파샤의 눈에 부르카를 뒤집어 쓴 '가면의 천사' 의 정체를 알게 되고 그는 새희망을 발견하듯 자리를 다시 만나면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쓸 것을 다짐한다. 

인생은 균형 맞추기 게임과도 같은 거잖아..
그들이 아름다운 청춘을 보냈던 자리네집 마당에서의 여름날들이 있는가 하면 닥터의 죽음과 그의 죽음으로 인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둘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도 그 하나가 되어 피해자가 되어 갈때 그들이 그 긴 암흑의 터널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던 것은 <우정과 사랑> 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란의 독재정권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그들의 사랑과 우정은 <연을 쫓는 아이> 와 비슷한 류의 소설로 가슴을 따듯하게 해주면서도 낯선 문화를 이질감 보다는 '함께 공감' 하는 문화로 아름답게 잘 그려주었다. 소설을 손에 잡은 후 늦은 시간인데 얼마 남지 않아서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 다 읽어야 속시원히 잠을 이룰듯 하여 마지막까지 읽고 잠을 취했던 소설이며 파샤와 아메드 그리고 자리와 파히메의 사랑과 우정이 포도주처럼 깊은 맛으로 숙성되어 밝은 별처럼 빛날 수 있어 희망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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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 스페인·라틴아메리카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후안 룰포 외 지음, 김현균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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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 폴란드편을 읽고 너무 좋아서 스페인편을 읽게 되었다.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는 우리가 흔하게 접하지 못하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낯선 문화와의 조우라 더 기대감이 컸다. 한 권에서 여러작가들의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독자들에게는 행운이다. 전권을 구매하고프지만 한 권 한 권 구매하여 읽는 맛이 더 좋을 듯 하여 기회가 주어질때마다 낱권으로 구매를 해보려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중에 제일 눈에 익은 작가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이다. 그의 작품중에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읽어 보았고 다른 작가중에 '이사벨 아옌데' 는 그에 대한 소개를 읽어 보았지만 아직 책은 접해보지 못해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낯설다. 작가및 문화가 낯설어 읽기전에 걱정을 했지만 첫 작품부터 내 걱정을 싹 쓸어준다. 

레오뽈도 알라스의 <안녕,꼬르데라!> 이 작품은 폴란드편에 있던 '우리들의 조랑말'과 비슷한 감이 있다. 꼬르데라는 쌍둥이 로사와 삐닌이 키우는 늙은 암소이다. 전원적인 삶을 사는 그들의 마을에도 전봇대와 철도가 개통되고 어머니가 죽고 난 후 그들이 사랑을 듬뿍 주었던 늙은 암소 '꼬르데라'를 팔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성장하여 삐닌은 내전에 참가하게 되고 로사는 그들이 없는 고통속에 남겨지게 된다. 도시와 전원의 삶과 전후의 피폐한 사회상을 비판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이그나시오 알데꼬아의 <영 산체스>, 가난한 삶을 벗어나기 위하여 복서의 꿈을 키우는 주인공 빠꼬,그런 아들을 자랑거리로 삶는 아버지와 그외 그를 중심으로 가난한 자들의 가난하지만 굽히지 않는 삶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작품이다 '난 그들을 위해 이겨야 해. 아버지와 아버지의 자존심을 위해, 누이동생과 그녀의 희망을 위해, 어머니와 그분의 평온을 위해 이 시합을 이겨야 해. 꼭 이겨야만 해.' 모든이의 희망을 온 몸에 받은 빠꼬는 그들의 희망을 안고 링에 오른듯 승리에 대한 자신감에 불타있다. 

아나 마리아 마뚜떼의 <태만의 죄>, 열세살에 그의 마지막 남은 혈육 어머니가 돌아 가시고 사촌 에메떼리오에게 맡겨진 로뻬는 그가 시키는대로 목동일을 충실히 한다. 그러다 어느날 성장을 한 후에 친구를 우연히 만나고 친구의 우연하고 날렵하며 흰 손가락에 비해 자신의 손은 육포조각처럼 거칠고 두껍다는 것에 분노를 일으키고는 그를 그동안 키워준 사촌을 돌로 쳐 죽이게 된다. 그동안 사촌의 말을 들으며 '태만의 죄' 를 저지르며 무지렁이가 된 것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꿈을 키워야 하는데 그에게 꿈이 없었던 것이다.

헤수스 페르난데스 산또스의 <까까머리>, 이 작품은 짧지만 강하다. 열살도 안된 소년은 까까머리이며 폐병환자이고 그를 데리고 다니는 어른은 그를 병원에 데리고 가지만 돈도 집도 정말 아무것도 없다. 겨우 구걸하여 벌은 돈으로 따듯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여보지만 죽음은 그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자신의 죽음을 감지하는 소년 '난 죽을 거야.' '넌 죽지 않을 거야,죽지 않아..'  어리지만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는 소년의 맘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루벤 다리오의 <중국 여제의 죽음>, 자신의 예술을 사랑하는 레까레도,하지만 그이 아내는 생활을 사랑한다. 너무도 다른 그들의 삶. 어느날 그의 친구가 중국 여행을 가서 선물을 하나 보내온다. 도자기로 된 중국여제흉상, 그 선물이 온 뒤로 아내에게 향했던 사랑은 도자기인 중국여제에게 향하고 아내의 삶은 말 그래로 황폐해지고 말았다. 늘 도자기와 함께 하는 레까레도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그녀는 당당히 중국여제도자기를 깨 버린다. 분위기도 중국풍이며 그들에게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예술품은 예술의 대한 욕심및 숭배물을 표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레까레도를 보며 인간의 욕심의 끝을 보는 듯 하다. 

오라시오 끼로가의 <목 잘린 암탉>, 정상적인 아이를 원했던 부부에게 어느날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는 후천적으로 장애를 가진다. 둘째는 정상을 바라며 아이를 갖지만 그 아이 또한 첫째와 마찬가지의 경우를 당하게 되고 세번째에도 그들은 똑같은 아이들을 얻게 되고 정말 간절하게 원해 네번째 딸이면서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를 얻는다. 네명의 장애아인 아들들은 제대로 돌보지 않고 네번째 딸에게 맹목적 사랑을 전해주던 어느날 그들의 엄마는 부엌에서 닭을 잡게 되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못난 아들들은 부모가 집을 비운날 자신들의 여동생을 엄마가 닭을 잡던 그대로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바보 아이들 넷을 둔 불행한 부부의 비극적 삶을 소름끼치게 잘 그려낸 작품이다. 

그외 작품들도 낯설지만 읽으면 재밌다. 흔하게 접할 수 없는 작품들을 읽으며 한동안 행복한 여운에 빠질 수 있는 책이다. 독서 편식을 잠시 잠재우는 책으로 스페인이나 라틴아메리카는 여행서로 많이 접하다가 이런 단편들로 접하니 그 맛이 낯설지만 꽤 감칠맛 난다. 익숙하지 않지만 사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아 삼키지 못하고 입안에 오물고 있을 정도는 아니라 잠시 먼 여행을 다녀온 듯 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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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아극장>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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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유쾌 상쾌 통쾌한 엔도 슈사쿠의 유모아.
많은 작품을 쓴 작가인데 그의 작품은 처음이다. 겉표지가 만화책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어 처음엔 만화책인가 했는데 읽어보니 '이솝우화'에 비할만한 현대판 유모아다. 12편의 작품들은 나름 유머를 간직하고 재미와 더불어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의 상상이 갑자기 내린 눈에 갇힌 하루를 즐겁게 해준다.

마이크로 결사대, 암환자인 사유리의 몸 속에 본타로를 비롯한 의료진들이 마이크로 캡슐에 들어가 종양을 제거하고 탈출하려는데 수술성공을 자축하여 마신 술때문에 위가 아닌 아래로 탈출하게 되면서 겪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다. 사랑하는 여자의 몸 속에 들어가 대장이며 그속에서 만난 회충과의 싸움이나 변비로 인해 막힌 벽을 허물고 장의 벽을 자극하여 가스를 유발,방구로 탈출하기까지가 정말 재밌게 그려져 있다. 여인의 몸속을 다 보고 나와서 그녀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병실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그녀를 보고는 애정이 생리현상을 이긴것을 표현한 마이크로 결사대를 읽으며 포복절도할 뻔했다. 과연 내 몸속에는 마이크로 결사대가 들어간다면 어떤 상황과 마주하게 될까? 변비가 아닌 설사에 시달리는 사람은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면 더 웃긴 이야기이다.

우리들의 에디슨, 사무원 구함이라는 광고를 보고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하여 동양발명학회를 찾아 간 학생은 아파트 바로 옆이라 쉽게 찾을 수 있을줄 알았는데 너무도 작게 붙여 놓은 것을 보고는 겨우 찾아 들어가 알바자리를 구한다. 그곳은 백발 노인인 시오쓰가 하는 곳으로 단골처럼 찾아 오는 야요와 오카노가 있다.둘은 경쟁을 하듯 찾아오지만 늘 퇴짜를 맞고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있는 술집에는 오카노가 좋아하는 여인이 있다. 가는 길에 참새방앗간처럼 들리는 곳에 학생을 데리고 가서 오카노는 그녀를 소개하는데 그녀는 학생의 윗층에 사는 여인이다. 여인은 이야기를 하며 어떤 발명품이 필요한지 그 둘에게 숙제를 내듯하고 그들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고심을 하여 발명품을 만들어 오지만 그녀에게 퇴짜를 맞고 그녀의 마음도 얻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은 시오쓰 노인과 술집여자인 사치코의 속임에 빠져 자신들이 놀아났음을 알게 되고 발명을 그만두게 된다. 그녀의 가게에 외상 술값만 남겨 놓은 채.

여자들의 결투, 한 아파트 단지에 사는 여자들이 서로 잘났다고 우세함을 들어내려 한다. 그런 그녀들의 그물에 걸려든 새로 생긴 '자동차 교습소' 야마카와 부인과 기요코는 서로 잘났음을 들어내듯 자동차 교습소에 등록도 하고 면허를 따기 전부터 야마카와 부인은 빨간 자동차를 산다. 이에 질세라 기요코도 시오미 부인의 친척에게 자동차를 할부로 계약하고 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시오미 부인이 던져 놓은 미끼에 그들이 걸려 들고 만것이다. 속담 '어부지리'를 생각나게 하는 이 이야기는 웃다가도 뭔가 속을 들킨것처럼 여자들의 미묘한 심리를 잘 나타내어 웃으며 읽으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이야기였다.

하지 말지어다, 10년을 저축하여 교외의 야트막한 언덕의 꼭대기에 집을 한 채 마련한 부부에게는 한가지 알 수 없는 문제와 맞부딪히게 된다. 늦은 시간만 되면 가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판자울타리에서 소변을 보는 것이다. 그들의 하루 일상이 담긴 언어와 몸짓으로 배설을 하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고심을 하던 그들은 경찰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찾아갔던 그들마져 자신들의 벽에 소변을 본다. 어떻게 해결을 할까 하다가 상담을 하게 되고 결국 '판자울타리'가 문제라는 말을 듣고는 판자울타리를 때려 부수고 불록 담을 설치를 했다. 과연 그 다음부터는 졸졸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부부는 예전의 판자 울타리에서 나던 '인간적인 소리' 가 나지 않자 쓸쓸해 한다. 사람들의 심리가 이상한것이 '하지 말지어다.' 하면 더 하고 프다. 아니 더한다. 그런 묘한 인간의 내면을 그린 단편이다.

이상의 작품들에서도 보여지듯 작품 하나하나 유쾌하여 혼자 읽으며 큰소리로 웃을 수 있다. 겉표지 때문일까 만화책을 넘기며 즐겁게 보는 느낌이다. 처음 접한 작가이지만 거리감이 없다. 웃음을 유발하면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웃음속에 뼈가 들어간 것처럼 웃고 나도 뭔가 앙금처럼 남는다. 가끔 우울할때 이런 작품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한바탕 웃고 났더니 머리가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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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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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지지 않는게 사랑이야. 어떤 균열이든 두 팔로 끌어안고 지속하는 그것이,사랑의 일이야.’
만지면 곧 바스러질것 같은 누경 그녀가 20살이나 위인 강주를 잃은 것은 그녀 나이 열여섯이다. 그가 결혼을 하면서 그녀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던 그가 그녀에게서 떠나가 버렸다. 모든것을 잃고 달려 나가 누운 풀밭 위, 누군가 버리고 간 헝겊인형처럼 그녀 또한 강주에게서 버려졌다고 생각을 한 누경, 그들의 사랑은 불륜이다. 친척오빠이면서 유부남인 강주를 어린시절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의 집에 오게 된 뒤로 둘은 자연스런 감정의 늪에 빠져 들었다. 소녀에서 숙녀로 거듭 그녀가 강주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자신들의 감정에 충실하듯 로맨스로 이어가는 그들,누경의 사랑에 대하여 쓰여졌기에 불륜이라기 보다는 로맨스에 가깝다.

’섬은 여자처럼 고요하겠지... 이 여자처럼 맑을 것이다. 섬은 이 여자처럼 외로울 것이다. 누경을 대입하자 막연하기만 했던 섬이 저절로 그려졌다.’ 강주와 헤어지기전 마지막 여행지로 정한 섬여행을 우연히 만난 기현과 함께 간 그녀, 하지만 그녀에겐 바다도 섬도 함께 간 기현마져 그녀에게 들어오지 않는다. 낯설다. 그런 그녀의 눈에서 선함을 본 기현은 그녀에게 다가서지만 기현에게 누경은 ’섬’ 과 같은 존재다. 아직 강주와의 사랑의 균열이 채 아물지 않은 탓일까? ’누경은 남자와 자신 사이의 덤덤한 빈터가 편안했다. 이대로라면, 숲 한가운데의 풀밭 같은 빈터에서 숨쉬기 위해서, 그 남자를 또 만나게 될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기만 하다.

과거의 사랑 강주, 열렬한 사랑은 그녀의 일기장에 고스란히 누적되어 그녀의 사랑을 되새김질 하게 한다. ’너 없이 어떻게 세상을 견뎠는지 모르겠다.’......’네 눈이 반짝이는구나.네가 웃으니 행복해진다. 네가 기뻐하는 것이 내겐 가장 중요해...... ’우리 관계에, 내 생애에, 아니 내 심장에...’  암수술을 한 아내가 마트에서 ’검은콩과 매실’을 사오라는 말에 군더더기없이 수긍하는 남자 강주,그의 전부인 사랑인 누경을 자신의 심장안에서 도려내지도 못하면서 현실의 아내를 받아 들이는 남자를 보며 그를 자신의 안에서 깨진 유리조각으로 도려내듯 베버리는 누경, ’ 더 많이,더 깊이 사랑한 사람은 사랑으로 다치지 않아.’ 

아픔을 치유하듯 유리공예에 매달리는 그녀, 액체이면서 깨어지지 않는 유리처럼 그녀는 어쩜 완벽한 사랑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강주와의 사랑이 사랑이었을까. 강주는 그녀를 사랑하기는 한것일까. 그가 베를린여행에서 치마대신 사온 ’초록화병’ 이 바람에 떨어져 깨어지고 그녀는 그 조각들을 간직해둔다. 미련이 남아 아직 잊지 못하는 사랑 강주처럼... 어느 날 신발장 한귀퉁이에 놓여있던 그 유리조각들은 1200도의 고열로 녹여 ’완벽한 작품’ 으로 재탄생 시킨다. 깨어진 조각들이 고열속에서 격통을 견디며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나듯 그녀 또한 사랑으로 사랑의 치유를 바라며 ’풀밭 위의 식사’ 를 고대한다. 그런 그녀의 눈에 ’새로운 감정’ 이 찾아 오고 들에 핀 꽃나무처럼 누구를 향하지는 않지만 세상을 밝히며 활짝 피어나길 바라는 희망으로 끝맺음되어 더 믿음을 준다.

작가의 전작인 <염소를 모는 여자>와 <엄마의 집>을 구매해 놓고도 읽지를 못한것이 한참인데 이 작품으로 인해 다른 작품들을 빨리 만나보고 싶어졌다. 여성작가라 그런지 표현이 무척이나 섬세하고 예리하다. 유리공예가 소재로 쓰여서 더 날카롭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표현들이 섬세하여 날카로운 유리조각에 베인듯한 느낌이 들때가 있다. 불륜의 사랑이지만 한여자가 사랑의 상처를 안고 도가니에 들어가 다시 재탄생되는 유리작품처럼 사랑을 사랑으로 치유함이 요동치지 않고 잔잔한 파문으로 그려져 좋다. ’단지 시점의 문제인 거야.너의 시점이 있는 곳이 중심이야.헤맬 필요가 없어.’  유리 같은 여자 누경,유리 같은 강주와 그녀의 사랑, 깨어졌지만 깨어지지 않는 사랑의 원천을 잠시 행복한 시선으로 들여다 본 봄날의 아지랑이와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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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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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글과 사랑에 빠졌어요. 당신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돼요. 얼마든지 딱딱하게 써도 돼요. 난 그 모든 것을 사랑하니까요.'  '정기 구독을 취소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이메일로 취소 신청을 해도 되겠지요? 그럼 이만 줄입니다. 에미 로트너.' 정기 구독하는 '라이크' 지 취소를 하기 위해 보낸 메일이 라이크가 아닌 '라이케' 라는 사람에게 잘못 보내졌다. 이메일이 잘못 보내졌다면 어떻게 할까? 요즘은 손편지가 아닌 문자나 이메일을 쓰기에 가끔 잘못보내기도 하고 잘못오기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사람이 읽어도 되는 내용이라면 괜찮겠지만 중대한 내용이거나 비밀에 부쳐야 할 내용이라면 어떻게 할까? 어느날 이메일이 아닌 문자가 왔는데 당황하는 문자가 온적이 있다. 어떤 아가씨가 애인에게 보낸 문자였는데 내용은 정말 절박했다. 삶이 기로에 선 듯한 내용이었는데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이 되었다.망설이다 답장을 보내주었다. 잘못보냈으니 다시 보내시라고 용기를 내라고... 그녀가 다시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못 온 문자때문에 잠깐 그녀의 고민에 나도 편승을 하여 그의 미래가 어떻게 되었을까 종종 궁금하기도 했다. 물론 결정을 잘했으리라 믿지만.

에미가 보낸 메일이 잘못 전달된것은 왼손잡이인 그녀의 버릇때문이다. i를 쓸때 왼손잡이라 e에 먼저 손이 가는 버릇때문에 i가 ei가 되면서 '라이크'가 아닌 '라이케'라는 남자에게 전달되면서 그들의 '이메일 데이트' 는 시작이 되었다. 사람의 말보다 글이 더 마음을 움직일때가 많다. 손편지가 한참 유행하던 때 '펜팔'이나 '위문편지'의 힘을 봐도 그럴 것이고 한때 나 또한 글의 힘을 빌려 편지로 글로 마음을 풀어 내던 때가 있었다. 글로 이어지는 데이트는 그들이 만든 환상 속에서 때로는 열정적이기도 하고 북풍을 잠재워주듯 따듯하기도 하고 일상적이기도 하다. 잠시가 아닌 긴 시간동안 이메일로 <소통> 한다는 것은 거기에 메어지내게 된다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을 완전히 차단한채 글속에서 생각하고 짐작하고 글로 서로를 읽어나가는 그들의 아슬아슬 데이트는 점점 서로에게 빠져든다. 때론 짧은 한줄의 글이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매료되기에 충분하다. 아내와 사별하고 두 아이의 아빠였던 피아노연주자와 합께 결혼생활을 하는 웹디자이너 에미, 점점 컴속의 이메일 사랑에 매달리다 보니 어느날 자신도 모르게 남편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런 아내의 '정신적 불륜'을 눈치챈 남편은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되고 결국 라이케에게 메일데이트를 중단해줄것을 정중히 부탁한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도 많이 길을 걸어왔다. 뒤돌아 가기엔 출발선이 너무 멀다. 그들의 아슬아슬한 정신적 사랑, 에미는 자신의 친구를 라이케에게 소개도 해주지만 그 또한 자신들의 사랑을 더 결속시키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들의 사랑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것처럼 남녀의 내면을 글로 잘 풀어낸 소설이다.순전히 메일로만 쓰여진 독특한 소설이면서 목소리와 겉모습이 아닌 글속에서 모든 것을 읽어내는 '통찰력'이 대단히 필요한 소설이다.

'오늘은 잠을 잘 수가 없네요. 제가 북풍에 대해 애기한 적 있나요? 창문이 열려 있을 때 북풍이 불면 못 견디겠어요. 뭐라고 한 마디라도 써주시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창문을 닫아요." 이 한 마디라도 좋아요. 그럼 전 이렇게 대꾸할 거에요. "창문을 닫고 있으면 잠을 못 자요." ' 그녀의 <북풍>을 잠재워 주는 남자, 그녀의 사랑을 뿌리치고 멀리 떠나보려 했지만 더 깊게 자리한 그녀의 자리를 깨닫는 남자, 그가 보스턴으로 떠나기전 에미가 그에게 달려갈 줄 알았는데 소설은 그녀의 발목을 잡고 만다. 그들의 뒷 이야기가 몹시 궁금하게 만든다. 속편 <일곱번째 파도>에서 그들의 사랑 뒷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하니 얼른 읽고 싶다. 자신의 아내가 언젠가는 젊은 남자를 만나 떠날것이란 것을 늘 염두에 두었던 베른하르트가 그녀를 라이케에게 보내 주었을지 몹시 궁금한 소설이다. 

글을 통해 누구보다 자신들의 마음속 깊숙히 파고 들어가 둥지를 틀게 된 두 남녀, 다른 어떤 것보다 위대한 <글의 힘>을 보여주는 소설로 목소리를 배제한 글로 전하는 남녀의 감정이 정말 잘 표현된 소설로 사랑을 시작하는 이들이나 일상의 밋밋함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좋을 소설이다. 가끔 이런 간접적인 사랑으로 충전하고 보면 내 사랑이 새로워지기도 한다. 그들이 영영 보지 않고 글속에서 사랑을 일구어 나가길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지만 한편으로는 글을 벗어나 컴퓨터 모니터를 벗어나 다시금 사랑을 재확인하고 무언가 새로운 '아름다운 상상' 을 가져다 줄 소설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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