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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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지지 않는게 사랑이야. 어떤 균열이든 두 팔로 끌어안고 지속하는 그것이,사랑의 일이야.’
만지면 곧 바스러질것 같은 누경 그녀가 20살이나 위인 강주를 잃은 것은 그녀 나이 열여섯이다. 그가 결혼을 하면서 그녀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던 그가 그녀에게서 떠나가 버렸다. 모든것을 잃고 달려 나가 누운 풀밭 위, 누군가 버리고 간 헝겊인형처럼 그녀 또한 강주에게서 버려졌다고 생각을 한 누경, 그들의 사랑은 불륜이다. 친척오빠이면서 유부남인 강주를 어린시절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의 집에 오게 된 뒤로 둘은 자연스런 감정의 늪에 빠져 들었다. 소녀에서 숙녀로 거듭 그녀가 강주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자신들의 감정에 충실하듯 로맨스로 이어가는 그들,누경의 사랑에 대하여 쓰여졌기에 불륜이라기 보다는 로맨스에 가깝다.

’섬은 여자처럼 고요하겠지... 이 여자처럼 맑을 것이다. 섬은 이 여자처럼 외로울 것이다. 누경을 대입하자 막연하기만 했던 섬이 저절로 그려졌다.’ 강주와 헤어지기전 마지막 여행지로 정한 섬여행을 우연히 만난 기현과 함께 간 그녀, 하지만 그녀에겐 바다도 섬도 함께 간 기현마져 그녀에게 들어오지 않는다. 낯설다. 그런 그녀의 눈에서 선함을 본 기현은 그녀에게 다가서지만 기현에게 누경은 ’섬’ 과 같은 존재다. 아직 강주와의 사랑의 균열이 채 아물지 않은 탓일까? ’누경은 남자와 자신 사이의 덤덤한 빈터가 편안했다. 이대로라면, 숲 한가운데의 풀밭 같은 빈터에서 숨쉬기 위해서, 그 남자를 또 만나게 될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기만 하다.

과거의 사랑 강주, 열렬한 사랑은 그녀의 일기장에 고스란히 누적되어 그녀의 사랑을 되새김질 하게 한다. ’너 없이 어떻게 세상을 견뎠는지 모르겠다.’......’네 눈이 반짝이는구나.네가 웃으니 행복해진다. 네가 기뻐하는 것이 내겐 가장 중요해...... ’우리 관계에, 내 생애에, 아니 내 심장에...’  암수술을 한 아내가 마트에서 ’검은콩과 매실’을 사오라는 말에 군더더기없이 수긍하는 남자 강주,그의 전부인 사랑인 누경을 자신의 심장안에서 도려내지도 못하면서 현실의 아내를 받아 들이는 남자를 보며 그를 자신의 안에서 깨진 유리조각으로 도려내듯 베버리는 누경, ’ 더 많이,더 깊이 사랑한 사람은 사랑으로 다치지 않아.’ 

아픔을 치유하듯 유리공예에 매달리는 그녀, 액체이면서 깨어지지 않는 유리처럼 그녀는 어쩜 완벽한 사랑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강주와의 사랑이 사랑이었을까. 강주는 그녀를 사랑하기는 한것일까. 그가 베를린여행에서 치마대신 사온 ’초록화병’ 이 바람에 떨어져 깨어지고 그녀는 그 조각들을 간직해둔다. 미련이 남아 아직 잊지 못하는 사랑 강주처럼... 어느 날 신발장 한귀퉁이에 놓여있던 그 유리조각들은 1200도의 고열로 녹여 ’완벽한 작품’ 으로 재탄생 시킨다. 깨어진 조각들이 고열속에서 격통을 견디며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나듯 그녀 또한 사랑으로 사랑의 치유를 바라며 ’풀밭 위의 식사’ 를 고대한다. 그런 그녀의 눈에 ’새로운 감정’ 이 찾아 오고 들에 핀 꽃나무처럼 누구를 향하지는 않지만 세상을 밝히며 활짝 피어나길 바라는 희망으로 끝맺음되어 더 믿음을 준다.

작가의 전작인 <염소를 모는 여자>와 <엄마의 집>을 구매해 놓고도 읽지를 못한것이 한참인데 이 작품으로 인해 다른 작품들을 빨리 만나보고 싶어졌다. 여성작가라 그런지 표현이 무척이나 섬세하고 예리하다. 유리공예가 소재로 쓰여서 더 날카롭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표현들이 섬세하여 날카로운 유리조각에 베인듯한 느낌이 들때가 있다. 불륜의 사랑이지만 한여자가 사랑의 상처를 안고 도가니에 들어가 다시 재탄생되는 유리작품처럼 사랑을 사랑으로 치유함이 요동치지 않고 잔잔한 파문으로 그려져 좋다. ’단지 시점의 문제인 거야.너의 시점이 있는 곳이 중심이야.헤맬 필요가 없어.’  유리 같은 여자 누경,유리 같은 강주와 그녀의 사랑, 깨어졌지만 깨어지지 않는 사랑의 원천을 잠시 행복한 시선으로 들여다 본 봄날의 아지랑이와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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