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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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글과 사랑에 빠졌어요. 당신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돼요. 얼마든지 딱딱하게 써도 돼요. 난 그 모든 것을 사랑하니까요.'  '정기 구독을 취소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이메일로 취소 신청을 해도 되겠지요? 그럼 이만 줄입니다. 에미 로트너.' 정기 구독하는 '라이크' 지 취소를 하기 위해 보낸 메일이 라이크가 아닌 '라이케' 라는 사람에게 잘못 보내졌다. 이메일이 잘못 보내졌다면 어떻게 할까? 요즘은 손편지가 아닌 문자나 이메일을 쓰기에 가끔 잘못보내기도 하고 잘못오기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사람이 읽어도 되는 내용이라면 괜찮겠지만 중대한 내용이거나 비밀에 부쳐야 할 내용이라면 어떻게 할까? 어느날 이메일이 아닌 문자가 왔는데 당황하는 문자가 온적이 있다. 어떤 아가씨가 애인에게 보낸 문자였는데 내용은 정말 절박했다. 삶이 기로에 선 듯한 내용이었는데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이 되었다.망설이다 답장을 보내주었다. 잘못보냈으니 다시 보내시라고 용기를 내라고... 그녀가 다시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못 온 문자때문에 잠깐 그녀의 고민에 나도 편승을 하여 그의 미래가 어떻게 되었을까 종종 궁금하기도 했다. 물론 결정을 잘했으리라 믿지만.

에미가 보낸 메일이 잘못 전달된것은 왼손잡이인 그녀의 버릇때문이다. i를 쓸때 왼손잡이라 e에 먼저 손이 가는 버릇때문에 i가 ei가 되면서 '라이크'가 아닌 '라이케'라는 남자에게 전달되면서 그들의 '이메일 데이트' 는 시작이 되었다. 사람의 말보다 글이 더 마음을 움직일때가 많다. 손편지가 한참 유행하던 때 '펜팔'이나 '위문편지'의 힘을 봐도 그럴 것이고 한때 나 또한 글의 힘을 빌려 편지로 글로 마음을 풀어 내던 때가 있었다. 글로 이어지는 데이트는 그들이 만든 환상 속에서 때로는 열정적이기도 하고 북풍을 잠재워주듯 따듯하기도 하고 일상적이기도 하다. 잠시가 아닌 긴 시간동안 이메일로 <소통> 한다는 것은 거기에 메어지내게 된다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을 완전히 차단한채 글속에서 생각하고 짐작하고 글로 서로를 읽어나가는 그들의 아슬아슬 데이트는 점점 서로에게 빠져든다. 때론 짧은 한줄의 글이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매료되기에 충분하다. 아내와 사별하고 두 아이의 아빠였던 피아노연주자와 합께 결혼생활을 하는 웹디자이너 에미, 점점 컴속의 이메일 사랑에 매달리다 보니 어느날 자신도 모르게 남편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런 아내의 '정신적 불륜'을 눈치챈 남편은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되고 결국 라이케에게 메일데이트를 중단해줄것을 정중히 부탁한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도 많이 길을 걸어왔다. 뒤돌아 가기엔 출발선이 너무 멀다. 그들의 아슬아슬한 정신적 사랑, 에미는 자신의 친구를 라이케에게 소개도 해주지만 그 또한 자신들의 사랑을 더 결속시키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들의 사랑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것처럼 남녀의 내면을 글로 잘 풀어낸 소설이다.순전히 메일로만 쓰여진 독특한 소설이면서 목소리와 겉모습이 아닌 글속에서 모든 것을 읽어내는 '통찰력'이 대단히 필요한 소설이다.

'오늘은 잠을 잘 수가 없네요. 제가 북풍에 대해 애기한 적 있나요? 창문이 열려 있을 때 북풍이 불면 못 견디겠어요. 뭐라고 한 마디라도 써주시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창문을 닫아요." 이 한 마디라도 좋아요. 그럼 전 이렇게 대꾸할 거에요. "창문을 닫고 있으면 잠을 못 자요." ' 그녀의 <북풍>을 잠재워 주는 남자, 그녀의 사랑을 뿌리치고 멀리 떠나보려 했지만 더 깊게 자리한 그녀의 자리를 깨닫는 남자, 그가 보스턴으로 떠나기전 에미가 그에게 달려갈 줄 알았는데 소설은 그녀의 발목을 잡고 만다. 그들의 뒷 이야기가 몹시 궁금하게 만든다. 속편 <일곱번째 파도>에서 그들의 사랑 뒷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하니 얼른 읽고 싶다. 자신의 아내가 언젠가는 젊은 남자를 만나 떠날것이란 것을 늘 염두에 두었던 베른하르트가 그녀를 라이케에게 보내 주었을지 몹시 궁금한 소설이다. 

글을 통해 누구보다 자신들의 마음속 깊숙히 파고 들어가 둥지를 틀게 된 두 남녀, 다른 어떤 것보다 위대한 <글의 힘>을 보여주는 소설로 목소리를 배제한 글로 전하는 남녀의 감정이 정말 잘 표현된 소설로 사랑을 시작하는 이들이나 일상의 밋밋함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좋을 소설이다. 가끔 이런 간접적인 사랑으로 충전하고 보면 내 사랑이 새로워지기도 한다. 그들이 영영 보지 않고 글속에서 사랑을 일구어 나가길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지만 한편으로는 글을 벗어나 컴퓨터 모니터를 벗어나 다시금 사랑을 재확인하고 무언가 새로운 '아름다운 상상' 을 가져다 줄 소설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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