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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개념들
(사)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엮음 / 동녘 / 2015년 9월
평점 :
남녀동수법
기본적 정의
선출직 공직에 여성의 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한 운동이다. (77쪽)
1789년 프랑스 혁명기에 《제3신분Le tiers état》을 저술했던 라파예트La Fayette는 프랑스 남성 시민들에게는 투표권을 부여했지만 여성들은 제외시켰다. 여성뿐만 아니라 문맹자, 빈민, 아이들, 정신병자, 외국인들을 함께 제외시켰다. 교육받지 못한 문맹자와 빈민은 무식해서 공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하지만 이들 이등 시민은 위상이 바뀔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아이는 자라서 성인이 된다. 빈민은 재산을 축적해 부자가 될 수 있고, 문맹자는 글을 배우고 읽어서 유식해질 수 있다. 정신병자는 병이 치유될 수 있고, 외국인은 프랑스 시민이 될 수도 있다. 하자만 여성은? 한 번 여성이면 영원히 여성으로 남는다. 그러니까 여성에게는 영원히 정치적 권리가 박탈된 셈이었다. (<남녀동수법>, 임옥희, 78쪽)
남녀동수운동movement pour la parite은 선출직 공직에 여성의 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한 운동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2000년 6월 6일 법으로 인해 일부 현실화되었다. 이 법은 거의 모든 선출직 공직에서 전체 후보자의 절반이 여성이어야 할 것을 요구했다. (80쪽)
여기에 남녀동수법의 혁명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남녀동수주의자들은 평등에 바탕해 남성 인간을 추상적이고 중립적인 것으로 설정할 채 그런 추상성에 여성도 도달하려고 하거나(평등주의) 아니면 차이에 바탕해 여성성이라는 분리된 구현체(성차주의)에 도달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 대신 추상적 개인 그 자체에 이미 여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은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 그런 맥락에서 남녀동수의 근본적인 주장은 엄밀히 말하자면 보편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86쪽)
우리 시대 페미니즘 입문자들과 페미니스트들에게 요긴하게 필요하다는 이 책은 사전 순서와 같이 가나다순으로 엮여 있어 그때그때 참고하고자 하는 개념들을 찾아보기 쉽다. 아는 게 없기 때문에 가부장제, 감정노동, 글로벌라이제이션의 ㄱㄴㄷ 순으로 읽고 있는데, 비교적 쉬운 부분과 어려운 부분이 섞여 있다. 일테면, ‘가부장제’,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증후군’ 등은 쉽고 재미있지만, ‘글로벌라이제이션’, ‘문화유물론’, ‘생존 회로’등은 ‘페미니즘에 대해 알려고 하는데 이런 것까지 알아야 돼요?’라고 묻고 싶다. 아무에게나.
남녀동수법은 정의 그 자체로서 이해하기 쉽다. 이해가 잘 안 된다면 그건 그 개념 자체가 어렵다기 보다는 수긍할 수 없다는, 혹은 수긍하기 싫다는 뜻일 것이다. 남녀동수법의 전제는 “인간은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다는 걸 인정한다면, 하나의 인간이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걸 인정한다면 남녀동수법의 이해와 적용은 어렵지 않다. (인간을 남성 혹은 여성으로만 나눌 수 있다는 인식과 성소수자에 대한 논의는 이 사안과 별개로 한다.)
문제는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지 않고, 지금껏 인간인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었다는 데 있다.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때, 사회가 문화가 국가가 그것을 강요할 때, 여성은 2등 시민, 2등 인간으로 살아야한다. 오랜 시간 사회와 문화와 국가의 말을 믿었고, 배운 대로 들은 대로 그렇게 살았다. 그대로 생각하고 말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제 곧 좋은 시절이 오게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아주 가까운 시기는 아니겠지만, 2013년 프랑스의 사회당 올랭드 정부처럼 한국의 내각도 남녀동수로 구성될 날이 곧 오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러한 변화와 변혁을 멈출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엄마’ 장관님은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면서 엄마와 떨어져 기관에 가야하는 아이들의 다층적 어려움과 1인 3역 워킹망들의 말 못할 고충을, 조금은 더 자세히, 더 실질적으로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위한 정책, 아이들과 엄마들과 그리고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아빠들을 위한 ‘친보육’, ‘친가정’, ‘친행복’ 정책들이 조금 더 나오지 않겠는가,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혼자 해 본다. 먼 훗날 이루어질 핑크빛 바람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허튼 바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정에서부터 시작해 남녀동수로 인한 사회적, 국가적 에너지의 1+1 시너지효과가 한껏 발휘될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여성’이라는 인류가 ‘남성’이라는 인류와 같은 지위와 처우를 받게 되는 날, 여성과 남성 모두 행복해지는 날,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을 거라, 난 믿는다. (들어가는 말, 5쪽)
기다려라, 남녀동수법.
우리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