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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살았습니다, 라고 끝나면 동화다. 요즘에는 동화도 이렇게 끝나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지만, 대부분은 이렇다. 어떤 사람이 문학에서 희망을 찾겠다고 했을 때, 희망만을 맞딱뜨리는 건 아니라고 조언할 수는 있겠지만, 꼭 못 찾게 하고야 말겠다는 것도 지나치다 생각하면서, 소세키의 소스케 이야기를 읽어나간다.
소스케와 오요네는 부부 사이다. 6년을 함께 살았는데, 말다툼으로 얼굴을 붉힌 일이 없다.둘의 사랑은 세상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두 사람은 생사를 걸고 싸워야 했다(189쪽).
소스케 부부는 세상의 햇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추위에 서로 껴안아 몸을 녹이는 식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어려울 때에는 언제든지 오요네가 소스케에게,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하고 말했다. 소스케는 오요네에게,
“참아야지 뭐”하고 말했다. (50쪽)
그들은 자업자득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덧칠해버렸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걷고 있는 앞길에서는 화려한 색채를 볼 일이 없을 거라며 체념하고, 오직 둘이서 손을 잡고 나아갈 생각이었다. (51쪽)
그들은 부모를 버렸다. 친척을 버렸다. 친구를 버렸다. 크게 보면 일반 사회를 버렸다. (190쪽)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이 좋은 이유는 역시나 매력적인 주인공이다. 이렇게 하려고 했으나, 아무렴, 안 되면 말고. 오늘 누구를 만나려 했으나, 비 오면 말고. 오늘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입이 안 떨어지니 안 하고 말고. 나는 이런 주인공이 좋아, 소세키의 소설을 읽는데, 『그 후』에서는 남성성 폭발,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남자주인공을 만나게 됐고, 적극적인 그 남자에 반해 소세키가 더 좋아졌다.
『문』은 대체로 『그 후』의 다음이야기로 많이 읽힌다고 하던데, 나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문』의 남자주인공도 좋아하게 됐다.
소스케와 오요네. 두 사람이 행복했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두 사람이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담너머 웃음소리 넘겨가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윤택하게 살았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러지 못했다. 문 아래에 옴짝달싹 못하고 서서 해가 지는 것을 바라봐야 하고(253쪽), 자신들은 좋은 일을 예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 믿으면서, 이제 자신들의 인생에서 화려한 색채를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기로 결정한 것이고, 그 결정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 결정으로 인한 결과에 체념한 것이다.
“정말 다행이에요, 드디어 봄이 돼서”하며 눈썹을 환하게 폈다. 소스케는 툇마루로 나가 길게 자란 손톱을 자르면서,
“응, 하지만 또 금방 겨울이 오겠지”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숙인 채 가위를 움직였다. (264쪽)
이게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봄이 와서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또 금방 겨울이 올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 내일없는 절망에 빠져있지는 않지만, 어설픈 희망 또한 기대하지 않는 것. 봄만큼 겨울을 느끼며 사는 것.
이게 소스케가 사는 법이다. 소스케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