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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생활 좌파들 - 세상을 변화시키는 낯선 질문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7월
평점 :
일주일에 닷새를 일하는 베이글 전문 가게에서 예다는 월급을 받을 뿐 아니라 세끼를 모두 해결했다. 정규직이다. 대중교통 정기권을 할인받기 때문에 단돈 16유로(약 2만 2000원)면 한 달 교통비도 해결된다. 과일을 좀 사고, 쉬는 날에는 집에서 파스타를 만들어 먹으며, 벼룩시장이나 헌책방에서 책을 사보고, 다른 사람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을 때는 포도주 한 병을 사 가는 정도가 그가 쓰는 돈의 전부다. 집세를 제외하면 50유로 정도로 한 달을 산다. 나머지는 저축한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40여 분 동안 책을 읽는다. 지금의 삶에 아쉬움이 있다면 한국에 두고 온 보고 싶은 사람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 (133쪽)
실제로 사람들이 원하는 게 아주 대단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을 적당히 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며, 아플 때 부담 없이 병원에 갈 수 있고, 여의치 않아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당분간은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편히 쉴 수 있는 집을 마련하는데 평생을 바치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 학원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 그 정도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하고 싶은 일자리는 당최 찾기 어렵고, 초진 감기 진료비 1500원, 약값 1200원이던 좋은 시절은 가고(2004-2007년), 진료비 3700원, 약값 1500원의 시대가 왔다(2015년 현재). 실업수당은 조금, 아주 쪼금 올랐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는 반면 나는 실제로 이에 해당이 안 되는 사람이고, 집 근처 아파트의 전세 가격이 모두 야무지게 1억씩 올랐다는 슬픈 소식만 전해진다.
그런데도, 우리가 원하는 게 이렇게 작고 소박한 것인데도, 실제로는 그것을 얻기까지 상상을 초월한 어려움이 뒤따른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밥을 먹을 때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이런 상식과도 같은 일에 온 몸으로 저항하는 오세훈 같은 사람이 있어, 정치경험이 전무한,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허다했을 박원순 같은 사회운동가가 서울시장이 된 경우는 이러한 어려움이 반대방향으로 작용해 얻어낸 성과인 듯, 성과 아닌, 성과 같은, 성과다.
농담인듯 진담인듯 말하지만, 보유재산이 10억이 넘는 사람이 1번을 지지하는 건 이해가 된다. 자신의 권리와 재산을 지켜줄 정당에게 투표하는 건 당연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건, 그렇지 않은데, 그런 조건이 아닌데, 자신의 이해, 이득과 정반대의 정책을 가지고 있는 1번에게 투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자신과 자신의 자녀, 자신의 가정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2번당이 마음에 안 들수도 있고, 2번 당의 사람들의 행동이 꼴보기 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와 미래에 자신의 삶에 가장 근접한 문제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실제로의 나의 이익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 아니 가장 반하는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 그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으면 한다.
자크 제르베르 : 일상에서의 실천을 말하는 사람들과 혁명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만 고수하려 한다. 내가 보기에는 반드시 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한 가지는 세상을 바꾸기 전에 자기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 스스로를 변혁할 수 있어야 세상도 변혁할 수 있다. (73쪽)
하나만 덧붙이자면, 일상적으로 연민과 너그러움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대하려고 노력한다. 나치나 인종 차별주의자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우리는 너그러울 수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을 따스함으로 품는 것, 그 또한 좌파의 주요 덕목이다. (80쪽)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산다. 내 이야기가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를 ‘좌파’라 여기는 책 속 사람들의 이런 이야기가 참 당연한 이야기라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진지한 방법의 모색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테다. 그런, 나에게, 너는 뭘 잘 몰라, 네가 몰라서 그러는 거야, 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는 나에게 베르베르가 말한다.
(나는) 일상적으로 연민과 너그러움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대하려고 노력한다.
내 의견에 반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줄도 모르고 행동하는 사람에게도, 나의 진의를 왜곡하려는 사람에게도, 연민과 너그러움으로 대하자. 더 나은 가치를 가지고 우리 모두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애쓰고 있다고 확신하는 ‘좌파들’에게 더 엄격한 도덕적 자세를 요구하는가, 라고 의문하면서 이 말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한다. 연민과 너그러움으로 대하자.
이제 나온다. 내가 이 책을 잡은 이유, 이 책을 시작하게 했던 문장이다.
목수정 : 더구나 당신은 네 명의 자식을 먹여 살려야 했다. 어떻게 당신은 이토록 줄기차게 활동가의 삶을 살아올 수 있었나? 그 끊임없이 가동되는 모터의 역할을 한 것은 무엇인가?
테레즈 클레르 : 한 손에는 성서, 또 한 손에는 《자본론》. 이게 아주 괜찮은 시스템이었다. (29쪽)
한 쪽 극과 또 다른 한 쪽 극. 끝과 끝을 맞잡는 용기,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명확한 이해,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의 철저한 실천이 좌파, 레즈비언이자, 활동가로서의 테레즈 클레르의 삶의 원동력이다. 좌파로서 멈추지 않고,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한 평생을 살 수 있게 한 힘, 끊임없이 가동되는 모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