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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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참혹한 짓이다.                                                                                                    - 신형철

그런 사람들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외국에 있는 한국인들을 포함해 우리 모두는, 4월 16일과 17일, 18일과 19일. 꽃다운 아이들이 죽어가는, 그 시간들을 함께 살아냈다. 그 날들이 지나고 나서, 우리는 아직도 살아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웃고 있지만,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아이들은 깨어나지 않은 긴 잠을 자고 있다.

그 시간들, 우리 모두가 함께 했던 그 시간들, 그 길고 긴 절망의 시간들, 차마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 길고 긴 밤의 시간을 다시 보내는 것, 그 시간들을 다시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하지만, 차가운 바다에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의 가족들과 ‘아이들을 살려내라’는 외침 대신 ‘진상을 밝혀달라’고 단식을 강행했던 유가족들과 청와대 앞 아스팔트 바닥에서 76일을 농성했던 유가족들에게, 그들에게는 4월 16일 뿐이다. 자신의 아이가 침몰하는 배 위에서 사라진 그 날로 그들의 시계는 멈춰버렸다.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말들은 바람처럼 흩어지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그만 하라,고. 이제 그만했으면 됐다,고 말이다.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일상으로, 일터로. 삶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이다.

마침내 그의 딸이 뭍으로 올라왔을 때 사람들은 다행이라며, 그간에 수고가 많았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 쉬라고 말했다.

돌아가다니 어디로.

일상으로.

사람은 언제까지고 슬퍼할 수는 없다. 언제까지고 끔찍한 것을 껴안고 살 수는 없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내가 안심할 수 있지. 잊을 수 있지. 그런 이유로 자 일상이야, 어떤 일상인가, 일상이던 것이 영영 사라져버린 일상, 사라진 것이 있는데도 내내 이어지고 이어지는, 참으로 이상한 일상, 도와달라고 무릎을 꿇고 우는 정치인들이 있는 일상, 그들이 뻔뻔한 의도로 세월을 은폐하고 모욕하는 것을 보고 들어야 하는 일상, 진상을 규명하는 데 당연히 필요한 것들이 마련되지 않는 일상, 거리로 나와야 하는 일상, 거리에서 굶는 아내를 지켜봐야 하는 일상,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과 같은 마음으로 초코바, 초코바, 같은 것을 자신들에게 내던지는 사람들이 있는 일상. (92-3쪽)                                                           <가까스로, 인간> 황정은  

희망이 없다고, 4월 16일 이후로 세계가 존나 망했다고 말하고 다니던(96쪽) 황정은은 7월 24일 서울광장에서 유가족을 대표해 한 어머니가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를 듣고서 자신의 절망을 돌아본다. 다 같이 망하고 있다고, 질문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그 세상에 대고, 유가족들은 있는 힘을 다해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97쪽) 안산에서 출발해 하루를 걸어 서울광장에 당도하는 유가족들과 그들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치는 사람들. 압도적인 검은 것 위에 세월이 마냥 막막하게 떠 있지 않도록 하는, 그 팔꿈치들의 간격을 말이다.

 

언론은 종일 가능성과 희망을 떠들었다. 에어포켓이며 골든타임, 정부가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속보들이 매체를 장악했다. 전부 거짓말이었다. 구조대원 726명과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가 집중 투입된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작전을 벌인다는 기사도 있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거짓말이었다. 구조는 없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장을 통제한 해경은 적극적으로 골든타임의 구조를 가로막았다. 해군과 119구조단, 각지에서 모여든 민간잠수사들 ..... 어느 누구도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 수 없었다. 심지어 해군참모총장이 두 번이나 명령을 내린 통영함도 현장에 투입되지 못했다. 이는 감히 해경이 저지할 사안이 아니었다. (49쪽)

                                                                                              <눈먼 자들의 국가> - 박민규     

 

세월호에 대한 의문은 파도 파도 끝이 없다. 일본에서 18년이나 운항된 낡은 배가 무리한 개조와 증축으로 배의 무게 중심이 높아졌고, 더 많은 화물을 싣기 위해 평형수가 상당량 빠진 상태였고, 선장은 비정규직이었고, 일등 항해사와 조기장은 출항 전날 채용된 직원이었다. 세월호는 국내 이천 톤급 이상 여객선을 통틀어 유일하게 유사시 국정원에 우선 보고해야 하는 배였고, 안개가 짙은 밤, 다른 여객선의 출항이 모두 취소된 상황에서 세월호만 유일하게 출항했다.(47-8쪽) 학생의 신고로 해경이 출두했지만,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만 구조한 해경은 끝내 선내에 진입하지 않았다. 배는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아무도 구조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로 국민을 속였던 언론은 이 모든 비극의 원흉으로 유병언만을 고집했고, 백골 상태로 돌아온 유병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당은 지방선거에서 ‘살려달라’, ‘한 번만 도와달라’고 했고, 여당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여당의 자세는 달라졌다. 피해자에게 칼자루를 쥐어줄 수 없다는 여당은 진상규명에 미온적이었다. 7시간의 미스터리를 밝히지 못하는 청와대도 마찬가지였다. 야당은 이리저리 갈팡질팡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제 그만하자,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이렇다.

진심으로 대통령께 고하건대 아직 당신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당신도 분명 그 꽃다운 아이들을 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선실 구석구석을 수색해 단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구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기회가 당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비서실장의 말 그대로, 누가 보기에도 생각보다 배는 너무 일찍 넘어갔다. 그러나 아직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라건대 각하, 지금 당신에겐

 

저 불쌍한 유가족들을

구조할 기회가

아직은

 

아직은 남아 있다는 말을 진심으로 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마지막 기회이다. 역사가 당신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단 한 번도 진실이 밝혀진 적 없는 나라에서 이 글을 쓴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이고 이곳에 발붙인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모두 한 배를 탔기 때문이다.

내릴 수 없는 배다. (62-3쪽)

                                                                                                   <눈먼 자들의 국가> - 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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