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 산다는 것 - 잃어버리는 많은 것들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제니퍼 시니어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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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7명은 가장 후회되는 일로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꼽는다고 한다. 나는 ‘대학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했다기보다는 대학에 다닐 때 워낙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 후회되는 일이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건 아무런 ‘대책 없이’ 첫째 아이를 낳았던 일이다. 나는 아주 일찍 결혼한 케이스가 아니고, 결혼 전에 아이를 낳은 케이스도 아니다. 다만, 나는 아무런 ‘정보 없이’ 아이를 낳은 케이스다. 임신했을 때는 각 개월별로 산모의 변화와 태아의 발달 단계에 대해 훤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아이를 낳은 후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를 쳐다보고, 아이를 돌보기에도 벅찼다.

아기는 새로운 세상이다.

새로운 우주, 그 자체다.

텔레비전에서 연예인들이 아기들와의 일상을 이웃집처럼 가감 없이 보여줄 때, 뭐, 저리 호들갑을 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우주 그 자체인 자신의 아기가 얼마나 특별하고, 얼마나 예쁘게 보일련지, 일면 이해가 된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다시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나는 첫 아이의 3살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애에게 더 많은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더 많이 그 애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그 애를 더 많이 업어주고, 더 많이 안아주고 싶다. 생각해보니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겠다. 그 아이는 나와 비슷할 정도로 키가 훌쩍 자랐지만, 아직은 내 옆을 좋아하고, 아직은 내 손을 뿌리치지 않으며, 아직은 내가 그 애에게 해줄 일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보니, 유아기는 어디까지나 예선경기라고 한다. 사춘기, 결선경기가 곧 시작된다.

적어도 (아빠들은)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자기들의 자유 시간을 더 적극적으로 지키고 누리려고 한다. 하지만 아빠들이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이들이 자기 아내들보다 아이를 덜 사랑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살아갈 운명에 대해서 관심을 덜 가진다는 뜻도 아니다. (153쪽)

 

나는 스스로를 ‘날라리 주부’, ‘모성 결핍 엄마’로 규정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나는 가정생활에 큰 취미가 없고, 모성이 부족하며, 결정적으로 게으르다. 게으름이야말로 나의 날라리 주부 생활의 모토, ‘무엇이든 설렁 설렁’을 일관되게 유지하게 하는 근간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엄마’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다가는, 무릎을 쳤다.

“아, 나는 ‘엄마’가 아니라, ‘아빠’구나!”

자신의 자유 시간을 적극적으로 지키고 누리려고 노력하는 아빠, 그런 아빠 같은 엄마, 내가 그런 엄마다. (사실, 어제 밤에도 3M을 남겨두고 밤외출을 감행했다.) 그런 엄마라 하더라도 내 남편보다 아이를 덜 사랑한다는 뜻은 아니다, 라고 저자가 말해준다. 맞다. 사실이다. 이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과잉 양육이라는 현상이 미래에 대한 혼란과 불안이라는 새로운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다가올 미래에 제대로 준비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오늘날 중산층의 확고한 믿음이다. (204쪽)

 

부모가 하는 모든 일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부모는 이제 더 이상 가족을 위해서 혹은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보다 넓은 세상을 위해서 자기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한 목적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216쪽)

 

어린이에 대한 현대적 개념이 정립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어린이는 가정의 주된 ‘수입원’의 하나였다. 어린이는 쉽게 무시당했고, 학교가 아닌 일터로 내몰렸다. 그게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한 목적으로 아이들은 키워진다.’ 미국 중산층의 자녀에 대한 집중도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아 오히려 어색하다. 아이의 학업은 물론이고 취미생활 전반까지도 관리하는 부모 모습이 보인다. 다른 점을 찾아본다면, 교육 전쟁의 전면에 엄마가 나서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부모가 이 일에 모두 나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국보다는 특기활동 중 ‘체육 활동’에 대한 투자비용과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한 목적으로 아이들을 키울 때, 그런 과정과 결과가 아이들 스스로에게 이로울 것인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이로울 것인가. 가정의 주된 수입원에서 주된 지출원이 되어버린 아이들, 이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중산층 부모가 있다. 아이들 위주의 삶, 아이들 위주의 식사, 아이들 위주의 생활. 이것이 옳은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이로울 것인가.

스타인버그는, 아이가 맞는 사춘기는 일이든 취미든 간에 집 바깥의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부모에게 특히 가혹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이가 자기 곁에서 멀어져 갈 때 자기 관심을 따로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중략)

“결정적인 변수는 일반적으로 예상하듯이 어떤 부모가 양육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느냐 아니냐 하는 게 아니었다. 부모가 양육과 관련이 없는 다른 어떤 것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는가의 문제였다.” (323-4쪽)

 

사춘기 전초전을 맞이하며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다. 양육과 관련이 없는 다른 일이 내게 있는가. 아이들과 관련이 없는 다른 일, 가정과 상관이 없는 다른 일, 그런 일들이 내게 있는가, 그런 이야기가 내게 있는가.

행복해지고 싶으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 주일학교에서 어린이를 가르치는 소박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정부 권력에 비폭력 저항을 하는 거대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 머리를 쓰는 활동을 할 수도 있고 등산을 하는 육체적인 활동을 할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그리고 17세기 초 영국 시인인 벤 존슨이 일곱 살 아들을 위한 엘레지에서 썼던 것처럼 ‘내 최고의 시’인 아이를 키울 수도 있다. (418쪽)

 

서문에서도 밝혔다시피, 이 책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루고자 했던 것은 ‘어떻게 자녀를 양육할 것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양육이 부모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것이다. 양육 활동을 통해, 그 지난하고 지루하며, 기쁘고도 행복한 과정이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주제가 ‘행복’이라는 것은 특히 작가의 통찰을 돋보이게 한다. 행복이 기쁨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 즐거움과 기쁨, 슬픔과 고통, 기대와 환희가 모두 양육의 과정 안에 들어있다는 것, 아이들이 우리의 삶을 복잡하게도 만들지만, 또한 아이들 때문에 우리의 삶이 단순해지기도 한다는 것(434쪽), 우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 즉 우리의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들을 더 사랑하게 되고, 기쁨을 느끼는 방법을 점점 더 익히고, 그러면서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435쪽)

 

어제는 카레를 만들었다. 일품요리로서 카레만한 게 없는데, 만들기가 쉽고, 영양이 풍부하며, 아이들에게 야채를 먹일 수 있고, 한 번 만들어 두 끼 이상을 해결할 수 있어 그야말로 가정요리계의 초특급 아이템이다. 마침, 그저께는 카레의 강황성분이 손상된 뇌를 치료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큰아이가 5살 정도부터 카레를 만들었으니, 대략 8년째다. 한 달에 1-2번 정도 카레를 만들었다고 계산하면, 1년에 20번으로 잡아도 벌써 160번 카레를 만든 셈이다.

커다란 웍에 가득찬 161번째 카레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 아이들이 다 커서 결혼하고 남편이랑 나만 남으면 이렇게 많이 카레를 만들어도 먹을 사람이 없어서, 오래오래 먹게 될 거야. 아이들이 있으니까, 이렇게 많이 만드는구나. 기쁘고, 감사하다.

내 요리에 별다른 코멘트가 없는 남편은, 역시나 별말없이 카레가 올려진 밥 위에 신김치를 한 조각 올려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카레를 부은 카레라이스를 식탁에 올려놓자마자 둘이 한 목소리로 외쳐댄다.

‘“카레, 싫어~~~~~~~~~~~~~~~~~~~~~~~~!“

내가 말한다.

“알았어, 이제 카레 안 만들게. 근데 이미 만들었으니까,

이건,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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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12-02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육아서 리뷰도 유머러스 훈훈하게 쓰시는구랴요~~!!!

단발머리 2014-12-03 08:43   좋아요 0 | URL
헤헤.... 그래요? 육아서 리뷰는 나름 진지하게 쓸려고 하는데요. 반성도 많이 하구요.
근데, 결론은 항상 이렇게 유머로 끝나네요.
쓰시는구랴요!!! 좋아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