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논어 - 시대를 초월한 삶의 교과서를 한글로 만나다 한글 사서 시리즈
신창호 지음 / 판미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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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은 읽는 것이다.

 

이 글은 지금까지 내가 독해했던 [논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한 시도이다. 한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논어]를 읽고 생각해 보려는 의도로 기획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풍찬노숙과 산전수전을 통해, 진흙에 뿌리박았으나 수면 위에서 화사하게 피어오른 연꽃 같은 그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8쪽)

 

고전을 대하는 자세는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읽어야하되, 읽지 못 한다. 마음은 있되, 실행이 안 된다. [논어]라면 한 마디 더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한문을 잘 알지 못한다.’이다. 읽어야하는 당위와 읽고 싶다는 바람을 넘어서서, 바야흐로 [논어]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 [한글 논어]를 통해서이다.

 

 

 

 

2. 공자

 

공자는 노나라 평창향 추읍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숙양흘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 안씨 가문의 딸인 10대 중반의 안징재와 야합의 형태로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기원전 551년, 노나라 양공 22년의 일이다.(17-8쪽) 공자의 나이 세 살 전후에 아버지 숙량흘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공자가 10대 후반의 청년이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난다.

 

부모를 잃은 공자는 가난하고 비천한 삶을 이어가다가 계씨 가문의 ‘위리’가 된다. ‘위리’란 말단 공무원 수준의 직책으로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나누어 주는 자리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세상이 사람답게 살기 힘들게 되자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 진나라, 송나라, 정나라, 채나라, 초나라를 떠돈다.

 

공자가 사랑하는 제자 자공에게 남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말은 이러하다.

 

“세상에 사람이 살아가야 할 삶의 기준이 없어진 지 오래되었구나! 내가 그것을 세상에 전하려 했건만 아무도 나의 말을 들어 주지 않는구나! 나를 높이는 이도 없고...... ” (71쪽)

 

3.

 

 

바쁜 하루의 삶을 돌아보며, 세 가지의 물음 중에 한 가지라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날 하루는 훌륭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4. 

 

 

공자가 평소에 즐겨하지 않는 행동 네 가지는, 실천에 옮기기 쉽지 않다. 그 중에 제일은 첫 번째 것. 자기 뜻만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 누구를 대하든, 어떤 주장을 대하든, 나의 뜻만을 주장하지 말자.

 

5.

 

 

    

공자로부터 사랑받았다는 자공도 공자 앞에서 사람을 서로 비교하고 이러쿵저러쿵 평가를 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그럴 겨를이 없다고 했다. 여러 사람, 특히나 여자, 특히나 아줌마들이 만난 자리에서는 자신의 자식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을 서로 비교하고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기가 쉬운데, 아무쪼록 나도 그럴 겨를이 없었으면 한다.

 

6. 그럼에도 이러쿵저러쿵 평가를 해 보면...

 

책의 부록으로 논어 원문을 실은 것이 참 좋았다. 실제로 읽어가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관심이 가는 몇 구절은 직접 원문을 살펴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쉬운 점은 편집인데, 책표지는 깔끔하고 산뜻한데, 본문의 편집은 너무 무난한 감이 있다. 공자 사진 한 장 더 넣었다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약간의 변화라도 준다면, 나름 두꺼운 책을 읽어나가는데 시원한 바람처럼 느껴질 것이다.

 

* 이 리뷰는 민음사 판미동 출판사의 책을 제공받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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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6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자님 어머니는 聖母.무사집안 사대부 세째딸.성인이나 건국시조등은 인간기준 야합으로 태어나는 분이 계십니다. 한국인의 시조조상들도 그렇습니다.하느님기준 아님.

추운겨울인데 건강하십시오.교과서와 유교경전, 정사가 기본이 되어야 옳은 사회문화가 정착될 것입니다

요즘 루머로 나도는 괴담비슷한 글들. 공자님 어머니가 무당이었다는 정사 기록은 없습니다. 공자님의 시호는 문선제(文宣帝), 공자님 아버지 시호는 계성왕(启圣王)이시고 공자님 어머니 시호는 계성왕 부인(启圣王夫人)이십니다.무당이라면 중국 고대에 왕이 최고 지위의 무당이었는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혁거세왕의 큰아들 남해왕도 무당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나중의 무당격하와는 그 시대가 다릅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무당이라면 은주시대의 왕의 제사가 일반에게도 널리 퍼져, 왕족.사대부계층의 집에서 제사를 치르게 되어, 전부 무당같이 제사신분이 높아져서 그걸보고 오도한 것일수도 있습니다.은나라왕족의 후손이시나 가난하여, 겨우 벼슬할 수 있는 士계급에서 시작하여, 만인의 스승이 되는 과정을 겪으신 위대한 성인이시자 스승 공자님. 제왕과 만백성의 스승 공자님! 공자님의 아버지가 그 당시 너무 나이가 많아 음양오행론에 비추어 볼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지난것으로도 생각되어 생물학적인 야합으로도 서술된 기록도 있으나 성인임금이시자 위대한 스승이라는 존경을 더 중요시하며 객관적으로 기록. 인류는 남자가 경제력이나 능력이 있으면, 어린여자를 얻어 종족을 보존하려는 하느님이 부여하신 신성한 마음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될게 전혀 없습니다. 공자님 어머니 안징재는 숙량흘의 동료 무사이자 친구였던 안양(顔襄)의 셋째 딸. 같은 士계급끼리의 결혼. 딸만 낳은 아버지가 정상적인 남자로 대를 잇기 위해 늦은 나이에 배필로 얻은 공자님 어머니. 그 당시 중국은 왕이나 士大夫계층이 일부 다처제로 대를 잇는게 아주 자연스러운 사회였습니다.하느님, 성인이나 역사적 인물의 경우, 타국의 침략을 받아 지배자가 바뀔경우 격하되는 경우가 많은데, 세계사와 국사, 유교경전, 가톨릭경전, 국내법.국제법, 그리고 정사(正史)로 판단해야 합니다. 혹시 루머로 대중언론에서 세력을 얻은 세력들이 하느님.성인.황제(요순우탕문무주공 포함)들에 대해 오도할까봐 걱정되어서 덧붙입니다. 공자님이 사시던 춘추전국시대에 무당이라면 은주시대 최고제사장인 왕의 제사가 일반에게도 널리 퍼져, 왕족.사대부계층의 집에서 제사를 치르게 되어, 전부 이전왕조 최고 무당같이 제사신분이 높아져서 그걸보고 억측하여 야담을 만들수 있겠습니다. 요순우탕문무주공 및 공자님, 기자조선시대의 왕, 삼한의 왕, 부여 금와왕, 고구려 (고)주몽왕, 신라 (박)혁거세, 신라 남해왕같은 고대의 최고 제사장(최고 무당이자 왕)과 관련되어, 나중의 개념으로 왜곡도 가능하겠다고 우려해봅니다.



교과서(국사,세계사, 윤리,한문), 유교경전(동아시아 세계종교),가톨릭경전(서유럽.중남미 세계종교), 국내법(헌법).국제법, 正史와 다른 대중언론.루머類는 야사나 영원한 야담.침팬치 부처 MONKEY(부처 MONKEY가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다, 인도불교신자는 천민계급됨)계열, 일본 불교 Monkey와 한국에 남은 잔재들. 성씨없는 賤民점쇠(점쇠가 유교 한국 강점기에 마당쇠賤民.불교 monkey 경성제대설립.그 후신이 주권.학벌없는 불교 서울대 monkey와 각종 추종 노비.하인들. 잔재가 많음)를 천황옹립하여 하느님보다 높다고 날뛰다 유일하게 원자탄맞고 패전. 해방후 미군정령 발효, 전국민이 조선국교 유교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 현재 5,000만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도임.강점기에 강제 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한국에 종교주권이 없음. 불교발상지 인도는 불교신자가 천민계급으로 인식됨.부처는 그래서 일본 및 동남아시아 불교국에서 침팬치.불가촉 천민계급의 우두머리로 인정됨.



@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 공자님의 시호.

공자님 어머니 계성왕 부인(안징재)께서는 공자님 아버지 계성왕 공흘(숙량흘)님의 동료 무사이자 친구였던 안양(顔襄)의 셋째 딸. 같은 士大夫계급끼리의 결혼. 딸만 낳은 아버지가 정상적인 남자로 대를 잇기 위해 늦은 나이에 배필로 얻은 공자님 어머니. 그 당시 중국은 왕이나 士大夫계층이 일부 다처제로 대를 잇는게 아주 자연스러운 사회였습니다.

하늘이 보내신 성자이신 성인 임금 공자님은 황제 칭호인 문선제(文宣帝).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圣文宣王)의 오랜 전통으로 호칭되어 오고 있습니다.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신 공자님. 참고로 하면, 공자님 아버지 시호는 계성왕(启圣王)이시고 공자님 어머니 시호는 계성왕 부인(启圣王夫人)이십니다.공자님 어머니는 하느님이 보내신 성인 임금 공자(文宣帝, 大成之聖文宣王, 至聖先師)님을 낳으신 聖母.



그리고 중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서자차별이 없었습니다. 한국과는 개념이 달라왔습니다. 왕의 경우 그 자손은 누구나 왕족이었는데, 양반의 경우 고려시대와 달리 서자가 적자보다 상당히 차별을 받는게 조선시대 초기이후의 풍속이었습니다. 한국도 갑오개혁이후로는 서자차별이 없어졌고, 해방이후에는 더더욱 법률적으로 서자차별이 없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