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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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 편이다. 팔랑팔랑 팔랑귀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면 대체로 그 이야기를 쉽게 믿는다. 그렇대~ 하면, 에이, 설마?가 아니라, 대부분 아, 그래~~ 하고 말한다.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셰익스피어, 누가 셰익스피어를 모르나.

4대 비극, 다 읽지는 않았어도 알기는 알지. (제목만 아는 것도 아는 걸로 친다.)

오셀로, 그래, 그 이야기.

나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오셀로]를 읽지 않았었는데, 네이버 앱에 올라온 [오셀로]에 대한 글 한 꼭지를 읽게 되었다. 음, 맞아, 그래 그렇구나. 근데 글을 참 잘 썼네. 누구지? 맨 밑에 이렇게 쓰여 있다. 김/연/수.

아, 김연수가 쓴 글이구나.

누가 셰익스피어를 모르나. 4대 비극을, 오셀로를. 하지만, 김연수가 이렇게 격찬한 작품이라니. 나도 읽/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 말을 진짜, 잘 듣는 편이다.

 

브라반시오    절대로 대담하지 않았고

                   너무나 잠잠하고 조용하여 조금만 움직여도

                   얼굴을 붉히던 처녀였어. 그런데 그 애가

                   본성과 연령과 나라의 차이와

                    평판과 모든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겁나서 쳐다보도 않던 것과 사랑에 빠져? (44쪽, 97-102행)

 

 

데스데모나의 아버지 브라반시오는 딸의 정신이 가출해버려 무어인과 결혼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본성과 연령과 나라의 차이를 극복한 사랑의 힘. 브라반시오는 그러한 사랑의 힘을 믿지 않는다. 노골적인 무시와 참기 어려운 모욕 앞에서도 오셀로는 자기는 데스데모나를 거짓으로 유혹한 게 아님을, 두 사람은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음을 밝힌다.

오셀로           그녀는 제게 고마워했고 이르기를

                   그녀를 사랑하는 제 친구가 있다면

                   제 얘기를 하도록 가르쳐주는 것만으로

                   그녀에게 구애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 귀띔 받고 나서 제가 말을 꺼냈지요.

                   그녀는 제가 겪은 위험 때문에 절 사랑했고

                   전 그녀가 그 위험을 동정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쓴 유일한 마법입니다. (47쪽, 174-181행)

 

 

 

이 때, 자신과 데스데모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오셀로는 얼마나 침착한지, 얼마나 당당한지, 얼마나 의연한지. 눈으로 보이는, 확연히 구별되는 그의 외모 이면에 단단하고, 자신감에 차 있는 오셀로의 내면을 확인하게 된다. 데스데모나가 그를 존경하고 사랑함이, 실로 마땅하다. 그는 존경과 사랑을 받을만큼 멋진 사람이다.

오셀로가 왜 그렇게도 쉽사리 또는 어렵사리 이야고의 유혹에 넘어갈까, 라는 문제는 비평가들의 관심거리였다. 오셀로의 본성은 질투와는 거리가 멀다고 보는 브래들리Bradley는 사태 진전의 주원인을 오셀로 밖에서, 즉 이야고의 탁월한 계략에서 찾고, 리비스Leavis는 반대로 오셀로 안에서, 그의 무지와 자기 자신과 데스데모나에 대한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만족감에서 찾는다. 그 밖에도 고다드Goddard는 그 이유를 그가 애초부터 데스데모나의 사랑을,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꿈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호니그맨Honigman은 그것을 오셀로의 <아주 특별하면서도 비밀스러운 불안감>으로, 그리고 맥앨린든McAlindon은 그것을 <오셀로의 예외적인 성품과 상황뿐만 아니라 좀 더 의미심장하게는 보편적인 인간성 안에 있는 세력들 사이의 불균형>이라고 설명했다. (작품해설, 오셀로의 사랑과 이분법의 비극, 214쪽)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오셀로』에 더해야 할 말이 뭐 있겠냐마는, (하면서 끝내 한 마디 더하고 마는) 내가 보기에 오셀로가 이야고의 유혹에 넘어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야 마는 것은, 완벽하게 존재해야하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강박 때문인 것 같다.

본성과 연령, 나라의 차이와, 평판을 뒤로 하고, 맺어진 자신의 사랑. 충실한 아내, 자신에게 존경과 사랑을 끊임없이 보내는 아내에게, 그는 완벽한 사랑, 완벽한 헌신을 요구하고 있다.

데스데모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완벽하다고 믿는 오셀로는 자신에 대한 데스데모나의 사랑 또한 완벽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고에 의해 일말의 의심이 그의 마음에 심겨졌을 때, 물을 주고, 햇볕이 비추도록 그 불화의 씨앗을 돌보는 이는 이야고가 아니라, 오셀로 자신이다. 파멸의 원인이 오셀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파멸의 과정에서 오셀로가 자신의 역할을 주도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행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완벽함에 대한 강박이 사랑을 의심으로, 연정을 질투로 바꾸어 버린 것은 차치하더라도,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처단하기 위해 서두르는 모습은 특히 더 아쉽다. 복수, 처단, 응징을 위해 뛰쳐나가는 오셀로가, 두 눈이 벌개져 이야고의 속임에, “그래, 그래.”하는 오셀로가 너무 불쌍하다.

오셀로, 왜 그렇게 서두르나요?

왜 그렇게 서두르나요, 오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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